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느헤미야 강해

[스크랩] 느헤미야 요약

에반젤(복음) 2019. 11. 27. 19:26



    

연대: B.C. 444 - 432

 본문:  1:1-13:31

 주제: 3차 귀환

 개요

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에 세 번째 귀환의 역사이다. . 세 번째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방해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벽공사를 52일 만에 완성하였다. . 그는 에스라와 함께 완성 후, 백성들의 선민의식을 회복시켰다.

 개관

대단원 주제

중단원 주제

소단원 주제

. 성벽 재건

(1:1-7:73)

1. 3차 포로귀환(1:1-2:20)

1) 예루살렘 성벽 훼파 소식(1:1-3)

2) 느헤미야의 준비(1:4-2:8)

3) 성벽 탐사(2:9-20)

2. 예루살렘 성벽 재건(3:1-7:73)

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3:1-32)

2) 대적들과 이스라엘의 무장(4:1-23)

3) 성벽공사의 내부적 문제들(5:1-19)

4) 대적들의 방해와 느헤미야의 대처(6:1-14)

5) 예루살렘 성벽 완성(6:15-19)

6) 성벽완성 후 성벽 관리자(7:1-4)

7) 귀환자들에 대한 계수(7:5-73)

. 신앙 개혁

(8:1-13:31)

3. 신앙 회복(8:1-10:39)

1) 에스라의 율법 강해(8:1-18)

2) 에스라의 언약 갱신(9:1-10:39)

4. 성벽 봉헌(11:1-12:47)

1) 백성들의 예루살렘 재정착(11:1-36)

2) 제사장과 레위인들(12:1-26)

3)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12:27-47)

5. 신앙 결단(13:1-31)

1) 섞인 무리들과 유대인들과 분리(13:1-3)

2) 제사장직 사역(13:4-14)

3) 안식일 준수(13:15-22)

4) 통혼 금지(13:23-31)

 

 

. 3차 귀환 (1:1-13:31)(B.C. 444)

 

1. 느헤미야의 성벽재건(1:1-7:4)

1) 예루살렘 성벽 훼파 소식 (1:1-3)

(1) 바벨론 왕의 관원인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파괴와 동족의 환난 소식을 들었다(1:1-3)

3차 포로 귀환 및 성벽 재건이 주 내용인 본서는 정복국의 시종 느헤미야가 조국의 수도 예루살렘으로부터 한 슬픈 소식을 듣게 된다. 바벨론 제국의 4대 수도 중 하나인 수산 궁에서 왕의 술 관원 일을 보던 그는 예루살렘성벽이 파괴되었고 잔류민이 환난을 당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2) 느헤미야의 준비 (1:4-2:8)

(1)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1:4-11)

2차 포로 귀환( 7:7)이 있은 지 13년 후(B.C. 445) 한 동포로부터 조국의 소식을 들은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의 황폐와 비참함에 대한 소식을 듣고, 식음을 폐하고 수일 동안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했다. 그는 먼 옛날 광야 시대 때 선포되었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 26:27-45;  29:14-29)를 회상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소리 높여 촉구했다( 90:1).

 

(2)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간청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허락하였다(2:1-8)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소식으로 수심어린 얼굴을 하자 아닥사스다 왕이 이유를 물었고, 느헤미야는 묵도를 한 후 성을 보수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왕은 느헤미야의 간청대로 허락하였다.

본문은 한결같이 조국의 정치적, 종교적 안녕에 대한 여망으로 잠 못 이루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손길을 보이사(8), 고국의 귀환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그 일은 출애굽과 같은 기적의 개입으로써가 아니라 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3) 성벽 탐사 (2:9-20)

(1)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벽의 상황을 살폈고, 사마리아인들은 근심하였다(2:9-16)

2:9,10. 아닥사스다 왕의 파격적인 배려에 힘입어 드디어 느혜미야는 호위병까지 거느리고 학수고대하던 고토를 밟게 되었다. 그의 도착은 에스라의 경우처럼 사마리아인의 즉각적인 반발을 야기했는데, 그들의 깊은 근심’(10)은 느헤미야의 4개월간의 근심과는 달리 오로지 탐욕과 이기심에서 나온 세상 적이요, 정욕 적이요, 마귀적인 근심이었다( 3:14-16).

