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누가복음 강해

누가복음 연구

에반젤(복음) 2019. 10. 6. 15:45




누가복음 연구


들어가며

누가복음은 일반적으로 사도행전과 더불어 누가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것은 두 책이 모두 서두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글의 목적을 암시하고 있다. 긜고 누가는 글을 통하여 '구원사'를 전개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의 사가로서의 정확성은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누가는 유난히 가난한자와 여성들에 관한 관심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로 하여금 사회 정치적 관심을 유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카시디의 도움을 받아 여기서 누가가 본 예수의 사회 정치적 관심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알아보도록하자.

본문 요약

I. 신학자, 로마 제국 사가로서의 누가

1. 편집사 비평
편집사 비평은 저자가 여러자료를 채택했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하며, 그 자료를 저자가 체계화할 때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작업했는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마가의 것과 기타 자료를 가지고 작업하였다. 그래서 편집사 비평은 누가가 마가의 설명에 끌어들인 변화들을 밝혀 내고 분석한다. 또한 마가의 귀절을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예들도 중요하게 눈여겨 본다. 또한 다른 자료들의 활용에서 누가가 했던 변형을 분석하기도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복음서 안의 문장은 어떤 것이든지, 그 속에 여러 가지 의미들을 포함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2.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둘러싼 문제점들
많은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라 불리우는 사람이 집필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집필 시기에 대해서는 주후 70년 후 1세기 마지막 어느 때라고 추정하고 있다. 아무튼 누가가 로마제국의 전성시기에 집필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이방인의 가정과 배경을 가졌을 것으로 보이며, 안디옥 시에 익숙한 점으로 보아 안디옥이 그의 고향일지도 모른다고 본다. 누가의 청중과 독자에 대하여서는 데오빌로의 정체가 불분명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그의 주된 관심은 예수의 삶의 사건들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 공동체들에게 제공하려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고 본다.

3. 신학자로서의 누가
이에 대하여는 콘첼만의 의견이 독보적이다. 그에 의하면 누가는 자신의 종말론과 그 당시 정치적 입장을 고려하여 정치적 변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는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구속사에 대한 이해를 세 단계로 나누어서 재해석함으로써 사태에 대응했다고 본다. 그는 종말을 재해석하면서 로마의 질서에 알맞는 행동을 추구해야 했었으리라. 그러므로 이 두 요소 즉, 종말론과 정치적 변호론은 누가의 전체 신학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것이다. 다른 요소로는 가난한 자, 여성, 이방인 등과 성령의 활동에 대한 특별한 강조 등이 있다.

4. 사가로서의 누가의 정확성
누가는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에 대하여 신빙성 있는 역사적 관심에 대하여는 무관심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자료를 수정했다는 것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에 의하면 누가의 자료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예수의 죽음의 시기와 누가의 집필 시기 사이에 너무나 긴 시간이 흘렀고 너무나 많은 손들이 거쳐갔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그 증거를 찾자면 황제 아우구스도의 호구 조사령과, 가말리엘의 정치폭동 사건에 대한 언급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헨첸과 브랜든이 이러한 비판에 능숙하다. 헨첸은 누가를 현대적인 뜻에서 사가라고 보기 보다는 "매혹적인 서술가"라고 보며, 브랜든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로마 사람들에게 있다고 보는데, 유대인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누가의 서술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역에 마찰 없이 순조롭게 전파되기를 원했기 때문일 거라고 한다.
어쨋든 이 책의 저자 카시디가 관심하는 문제는 누가가 예수에게 어떠한 종류의 사회 및 정치적 입장이 있다고 생각했는가이다. 카시디는 누가가 '제국사'에 관한 문제를 언급할 때는 그의 서술이 정확하다고 믿고있다. 왜냐하면 누가가 자신의 독자들도 알고 있을 사건들에 대해서 사실과 다르게 말했을리가 없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구 조사와 폭동에 대해서도 카시디는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누가가 마가의 자료를 수정한 것도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카시디는 주장한다.

