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벧전,후서 강해

[스크랩] 베드로 후서- 각권 연구

에반젤(복음) 2019. 11. 28. 10:31



    

믿음의 열매,
벧후1:8절, 340.344.539장.&

주님의 몸된 교회는 그 자체로서 완전한 교회입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말은 본질적인 의미의 교회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 땅의 조직교회는 유형교회입니다. 이 땅에서 조직과 형체를 가지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여 주님의 몸된 사명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이 유형교회 안에는 가라지도 함께 공존합니다.

이 땅에 조직과 형체를 갖고 있는 교회는 언제나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형교회는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들이 교회 안에 침투하여 진짜 행세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교회인지 늘 묵상하고 살펴야 합니다.

건물에 십자가를 세웠다고 해서 그것이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진정(眞情)한 교회(敎會)인 것과 교회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고쳐야 하고 개혁(改革)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후서를 통해서 진정한 교회가 무엇이며,

그 교회 구성원(構成員)인 성도(聖徒)들은 어떤 삶의 열매와 경고를 받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베드로후서의 주제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두 번째 편지를 써서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따라서 이 서신은 예수를 믿게 하려고 보낸 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보낸 서신도 아닙니다. 이 서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書信)입니다.

베드로는 전편인 베드로전서에서 많은 환난과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하고 소망을 주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주후 51년 글라우디오 황제 이후 로마제국의 박해가 심했습니다.

행18:2절에 보면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 황제인 글라우디오가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이 칙령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로마를 다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각처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유대인들 가운데는 예수를 믿음으로 크리스천이 된 자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방인들 가운데서 예수를 믿어 흩어져 살아간 자들도 있었지만 특히 유대교의 박해와 로마 황제의 박해로 신앙을 지켜 흩어져 살아가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소망을 주기 위해서 편지를 보냅니다.

이런 편지를 보낸 후에 베드로는 다시 두 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전편과는 달리 후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어떤 열매를 맺게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믿음에 따른 열매가 세상 사람들과 어떤 구별을 갖게 하는지를 말씀해 주는 서신입니다.

요약하면 믿음의 열매와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 그리고 재림의 약속에 관한 주제들을 통해 말씀합니다. 교회의 핍박과 박해로 인하여 교회는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이 닥쳐 올 때 항상 교회는 질서가 무너지고 내분과 잘못된 비행도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런 상황 속에서 밖으로부터 오는 박해와 내부로부터 오는 무질서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팎으로부터 오는 거짓 교사들의 비진리에 대한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질서한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되면 성도들의 삶은 무질서해 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며 복음을 증거 하는 자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문제(問題)를 종합적(綜合的)으로 언급한 베드로후서는 오늘날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에게 준 교훈이 크다 하겠습니다.

2.보배로운 약속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습니다.(1장) 첫째, 자기소개와 인사말입니다.(1:1-2). 사도는 후편에서도 먼저 서신을 받아 볼 성도들을 향해 인사말을 합니다. 베드로는 인사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라고 합니다.

이런 사도가 자신들과 동일한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합니다. 그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우리 구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은혜와 평강이 믿음으로 통해서 오지만 그 믿음을 통해서 성도된 자들은 이제 앎의 과정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이 앎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요17: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은혜와 평강을 더욱 풍성하게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농도 짙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둘째, 부르셔서 생명을 주신 목적에 관해서 말씀합니다.(3-11) 우리들은 은혜와 평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면 알수록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을 주시므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을 우리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생명과 경건, 영광과 덕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거해 나타내어 줍니다. 생명을 간직한 자들이 경건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그 열매는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입니다.(1:4-7).

이런 열매를 맺은 성도들이 되도록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1:8).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든지 근시안의 신앙입니다. 이런 자들은 우리들을 열매 없는 죄악 속에서 건져내사 신앙의 열매를 맺도록 해 주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자입니다.(1:9).

이 말씀은 결국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믿음대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우리들에게 힘 쓸 것과 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10). 벧후1:11절에서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합니다.

셋째,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지만 염려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영광 때문입니다.(12-21)사도는 보배로운 믿음과 약속을 받은 우리들이 항상 기억하며 살도록 하기 위한 권면을 해 주고 있습니다.(1:12).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것을 사도는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임시 거처인 장막이 언젠가는 철거된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했다고 합니다.(1: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낙심하지 않고 조금도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영광 때문입니다.(1:16). 베드로는 이 같은 소망을 확신(確信)시켜 주기 위해서 자신이 겪었고 보았던 사실에 관해서 말해 줍니다.