2:11-16. 느헤미야가 성벽 중건 착수에 앞서 심야에 비밀리 성벽의 상황을 둘러본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즉 그는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이었기에 은밀히 탐사를 통해 먼저 확실한 재건 계획을 짠 후 적절한 때에 이의 취지 설명과 함께 전면적인 착수에 들어가고자 의도했으며, 한편으로는 방해자들의 음모와 술수를 사전에 피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2) 백성들은 성벽 건축에 찬성하였고, 대적자들은 비웃었다(2:17-20)

2:17-20 이스라엘이 처한 참담한 정황, 성벽 중건의 정치, 역사, 종교적 중요성 및 왕의 후원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한 느헤미야의 강변은 잠자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심령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 성벽 건축할 것을 전함(17-18)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성을 건축하자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왕의 말씀을 전했더니 건축하려 했다. * 대적들의 비웃음(19-20) 느헤미야는 비웃는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4) 예루살렘 성벽 재건 (3:1-7:4)

(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3:1-32)

(1-1) 성벽 재건 사업이 구간별로 책임자를 지정하여 진행되었다(3:1-14)

당시 예루살렘 성은 10개의 문과 4개의 망대가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본문은 이러한 성벽 재건 작업이 공사 구간별로 나뉘어 약 40명의 책임자의 감독 하에 진행되었음을 설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느헤미야는 탁월한 행정가이자 유능한 감독자이기도 했다. 한편 공사 책임자들의 명단을 보면 그들이 주로 사회 중산층 계급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다소 여유가 있었으므로 성벽 재건 작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사장들은 양문을 보수함으로 일을 처음 시작했다. 성 북동편 모퉁이에 위치한 이 문은 성전 제단에 바쳐질 양이 그곳으로 통과하기에 그렇게 이름지어졌다. 성의 문들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다음 순서이다.

본문에는 양문(1,2), 어문(3-5), 옛문(혹은 모퉁이문)(6-12), 골짜기 문(13), 분문(14)이 언급되어 있다.

(1-2) 샘문에서 양문까지 각각 구간별로 책임자의 감독 하에 성벽을 중수하였다(3:15-32)

계속 이어서 샘문(26), 수문(26), 마문(28), 동문(29), 함밉갓문(검사문, 31), 32절은 양문에 이르는 완전한 성곽을 보여준다. 이 외에 다른 두 문이 또 언급되어 있는데, 에브라임 문(8:16)과 감옥 문(경계문, 12:39)이 그것이다. 모두 합해 12문이 있는데, 새 예루살렘에도 마찬가지로 12문이 있게 될 것이다( 21:12).

 

(2) 대적들과 이스라엘의 무장(4:1-23)

(2-1) 산발랏과 도비야는 유다인의 성벽 공사를 비방하였고, 느헤미야는 기도하였다(4:1-6)

6장 후반부까지 전개되는 방해 공작은 잔류자와 소수 귀환자들의 미약함을 비웃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소로 시작된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수적, 조직적 허약성을 비방했으나 실상 그것은 그들을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침묵을 향한 가증스런 힐난이었다. 4절 이하의 느혜미야의 기도에서 나타나듯이 그들은 만군의 하나님의 주권성을 비웃는 용서 못할 자만을 드러냄으로써 하늘에 계신 이의 노를 격발시켰던 것이다( 2:4).