II. 예수의 사회적 입장(1)

1. 가난한 자, 병약자, 여성 및 이방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이러한 예수의 관심은 누가복음의 첫 몇장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마리아의 찬가에서, 세례요한의 경고에서, 예수가 성전에서 읽은 이사야서에서, 그리고 평지설교에서는 가난한 자에 대한 예수의 관심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병약자에 대해서는 자신을 찾아 온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한 말씀에서, 그리고 예수의 공생애를 서술하면서 누가가 잘 서술하고 있다. 여성 및 이방인에 대해서는 시몬의 장모, 과부의 아들, 하혈병 앓던 여인 등과 병고침의 은혜를 이방인에게도 베풀던 데서 볼 수 있다.
누가복음은 그러나 예수가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일종의 보편주의가 예수의 사회적 입장의 특징이라는 것이 누가의 서술이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의 보편주의가 결코 현상 유지의 수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부를 버리라는 요청, 폭력에의 의존과 자신의 야망을 버리라는 것이 예수의 입장이다.

2. 부와 부자에 대한 예수의 입장
재산 축적에 대해서 예수는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준다. 누가는 12장에서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예수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려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자가 된다고 재산 축적에 대해서 말한다. 또 누가는 예수가 검소한 생활을 요구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뿐만아니라 예수가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라고 부자에게 명령하고 있음을 누가는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부자는 유대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으니 한편으로 예수의 부에 대한 과격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할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도 부에 대한 예수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자에 대해서도 예수는 비판을 가한다. 예수가 부자의 병을 고치기도 했기 때문에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는 이미 그가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고 예수는 비판한다. 부자의 헌금과 과부의 헌금에 대한 서술, 부자 관헌에 대한 서술에서도 누가는 예수의 부에 대한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수는 부에 대해 비판만 한 것이 아니다. 재산을 포기한 사람들에 대하여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삭개오가 재산을 나누겠다고 하자 예수는 그가 구원을 얻었다고 했던 것이다.

3. 예수의 입장에 대한 展望
우리는 이제 예수 당시 가난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를 물어보기로 하자. 누가의 예수는 가난이 부자들에 의해서 생기거나 유지된다고 하지는 않는다. 누가의 예수는 가난을 극복할 기획은 없었지만, 행동 단계로서 우선 관심을 가질 것과 그리고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것이 14장에 잘 나타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는 그의 잉여 재산을 활용해야 한다는 예수의 권고와 더불어 포용적 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강조는 빈곤에 대한 그의 태도의 한 구성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III. 예수의 사회적 입장(2)

1. 억압과 부정의에 대한 예수의 반응
누가는 부정의에 대한 것으로 서기관들을 비판하는 것과 과부들의 제산을 등쳐먹는 것을 비판하는 예수를 서술한다. 억압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를들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예수의 항의로서 이는 당시의 주도적인 경제 행위와 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종교적 권한 남용과 억압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것이었다. 또한 누가의 예수는 특히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대하여 진보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당시 일반의 생각과는 다르게 누가는 이혼과 재혼을 간음과 같은 것으로 보는 예수를 부각시키고 있다.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 향유로 예수의 발을 씻은 이야기 등을 통해서 누가의 예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자아정체와 사회적 지위로 인도하는 길을 암시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섬김에 기초한 사회관계에 대한 예수의 요청
억압에 대한 예수의 입장은 새로운 사회관계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의 예수는 사회관계의 새로운 유형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암시적으로는 겸손과 헌신적 봉사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하신다. 9장 후반부에 있는 가장 높은 사람에 대한 예수의 말씀, 14장에 있는 잔치집에 높은 자리를 택한 사람들에게 하신 비유,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 등에서 볼 수 있는대로 겸손과 봉사는 예수의 사회 관계에 대한 권고이다. 이것은 누가의 예수가 억압의 정치적 관계를 비판하는 전체 요건이기도 하다.

