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파노라마
사무엘하의 내용은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신정왕국을 세우는 것이 중심주제입니다.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다”(5:4)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우선적으로 한 일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신정왕국의 수도로 삼은 일입니다.
이것은 구속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만 택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시78:68)하고 시온 즉 예루살렘도 택하셨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자신의 고향 기브아에서 왕 노릇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이며 이는 새 예루살렘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당시 유다 지파가 이 일경을 분배받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이 예언이 되어있고 주님의 탄생과 수난과 부활 승천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부스 사람을 내어쫓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한 것은 다윗 때 와서야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다윗은 그때까지 방치되어 있던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옵니다(6장)
이점에서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이 수도가 되었기 때문에 법궤를 그곳으로 옮겨온 것이 아니라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 위해서 점령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중심의 사상인 것입니다.
그때 지은 것이 분명한 시편24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시24:7-10)
법궤를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옴으로 영광의 왕이 들어오시고 하나님의 보좌가 그곳에 있게 된 것을 상징합니다.
이는 보이는 왕은 다윗이지만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이 통치하심을 고백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시47:6-8)
이로써 왕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셔서 다스리시는 명실상부한 신정왕국(神政王國)이
세워진 것입니다.
이점이 사울이 40년 동안 다스린 사무엘상과 다른 점입니다.
신정왕국의 의미는 언약궤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에서도 밝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 수레”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들에 의해 받듦을 받으시고 섬김 받으심을 거부하셨습니다.
그것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속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받들어 섬김 받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뒤늦게 깨닫고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대상15:13)하고 이번에는 메어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그것들(제물까지를 포함하여)이 아니라
사람 즉 “너”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정왕국의 원리입니다.
이점이 신약에 와서는 교회(건물이 아니라)가 하나님의 신정왕국이며
성도의 가정들(아파트가 아니라)이 작은 신정왕국이라는 깨달음으로 다가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회복운동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이루시기 위하여 다윗에게 언약을 세워주십니다.
7장은 사무엘상하를 통틀어 핵심 장이 됩니다.
다윗이 왕국에 평안히 거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황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7:2)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소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날 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나단에게 임합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7:5)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7:11)
즉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한마디 말씀은
구속사의 맥락에서 볼 때에 참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워주시겠다는 말씀은 다윗의 가문에서 왕위를 폐하시지
않으시고 계승시켜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일 죄를 범할지라도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7:15)고 말씀하십니다.
또“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7:12)고 언약하십니다.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7:13)하십니다.
이 언약이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고 그가 성전을 건축하므로 성취됩니다만 그것은 예표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의 궁극적인 성취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위에 오르실 것과
그가 하나님이 거하실 참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언약에는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세상 나라는 영원히 견고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은 다니엘서를 통해서도 계시되어 있는데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2:44)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이 언약은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1-33)에서 성취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다윗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다윗)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행2:30-31)하고
이점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 사명이 다윗에게 허락되지 않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지으리라 하심도 궁극적인
성취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도 재 천명되고 있습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겔37:24)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은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37:26-27)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언이 성취되어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가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워주겠다”는 이 집이
육신의 장막을 입고 오실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이 집은 원 복음(창3:15)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고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하고 주님의 재림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성경은 선언합니다.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계21:6)
다윗은 왕궁에 평안히 앉아 있을 때에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 드려야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워주겠다”는 황공한 말씀을 들은 후에는
보좌에서 내려와 왕궁이 아닌 여호와 앞에 나아가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7:18)하고 감복해 하고있는 것입니다.
구속의 역사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주권적인 행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11장에서 어처구니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점에서 대두되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이를 허용하신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하신 7장의 언약이 필요한가를 계시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복음이 왜 필요한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11장을 통하여 인간의 부패와 무능과 불가능성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집을 세워주시지 않으면 즉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시지 아니 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됨”(시127:1)을 명백하게 계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자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의 불가능성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허물과 실수가 없는 자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고 감탄한 대로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물론 사람 앞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파렴치한 죄를 범한 다윗을 통하여
인간의 전적타락 전적부패만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치료책과 해결방법까지도 계시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물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하고
사해주시고 “가리워주심”즉 복음의 핵심인 “칭의교리”를 계시하시다니!
하나님은
“모든 (다윗의 범죄까지)것”을 가지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이점에서 명심해야할 점은
다윗의 범죄로 인하여 손해을 입게 된 것이 우리아,다윗과밧세바가 낳은 아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다”(12:14)
곧 최대의 피해자는 신정왕국이요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gpt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12:10)하고 징벌의 불가피성을 말씀합니다.
사울의 범죄와 다윗의 범죄를 비교해본다면 윤리적인 면에서는 비교도 되지 않으리 만치
다윗이 악하고 추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메시아 언약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즉 “은혜 아래”있었기 때문에 그를 징벌하실 지라도 폐하시지 않음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점에서 다윗의 범죄가 우리를
“첫 언약 때(구약시대)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실”(히9:15)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해주는 몽학선생 역학을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는 다윗이 기이한 섭리를 통해서 예루살렘성전의 터를 마련하게 되는 것과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21:23)하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진노”을 그치게 한 번제와 화목제는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드려주실 대속제물에 대한
예표로써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하는 독자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하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는 왕궁에 편안히 앉아서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를 궁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하고
감사와 감격해 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먼저입니다
믿음의 순종은 그 후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출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라 글쓴이 : † 십자가 자랑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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