재림하신 이후 우리들에게 펼쳐질 영광스러운 세계에 대한 예표로서 사도는 이미 변화산상에서 목격했습니다.(1:15-18). 그래서 사도는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억한 종들에게는 마치 새벽에 샛별이 떠오르듯이 주님은 반드시 샛별과 같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1:19).

모든 예언(豫言)은 바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再臨)을 약속(約束)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예언(豫言)을 믿어야 하는 것은 그 예언(豫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1:20-21).

3.예언과 약속을 믿지 않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2장) 사도는 2장에서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그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아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고의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경고는 거짓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해 주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의 주장과 행위로 거짓됨이 드러납니다.

그들의 행위는 주님이 주신 믿음의 열매와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가장 먼저 그들은 ①주를 부인합니다.(2:1). ②양들을 속이고 착취를 합니다.(2:3) ③호색합니다.(2:2,8). ④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거합니다.(2:10). ⑤권위를 무시합니다.(2:10). ⑥연락과 연회를 일삼았습니다.(2:13).

⑦음탕한 눈으로 죄짓기를 쉬지 않습니다.(2:14). ⑧그들은 불의한 발람과 같이 불의한 삯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2:15-16). 모압왕 발락이 암몬의 마술사인 발락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부탁합니다. 발람은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다 하나님의 간섭으로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게 했습니다.

⑨바람 따라 구름 따라 지조 없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2:17). 이런 자들은 2:22절과 같은 자들입니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이런 현상을 볼 때 우리들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신앙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4.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입니다.(3장)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하면 할수록 성도들에게는 큰 피해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는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두 번째 서신을 보낼 수밖에 없음을 말씀합니다.(3:1).

성도들에게 구약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씀한 내용을 기억하게 하려고 서신을 보낸다고 합니다.(3:2). 기억해야 할 말씀으로 사도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약 속의 말씀을 3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재림 약속이 거짓이라고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3:4).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한다고 합니다.(3:3). 기롱한다는 말은 조롱한다는 말입니다. 조롱하면서 하는 말이 4절에 기록됩니다.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창조 이후 세상이 어느 것 하나 변한 것이 없듯이 예수님이, 재림하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창조 이후 노아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통해서 세상을 심판하심과 같이 예수님은 반드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3:5-6). 예수님의 재림이 없을 것을 이야기 한 거짓 선지자들의 의도는 하나님의 심판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심판(審判)이 없다면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식으로 성도(聖徒)들을 유혹(誘惑)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강하게 힘주어 말씀합니다. 심판 없음이 아니라 심판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심판하지는 않지만 때를 기다리십니다. 때가 되면 그때 가서 심판하며 멸망시킬 것입니다.(3:7).

따라서 우리들은 지금 당장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이 없다고 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심판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8-9). 재림에 대한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천년이 되든 하루가 되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3:8).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 같고 재림의 때를 연기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는 그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子女)들이 다 회개(悔改)하고 돌아오는 그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때가 곧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는 시기 때입니다. 따라서 재림의 때와 시기는 목적으로 완성으로서의 종말입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종말이 있다는 개념의 종말이 아니라 목적의 완성으로서의 종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일을 끝내 놓고 퇴근하라라고 했을 때 일을 끝내는 그 시점이 퇴근입니다.

몇 시에 퇴근입니까?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언제 일이 끝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이 완성되면 퇴근인 끝이라는 말입니다. 즉 종말이라는 말입니다.

종말이 지연된 것은 아닙니다. 일이 계속(繼續) 진행(進行)된다는 것은 퇴근이 가까이 온 것처럼 종말이 가까이 온다는 말입니다. 셋째, 사모하며 기다리라고 합니다.(3:10-13). 종말은 반드시 임합니다. 도둑이 예고 없이 오듯이 주님은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올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고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그 재림이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준비하지 않으며 세상 환락 속에 사는 자들은 깜짝 놀랄 것입니다. 재림의 때 하늘은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모든 형제는 불에 타고 말 것입니다.(3:10).

예수님의 초림 때는 구원하려고 오셨지만 재림 때는 심판하려고 오십니다. 그때 우리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광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11-12절).

재림을 준비하며 사모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은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결코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죄 용서함을 받은 거룩한 자녀들이 들어갈 것입니다.(3:13).

넷째, 그러므로 이렇게 살라고 합니다.(3:14-18). 재림(再臨)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도는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므써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즉 죄를 멀리하고 주님의 평강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힘쓰라고 합니다.(14).

또한 우리들이 구원(救援)의 복음(福音)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15절).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강조한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조심하라는 주의 사항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자기 멋대로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滅亡)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3:16). 우리들은 이런 경고(警告)를 받으며 악한 자의 속임수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3:17).

그리고 영적(靈的)으로 성장(成長)하여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영광을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말씀으로 베드로후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구원이 되지 않도록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