3. 예수와 폭력
누가의 예수는 무저항과 비폭력의 원칙에서 볼 때 비폭력의 입장에 선다. 무저항은 폭력에 희생이 되더라도 헌신과 모범으로 상대방의 태도와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려는 희망인데 비해서, 비폭력은 악에 도전하고 맞서는 것이 악의 주역들의 행동에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믿는다. 누가는 예수를 비폭력 주장자로 서술한다. 예수는 당시 정치 지배자들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했던 폭력적 조치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어라"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 폭력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용서에 대한 가르침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행위를 반대하신 예수의 행동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은 바, 예수의 행동이 사람을 해치는 폭력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누가복음의 뜻을 뛰어 넘어 이것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오해는 그 문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동사 ekballein을 잘못 이해한데서 오는 것이다.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가지고 가거라"라는 말도 오해가 많다. 바르게 이해하자면, 그것은 닥쳐올 환란의 때에 헌신적 결단을 더욱 굳세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체포될 때 하신 예수의 말씀과 행위,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하신 예수의 말씀등은 그대로 예수의 폭력에 대한 이해를 말해준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예수는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공격적으로 말씀하시고 행동도 하셨지만, 결코 폭력을 사용하시거나 폭력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시지는 않으셨고 사랑과 용서를 몸소 증거하셨던 것이다.

4. 예수의 사회적 입장의 다른 측면들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예수의 사회적 입장의 배후에 있는 종교적 측면이다. 예수는 자신의 행동을 종교적인 이해를 전제하고 행하신다. 예수는 모든 생명과 모든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 은혜 아래서 얻게 된다고 믿고 있으며, 그 모든 행동은 결국 하나님의 날의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고, 또 그래서 예수는 틈틈이 기도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고찰의 중요성은 예수의 사회적 및 정치적 입장을 뒤받침해 주는 것이 바로 깊은 종교적 바탕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주는 점이다.

IV. 예수와 당시의 정치지배자들

1. 예수와 헤롯 안디바
당시 로마는 일상적 행정에 따른 상당한 책임과 권한을 예루살렘의 의회(산헤드린)에 위임하였기 때문에 의회의 중진이었던 대제사장들은 상당한 정치적 권한을 소유했었다. 그러나 헤롯 안디바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한 마디로 경멸적이며 결코 그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를 '여우'라고 칭하므로써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2. 예수와 대제사장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결한 사람들이 대제사장이며,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예수에게 더 위협적인 세력임을 누가는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예수는 성전정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대제사장들에게 항의한다. 이것을 누가는 암시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예수는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 않고 다시 되물음으로써 그들을 당황케한다. 그리고 누가는 바로 다음에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위치시킴으로써 대제사장들의 무책임과 살인성을 통렬히 공박한다. 이것으로 보아 예수는 대제사장들의 바램과 정책들이 자신의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는 알 수 있다.

3. 예수와 로마식의 관행
우리가 로마식의 관행이라고 할 때 그것은 힘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로마제국의 존재의 근본 전제는 힘이었다. 로마는 피지배지의 많은 기존의 제도를 인정해 주면서도 그들의 관행을 도입 유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한 것이며, 유대지방의 통치에도 역시 그러하였다. 예수는 여기에 대해 전혀 다른 행위를 보여준다. 예수는 여성의 새로운 지위 부여 등, 당시의 로마 세력에 의한 억압적 구조와 제도에 상치되는 일을 하신 것이다.