(2-2) 대적들의 극심한 방해 공작에 대항해 느헤미야는 영육간의 재무장을 하게 했다(4:7-23)

위협(7-9). 조소에도 불구하고 일절 요동함 없이 공사에 임하는 백성들의 일사 불란한 모습은 대적들로 하여금 물리적인 실력 행사에 나서게 했다. 알팍한 논리를 앞세운 회유책이 실패하자 그들은 보다 가시적이고 위협적인 물리적 힘을 사용하고자 했는데, 결과적으로 상황은 물력(物力)과 물력의 첨예한 대치라는 극단적 양상에 이르게 될 참이었다.

백성들의 사기 저하(10-12). 대적들의 궤계는 이윽고 그 효력을 나타냈다. 그렇잖아도 쉼 없는 노역과 방비로 심신이 탈진한 일부 백성들은 대적의 직접적인 위협에 손쉽게 굴복하고 말았다.

재무장 촉구(13-14). 내부 요동과 대적의 기습 정보를 입수한 느헤미야는 주저없이 즉각 온 회중을 소집, 전열 정비와 아울러 영육간에 재무장을 촉구했다. 그들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분( 10:28)이 누구인가를 재차 상기해야 했다.

전역군의 무장화(15-23). 소수에게 방비를 전담시킨 종전의 전략(9)을 바꿔 느헤미야는 진인원의 무장화를 지시하여 항시라도 적의 침입에 대항할 수 있는 전천후 요새 체제를 갖추게 했다. 한 손엔 장비를, 한 손엔 병기를 잡은 채 불철 주야 대적을 대비하게 한 것이다.

 

(3) 성벽공사의 내부적 문제들(5:1-19)

(3-1) 백성들이 높은 이자와 세금으로 원망하였고, 느헤미야는 악한 귀족과 민장들을 꾸짖었다(5:1-13)

외부 문제가 수습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궁핍으로 인한 백성들의 원망이 자자했다. 이 궁핍은 귀인과 민장들이 부과한 높은 이자와 과중한 세금 때문이었으며, 백성들은 집과 전답을 저당 잡히고, 자녀를 종으로 팔 수 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이 사실을 들은 느헤미야는 크게 노하여 집회를 열었으며, 여기서 악한 귀족들과 민장을 꾸짖어 바로잡았다. 그리고 그는 대적의 비방 거리가 되지 않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였다. 포로생활, 속량의 고락을 함께한 공동 운명체로서의 자각을 부르짖은 느헤미야의 열변은 백성들의 즉각적인 순종을 불러일으켰다.

(3-2) 느헤미야는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고, 예루살렘을 안정시키는데 헌신하였다(5:14-19)

B.C. 444년부터 432년까지 12년간 유다 총독으로 있었던 느헤미야의 청렴결백한 통치관이 자기 고백식으로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총독으로서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들을 일체 사용치 않고 오직 백성들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선정을 베풂으로써, 여타 유대 지도자들의 기회주의적 처세와 확연히 구분되는 성숙한 신앙을 보여준다. 그는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으며, 예루살렘을 안정시키는데 헌신하였던 것이다.

 

(4) 대적들의 방해와 느헤미야의 대처(6:1-14)

(4-1) 대적들은 느헤미야를 암살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대처하였다(6:1-9)

6:1-4. 느헤미야가 당한 개인적 위험(1-14) 중 먼저 교묘한 암살 음모가 서술된다. 대적들은 마지막 전략으로 지도자 개인의 신변을 위협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때마다 느헤미야는 현명한 대처로 그들의 궤계를 무색케 만들었다. 본문은 그중 정당한 명분을 들어 대적의 간계한 회담 제의를 거절하는 그의 당당함을 보여준다.

6:5-9. 네 차례의 접촉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대적들은 사실무근인 유언비어로 느헤미야의 신념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이에 그는 대적들의 허탄한 심중을 꿰뚫는 명쾌하고 단호한 회신을 보냄과 아울러, ‘바산의 힘센 소처럼 자신을 에워싸며 송사하는( 22:12,13) 그들의 공격을 인하여 기도로써 자신을 재무장했다.

