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루스드라에서의 박해와 안디옥 교회로의 귀환(사도행전 14:19~28)
* 본문요약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루스드라에까지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칩니다.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냈으나, 바울은 다시 일어나 다시 루스드라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그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로 돌아옵니다.
찬 양 : 258장(새 500) 물 건너(물 위에) 생명 줄 던지어라
383장(새 336) 환난과 핍박 중에도
* 본문해설
1. 루스드라에서 큰 환난을 당한 바울(19~20절)
19) 그때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몰려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20) 그러나 제자들(성도들)이 달려와 바울을 둘러싸자 그가 일어나서(혹은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셔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셔서), 다시 그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19절) : 바울을 핍박하기 위해 무려 160km나 달려왔습니다.
- 성 밖으로 끌어냈습니다(19절) :
성 밖은 시체를 던지는 곳을 가리킵니다.
연고자 없이 죽은 행려병자들의 시체를 내다 버리는 성 밖 쓰레기장입니다.
- 그가 일어나서(20절) :
일어났다고 번역된 ‘아나스타스’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일으키셨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부활의 능력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바울이 실제로 죽었거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뜻입니다.
2. 1차 전도 여행 때에 세운 교회들을 돌아봄(21~23절)
21)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권하였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must)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하고 말했습니다.
23)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한 후에,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맡겼습니다.
-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22절)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반드시 환난이 있어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23절) :
성경을 보면 다음 일곱 가지의 경우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① 전쟁 때나 전쟁의 위협이 있을 때(삿 20:26, 삼상 7:6)
② 병들었을 때(삼하 12:16 이하)
③ 애곡할 때(상삼 31:13, 삼하 1:12)
④ 회개할 때(왕상 21:27)
⑤ 위험이 임박했을 때(대하 20:3, 렘 36:9, 스 8:21)
⑥ 재앙을 기념할 때(왕하 25:1, 25:23~25)
⑦ 기근 때
여기에서 금식한 이유는 앞으로 교회에 다가올 환난과 핍박을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 맡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3. 안디옥 교회로 돌아옴(24~28절)
24) 그 후에 두 사람은 비시디아를 통과하여 빔빌리아로 들어갔다가
25)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에 앗달리아로 내려갔습니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안디옥은 온 교회가 두 사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빌어 주며, 선교의 임무를 맡겨 선교사로 파송했던 곳인데, 지금 그들이 그 임무를 마치고 (그 교회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27) 그곳에(안디옥 교회에) 이르러서 교회 성도들을 불러 모으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신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28) 그리고 나서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 묵상 point
1. 유대인들의 집요한 훼방과 박해(19절)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들을 신으로 숭배하려는 것을 자기들 옷까지 찢어가면서 억지로 말리고 난 직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비시디아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들을 선동하여 바울에게 돌을 던집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를 방해하기 위해 무려 160km나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는 이들의 집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돌에 맞은 바울이 얼마나 참혹하게 보였는지 그들은 죽었다고 여기고 성 밖 쓰레기장에 바울을 내다 버렸습니다.
● 더 위험한 유혹 :
①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이 자기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상상을 해봅니다.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을 신으로 숭배하려는 일을 굳이 막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일을 바울과 바나바가 조장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 뭐 옷까지 찢어가며 막을 이유가 뭐 있을까 생각하며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유대인들이 그곳에 와서 무리들을 선동할 때 그들이 그렇게 쉽게 선동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바울이 죽을 만큼 돌에 맞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②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돌로 맞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죽을 만큼 돌에 맞는 일보다 자기들을 숭배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일이 훨씬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그랬다면 바울이 이 때 이런 시련을 당하지 않았겠지만, 그 대신 그는 헤롯왕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벌레에 먹혀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더 두려운 자인지, 누가 더 강한 권세를 가지신 이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 묵상 : 잠시 이익을 얻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2. 루스드라에서의 기적
무리들은 바울이 축 늘어지자 죽었다고 여기고 행려병자들이 죽었을 때 내다 버리는 곳인 성 밖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바울의 장례라도 치러주기 위해 바울 주변에 몰려들자 바울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가볍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본문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기적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1) 죽은 바울을 다시 일으키신(부활하게 하신) 하나님(20절)
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바울에게 돌을 던진 이들이 죽은 줄 착각하고 성 밖 쓰레기장에 던졌는데, 바울이 조용히 있다가 그들이 가니까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두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줄 착각할 수는 없습니다. 또 설령 바울이 죽지 않고 살았었다고 하더라도 죽을 만큼 얻어맞았다면 그렇게 금방 일어날 수 없습니다.
누가는 본문을 기록할 때 ‘아나스타스’라는 말을 사용하여, 바울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셔서 일어나게 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일어난 것이 초대교회에서의 또 하나의 기적의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 묵상 :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일을 말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믿고 섬기는 자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2) 자신이 죽었던 루스드라를 향하여 다시 들어가는 바울(20절)
그러나 바울이 죽었다가, 혹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얻어맞았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툴툴 털고 일어났다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그가 조금 전에 죽을 만큼 돌로 얻어맞은 바로 그 성, 루스드라로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삶과 죽음, 핍박과 고난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바울을 봅니다.
● 묵상 :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는 훈련받은 특공대가 결코 아닙니다. 그저 우리와 똑같이 위기 앞에서 두려워 하고 불안해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와 함께하시니 그가 그 어떤 특공대보다도 더 담대하게 자신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을 향하여 다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면 우리도 바울같이 용감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 한다(22절)
바울이 그렇게 루스드라에 들어간 후 그 이튿날에 인근에 있는 더베로 가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많은 제자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권면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증거하였습니다.
● 묵상 :
이것은 바울이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핍박의 때를 사는 사람들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평화로운 시대에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믿음의 삶을 사는 것도 환난이요, 허물과 죄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사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도 환난입니다.
또 아무리 평화로운 시대라 할지라도 믿음의 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세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바른 것이라면 반드시 크든 작은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세상에서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환난을 당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면
내가 세상에서 믿음을 가진 자답게 살았었는지를 스스로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4.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교회와 일꾼을 세우는 바울(24~28절)
1차 전도 여행을 마친 바울은 그가 다녀왔던 도시들을 다시 방문하며 성도들을 모읍니다. 그리고는 그들 중에서 장로를 세워 교회를 조직합니다. 여기에서의 장로는 그들이 설교와 목양을 담당했으므로 오늘날 목사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교회를 조직하고는 주께서 이 사람들을 맡아 주실 것을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 묵상 :
오직 교회가 바로 서는 것만을 바라고 원했던 바울의 신앙의 열정이
우리에게도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5. 안디옥 교회에서 보고한 후 휴식을 취하는 바울(28절)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했던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이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을 보고하니 온 교회의 성도들이 크게 기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과 함께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때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머물러 있었던 기간이 대략 1년 정도라고 말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선교 여행 후에 두 사도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주님의 사역자들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휴식을 갖는 것을 아주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령 교회 버스를 운전하시는 기사가 성도들을 기도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철야기도에 참여하게 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다가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왜 기사들에게 휴식을 주지 않는지, 그들은 잠을 자지 않아도 결코 졸음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런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사님들을 포함한 교회의 직원들도 적당한 휴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나는 휴식을 취하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휴식 없는 사역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제목
1. 환난과 핍박보다
세상 평안에 안주하려는 것이
더 큰 위험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2. 주께 헌신하는 자에게
기적의 은혜도 내리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3.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헌신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4. 열심히 사역하는 주님의 일꾼들에게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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