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믿음과 시련,
벧전 1:7절, 383.369.383장.&
베드로 전서는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 사도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생애 말년(주후약67년)에 기록된 서신입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써서 동역자인 실루아노 편에(벧전5:12) 흩어져 있는 나그네인 성도들에게 전해진 서신입니다.(1:1-2절).
1.베드로는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갈릴리 해변(海邊)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漁夫)였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제자(弟子)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같은 기록이 마4:18-19절에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兄弟)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오순절 집회에서 설교를 했던 자였습니다. 행2:14절에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그 유명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자였습니다.
행3: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했던 자이기도 합니다.(마16:16).
그러나 이런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팔려 가실 때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 하노라 하더라고 했습니다.(마26:72). 그러나 이런 베드로는 자신의 행위가 이미 예수님께서 미리 예언해 주신 말씀이었음을 생각하고 심히 통곡하기까지 했던 자였습니다.(마26:75).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 보내 주신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아 근근히 살아갔던 그런 베드로였습니다. 많이 배운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택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총명과 명철을 주셔서 위대한 능력의 종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행4:13절에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라고 할 정도로, 베드로는 이제 더 이상 어부의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또한 말년에 베드로 전서와 후서를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는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는데 그는 예수님과 같이 바로 달려 죽는 것은 너무나 송구스럽다고 해서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2.베드로전서의 주제입니다. 베드로는 변화무쌍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복음서를 읽은 독자들이라고 하면 베드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과 성격이 격한 것은 물론 일을 전면에서 추진하면서도 시행착오도 많이 했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말년에 기록한 베드로전서와 후서를 보게 되면 잘 정리된 보배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보낸 서신을 받아 보게 된 자들은,
흩어져 사는 나그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그네들이 어떤 나그네들입니까?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1:2).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은 시련과 고난과 환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시련을 믿음의 시련(1:7), 불시험(4:12), 혹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4:13)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시련 속에서도 성도들은 인내해야 합니까? 그것은 보배로운 피(1:19)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벧전2: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族屬)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百姓)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특권(特權)을 받은 만큼 사명(使命)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은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고 사회생활과(2:13-25) 가정 생활(3:1-7)과 개인 신앙생활(3:8-4:19), 그리고 교회 생활(5:1-9)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결론적인 말씀으로 5: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베드로전서는 보배로운 그리스도 안에서 보배로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사탄 마귀에게 넘어가지 말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을 온전하게 하고 굳게 하고 강하게 하며 그 터를 견고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 서신을 보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말씀한 믿음과 구원의 도리를 갖고 있는가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교회들은 믿음과 구원의 도리보다 성공의 비결이 더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하여 이 길만이 교회 성장의 열쇠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과 구분할 수 있는 담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교회에 오지 않더라도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세상 속에서 진행된 다양한 교양 강좌나 강연회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는 이제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설교의 권위는 점점 쇠퇴해져 버렸다.
베드로전서는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생명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음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것은 베드로 사도가 말한 보배로운 피,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2:4,6)인 것입니다.
3.시련 중에도 기뻐하며 거룩하게 생활하라고 합니다.(1장) 첫째, 사도는 1장에서 먼저 어떤 자들에게 이 서신을 보내고 있는지, 또는 당시 전형적인 서신의 형식인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1-2). 택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은혜(恩惠)와 평강(平康)의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3-12절까지에서 왜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찬송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①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을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돌립니다.(1:3).②하늘에 간직된 기업을 잇게 해 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고 있습니다.(1:4).
③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1:5). 찬송할 이유가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6-12절까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①우리들을 연단 하려고 오는 시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6-7). 이 시련(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할 수밖에 없는 우리 성도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②그러나 시련이 있다고 해서 그것은 버림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고난과 시련 후에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도 고난 후에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1:8-12). 셋째, 13-25절은 그러므로(13) 세상이 악하다고 할지라도 그 세상(世上)을 따라가지 말고 성도(聖徒)들은 거룩하게 구별(久別)된 생활(生活)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14-15절에 너희가 순종(順從)하는 자식(子息)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합니다.
4.복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사회생활입니다.(2장) 첫째, 우리들의 구원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2:1) 우리 성도(聖徒)들은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새롭게 출발(出發)해야 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장(成長)입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2:2)는 말씀 때문에 순전(純全)하고 신령(神靈)한 젖을 사모(思慕)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과 구원, 성장은 오직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2:3-8절).
사도 베드로는 거룩한 성도들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기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수하는 자로서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 같은 특권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2:9-10).