* 느헤미야와 만나려 함(6:1-4) 성벽을 건축했다는 소식을 들은 대적들이 느헤미야를 해하고자 4번을 만나자하지만 느헤미야는 거절했다. * 느헤미야가 모반한다는 소문(5-9) 다섯 번째 보낸 산발랏의 편지에 느헤미야가 모반을 위해 성벽을 건축하고 왕이 되려 한다는 소문으로 의논하자 하니 느헤미야는 지어낸 일이라고 응했다.

(4-2) 대적들은 느헤미야의 심복을 뇌물로 매수하여 계략을 꾸몄지만 수포로 돌아갔다(6:10-14)

대적들은 느헤미야의 심복을 뇌물로 매수( 22:3-6), 거짓 진언(進言)하게 하는 기상천외한 수법까지 동원했다. 그들은 측근의 입을 빌어 느헤미야로 하여금 두려움과 심리적 위축 속에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성소에 들어가도록 충동질했으나, 느헤미야의 비범한 통찰력은 이내 그 허구성을 포착해 냈다. 참으로 그의 깊은 영성은 능히 사탄의 깊은 계략을 헤아렸던 것이다.

 

(5)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된 지 150여 년만에 재건되었다(6:15-19)

느헤미야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150여 년 동안(B.C. 586-432) 훼파되어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이 52일 만에 드디어 완공을 보았다. 기자는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당신이 주관하여 이루신 일임을 특별히 강조한 후, 그 귀한 사역을 훼방한 대적들의 소행의 참람함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뜻에서 그들의 행적을 결미에 요약해 놓았다.

* 52일 만에 끝남(15-16) 성벽 역사가 52일 만에 끝나니 대적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알고 낙담했다. * 유다의 귀족들과 도비야(17-19) 유다에 동맹한 자가 많은 도비야가 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다가 느헤미야에게 편지하여 두렵게 하려 했다.

 

(6)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 레위인과 성 관리자를 세웠고, 성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7:1-4)

성벽 건축이 완성되었고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웠다. 그 후 느헤미야의 동생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를 관원으로 임명하여 예루살렘을 관리하게 하였다.

예루살렘의 안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성문들은 낮 동안만 열어야 했고, 성 주변에는 경비를 세우되, 각 사람마다 자기 집 맞은 편을 지켜야 했다. 느헤미야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지역이 소수의 거민에 비해 너무 넓었으나 믿음으로 이전 자리 그대로 성벽을 중건했다.

 

 

2. 신앙 개혁 (7:5-13:31)

1) 신앙 회복 (7:5-10:39)

(1) 귀환자들에 대한 계수(7:5-73)

(1-1) 예루살렘 성의 거주민 확보를 위하여 100여년 전의 1차 귀환자 명단을 확인하였다(7:5-69)

이스라엘 재건의 제1관건인 예루살렘 복구를 위한 성벽 중수 사업의 완성 이후, 그 관리 및 경비 책임자를 임명하고 예루살렘을 명실공히 한 나라의 수도로 만들기 위한 인구 재정착 계획에 따라 포로 귀환민의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다.

 1차 귀환자의 명단은 스 2:1-69의 명단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는 각 조사자들이 관점을 달리하여 계수하였기 때문이거나 혼동하기 쉬운 히브리 숫자 표기를 후대 필사자들이 잘못 옮긴 것일 수도 있다.

