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요한계시록 강해

[스크랩] 요한계시록 총론

에반젤(복음) 2019. 11. 9. 17:12



  

요한계시록 총론

신구약 성경 마지막에 수록된 본서는 성경 전체의 대 결론이라 할만하다. 즉 신구약 성경의 대부분은 과거의 사건이나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책들이 대부분인데 본서는 주로 앞으로 임할 일들을 예언함으로써 오고 오는 세대들로 하여금 영적 각성을 갖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케 한다. 그러나 본서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치 않는 것은 아니다. 즉 본서는 사도 요한 당시 실재했던 소아시아의 7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점점 심해져 가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를 견디어 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더 큰 가치는 종말에 일어날 일을 예언함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종말에 임할 가공할 박해 가운데서도 낙심치 않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케 하는데 있다. 이러한 서신은 본서가 요한이 본 것, 즉 과거의 일과(1장), 현재의 일(2-3장) 그리고 장차 일어날 일, 즉 미래의 일(4-22장) 구성되어 있으나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Ⅰ.본서의 배경

A. 구약적 배경

본 계시는 구약 성경과 밀접히 관련되고 있다. 혹자는 본서 404절 중에서 278절까지가 구약에서 반영되었다고 한다(Swete). 구약 중에서도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B. 신약적 배경

신약 성경은 구약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계시론 또는 종말론의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신약성경 중 계시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성경은 마태 24장(막13장,눅21장)이다. 이 장은 보통 ‘작은 계시록’(The Little Apocalypse)이라 불리운다. 단순한 구조적 상통점만이 아니라 상세한 구분에 이르기까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어, ‘계시록 해석의 닻’이라고 한다(Bengel). 공관 복음서의 ‘작은 계시록’ 외에도, 종말 사상은 신약의 도처에서 보여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빌3:20;살전4:15-16;살후1:7-10;히9:28;벧후1:16과 계1:8,19:11-16), 성도의 부활(고전15:51-53;살전4:13-16과 계20:4-6), 심판자 그리스도(빌2:10;딤후4:1과 계19:11-16), 대심판(롬2:5-10;히9:27;벧후3:7과 계20:11-15,14:17-20), 신자의 축복 받을 신천신지(히12:26-28;벧후3:7-13과 계14:13-16,20:11,20:11,21:11), 불신자의 심판 받을 음부(벧전3:19;벧후2:4;유5-10과 계20:14-15)등의 사상은 현저하며 본서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Ⅱ.본서의 명칭 및 저자

A. 명 칭

‘계시록’이란 명칭은 본서의 첫 낱말에서 취해진 것이다(참조:αποκαλυψις ιησου χριστου). <요한 계시록>이란 명칭은 주후 2세기 경부터 본서의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본서의 명칭을 <요한 계시록>이라고 하나 사실인즉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of) 계시’가 ‘요한으로 말미암아(by)’ 주어졌음에 지나지 않는다.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Self-Revelation>이기 때문이다. <계시>는 아포칼룹시스(ἀποκἀλνψις)의 뜻은 ‘숨은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 편에 비밀로 간직되어 오던 사물을 드러내 보여주셨다는 뜻이다.

B. 저 자

본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1:1,4,9, 22:8). 사도 요한의 생애는 대략 4기, 즉 가정 생애, 제자 시대, 예루살렘교회 지도자 시대, 그리고 에베소에서의 만년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a. 가정 생애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는 많은 삯군을 가진 비교적 부유한 사람으로 보이며(막1:20), 거주지는 벳새다 부근으로 보인다(요1:44). 그의 어머니는 살로메(Salome)이며, 아마 성모 마리아의 자매였다고 믿어진다. 그의 형제(형) 야고보와 요한은 부름을 받기까지 그 아버지를 도와 어부 노릇을 하였다. 그는 먼저 세례 요한의 제자로 있다가 예수를 따른 두 사람(요 1:35-40)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그후 그는 일단 어부 생활에 돌아갔다가(눅5:10)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본다(마4:21-22).

b. 제자 시대

부르심을 받은 후 요한은 가장 유명한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12사도의 반열에 참여하였고, 그의 형과 더불어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받았다(막3:17). 이는 그의 과격한 성격에 기인했을 것이다(막9:54). 요한 형제는 또한 베드로와 더불어 ‘3제자’로 불리우며, 특별한 경우에까지 주님께 동반되었다(막5:37,9:2,14:32). 그는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의 품에 의지하였고(요13:23), 제사장의 문안까지(요18:15), 또 십자가의 언덕까지 주를 따라 갔다. 거기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주님의 의탁을 받았고(요19:26-27),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는 베드로와 더불어 무덤을 향해 달려갔다(요20:3-4).

