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하박국 강해

[스크랩] 하박국 (개론)

에반젤(복음) 2019. 9. 30. 22:03




   하박국(개론)




1. 저자
하박국 자신에 대해서는 본서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면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다. 그가 예언의 은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선지자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제 3장에서와 같은 음악적인 기보법(記譜法)으로 보아 그가 성전에서 예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껴안다(embrace)"를 의미하는 히브리 어근에서 유래한 듯하다. 제롬(Jerome)은 이 선지자가 "껴안는 자"로 불린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 때문에 혹은 그가 일심으로 기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랍비 전승은 이 이름을 열왕기하 4:16과 관련시켜서 하박국이 수넴 여인의 아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물론 순전히 공상적인 것이며, 만일 그 선지자의 이름이 예수님의 이름처럼 그의 사역을 예상하여 주어진 것 (마태 1:21)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름의 의미에 관한 어떠한 추측도 흥미롭기는 하나 무익하다.

2. 저작 연대
예언서의 정확한 기록 시기는 추정으로 이어왔다. 저명한 학자들이 주전 650년(C.F.Keil,Commentary on the Minor Prophets,p.410)에서 주전 330년(E.Sellin,Introductionto the Old Testament,p.l83)에 이르는 시기를 주장하였다. 주전 650년은 다소 너무 이른 감이 있는데 그것은 예언이 앗수르가 유다를 지배하던 시기에 행해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전 330년은 본서의 제 1장에 묘사된 침략군이 갈대아인들이 아니라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헬라 군대라는 견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가장 납득할만한 결론은 본서가 갈대아인 혹은 바벨론 사람들이 앗수르의 세력에 대항하고 아마도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을 당시에 기록되었다는 견해일 것이다. 본서의 기록 시기를 이보다 훨씬 후기로 잡는 것은 본서가 실제로는 갈대아인들의 유다 침략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언급이며, 서쪽에 여호와의 도구인 바벨론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설명일 뿐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될 것이다. 최상의 결론은 이 예언서가 요시야의 통치(주전 640-609) 말기에,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주전 612년 바벨론 메대 및 스구디아 연합군에 의한 니느웨 멸망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일 것이다. 이 시기는 두가지 이유로 해서 타당한 것같다. 그 이유중 하나는 불순종한 유다를 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갈대아인들을 택하셨음을 선지자가 알고 있었던 듯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갈대아 세력의 부상이 선지자의 외친 내용이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 의미있었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확실한 것은 본서의 기촉 연대가 느부갓네살이 팔레스틴을 처음 침공한 시기인 주전 605년 이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제3장에 관한 문제
시(詩)로 된 제 3장이 하박국의 저작이 아니라고 주장되어 왔다. 여기 나오는 음악적인 기보법(記譜法)은 3장의 목적이 성전 예배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이것 때문에 성전 예배가 비교적 순수하며 포로기 이후에만 진보적인 신학을 취했다고 생각하려 하는 일부 학자들이 이 시(詩)를 포로기 이후의 것으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을 더욱 뒷받침하는 것은 하박국 3장에 대해 아무건 언급이 없는 쿰란 문서 가운데 들어있는 하박국 주석의 발견일 것이다. 이처럼 하박국 3장을 완전히 묵살하는 것은 첫 두 장(章)을 갈대아인의 침략에서의 견지에서가 아니고 당시의 사건들이라는 견지에서 설명하려 한 주석가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관계가 이는 하박국의 시(詩)를 발견치 못하였다. 히브리의 시문학에 있어서 제의적인 주(註)들을 사용하는 것이 어떤 글을 포로기 이후의 것이라고 주장할 결정적인 증거는 될 수 없다. 가장 오랜 것으로 알려진 몇개의 시편들도 그와 같은 주(註)들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하박국 3장도 포로기에 상당히 앞선 시대의 그러한 문학 형태의 일부였던 듯하다.

4. 본서의 독특성
제3장의 내용이 앞의 두 장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승리의 절정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본서 전체를 통하여 신정론(神政論)을 보게 된다. 이 예언서의 구조는 구약에서 독특한데 그것은 신학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처음 두 장에는 여호와와 선지자 사이의 대화가 들어있는데 그 대화 속에서 선지자는 몇몇 시편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함과 아울러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한 악을 참으실 수 있는지를 알려 달라고 여호와께 요구하기도 한다. 제 3장은 기도이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목적을 성취하여 달라고 즉, 수년내에 주의 일을 부흥케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함으로 시작하고 있다(2절). 이 기도에 이어 그는 하나님께서 권능을 발휘하시고 세상에서 영광을 드러내시는 이상을 받게된다. 그 이상의 결과로 선지자는 경외와 확신에 휩싸이게 된다.

5. 영적 메시지
이 간단한 소책자는 두가지의 중요한 영적 통찰력으로 인해 종교 문학사에서 주목할 만하다. 2장4절에서 하박국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불후의 진리를 말한다. 참된 신앙심을 요약한 이 말은 16세기에 있었던 종교개혁의 표어가 되었다. 모든 종교 의식 성례전 및 면죄부를 향하여 루터는 믿음이 제 일임을 역설하였다. 죄는 파괴된 관계, 즉 하나님을 거역하며 멀리하는 행위이다. 믿음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겸손히 신뢰함으로써 그처럼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믿음이 하박국에게 있어서는 겸손히 신뢰하는 것 이상의 것인데 그것은 믿음의 생활을 특징짓는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순종 즉 충성심이다. 이러한 영적 진리가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구분하여 준다. 믿음에 대해 이처럼 깊이 이해함으로써 본서는 신자들의 영적 생활에서 소멸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믿음은 단순히 신봉되는 어떤 교리가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방식이다. 그것은 매 순간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못되고 모든 소유를 잃으며 먹을 것이 하나도 없을 때에도 자신은 여전히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하박국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만 계시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이며 모든 사람은 삶의 종국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을 알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