2,3차 귀환자 명단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이미 대부분 예루살렘에 정착해 있었거나 거의 100년 전에 귀환한 1차 귀환자들과는 달리 파악이 용이했으므로 굳이 조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차 귀환자 명단은 B.C. 537년경에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제1차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2:3-62). 그때로부터 대략 1세기가 지난 때인 느혜미야 시대에 이 계보가 필요했던 이유는, 그 넓이에 비해 주민이 없었던 예루살렘 성읍에 거주민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 옛날 조상들이 살았던 예루살렘 성읍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던 후손들을 다시 조상들의 성읍인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이기 위함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이 이방 민족들의 공격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지방에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기증자들과 드린 예물을 기록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안전하게 정착하였다(7:70-73)

기증자들과 그들이 역사(役事)에 기여한 점들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에스라 2:68,69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두 기사는 두 개의 상이하면서도 중첩되는 자료를 참조한 듯하다. 예루살렘에 대한 총독의 계획은 11장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히 이행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본성에 안전하게 정착했다.

 

(2) 에스라의 율법 강해(8:1-18)

(2-1) 느헤미야는 신앙 부흥을 위해 대성회를 열었고, 에스라는 율법을 낭독하였다(8:1-8)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백성들을 정착시키는 일이 일단락되자 느헤미야는 대성회를 열었다. 이는 백성들을 신앙적으로 재 각성시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다짐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10장의 사건 이후 모습을 감춘 에스라가 13년 만에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율법서를 준비하고, 강단을 짓고, 책을 펴고, 청중이 일어서는 등등의 상세하고 세밀한 본문의 묘사는 서서히 가속화 되는 신앙 각성의 분위기를 그림처럼 생생히 보여준다.

(2-2) 백성들이 율법을 듣고 참회하였고, 초막절을 지키며 즐거워하였다(8:9-18)

청중의 반응(9-12). 선포, 해석, 깨우침으로 이어진 율법 낭독의 시간은 자각, 회개, 통곡의 반응을 일으켰다. 그러나 참회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자기 성찰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발견이기에,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눈물을 그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마음껏 노래할 것을 촉구했다.

초막절 준수(13-18). 에스라와 더불어 율법을 깊이 연구하던 백성들은 초막절의 구체적 준수 방법을 깨닫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여호수아 이후로 형식만 유지되거나 아예 무시되어 온 이 칠월 절기의 준수가 소상히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포로 생활을 과거 선조들의 광야 장막 생활과 연관지으려는 기자의 의도가 있는 듯하다.

 

(3) 에스라의 언약 갱신(9:1-10:39)

(3-1)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하며 율법을 들으며 회개하였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9:1-3)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8:9),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8:12,14), 큰 기쁨을 가져옴(8:17)과 더불어 이제 거국적인 회개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외형적인 모습 뿐 아니라 태도와 생활에 있어서 철저한 성별을 보였으며, 자신의 죄는 물론 열조의 죄까지 자복하는 역사적, 통시적 책임 의식을 드러냈다.

(3-2) 레위인이 드린 하나님의 초월성과 전능성을 송축하는 고백시이다(9:4-38)

찬양과 송축(4-6). 레위인들이 주축이 되어 드린 장편의 고백시의 서막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성과 전능성을 기리고 있다. 자복과 간구에 앞서 찬양과 경배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모든 종류의 기도에 적용되는 철칙임을 엿볼 수 있다( 6:9).

과거의 회상(7-31). 족장 시대부터 초기 왕국 및 바벨론 유수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전 역사에 걸친 반역과 회복의 수레바퀴를 적나라하게 전개한 본문 기사는, 언약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다함 없는 긍휼과 사랑의 속성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17,19,27,28,31). 이 언약에 의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스데반의 메시지에 나타나듯이( 7), 그 독생자를 인류의 대속물로 주심으로써 절정에 이르게 된다.

언약의 갱신(32-38). 열조의 죄악을 서술 형식으로 토로한 후 기자는 대단원인 본문에 이르러 그 반역의 대열에 현 백성이 참여함으로 그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있으나, 선민으로서의 축복과 영예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금 충성을 다지는 이스라엘의 일치된 고백을 간구조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모든 범죄와 재앙의 역사 속에서 항상 공의로우시다(33).