c.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시대

오순절 이후 요한은 베드로와 더불어 초대교회 설립에 중심적 인물이었다(행3:1,4:19,8:14). 예루살렘 총회시에도 그는 거기에 있었고(행15:6), 바울은 그를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2:9). 그의 예루살렘 활동에 관해서는 베드로-바울 중심으로 기록된 사도행전에는 제2인격이 되기는 하였으나, 그의 중요한 위치는 분명하다.

d. 에베소에서의 만년기

수많은 전설들이 사도 요한이 그의 만년을 에베소에서 보낸 것을 말하고 있다. 그가 도미시안 황제 때(Domitian,95년) 밧모섬으로 정배갔으나, 넬바(Nerva,96년) 황제 때 에베소로 돌아왔다는 전설은 신빙성이 크다. 야고보의 조기 순교(행12:2)와 요한의 밧모섬 정배로, 예수께서 요한 형제에게 ‘그리스도의 잔’을 마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마20:23)이 이루어졌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그가 에베소에서 천수를 누린 후 트라얀(Trajan, A.D 98-117통치) 때 죽었다는 전설(Eusebiuius)에 신빙성이 있다. 털툴리안(Tertulian)은 그의 죽음을 백세를 누린 다음 날(106년 경)이라는 전설을 전하고 있다. 후일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크라트(Polycrates)도 주의 품에 의지했던 요한은 ‘에베소에 묻혀 누어 있다’고 증언하였다. 제롬(Jerome, 347-420)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극히 늙었을 때 에베소에서 청년들이 그를 의자에 않힌 채 강대에 올려 두면, ‘소자들아,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늘 반복하였다고 한다. 드디어 제자들과 교부들이 ‘선생이여 왜 같은 말씀을 늘 반복하시나이까’고 물으면, ‘이것이 우리 주님의 교훈이시다. 그리고 너희가 이것만 행하면 족한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Ⅲ.수신자

본서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소아세아의 7 교회에 보내진 편지이다(1:11). 이 7지방은 소아시아의 요지로서, 대로로 연결된 연쇄적 도시들이었다. 그 중심지는 에베소였으며, 이곳에 사도 요한이 정주했으므로 7교회가 요한의 교구였다는 것은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런데, 소아시아 지방에는 이 외에도 교회들이 존재하였다. 서쪽의 밀레도, 북쪽의 앗소와 드로아, 동쪽의 골로새와 히아라폴리스(골4:13) 등이다. 이런 여러 지방의 교회 중에서 위의 7교회만을 수신자로 선택한 것은, 7은 만수요, 따라서 본서는 당시의 실재했던 7교회를 통해 전 세계 전 교회에 보내진 계시로 볼 것이다.

