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요한1,2,3서 강해

[스크랩] 요한 이 삼서 -- [핵심성경연구-위어스비]

에반젤(복음) 2019. 11. 27. 20:22


요이 1:4-6

문안과 교훈-요한이서와 삼서-

 

요한이서

   

만년의 요한은 지교회에 속한 택하심을 입은 한 여인에게 이 간단한 개인적인 편지를 썼다. 어떤 연구자들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를 한 개인을 지칭함으로 생각하나, 다른 이들은 교회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지 어떤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2-3절은 소개하는 구절로, 이 여인이 진리(하나님의 말씀)를 실천하므로 널리 알려져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묘사한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 하는 것임을 유의하자.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교훈과 거짓말이 거하는 곳에서는 사귐을 가질 수가 없다. 요한은 두 가지 주된 문제를 다룬다.

 

1. 진리를 실천함(요이 4-6절)

 

행한다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자. 진리는 우리가 연구하거나 믿는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다. 진리를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우리의 행동을 통하여 진리를 나타내야만 한다. 요한은 이 여인의 자녀가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는 것이 확실함을 알고 기뻐하였다. 이것은 요한일서 1장에서 논의했던 "빛 가운데서 행함"과 동등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우리가 성취해야 할 어떤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단순한 순종이다.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를 사랑할 때 이들은 부모에게 순종한다.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킬지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사랑하면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때가 너무도 많다. 성도들이 성경의 어떤 구절들에 대하여 해석을 달리한다 할지라도 서로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일치해야 한다. 성경에 대한 진지한 사랑이 거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도 있을 것이다.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과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분리될 수가 없다."

 

요이 1:7-11

2. 진리를 수호함(요이 7-11절)

 

속이는 자들(7절)-여기서 요한은 그의 첫 서신에서 논의했던 거짓 선생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거짓 선생들을 가려내는 시금석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만일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한다면 그는 거짓되며 적그리스도로부터 난 자이다. 마지막 때에 한 큰 죄의 사람(적그리스도)이 나타날 것이지만 적그리스도의 영은 이미 세상에 있는 것이다(요일 4:3).

 

소멸하는 자들(8절)-요한은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일들을 소멸하는 일이 없도록 그리스도인에게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의 행보에서 우회하며, 이미 얻은 신령한 모든 기초를 상실하는 최적한 방법은 거짓 교훈과 제휴하는 것이다. 사단은 파괴자이며, 성도들에게서 그들의 축복을 빼앗아 가려고 거짓말하는 자이다.

 

떠나가는 자들(9절)-여기서 "지내쳐"란 말은 "벗어나다"는 뜻이다. 즉, 이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한도 내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진보적이고 현대적"이어서 성경으로부터 떠나는 것과 하나님이 쓰신 것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그릇된 종류의 진보이다! 그리스도인이 그의 행실에서 진보해 가는 동안 성경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적인 것들을 확증하는 교리 안에 "거해야" 한다.

 

요한은 거짓 선생들을 가정에 영접하지도 말며, 혹은 인사조차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거짓 선생들에게 주는 도움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들의 악한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집에 들여 보내기 앞서, 또는 어떤 기부금을 내기 전에 그 사람이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만 한다. 만일 어떤 의문이 생기거든 목회자와 상의하라."

 

 

요삼 1:1-8

요한삼서

 

요한삼서는 문제들을 안고 있는 지교회의 한 회원에게 씌어졌는데, 이 편지는 세 사람을 다룬다.

 

1. 가이오-잘 되어가는 그리스도인(요삼 1-8절)

 

 

우리에게 가이오와 같은 성도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요한은 그를 지칭하면서 "사랑하는"이란 말을 네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1, 2, 5, 11절). 2절은 그의 건강이 좋지 않거나, 또는 그가 병에서 막 회복된 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강건한 신령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외적인 형편이 어떠하든지 내적인 사람은 잘되어 갔었다!

 

가이오는 다른 사람들이 즐겨 거론했던 그리스도인이었다. 형제들(아마도 여행하는 전도자들이나 선교사들)이 가이오를 만나 그의 가정에서 환대를 받았다. 이들은 가이오가 진리 가운데서 행하고 있다는 것과, 그에게 찾아왔던 다른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을 돕는 데 신실히 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했다.

요한의 시대에는 호텔이나 여관들과 같은 숙박 시설이 없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당시 여행하는 복음 전도자들은 음식과 숙박에 있어서 성도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이오는 형제들을 대접하고서 그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길 때 "저희를 전송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런 그리스도인이었다.

 

가이오는 왜 형제들을 도왔는가? 그것은 그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며, 또한 한 가지 다른 이유는 그들의 사역에, 더 나아가서는 진리에 참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직접 복음 전파자가 될 수는 없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전파하는 데 도울 수는 있다!"

 

요삼 1:1-10

2. 디오드레베-교만한 그리스도인(요삼 9-10절)

 

이 사람은 회중들 내에 없어야만 할 부류의 사람이다! 그는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했고, 모든 면에서 으뜸이 되는 것, 곧 첫째가 되기를 좋아했다. 골로새서 1장 18절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으뜸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만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세례(침례)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다(요 3:30).

 

이 사람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 한 가지로는 요한의 지도력을 인정하기를거절한 것이었다. 어떤 교인이 지위나 특권을 원할 때는 은밀하든 공개적이든 목회자를 비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는 보통 "중상 운동"으로 출발하여 목회자의 성품과 사역을 훼손시키려 한다. 구약에 나오는 압살롬처럼 "현재의 지도력은 유능하지 않으나(삼하 15:1-6) 자기는 일들을 더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한다. 히브리서 13장 7, 17절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짓는다.

디오드레베는 요한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였다. 10절에 나오는 "폄론하다"는 뜻은 "거짓으로 고소하다"는 뜻이며, 디모데전서 5장 13절에 나오는 "망령된 폄론"과 유사한 말이다. 현장의 증거가 없이는 목회자에 대한 고발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을 교인들이 기억한다면 입에 오르내리는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딤전 5:19). 그는 또한 형제들을 돕기를 거절하였으며, 교회를 지배하고 교인들 중의 얼마를 내쫓기까지 하였다! 신약 성경은 어떤 권징의 경우에는 교인들을 내보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디오드레베는 그들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지도, 회중의 말을 듣지도 않고 사람들을 내보냈다!(벧전 5:3 참조)

 

교회를 파괴하는 교인들은 이러한 자들이다. 그는 권세와 권위를 열망한 나머지, 진리를 짓밟고 성경을 멸시하며, 성령을 근심케 하고 양떼를 흩어지게 한다."

 

요삼 1:11-12

3. 데메드리오-상냥한 그리스도인(요삼 11-12절)

 

디오드레베에서 데메드리오로 전환하는 것은 참으로 신선한 감동을 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본받기를(흉내내기) 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형제들로부터, 그리고 말씀 자체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신은 그의 생활을 성경으로 진단해 볼 수 있는데, 그의 생활은 시험에 통과했다.

 

오늘날 교회는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와 같은 사람들과, 성경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며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필요로 한다. 우리는 디오드레베가 없이도 지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