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도행전 강해

[스크랩] 사도행전 (개론)

에반젤(복음) 2019. 10. 5. 13:12



1. 제명(題名)
우리가 사도행전으로 알고 있는 책명은 본래 붙여 있던 이름이 아니었으며, 주후 2세기에 붙여진 것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두권으로 된 한 책이며 원래의 복음서에 붙여 있던 명칭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 두권 모두에 사용되었다. 두번째 책인 사도행전이 따로 분리되어 배포되기 시작했을 때에 그 내용을 나타내기 위해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

2. 저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어느 곳에도 그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아마도 바울의 친구요 동역자인 누가라고 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저자를 알게 하는 단서는 세개의 '우리-구문'(we-sections)인데 이것들은 일인칭 복수구문으로서(사도행전 16:10-17; 20:5-21:18; 27:1-28:16) 사도행전의 저자가 바울의 동역자이며 자신의 여행일지를 자료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
교회의 전승은 한결같이 누가를 바울의 동역자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사도행전의 자료들이 이러한 전승을 뒷받침해 준다.

3. 저작 시기
사도행전이 쓰여진 시기를 우리가 알지는 못하나, 이 책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대략 주후 62년경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

4. 저작 자료
누가는 자신의 여행일지 이외에 기타 문서를 사용한 듯 한데 특히 앞 부분의 몇 장들이 그러하다. 바울의 동역자인 그는 직접 입수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 이 외에도 바울이 가이사랴에 투옥 중일 때에 누가는 팔레스틴에 있었으므로(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사도행전 21:18;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사도행전 27:1), 목격자들로 부터 자료를 수집할 기회가 있었다.

5. 저작 목적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배운 것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확신시키려고 썼다(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 1:4). 데오빌로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이었던 듯하며 누가는 그가 이미 알고 있던 것보다 기독교의 근원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주기 위하여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누가가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술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갈릴리 교회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9:31), 또는 애굽이나 로마의 복음화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사도들의 행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야기 속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명만이 등장하는데 그나마도 야고보와 요한은 이름만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바울의 행전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베드로는 고넬료의 개종 이후 사실상 내용에서 빠져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또한 누가는 교회 장로의 추대(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사도행전 11:30),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도자의 지위에 오른 방법(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사도행전 15:13), 바울이 회심 이후 다소에서 행한 일(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도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사도행전 9:30;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사도행전 11:25) 그리고 기타 중요한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여 누가는 몇몇 사건들을 단 몇 마디의 말로 지나쳐 버리면서(사도행전 18:19-23) 다른 사건들을 매우 상세히 전하고 있다(사도행전 21:17-26:32). 환언하자면 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교회 확장의 주요 줄거리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교회 확장 기사에는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과 영접한 이방인, 지방 관리 및 로마 관리의 초대교회에 대한 태도라고 하는 두 주제가 그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러므로 누가의 두 책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의 저술 목적은 이스라엘에게 왕국을 회복시켜 준다는 약속으로 시작되고(저자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누가 1:32,33) 복음이 유대교와는 다르게 로마의 이방인 교회로 끝을 맺는 것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데오빌로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6.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틀림없는 사도행전의 기사와 바울 서신들의 기사를 종합하는 것은 때때로 우리에게 어려움을 준다. 누가는 바울 서신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바울 서신에 반영된 바울의 활동과 누가의 기록을 서로 연결시키는 일이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갈라디아서 1:16-2:10의 기사를 어떻게 누가의 이야기와 상호 관련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저명한 학자들도 갈라디아서 2:1-10에서의 방문이 (a) 사도행전 11:27-30에 나타난 기근시의 방문과 (b)행 15장에 나타난 공회원들의 방문을 언급한 것이라는데 공감한다는 반면에 많은 학자들은 사도행전의 기사가 바울 서신과 비교할 때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문제점은 사도행전에 표현된 바울이라는 인물과 전도자 자신의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인물이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제기된다.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은 형편에 따라 자신의 원리들을 절충해 나가고자 하는 융통성 있고 합리적인 인물로 나타나 있다(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더라, 사도행전 16:3;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사도행전 21:26).
반면에 바울서신에서의 바울은 절대 굴복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고집센 인물이다(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갈라디아서 2:3). 구(舊) 튀빙겐 비평학파는 바울적인 기독교와 유대적인 기독교 사이의 갈등을 가상하고 그것을 둘러싼 원시 교회의 역사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고 사도행전은 두개의 상반되는 견해 간에 종합이 이루어 진다.
갈등역사의 후기 상황을 반영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을 상세히 다루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한 일이나 그 문제들은 연구의 배경을 이루며 직접적으로 주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7. 신학적 교훈
사도행전의 주된 강조점은 성령의 활동이다. 그 제목을 '성령의 행전'으로 부르자고 하는 학자들도 실제로 있다. 이러한 주장은 특별히 의미있는데 그것은 누가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집중적으로 다룬 누가복음과 성령을 통해 계속 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다룬 사도행전을 모두 집필하였기 때문이다. 누가는 사도행전 서두에 예수님의 계속되는 사역을 기록하려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 사도행전 1:1).
성령의 주된 역할은 실로 놀랍다. 사도들은 머지않아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게될 것이라는 말씀을 예수님으로 부터 들었다(요한은 물로 세례(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5). 그들은 하늘 위로부터 이러한 권능을 받게될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은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그들 위에 임하고 그들은 지중해 연안의 모든 방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복음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는 동안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임한다, 성령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빌립을 광야로 이끌어 간다. 성령은 사울과 바나바를 전도자로서 따로 세울 것을 안디옥 교회에 지시한다. 성령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교회에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 사도행전 15:28'라고 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도록 인도한다. 사도행전은 세상속에서 교회를 통한 성령의 역사를 깨닫게 해주는 가장 훌륭한 안내서이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교회의 본질 및 사명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가 16:18) 후일에 교회를 형성한 그의 추종자들, 즉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권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면서 기도할 것을 명령받았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그러므로 오순절은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권능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날이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경험과 일맥 상통한다. 예수님께서는 탄생하신지 삼십년이 지나서 세례(침례)를 받으실 때에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