Ⅳ.저작의 동기와 목적

A. 시대적 배경

본서는 대 로마제국의 배경에서 기록된 것이다. 그것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애굽제국, 바벨론제국, 앗수르제국, 메대-파사제국 및 헬라제국 등의 판도를 모두 합병한 것이었다. 로마제국의 그 초기의 종교 정책은 아주 관대하였으나, 네로의 실정 이후 국가가 어지러워지자 ‘황제 예배’라는 형태로서 종교 탄압에 나서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313년 콘스탄틴 대왕의 미라노 칙령이 내리기까지 수난의 과정을 통과해야 했다. 박해의 시작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유대인들에게서 왔으나, 복음이 소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됨에 따라 기존의 이방종교와 충돌하게 되고, 드디어는 로마의 정면적 탄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초대교회를 탄압한 2대 황제로서 네로와 도미시안을 든다. 네로(Nero,37-68)는 아마 세계사를 통해 폭군의 전형일 것이다. 태후와 왕후를 위시해서 은사와 수 많은 현인을 살해하였다. 62년 로마시의 대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전가시켜 무수한 신자를 학살하였다. 네로의 박해는 폭풍처럼 무서웠으나, 그것은 광적이요, 미조직적이요, 국부적으로 그쳤다. 보다 무서운 박해는 도미시안에 의한 황제 예배였다. 황제 예배의 기원은 3대 칼리귤라(37-41년 재위)에서 찾을 수 있다. 반 광인이었던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전 세계의 숭배를 받고자 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상을 세우도록 계획하고 준비하였으나, 암살을 당함으로 미수에 그쳤다. 도미시안(Domitian,81-96)은 제2의 박해자로서 하나님께 도전한 점에서 네로의 후계자였다. 그는 예루살렘을 처음 포위한(A.D.68) 베스파시안(Vespasian,69-79)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A.D.70) 로마에 개선한 디도(Titus,79-81)의 동생이었다. 그는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자신을 신격으로 한 황제 예배를 통해 제국 내의 정신계를 통솔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금지되는 법령이 공포되고 황제 예배는 강요를 당하여, 초대교회는 조직적이며 전판도적인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본서의 수신지의 지리적 배경도 일고되어야 할 것이다. 소아시아 지방은 유럽과 아세아의 양 대륙의 연결 지대이며, 서편 에에게해를 건너 그리이스 반도와 상대됨으로 지형상 극히 요충지대였다. 로마의 중동 제패에는 불가피적인 발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의 영향은 직접적이었으며 황제 예배의 신전도 가장 일찍부터 건립되었다. 이 지방의 원시 종교는 그리이스의 영향을 받은 다신교였다. 다신교적 입장에서는 황제 예배와 충돌할 이유가 없었으나 문제는 일신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였다. 그 중에서도 유대교는 황제를 위한 기도를 함으로 그 충돌을 회피하였으나, 유대교에서 분리하여 독립한 그리스도교는 점차적으로 로마와 정면 충돌하는 위험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일편 로마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의 정체는 아직 분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로마의 초대교회 박해가 단순히 황제예배 거부에서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하여튼 소아시아 지방은 황제 예배의 중심지요, 따라서 로마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된 지대였던 것이다.

B. 동기와 목적

위와 같은 배경에서 살필 때 본서를 저작한 동기와 목적은 극히 분명하다. 즉 황제 예배의 와중에서 수난을 겪고 있는 소아시아 지방의 교회를 향해 위로하며 격려하기 위해 본서를 보낸 것이다. 혹자는 박해가 두려워 배교하고 혹자는 이교도와 타협함으로 타락했다. 그러므로 저자는 모든 성도들이 끝까지 순수한 믿음을 지키며 인내할 것을 권장하려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위로와 권장의 방법을 장차 성취될 대심판의 계시로 한다. 전 계시는 지상과 천상의 교차적 그림으로 엮어진다. 지상에서는 선과 악의 치열한 투쟁이 계속되고 천상에서는 승리를 차지한 성도들의 그림들이 있다. 드디어는 지상과 천상의 그림은 합치되어 신천신지가 실현되고 악의 멸망과 더불어 선의 궁국적 승리로 대단원을 이룩한다. 그러므로 이 계시는 예언인 동시에 수난의 신자들에 대한 보장과 배교자에 대한 경고가 되었다.

Ⅴ.연대와 장소

A. 연 대

도미시안 시대(Domitian,A.D.81-96) 즉 그의 말기에 요한이 밧모섬에 정배 간 것을 외증들은 전하고 있다(1:9). 그렇다면 본서는 주후 95-96년경에 기록 되었을 것이다.

B.장 소

본 계시를 받은 곳은 본서에 밝혀져 있는 대로 밧모섬이다(1:9). 밧모섬은 에베소와 고린도 중간, 에에게 바다에 산재한 군도의 하나로서 현재의 이름은 팥모사(Patmosa)라고 불리운다. 넓이 9km, 길이 17km의 작은 섬이며, 채석장(採石場)이 있는 황무지로, 당시 죄인을 정배 보내는 곳이었다. 지금도 이 섬에는 ‘계시의 동굴’이라 불리우는 요한의 고적이 남아 있다.

이 밧모섬은 묵시록의 저자인 요한이 로마의 도미시아누스 박해 시대 유배가서 묵시록을 기록한 장소로 알려진 섬이다 (묵시 1:9).

사모스섬으로 부터 남서쪽으로 45 Km 떨어진 곳에 위히한 아름다운 섬으로 면적은 34 평방 Km, 남북의 길이는 16 Km, 동서의 폭은 가장 넓은 지점이 10 Km, 해안선의 길이는 63 Km다. 현재 이섬의 인구는 약 2500명이다. 로마 제국 시대에 이 밧모섬은 종교, 정치범을 귀양 보냈던 유배지였다. 묵시록 저자인 요한은 도미니아누스 황제 때 이 섬으로 유배와서 약 18개월 동안 살다가 네르바 황제 때에 풀려나서 에베소로 갔다.