(3-3) 백성의 대표자(제사장, 정치 지도자)들은 율법의 준수를 서약하고 인증하였다(10:1-27)

백성들의 정치, 종교적 지도자들은 구두로써 뿐 아니라 명문화된 문구로써 모세 율법의 준수를 서약하고 인을 쳤다. 본문은 그 명단으로서 성벽 재건에 있어 탁월한 지도력을 보인 느헤미야를 서두에 기록하고 있다. 2-8절에 나타나는 21명의 제사장 명칭 중 다수는 12:12-21로 보아 가계명(家系名)임을 알 수 있고, 에스라가 빠진 것은 그가 스라야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7:1). 9-13절의 레위인 중 6명은 율법 낭독에 가담했었으며(8:7), 14절 이하에 나오는 44명의 지도자는 가계명, 또는 개인명으로 그중 일부는 7:8-25;  2:3-30에 기록되어 있다.

(3-4) ‘남은 자들도 율법 준수를 맹세 하였다(10:28-39)

비록 역사에 남을 문서에 날인은 하지 않았지만, 대표자에 들지 못한 남은 자들 역시 뜻을 모아 율법 준수의 의지를 표명했다. 이방인들과의 통혼 금지(30), 안식일과 안식년 준수(31), 성전 봉사를 돕기 위한 삼분의 일 세겔 부담(32,33), 번제단용 나무 제공(34), 곡식의 첫 소출 및 맏아들과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드림(36,37), 십일조(37-39) 등 일련의 약속들로 이루어진 이들의 맹세는, 그 마지막에 세 번째 이하의 약속들을 재다짐하는 의미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39)는 결어가 첨가됨으로써 성벽 건축보다는 복원된 성전의 관리가 한결 중요한 일임을 주지시키고 있다.

 

2) 성벽 봉헌 (11:1-12:47)

(1) 백성들의 예루살렘 재정착(11:1-36)

(1-1) 예루살렘에 재정착한 기본 인원과 자원자 명단을 기록하였다(11:1-24)

예루살렘 재정착(1-2). 광대한 지역에 비해 거민이 희소했던(7:4) 예루살렘 성은 방비를 위해서도 거민이 보충되어야 했다. 이에 제비뽑기에 의한 기본 인원과 자원에 의한 보충 인원이 선발되었는데, 자원자들이 백성들의 칭송을 들은 것으로 보아 대체로 백성들은 수도 방비로 인한 위험 부담을 우려하여 예루살렘 거주를 기피했던 것 같다.

자원 정착자 명단(3-19). 수도 예루살렘에 자원 정착한 유다 자손 468, 베냐민 자손 928, 제사장 1,192, 레위인 284명 및 문지기 172명의 명부가 기록되어 있다. 대상 9:3에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도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문의 명단은 전체가 아니라 핵심 구성 지파인 것 같다.

그 외 사람들(20-24). 성전의 시종들은 시하와 기스바의 감독 아래 오벨, 즉 성전과 가까운 예루살렘의 한 구역에 거주했다(21). 웃시라는 사람은 레위인을 가독했고, 브다히야는 그 성에서 왕의 대리인으로서 물론 느헤미야 아래 있었다(22-24). 나머지 유다인은 인근 마을에 거했다.

(1-2) 유다와 베냐민 자손이 거주하는 지방 성읍을 기록하였다(11:25-36)

유다는 25-30절에 열거된 마을에 거했고, 베냐민은 31-35절에 열거된 마을에 거했다. 전에 유다에 거하던 레위인의 일부 반열이 베냐민 영토로 넘어갔다(36).

이 같은 인구 조사 및 정착에 관한 세세한 기록은 지엽적, 단편적 기록으로 중요치 않게 여기기가 쉬운데, 이는 성경의 계시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역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고 계신 것이다( 17:26-28).