둘째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회생활입니다.(2:11-25). 성도들의 거룩한 구별된 생활을 이방인들에게 보여주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가 권력자나 노예 생활에서 오는 애매한 고난도 참고 인내할 때 그 모든 고난도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2:13-20). 성도들이 이 같은 말씀에 순종할 때,
성도는 비로소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을 제대로 따라 가고 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2:21). 그러면 예수님이 가셨던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①죄가 없으시고(2:22) ②고난을 받으시되 공의로 심판(審判)하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2:23). ③십자가(十字架)에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罪)를 담당하셨습니다.(2:24).
5.복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가정 생활과 신앙생활입니다.(3-4장) 첫째, 성도의 가정 생활입니다.(3:1-7절).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성도들의 생활은 가정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 중에 아내 된 자들은 마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남편을 주님을 모시듯이 자기 남편에게도 그런 희생과 봉사를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내의 행위는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3:1-6). 사도는 아내에게만 당부하지 않고 남편에게도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더불어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에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성도의 기도가 잘못된 부부 관계로 인하여 응답 받지 못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3:7). 둘째, 신앙생활입니다.(3:8-4:19). 성도들은 자기 혼자만 영원한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형제 된 지체들과 더불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고 축복해 주는 겸손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3:8-12절).
우리 성도(聖徒)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福音)을 위해서 당한 고난(苦難)은 오히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확신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마치 어떠한 고난과 죄악 가운데서도 인내하는 것은 노아 홍수 때 노아가 방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이 악하고 타락할 때 노아는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입니다. 우리들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킬 때 노아와 같은 복이 우리들에게도 임할 것입니다.(3:13-22).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행동이며 이것은 성도들을 성도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4:1-11). 이런 이유 때문에 시험을 오히려 즐거워해야 합니다.(4:12-14).
여기서 말한 시험은 사탄에게 유혹 받은 시험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훈련하려고, 시련 하려고 오는 고난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런 고난을 통해서 좌절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4:15-19).
6.복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교회 생활과 작별 인사입니다.(5장) 교회(敎會) 장로(長老)들인 감독자(監督者)들은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자신의 권력과 명예, 이득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감독자의 직분을 잘 감당할 때에 하나님의 크신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5:4) 또한 젊은 자들은 겸손함으로 장로들에게 순복하여 모든 권력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짐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5:5-6).
그리고 모든 권력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감독자는 권력을 남용해서도 안 됩니다.(5:7-11). 사도 베드로는 이와 같은 복음의 말씀을 보내면서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5:14절에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강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참 평화가 없습니다. 주님은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는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하신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이 눈 앞에 있을 지라도 믿음의 기도를 드림으로 응답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벧전 1:7절, 383.369.383장.&
베드로 전서는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 사도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생애 말년(주후약67년)에 기록된 서신입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써서 동역자인 실루아노 편에(벧전5:12) 흩어져 있는 나그네인 성도들에게 전해진 서신입니다.(1:1-2절).
1.베드로는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갈릴리 해변(海邊)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漁夫)였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제자(弟子)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같은 기록이 마4:18-19절에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兄弟)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오순절 집회에서 설교를 했던 자였습니다. 행2:14절에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그 유명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자였습니다.
행3: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했던 자이기도 합니다.(마16:16).
그러나 이런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팔려 가실 때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 하노라 하더라고 했습니다.(마26:72). 그러나 이런 베드로는 자신의 행위가 이미 예수님께서 미리 예언해 주신 말씀이었음을 생각하고 심히 통곡하기까지 했던 자였습니다.(마26:75).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 보내 주신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아 근근히 살아갔던 그런 베드로였습니다. 많이 배운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택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총명과 명철을 주셔서 위대한 능력의 종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행4:13절에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라고 할 정도로, 베드로는 이제 더 이상 어부의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또한 말년에 베드로 전서와 후서를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는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는데 그는 예수님과 같이 바로 달려 죽는 것은 너무나 송구스럽다고 해서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2.베드로전서의 주제입니다. 베드로는 변화무쌍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복음서를 읽은 독자들이라고 하면 베드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과 성격이 격한 것은 물론 일을 전면에서 추진하면서도 시행착오도 많이 했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말년에 기록한 베드로전서와 후서를 보게 되면 잘 정리된 보배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보낸 서신을 받아 보게 된 자들은,
흩어져 사는 나그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그네들이 어떤 나그네들입니까?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1:2).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은 시련과 고난과 환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시련을 믿음의 시련(1:7), 불시험(4:12), 혹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4:13)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시련 속에서도 성도들은 인내해야 합니까? 그것은 보배로운 피(1:19)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벧전2: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族屬)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百姓)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특권(特權)을 받은 만큼 사명(使命)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은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고 사회생활과(2:13-25) 가정 생활(3:1-7)과 개인 신앙생활(3:8-4:19), 그리고 교회 생활(5:1-9)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결론적인 말씀으로 5: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베드로전서는 보배로운 그리스도 안에서 보배로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사탄 마귀에게 넘어가지 말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을 온전하게 하고 굳게 하고 강하게 하며 그 터를 견고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 서신을 보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말씀한 믿음과 구원의 도리를 갖고 있는가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교회들은 믿음과 구원의 도리보다 성공의 비결이 더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하여 이 길만이 교회 성장의 열쇠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과 구분할 수 있는 담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교회에 오지 않더라도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세상 속에서 진행된 다양한 교양 강좌나 강연회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는 이제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설교의 권위는 점점 쇠퇴해져 버렸다.
