***신구약 성경강해***/- 골로새서 강해

[스크랩] 골로새서- 각권 연구

에반젤(복음) 2019. 11. 30. 19:45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골 3:4절, 206.356.410장.A

골로새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편지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는 바울의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중에 하나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개척했다고 보기보다는 바울에게서 배운 사람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개척하지는 않았지만 그 교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1:3-5).골로새서라는 도시는 양털과 양털식물의 주산지로 무역로상에 있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그곳 원주민들과 헬라 시민들과 유대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이 골로새로 이주해서 살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골로새의 이단자들과 기록 목적입니다. 골로새는 많은 이단자들이 있었습니다. 혼합 종교를 표방하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헛되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을 속이는 자들이요(2:4) 철학의 헛된 속임수로 성도들을 노략하는 자들이었습니다.(2:8).

바울은 2: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謙遜)함과 천사(天使)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肉體)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여기 천사 숭배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한 2:23절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종합할 때 골로새 지역에 어떤 이단자들이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 지역은 혼합종교가 판을 치며,이방(異邦) 신을 섬기는 의식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물론 골로새 지역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여러 지역(地域)에 걸쳐서 다양한 형태의 우상들이 있었음을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과 헬라 시민, 유대인들이 혼합되어 혼합 종교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천사 숭배 사상은 전형적인 헬라 세계의 세계관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또한 금욕주의적인 의식이 강했습니다.

이 의식은 2:23절에 기록된 대로 일부러 겸손함과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자해 행위였습니다. 이런 행위로는 신앙에 아무 유익이 없음을 사도는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골로새에 있는 골로새교회에게 참 복음을 증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를 지배하고 계심을 증거 합니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골로새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 것이 골로새서입니다.

2.골로새서의 복음입니다. 골로새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사도에게 전해졌습니다.(1:5-6). 그런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바울은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필요한 지혜와 총명이 가득하여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기도하며 바라고 있습니다.(1:9-11)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흑암에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통해서, 그분을 위해서 모든 세계가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1:15-17).

사도는 무엇 때문에 골로새서 1장에서부터 강력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하고 강조하고 있습니까? 사도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이단자들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골로새교회로 하여금 이단을 멀리하고 제거하게 하기 위하여 복음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교회를 얼마만큼 끔직하게 생각하고 있느냐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는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1:24). 오직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영광의 소망입니다.(1:27).

이 영광의 소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역사로 인하여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고백합니다.(1:29). 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 주안에 있는 성도들은 세상 철학의 헛된 속임수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거짓 이단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님의 승리(2:15)가 우리들을 자유케 하고 승리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3장에서는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땅에 것을 생각하고 말고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주로 재림하실 때에 우리들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함께 할 것을 말씀합니다.(3:1-4). 그러면서 3:5절에서부터 4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이제 헬라인, 유대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로서 말씀에 풍성함 속에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3:16) 어떤 경우에서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이든 사회이든 할 것이 없이 우리들이 서 있는 그곳,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아내와 남편의 사이 역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도직의 사명,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사명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고 합니다.(4:3).

바울은 이 일을 위해서 고통과 고난도 달게 받았고 앞으로도 달게 받을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관계된 성도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들 역시 열심히 하나님의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4:11-17). 성도들끼리 안부는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지체들의 하나 된 모습입니다.

3.우리 교회에 들어온 혼합주의입니다. 우리들은 골로새서를 살펴보면서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온 종교적 혼합 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종교적 다원주의로 나타납니다.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려는 자들은 모든 종교는 같은 목표를 향해서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을 우리 민족의 토착화라는 이름 아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전통적인 한국의 무속 종교의 틀과 신앙 체계에 맞추려고 합니다. 골로새서는 바로 이런 우리들에게 토착화 신앙이라든지 종교다원주의 신앙의 한계를 말함과 동시에 정확한 금을 그어주는 말씀입니다.

종교적 혼합 주의가 기독교 신앙의 진보주의라는 이름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복음을 유교와 불교의 문화 속에서 설명하고 재구성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사라는 것은 조상에 대한 감사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때 절을 해도 그것은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합니다.

또한 국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지극히 성경적이라고 합니다. 접근 자체가 국악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 마치 우리들이 갖고 있는 문화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토착화된 우리들의 문화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좋은 수단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나고 드러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가 골로새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 한 말이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골4:18절에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골로새교회에게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감옥에서 출옥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는가를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이기에 바울은 그 복음을 위해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까지 수고하고 힘썼습니까?

우리들은 지금 복음을 위해서 무슨 일을 얼마만큼 애쓰고 힘쓰고 있습니까? 헌신하고 있습니까? 언제까지 내 자신과 내 가정, 내 자식들의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만 집착할 것입니까? 이제 우리들의 영적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 주변은 영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에 대한 왜곡 현상이 많이 일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의 왜곡 현상은 우리 민족의 무속 신앙 때문에 일어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을 무속 신앙과 접목시키려는 가련한 모습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의 이론입니다. 예수를 믿는 가정에 유전적인 질병이나 뜻모르게 당하는 고통은 조상들의 죄 때문에 후손에게 대물림 된 하나님의 저주라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한국 교계에 이상한 신학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에 동조한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다시 공부한 다음에 목회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의 말대로 그들은 기독교 교계를 떠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상한 무속 신앙의 원리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것이 바로 골로새서에서 말한 이단적인 혼합 종교의 결과입니다. 우리들은 긴장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들 때문에 한국 교계를 망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지켜 온 교회입니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역사의 현장 속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순수한 복음을 전하고 지켜야 할 것인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이론을 가지고 선량한 성도들을 홀란스럽게 하는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모든 것이 주 안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할 것 없습니다. 사53:5.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깨닫고 믿는 다면 주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받은 바 은혜를 기억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구약 성경강해*** > - 골로새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골로새서  (0) 2019.11.30
골로새서 2:20-23 연구  (0) 2019.11.30
[스크랩] 골로새서 개요  (0) 2019.11.30
[스크랩] 골로새서 공부  (0) 2019.11.30
골로새서  (0) 2019.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