 

(2) 제사장과 레위인들(12:1-26)

(2-1) 1차 귀환한 제사장, 동시대의 레위인, 대제사장 가문, 요야김 때의 제사장 계보를 기록(12:1-21)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이 1-7절에 소개되어 있다. 8,9절에는 레위인 귀환자들이 열거되어 있다. 10,11절은 예수아(스룹바벨 때의 사람, 1)에서 얏두아까지 대제사장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12-21절에는 느헤미야 때에 대제사장인(3:1) 요야김 때에 섬긴 제사장들이 소개되어 있다. 족속명과 족속을 대표한 자들의 개인명이 함께 열거되어 있다. 핫두스를 제외한 22제사장 족속들이 모두 1-7절과 반복되어 기재되었다.

(2-2) 레위 족장과 레위 지도자들을 책과 역대 지략에 기록하였다(12:22-26)

엘리아십에서 얏두아까지 대제사장이 이어지는 동안 생존한 레위인의 족장이 모두 기록되었다. 24-26절에 이름이 언급된 사람들은 느헤미야의 총독 재위 이전과 그 기간에 섬긴 자들이다.

표면상 재정착이 끝난 후 이같이 인구조사가 실시된 것은 본격적인 개혁을 위한 전 단계로서 종교적 체제 확립을 위한 기초 작업이라 할 수 있다.

 

(3)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12:27-47)

(3-1) 성결의식을 행하고 성벽을 돌며 찬송하면서 성을 하나님께 봉헌하였다(12:27-43)

27-30. B.C. 444 6 25일에 완성된(6:15) 성벽에 대한 봉헌식을 행하기 전에 예식의 분위기를 주도할 찬양대의 소집과 종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과 성곽 자체의 성결 의식을 행했다. 이는 봉헌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성품이 거룩하시기에 예배자 역시 신령과 진정이 담긴 참 예배( 4:24)를 드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정결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벧전 1:16)

31-43. 봉헌식은 성벽 돌기(31-43)으로 나누어진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 하에 각기 반대편으로 출발한 유다 방백들의 성벽 돌기는 성 건축이 본질상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기억하고 장차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 성을 보존해 주실 것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행위였으며,

(3-2) 백성들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쓸 것을 즐거이 드렸다(12:44-47)

그 날에 어떤 이들을 세워 율법의 요구대로 제사장과 레위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제물과 첫 열매와 십일조를 거두는 일을 감독하게 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회복된 것을 기뻐한 까닭에 즐거이 드렸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맡은바 경배와 정결케 하는 일을 수행했다.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맡은 일을 수행했는데, 노래하는 자들의 경우는 그 일이 다윗과 아삽 때로 소급되는 일이었다.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에는 백성들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쓸 것을 모두 공급했다.

 

3) 신앙 결단 (13:1-31)

(1) 유대인들은 율법을 듣고 이방인의 자손들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축출하였다(13:1-3)

예루살렘에서 12년간 섬긴 후에 B.C. 433년 느헤미야는 밝혀지지 않은 기간 동안 바벨론에 돌아가 있었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할 허락을 얻었는데 이번 방문은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 날에"(1)는 앞장을 가리킬 수도 있고, 느헤미야가 떠나고 없는 동안의 다른 한 날을 가리킬 수도 있다(6).

어쨌든,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이 회중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는 대목을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졌다. 모압과 암몬은 출애굽 이후 대대로 이스라엘에게 가시와 엉겅퀴로 신앙의 걸림이 되었던 족속으로서, 모세를 비롯한 여러 종교 지도자들에게 경계와 지탄을 받아왔었다( 23:3-6).

이스라엘 백성은 약 25년 전 이미 이방인들과의 잡혼 문제로 심각한 난국에 처하였던 적이 있으며, 에스라의 개혁 운동으로 그 문제를 일단락 지은 바 있다( 10:16-44). 그런데 또다시 동일한 문제가 고개를 치켜든 것이다.심지어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자기 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자들이 있었다(24). 그렇기 때문에 개혁은 매우 철저하게 시도되었고, 그 결과 이방의 모든 무리들이 축출되었다. 섞인 무리란 당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거했던 이방인의 모든 자손들을 가리킨다.