베드로전서는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생명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음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것은 베드로 사도가 말한 보배로운 피,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2:4,6)인 것입니다.
3.시련 중에도 기뻐하며 거룩하게 생활하라고 합니다.(1장) 첫째, 사도는 1장에서 먼저 어떤 자들에게 이 서신을 보내고 있는지, 또는 당시 전형적인 서신의 형식인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1-2). 택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은혜(恩惠)와 평강(平康)의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3-12절까지에서 왜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찬송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①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을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돌립니다.(1:3).②하늘에 간직된 기업을 잇게 해 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고 있습니다.(1:4).
③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1:5). 찬송할 이유가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6-12절까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①우리들을 연단 하려고 오는 시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6-7). 이 시련(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할 수밖에 없는 우리 성도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②그러나 시련이 있다고 해서 그것은 버림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고난과 시련 후에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도 고난 후에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1:8-12). 셋째, 13-25절은 그러므로(13) 세상이 악하다고 할지라도 그 세상(世上)을 따라가지 말고 성도(聖徒)들은 거룩하게 구별(久別)된 생활(生活)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14-15절에 너희가 순종(順從)하는 자식(子息)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합니다.
4.복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사회생활입니다.(2장) 첫째, 우리들의 구원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2:1) 우리 성도(聖徒)들은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새롭게 출발(出發)해야 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장(成長)입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2:2)는 말씀 때문에 순전(純全)하고 신령(神靈)한 젖을 사모(思慕)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과 구원, 성장은 오직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2:3-8절).
사도 베드로는 거룩한 성도들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기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수하는 자로서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 같은 특권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2:9-10).
둘째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회생활입니다.(2:11-25). 성도들의 거룩한 구별된 생활을 이방인들에게 보여주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가 권력자나 노예 생활에서 오는 애매한 고난도 참고 인내할 때 그 모든 고난도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2:13-20). 성도들이 이 같은 말씀에 순종할 때,
성도는 비로소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을 제대로 따라 가고 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2:21). 그러면 예수님이 가셨던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①죄가 없으시고(2:22) ②고난을 받으시되 공의로 심판(審判)하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2:23). ③십자가(十字架)에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罪)를 담당하셨습니다.(2:24).
5.복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가정 생활과 신앙생활입니다.(3-4장) 첫째, 성도의 가정 생활입니다.(3:1-7절).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성도들의 생활은 가정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 중에 아내 된 자들은 마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남편을 주님을 모시듯이 자기 남편에게도 그런 희생과 봉사를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내의 행위는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3:1-6). 사도는 아내에게만 당부하지 않고 남편에게도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더불어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에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성도의 기도가 잘못된 부부 관계로 인하여 응답 받지 못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3:7). 둘째, 신앙생활입니다.(3:8-4:19). 성도들은 자기 혼자만 영원한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형제 된 지체들과 더불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고 축복해 주는 겸손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3:8-12절).
우리 성도(聖徒)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福音)을 위해서 당한 고난(苦難)은 오히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확신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마치 어떠한 고난과 죄악 가운데서도 인내하는 것은 노아 홍수 때 노아가 방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이 악하고 타락할 때 노아는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입니다. 우리들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킬 때 노아와 같은 복이 우리들에게도 임할 것입니다.(3:13-22).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행동이며 이것은 성도들을 성도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4:1-11). 이런 이유 때문에 시험을 오히려 즐거워해야 합니다.(4:12-14).
여기서 말한 시험은 사탄에게 유혹 받은 시험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훈련하려고, 시련 하려고 오는 고난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런 고난을 통해서 좌절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4:15-19).
6.복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교회 생활과 작별 인사입니다.(5장) 교회(敎會) 장로(長老)들인 감독자(監督者)들은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자신의 권력과 명예, 이득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감독자의 직분을 잘 감당할 때에 하나님의 크신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5:4) 또한 젊은 자들은 겸손함으로 장로들에게 순복하여 모든 권력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짐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5:5-6).
그리고 모든 권력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감독자는 권력을 남용해서도 안 됩니다.(5:7-11). 사도 베드로는 이와 같은 복음의 말씀을 보내면서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5:14절에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강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참 평화가 없습니다. 주님은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는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하신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이 눈 앞에 있을 지라도 믿음의 기도를 드림으로 응답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주는 포도나무 나는 가지 글쓴이 : 이종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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