4. 세금과 로마의 관리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구절로 유명한 세금 문제는 해석이 분분하다. 다양한 해석중에서도 일치하는 점은 예수께서 인간의 활동을 세속적인 영역과 영적인 영역으로 이분화시켰다는 가정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가이사에게는 세금을 바치고 하나님께는 성전세를 바치라고 권고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것에 견주어 어느 정도 강하게 인간의 영역으로서 로마체제를 지지했는가라는데는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
카시디는 그러나 예수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인간의 정치질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보다 큰 창조 질서 가운데 한 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라.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바라심이 정당하게 무시될 수 있는 영역은 없다.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당시 사회적 관행과 여러 정치적 지배 세력에 대한 자세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카시디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로마의 정책과 관행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회형태의 기준 아래서 평가되어야 하고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는 이방인들의 왕들이 하는 강제로 다스리는 관행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예수는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핀데로 섬김과 겸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예수는 이렇게 하여 모든 로마관리들까지도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결과도 예수는 예상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5. 예수의 입장에 대한 展望
이상에서 살핀 예수의 사회적 태도과 관행은 로마 체제의 관행과 상치되는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예수는 로마체제를 신성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로마의 질서를 감독하는 관리들에게 존경심을 보이지 않으며, 그들이 헤롯 안디바 급이든 또는 예루살렘 대제사장 급이든 심지어 더 높은 격인 백성의 은인이든간에 예수는 그들을 거리낌없이 비판하셨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로마인들과 그들의 결탁 세력들이 굳게 지켰던 사회적 제도와 관행에도 복종하지 않으셨다.

V. 예수의 재판과 죽음

1. 예수의 체포와 산헤드린에서의 청문
고소인은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결탁세력들이다. 이 소환사건에 대한 누가의 기록은 마태와 마가의 것과 다르다. 마태, 마가에서의 죄목은 예수가 성전을 파괴한 후 다시 짓겠다고 큰 소리친 것에 대한 것임에 비해 누가에서의 죄목은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어쨋든 의회의원들의 질문에 예수의 대답은 간결하면서 애매하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희가 말하였다."

2. 빌라도 앞에 선 예수
의회의원들에 의해 빌라도 앞에 선 예수는 그들에 의해 또 고발당하는데, 죄목의 특성을 살펴보면 예수가 열심당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는 것과, 세금 납부의 거부와, '그리스도'라고 사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의 행태를 그것들과는 어긋나게 서술한다. 즉 예수는 로마의 지배에 무력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열심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세금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한 적이 없으며, 겸손과 섬김에 입각한 사회 구조와 관행을 내세웠을뿐 기존의 정부형태에 대해서 어떤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3. 헤롯 안디바의 심문
판결에 곤란을 느낀 빌라도는 헤롯 안디바에게 예수를 넘긴다. 그러나 누가는 그러한 처리 상황에 대한 공식적인 로마의 태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어쨌든, 처음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헤롯의 태도에 예수는 협조하지 않고 심문에 불응한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끈질지게 예수를 고발하여 다시 빌라도에게로 예수는 이송된다.

4. 빌라도 앞에 다시 선 예수
23장 13-16절에 의하면 누가의 입장은 분명하다. 빌라도의 무죄 선언은 철저하다. 헤롯도 똑 같은 판단을 한다. 빌라도는 헤롯을 여전히 로마의 동맹자로 보며, 로마의 이익을 옳게 판단할 줄 아는 유능한 동맹자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23장 18-23절에 의하여 학자들은 소위 '정치적 변증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다시말해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그토록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누가는 로마 제국이 예수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무서워할 아무 까닭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카시디는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결탁자들이 예수의 마지막 운명의 죽음에 대한 1차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오해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밝히려는 것이라고 본다. 누가의 설명에서는 예수를 죽이는 일에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결탁자들이 행한 역할에 견줄 만한 사람이나 집단의 역할은 없다. 누가는 예수를 죽인 자들이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결탁자들임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을 도매금으로 예수의 죽음에 관련되었다는 식으로 추리하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대제사장들이 유대인 전체 인구를 대표하는 자들이라는 식으로도 추리하지 않는다. 어쨋든 누가가 대제사장들과 그 결탁 세력 이외에 어떤 다른 유대인 집단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볼수는 없다.

5. 예수의 십자가 처형
누가는 비록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처형했지만 대제사장들과 그 결탁자들의 책임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들의 책임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누가는 처형 현장에서 로마의 백인대장의 고백을 서술하고, 아리마대의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결국 누가의 정열적인 설명은 로마가 예수의 처형을 집행했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압력을 넣고 설득하여 그들의 목적 실현에 이용하려 했던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빌라도는 마침내 그들의 의도에 굴복하고만 것이다.