 

(2) 제사장직 사역(13:4-14)

(2-1) 느헤미야는 성전 내에 거주지를 정한 도비아의 악행을 알고 단호한 정결 조치를 하였다(13:4-9)

전 날에 산발랏과 더불어 성벽 공사를 극력 저해했던 이스라엘의 노예 출신 도비야(2:10)가 느헤미야 부재를 틈타 제사장과 결탁하여 성전 내에 거주지를 정하고 다시금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을 꾀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아마도 느헤미야는 총독 임기 만료로 인해 바사로 복귀한 듯하다. 재통치의 임무를 받고 고토로 돌아온 즉시 이 사실을 알고는 도비야를 위해 마련된 방을 정결케 하고 성물을 원위치시키는 단호한 조처를 취했다. 옛적에 엘리의 악한 두 아들의 경우가 그렇듯이(삼상 4:4,11) 하나님의 전에 악인이 거하는 것은 당신의 거룩성 침해라는 중대한 과오인 것이다( 1:5).

* 도비야를 위한 방(4-5) 엘리아십은 연락이 있었던 도비야를 위해 한 방을 만들었다. * 방을 정결케 함(6-9)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해 악한 일을 알게 되었다. 방을 정결케 하고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들여놓았다.

(2-2) 레위인들을 소홀히 대한 민장들을 꾸짖고,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분배하였다(13:10-14)

느헤미야는 레위인을 소홀히 한 그들의 무책임으로 인해 그 일을 맡은 민장들을 꾸짖었다. 생계를 위해 들에서 일할 수밖에 없던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충직한 자들을 세워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분배하게 했다. 이 선한 일로 인해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그를 기억해 달라고 구했다(14).

 

(3) 안식일 준수(13:15-22)

(3-1)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하도록 방종한 귀인들을 꾸짖었다(13:15-18)

느헤미야는 백성들로 안식일에 일하도록 허락한 귀인들을 꾸짖어야 했다. 안식일을 범하므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 중에 거하는 이방인들이 안식일을 장사하는 날로 삼았다. 안식일을 범하는 범법자는 가차 없이 사형에 처하도록 모세 율법이 엄히 명했는바( 20:10,11; 31:15), 느헤미야의 완곡한 조처는 백성들의 반발을 우려했거나 율법 준수 자체에 미온적인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율법의 철저한 적용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심히 저하되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3-2)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문을 잠그고, 상인들을 쫓아내었다(13:19-22)

안식일은 필요하면 강제적으로라도 거룩하게 지켜져야 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보내어 안식일에 성문을 잠그도록 하여 어떤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고, 성밖에서 유숙하는 탐욕스런 상인들은 위협을 하여 쫓아냈다. 불법적인 활동은 즉시 중단되었다. 이 일에 대해서도 기억해 달라고 느혜미야는 기도했다(22).

 

(4) 이교도와 통혼한 자들에게 책망과 저주와 심한 체벌을 행하도록 하였다(13:23-31)

여러 해 전에 에스라의 명령에 의해 이방 아내들을 내어 보냈었다( 10). 그 후에 백성들은 이방인과 절교하기로 서약을 하고(10:29,30) 어느 정도 실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자 유다인이 여러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풍습이 또 다시 만연되었다. 이러한 유다인의 행태에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여 책망과 저주와 심한 체벌을 행하도록 했다.

본 사건과 관련하여 현군의 대명사인 솔로몬의 생애가 재조명된 것은 통혼의 중죄성을 웅변적으로 드러내 주는, 실로 적절한 인용으로 극찬할 만하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정화 조처는 한마디로 선민의 존재 근거인 성별의 재확인으로 요약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