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룻기 강해

[스크랩] 2:21-3:13(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

에반젤(복음) 2019. 11. 2. 18:20



   

2장21-3장13(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

성경본문 : 룻기 2:21-3:13

21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22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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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3

1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5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9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10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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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2:21-3장13)

인간은 무수한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때 이루어 가십니다.

 

며느리의 안식처를 찾음

시어머니 나오미는 이삭을 줍고 돌아오는 젊은 며느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쓰러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할 때마다 보아스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딸 같은 며느리 룻을 불러 “애야, 이젠 그 고통의 상복을 벗고 기쁨의 향수로 신부단장을 하거라. 그리고 보아스가 타작 마당 노적가리 곁에서 잘 때에 발치 이불을 들고 그 곁에 누워라. 그러면 그가 네게 할 일을 말하리라”고 말합니다. 여자의 안식처는 남편이 있는 가정임을 안 그녀는 율법(신 25:5-10)대로 그에게 청혼하도록 명한 것입니다.

 

 

룻의 청혼, 보아스의 맹세

룻은 몸을 단장하고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있다가 보아스가 잠든 것을 보고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그의 잠자리 발치에 가서 발치 이불을 살며시 들추고는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때 보아스가 깜짝 놀라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당신은 우리의 기업 무를 자이오니 시녀를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

 

보아스는 경건하게 여호와의 복을 빌고, 룻의 인애를 칭찬합니다. 그녀의 젊음과 미모로 봐서 젊은 남자를 찾아갈 수 있었을 텐데 늙은 자기에게 청혼한 것에 놀라며, 유력한 자는 현숙한 여인에게 오점을 남기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안심을 시키며 곰곰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가까운 근족이 있으니 그가 권리를 주장한다면 자기가 범죄하는 것이므로 내일 아침까지 참고, 만약 그가 권리 이행을 포기하면 자신이 반드시 책임 이행을 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합니다.

 

당시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보기 드문 경건한 절제와 질서를 볼 수 있습니다.

묵상하는 사람들/ 2007.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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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1:5-7)

 

절제는 힘이 듭니다. 고통이 따릅니다. 일정 기간, 또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절제는 참고 견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신성한 성품에 들기 위하여 절제에는 인내가 필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행하는 절제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에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시험의 시련이 그칠 새가 없기 때문에 성경에는 참고 견디라는 격려의 말씀을 어디를 펼치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 4]

 

우리가 원할 턱이 없는 환난조차도 연단과 소망을 위하여 인내해야만 그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다는데, 하물며 스스로 행하는 절제를 기쁘게 참아 견디지 못한다면 절제의 의미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인내에는 다시 경건이 더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모습은 그 자체는 거룩한 행동이요, 품성인데도 곁에서 보기에는 더러 민망하게 하는 수가 많습니다. 표정은 우울해 보이거나 화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고통을 참느라고 오만상이 찌그러집니다. 눈물로 얼굴이 얼룩지기도 하고 머리를 다듬지 않아서 산발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차림새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외모에 신경 쓰는 것도 절제를 잃은 모습이고, 너무 외모에 몰신경한 것도 절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느라고 몸에 재를 덮어쓰기도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셨습니다. 절제와 인내의 모습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내에 경건이 더해야 한다고 했을 듯합니다.

 

그러면 ‘경건’은 무엇일까요?

야고보서는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26)고 했으니 경건은 입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경건은 말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 같은 말은 디모데도 합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딤후 2:16]

 

디모데는 ‘경건’에 관심이 많았는지 곳곳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말들 중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라는군요. 이는 경건은 외모나 형식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일 터입니다. 경건은 판단하고 행동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외형과 실질이 겸비해야 경건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디모데는 경건한 자는 박해를 각오해야 한다고 합니다.[딤후3:12]

 

특히 나이가 많은 남자들 이른바 공동체의 원로들은 절제와 경건이 필수적입니다.[딛 2:2]

그의 행동은 젊은이들을 비롯한 모든 공동체의 식구들에게 본이 되는 성품과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

를, 인내에 경건을 더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형제우애와 사랑까지 더해야 신성한 성품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펴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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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에게 보낸 이유는 무엇입니까?(3:1)

2. 보아스는 왜 룻을 칭찬합니까?(3:10)

3.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9절)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4.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행동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장점을 한 가지 이상씩 적어 보십시오.

5. 보아스는 경건한 절제 속에서 법질서를 따라 룻의 문제를 해결해 갑니다. 당신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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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은혜로우신 한나님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신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가꾸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잃지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가꾸며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연약한 저희 들을 붙들어 주시고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어리석은 욕심을 버리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자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