6. 재판에서 예수의 반응
재판에 대한 예수의 응답에서 우리는 어떤 일반적인 형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하면 누가복음에서 보여지는 예수는 원칙상 충성심을 보여야 할 정치적 권세에 대해서 실제로 아무런 존경심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 보면 예수께서 내세웠던 자세 및 구조와 예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강조했던 자세 및 구조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누가는 섬김과 겸손에 기초해서 새로운 사회 관계를 이루려고 애쓰는 예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입장과 기존 질서 사이에는 늘 긴장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와 태도는 헤롯에게 대해서와 빌라도의 법정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태도이다. 이 자세는 권력에 대해서 협력의 자세도 존경의 자세도 아닌 것이다.

7. 빌라도와 헤롯의 선고
예수의 태도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빌라도와 헤롯은 예수의 죄없음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이다. 단지 그들은 로마 통치의 유지에 관심이 있었다는 정도만을 누가는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가 대제사장들의 증오를 받을 만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들이 휘말려들 성격의 것이 아님도 또한 알고 있었다. 그들의 선고는 그저 팔레스틴 지역에 대한 로마의 지배를 안전하게 지켜나가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VI. 예수는 로마제국에 위협적 존재였는가?

1. 예수의 입장에 대한 누가의 서술
누가는 예수가 자주 기존 사회 체제의 급진적 변혁을 뚜렷하게 또는 은근히 요청하는 방식으로 가르치셨고 행동했다고 서술한다. 물질적 소유에 대해서 그러하였고, 여성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 또한 기존 질서를 잠정적으로 어지럽혔다. 봉사와 겸손의 원리를 주장한 것도 그렇다. 또한 정치적 관직자들을 존경하거나 그들과 협력하기를 거부한 것도 로마 제국에 대해서는 잠정적으로 위협이었다. 대제사장들과 다른 의회의원들에 대해서는 더욱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예수가 팔레스틴에서의 로마 지배를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위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 누가의 예수와 간디
이상의 누가의 서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20세기의 마하트마 간디를 예로 들수 있을 것이다. 간디가 인도의 영국 지배에 위험스러웠던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예수도 로마지배에게 위협적이었음을 시사할 수 있다. 간디는 비폭력인 아힘사, 그리고 진리를 꼭 붙잡음이라는 사티아그라하를 핵심 태도로 하고, 각 사람은 원수까지도 모두 신의 속성인 진리를 약간이라도 갖고 있어서 그것을 나타낸다고 믿고 행동하였다. 영국이 간디를 건성으로 보았듯이 로마도 예수를 처음에는 건성으로 보았다.

3. 예수의 입장에 대한 다른 해석들
리차드슨은 "정치적 예수"에서, 하나님의 주장을 어느 모양으로도 깎아 내리지 않고 세금 바칠 의무를 역설했다고 주장한다. 쉬나켄부르크는 "신약의 도덕적 가르침"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것이지 세속적인 사건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헹겔은 "푹력에 대한 승리"와 "예수는 혁명가였나"라는 책에서, 예수를 열심당과는 구별하고 있지만 사회적 정치적 입장이라는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데 소홀하여, 예수를 기존 사회 정치 구조에 더 만족하는 분으로 부각시키는 실수를 하고 있다. 클만은 "신약에 있어서의 국가"와 "예수와 혁명가들"에서, 예수는 국가를 '최종적' 제도로는 인식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전복하려는 모든 시도를 근본적으로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오직 개인적 변화에만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바 데로이다.

4. 누가의 작업에 대한 결론
우리의 작업은 누가가 우리에게 제공해 준 서술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가의 서술의 신빙성을 논의로 삼는 것은 우리의 주제 밖이다. 그러나 누가가 자신의 자료를 순서대로 정리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로마 제국사에 대한 기록이 놀랄 만큼 정확하다는 것은 우리가 연구해 본 바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한 현재 여건하에서는 각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