현재 이곳에는 밧모섬의 중심지인 호라 마을에 성요한 수도원이 있고, 묵시록을 썼다는 요한의 동굴, 1713년 경에 세원진 밧모 희랍 정교회 신학교가 있다. 또한 이곳에 요한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세례터가 있다.

Ⅵ.특 징

A. 문학 체제

1) 상징과 숫자로 역어진 신비적 책이다(환상과 숫자).
2) 문학적 구조는 선과 악이 투쟁하는 이원적 체계로 진전된다.
3) 신학적 사상은 말세적이고, 내세적이고, 개인적이다.
4) 전편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재림을 묘사함).
5) 본서의 문장은 특이한 것으로 만들었다.

B. 신학 사상

1) 신관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4:11,14:7), 섭리자이시고(7:15-17), 심판자이시다(20:11-15). 요한의 신관의 특색인 하나님의 사랑은 본서에서는 극히 희박하다(21:3-4). 이는 본서가 악에 대한 심판을 주제로 삼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론

유대 계시문학이 하나님 중심인데 본서는 그리스도의 중심이다. 그리스도는 각양의 이름으로 그 풍부한 내용을 밝혀 있다. 예수(1:9,12:17), 그리스도(11:15,12:10, 20:4,6), 예수 그리스도(1:1,2,5,22:21), 주 예수(22:3), 주 예수 그리스도(22:21), 하나님의 아들(2:18), 인자(1:13, 14:14), 어린양(5:6,12 6:1)----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순서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여러 구절에 암시되어있다. 탄생(12:5), 속죄의 죽음(1:5, 5:6), 부활(1:5,18), 승천(12:5), 재림(1:7, 19:11).

3) 성령론

그리스도론의 현저성에 비해 성령론은 미약하고 보충적이다. <일곱신>(1:4,4:5,5:6)이 성령을 가리키느냐는 문제는 시비가 있었으나 성령으로 본다. 성령은 7교회에 반복되었다(2:7,11,17, 29,3:6,13,22). 성령은 첫째 저자를 감동하여 계시를 보여 주었고(1:10,4:2,17:3,21:10), 이 계시를 가르치며(2:11,14:13, 19:10), 증거하고 있다(22:17).

4) 마귀론

본서는 선악의 투쟁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인 만큼 성삼위의 주역과 더불어 마귀의 대역도 분명하다. 그 이름은 “마귀요 사단이며 용이요 옛 뱀”이라고 한다(20:2). 그는 하나님과(20:8)과 교회를(3:13,24) 대항하고, 세상을 유혹하는 일을 한다(12:9). 세상의 불신의 정권과(13:2) 교회 내의 이단 사상(13:11)은 사단이 행사하는 2대 방도이다.

5) 종말론

요한계시록의 종말사상은 현세는 종말을 고하고(4-18장) 신천신지(19-22장)가 약속된다. 그간 현세는 선악의 투쟁의 장소이며 선인의 연단의 장소였다. 선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에 죄 씻음을 받고 영원한 복락에 들어간다(7:7-17). 선인은 영생으로, 악인은 영벌로 들어간다. 본서의 종말론에 있어 “천년왕국설”은 간과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20:1-6).

C. 해석법

전체가 상징적 환상, 신비적 숫자 및 불가해적 은어로 가득 차 있다. 이와 같은 특이성들은 본서의 해석을 어럽게 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는 복음서 처럼 역사의 책도, 서신 처럼 교훈의 책도 아닌 예언서이다. 계시로 엮어진 예언서이다. 그러나 예언적 성격을 이해하면 본서는 난해의 책만은 아니다.

1) 과거적 해석법(The Preterist Method)

본서의 내용은 초대교회와 로마 정권과의 투쟁으로 묘사한 것으로, 저작의 당시 다 이루어졌다고 보는 견해이다. 2-3장은 7교회 역사적 교회를 말하고, 우상숭배는 당시의 황제 예배를 가리키고, 6장의 4말은 유대인의 반란을 말하는 것이며, 6:5-6의 기사는 그 때 있었던 지방의 포도값이 앙등한 사실을 말하며, 4-11장은 교회와 유대교간의 투쟁을, 13-19장은 네로와 도미시안 치하에서 일어났던 일, 13장의 두 짐승은 네로나 도미시안이며, 그 짐승예배는 황제숭배를 뜻하며, 18장의 바벨론은 로마제국을 가리키며, 18장 이후의 바벨론 멸망과 신천신지도 임박한 일을 말한다. 이 해석은 주로 자유주의적 학파에 속한 인사들이 주장하는 해석법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포함한 종말을 부정하는 것으로 배격되어야 한다.

