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개론)
1. 저자와 저작연대
본문의 여러 곳이 1인칭 단수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저자가 느헤미야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가 3인칭으로 언급되는 곳도 있으나(8:9, 10:1, 12:26, 47) 이것은 그가 이 책의 저자라는 것과 관련해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의 때"를 회상하는 12장 26절과 47절은 모두 어떤 다른 사람들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느헤미야는 총독 자리에서 물러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증손자 얏두아(12:11,12)와 바사의 다리오 왕(12:22)에 관한 언급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이 책의 통일성에 대하여 심각한 반론을 제기해왔다. 12장 22절에 근거하여 얏두아의 연대를 주전 5세기 말경으로 추정하고 바사 왕 다리오를 다리오 2세(B.C.424-404)와 동일시하는 주장들이 몇몇 사람들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이 책의 역사성은 요하난을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12:22, 23) 느헤미야의 대적인 산발랏의 아들들을 주전408년에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기록하고 있는 엘리판틴 파피루스의 발견으로 확증되었다. 우리는 또한 이 파피루스에서 바고아스가 총독 자리에 오른 것으로 언급되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그 이전에 유다 총독을 물러났음을 알 수 있다.
2. 역사적 배경
느헤미야가 술잔을 따라 올리는 관원으로 섬겼던 아닥사스다 1세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이었다. 부림절(에스더 9:20-32)은 주전 474년 3월 8일에 제정되었는데, 이것은 아닥사스다 1세가 왕위에 오르기 8년 전의 일이었다. 주전 457년 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으로 유대인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돌아왔고, 다음 해 봄에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유대인에 대한 조사를 끝마쳤다.
에스라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신앙부흥운동 중 하나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것이었다. 이것이 르훔과 심새의 분노를 야기시켜, 그들로 하여금 아닥사스다 왕에게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고소장을 올리게 했다(에스라 4:7-16). 왕은 다시 조서를 내릴 때까지 성전건축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에스라 4:21).
르훔과 심새는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력으로 건축을 중지시키고 성벽을 파리하며 성문을 불살라 버렸다(에스라 4:23; 느혜미야 1:3). 느헤미야가 충격을 받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바로 이 뜻밖의 파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가 바벨론에서 돌아와 주전 432년이래 죄악에 물든 성도 예루살렘과 각 지방을 정화시켰던 주전 445년 12월부터 주전 420년경까지의 약 20년간을 다루고 있다.
느헤미야 8장 1-9와 12장 26절에서 보는바대로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아마 말라기 선지자는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있는 동안 예언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책망한 많은 죄악들이 느헤미야서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3. 신학적 메시지
느헤미야는 용기있고 지략있는 지도자인 것 같다. 그는 자기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사 왕실의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귀향하는 포로들과 함께 성도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며 고난을 받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의 두 가지 큰 관심사는 율법에 대한 충성과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이었다. 그는 매우 온화하고 인정 있는 사람이었으나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에 있어서만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엄격한 태도를 지켰다.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한 대제사장의 손자를 내어 쫓은 사건은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이 대대로 반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무너진 시온성을 재건하기 위한 나팔소리이다. 이 나팔소리는 수세기 동안 "일어나 건축하라"고 사람들을 격려해 왔다. 느헤미야보다 더 어려운 고난에 직면해본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성벽을 쌓으면서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해야 한다. 조소("여우도 저런 성은 무너뜨릴 수 있다")와 적군의 공격으로 인하여 성전 건축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그들은 결코 단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뒤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 성벽은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그 도시를 보호하고 그 안에 다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재건되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성전이 시온산에 다시 재건될수 있도록 이 성벽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에서 포로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성전을 회상하고 그들의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기도했다. 성전이 재건됨으로 이러한 기도는 응답되었다.
느헤미야의 또 다른 관심은 율법의 회복과 이 거룩한 말씀의 충실한 해석 및 준수였다. 느헤미야는 건축가이며 행정가였기 때문에 학사 에스라로 하여금 앞장 서서 언약의 율법을 재정립하게하였다. 에스라는 그의 전 생애를 바쳐 율법을 기록하고 연구하였으며 당시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율법에 정통하였다. 에스라는 유대인의 마음 속에 율법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죄와 불순종에서 떠나 살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모압 평원에서의 모세와 세겜에서의 여호수아가 한 것같이 에스라는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해 거룩한 성회에 백성들을 모이게 했다. 모세는 언약책의 말씀을 낭독하여 모든 백성들이 듣도록 하고, 이 모든 말씀을 근거로 하여 제단 위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들 위에 희생제물의 피를 뿌림으로 언약을 세웠다.
에스라는 오랜 포로생활 후에 언약을 다시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엄숙한 헌신의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모세의 선례와 신성한 율법의 교훈을 따르려 하였다. 수많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달하는 실제적인 문제는 해석자들로 하여금 시간의 간격을 두고 각각의 구절을 백성들에게 반복하여 설명하게 함으로 해결되었다. 백성들은 도성의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있었다.
출처 :자기부인 글쓴이 :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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