2) 역사적 해석법(The Historical Method)

이는 본서의 환상들을 저작의 당시로부터 세상의 종말에 이르는 전 역사의 축도로 보는 방법이다. 7교회는 교회 역사의 연대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 해석은 종교개혁가 중 몇 인사들과 고대의 주석가들, 그리고 현대의 복음주의 해석가들 가운데서도 적지 않게 지지하는 해석이다. ① 에배소(오순절→100년) ② 서머나(100→300) ③ 버가모(300→700) ④ 두아디라(700→1,000) ⑤ 사데(1,000→1,500) ⑥ 빌라델비아(1,500→1,900) ⑦ 라오디게아(1,900→현대의 교회). 7인봉을 떼는 것은 로마제국 멸망을 가리키고(6-7장), 악한 황충은 모하멧교도의 침략을 가리키고(9장), 두 짐승은 로마의 교황을 가리키고, 바벨론은 로마교회의 왕국시대를 가리킨다고 한다. 7인봉 때에 1/4, 7나팔 때에 1/3, 7대접 때에 전체가 다 죽는다는 예언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이 해석은 무리이다.

3) 영적 해석법(The Spiritual Method)

이 학설은 본서의 문자적 해석을 반대하고, 그 구체적 성취를 부정하며, 이를 인류 전 역사의 원리로 보는 것이다. 즉 역사는 하나님과 사단 또는 선과 악, 그리스도교와 이교도 간의 계속적인 투쟁사로서, 한 때 악은 선을 능가하고 압제하나 종내 패망한다는 원리로 제시한다고 본다. 이 해석은 각 장 마다 영적인 의미를 붙여서 해석하려 한다. 이 해석은 주로 자유주의적 인사들이 좋아하는 해석이다.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나 그 영감을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는 이들 간에 인기가 있는 해석이다. 이 학설은 결국 계시록을 하나의 소설책과 같이 여기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용납할 수 없다.

4) 세대주의적 해석방법

계 1:19에 근거하여 계시록을 다음과 같이 개요한다. 1장은 요한이 본바 부활하신 예수님의 환상을 다루며, 2-3장은 이제 있는 일로 교회사 전체를 다룬다. 예컨대, 에배소 교회는 사도 말기교회, 서머나는 로마박해시의 교회, 버거모는 정교결탁시의 교회, 두아디라는 중세기의 교회, 사데는 종교개혁기의 교회, 빌라델비아는 종교개혁 이후의 참 교회, 라오디게아는 현대 교회를 나타낸다고 본다. 그리고 4장 이하는 장차 될 일을 다룬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다니엘의 70이레에 해당하는 <7년 대환난기>인 야곱의 환난기(렘 30:7)에 대한 묘사라고 한다. 세대주의자들은 복음주의에 속한 듯이 보이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신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상충된다.

5) 상징적 해석법

계시록의 내용은 어느 특정한 시대적 상황에 관련시켜서 해석할 필요가 없으며 계시록의 모든 상징적 표현은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절대성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절대성은 현 역사의 종점에 이를 때까지 사탄의 세력과 여러 차례 여러 모양으로 대결한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승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계시록의 모든 환상과 신비적인 숫자를 문자 그대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망라하여 시간을 초월한 실존론적 해석이 요구된다. <바벨론>(14:8,18:2,21)은 로마의 대칭이며 로마는 <악마의 도성>이다. 이러한 성격의 도시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이 지상 어디인가에 존재할 것이다.

6) 종합적 해석 방법(Synthetic Interpretation)

종합적 해석 방법이라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저작자의 의도에 돌아가서 그 뜻을 따라 해석하려 하는 방법이다.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이 다각적인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해석의 원칙은 ① 상징적인 의미를 신구약 성경에서 찾을 것 ② 문맥을 파괴하지 말고 일관성 있는 사상 체계를 이해할 것 ③ 정경성을 망각하지 말고 객관성 있는 해석을 내릴 것 ④ 계시록의 구조를 이해하고 해석을 하되 억지로 해석하는 행동을 삼갈 것

7) 미래적 해석법(The Futurist Method)

계시록의 내용 전체를 역사의 종국이 오기 직전에 일어날 심판의 사건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계시록의 내용을 1:19에 따라, ‘네 본 것’(1장)과 ‘이제 있는 일’(2-3장)과 장차 될 일(4-22장)로 나누는 것이다. 현 역사의 끝장,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의 도래, 사탄의 패배, 제1차 부활, 최후심판, 새 예루살렘 출현 등의 일련의 사건이 장차 이 지상에서 전개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즉 4장 이하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종국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1-3장을 제외하고 모든 계시록의 내용을 세상 종말에 있을 사건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가견적인 재림에 앞선 교회의 <은밀한 휴거설>을 반대한다. 4장 이하를 순전히 유대인들에게 국한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2-3의 일곱 교회들이 교회사 전체를 각각 가리킨다고 보지 않는다(G.E Ladd). 이 해석은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취하는 해석방법이다. 본인은 이 해석을 취한다.

Ⅶ.구조

본서에는 상징적 숫자와 물건들이 수 없이 나타나 일견 극히 복잡한 감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징들의 뜻을 파악하며 전편의 통일을 발견할 때, 이는 오히려 단순한 책임을 알 수 있다. 본서의 구조는 1:19의 빛 아래 분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저자가 “본 것”(1장), “이제 있는 일”(2-3장) 및 “장차 될 일”(4-22장)이 본서의 대 골격이다.

전편은 서론(1-3장)과 본론(4-22:5)과 결론(22:6-21)으로 대별된다.

본론에는 세 가지 환난 ① 7인의 환난=6-7장 ② 7나팔의 환난=8-14장 ③ 7대접의 환난=15-18장이 있고, 각 환난은 7종으로 구성된다.

본론에는 7환상 ① 7인=6-7장 ② 7나팔=8-9장 ③ 교회와 사단의 투쟁=12-13장 ④ 대심판의 예견=14장 ⑤ 7대접=15-18장 ⑥ 대심판과 천년왕국=10-20장 ⑦ 신천신지=21-22:5으로 구성되고 각 환상은 다시 7종으로 세분된다.

이제 본서의 구조의 대체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A. 서론(1-3장)

서문 및 계시자 예수의 나타나심(1장)에 이어 7교회에 보내는 편지(2-3장)를 내용으로 한다.

B. 지상의 대환난과 천상의 구원(4-18장)

계시의 본론으로, 종말에 있을 지상의 대환난을 주로 하고, 그 중간에 천상에서의 교회의 영광을 삽경으로 한다.

1) 심판의 보좌와 심판자(4-5장)

본서를 일관하는 대심판의 주권의 소재를 먼저 밝힌 것으로,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보좌의 광경(4장)과 그 주권을 행사하는 예수의 모습(5장)을 묘사한다.

2) 7인의 환난(6-7장)

첫째 환난인 7인 중 6인을 떼시는 광경(6장)과 첫째 삽경으로 천상에서의 구원 받은 무리들의 찬미(7장)로 된다.

3) 7나팔의 환난(8-14장)

제7인은 7나팔로 발전하여 제2의 환난이 된다(8-9장). 성전(10장)과 두 증인(11:1-13)등의 삽경이 보여지고, 계속하여 교회와 사단의 투쟁(12-13장)과 앞으로 있을 대심판의 예고(14장)등이 삽경으로 나타난다.

4) 7대접의 환난(15-18장)

마지막 환난으로 그 준비적인 서곡(15장)에 이어 7대접의 환난이 계속되고(16장), 마지막 삽경인 대음부(17장)와 바벨론(18장)의 멸망이 보여진다.

C. 대심판과 천년왕국(19-20장)

지금까지의 환난에는 악의 세력의 활동이 주제였으나 이제는 그 멸망을 고한다. 여기서는 서곡적으로 천상의 심판의 보좌(19:1-10)에서 시작하여,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19:11-21)에 이어, 악의 궁국적 책임자인 사단의 멸망과 천년왕국의 광경이 교차적으로 계시된(20:1-10) 후 전 인류의 심판(20:11-15)으로 끝 맺는다.

D. 신천신지(21:1-22:5)

이제는 무궁세계의 그림으로서, 신천신지의 놀라운 모습(21장)과 그 생활상(22:1-5)을 보여주고 있다.

E. 결론(22:6-21)

결론적 격려와 경고의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