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요나 강해

[스크랩] 요 나 서 연 구

에반젤(복음) 2019. 9. 30. 13:59




                  요 나 서 연 구

 


*이름의 뜻을 통한 주제 - 비둘기 / 요(문제의 주인)는 나다.

*요나 주제 - 모든 자에 대해 자비로우신 하나님(4:11).

*요나 주제 절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4:10~11)



Ⅰ. 예언자 요나

   본서는 그 저자, 기록 연대, 사실기록이냐, 우화냐 하는 문제 등 논란이 많은 책이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본서의 예언자 요나는 바로 여로보암 Ⅱ세 때에 예언활동을 한 그 요나 선지자이다(왕하14:25).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본서의 내용을 우화로 보고 주전 4세기 중반에 살았던 익명의 한 사상가의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요나서에 기적적인 사건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이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서 3일 동안 살다가 나왔다는 것이나, 니느웨성의 크기가 3일 길을 걸어 다닐 만큼 된다거나, 없던 박넝쿨이 갑자기 커져서 이튿날 그게 자라서 요나를 가려주었다는 것, 등은 사리에 잘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의 대화에서 요나의 표적을 역사적인 사실로 들어 말씀하셨다(마12:39).



Ⅱ. 내용과 주요 사상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독점하고 있으며 다른 민족들은 그 은총 밖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소수의 선각자들은 그러한 편협한 민족주의를 초월하고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다고 깨달았으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도구와 사신이 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전파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본서에는 이러한 두 사상의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

 

  본서의 제일 중요한 사상은 ‘세계의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4:10~11)라는 말씀에서 이것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사상은 그들의 선민의식이나 민족주의와 상당히 큰 갈등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 말씀을 전하는 요나 자신도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질투와 반항 의식을 가졌었다. 그리하여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하다가 큰 고기의 배 속에 들어가 죽을 뻔 하였고 니느웨에 가서 전도를 하면서도 역효과가 나기를 오히려 희망하였다는 사실에서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여로보암 2세 시대에 이스라엘은 나라는 부강해졌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을 사랑하고 힘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세상적인 부와 힘이 극에 달했던 것에 비하여 영적인 타락이 극에 달하였던 것이다. 이러므로 여로보암 2세 이후에는 급격하게 쇠하여졌고 급기야 722년이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니느웨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교훈하시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장 악한 니느웨도 돌이키니까 망하지 않게 하시는데 이스라엘이야 오죽하겠느냐는 말씀이다. 이미 범죄 하여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돌이켜서 장차 올 다윗의 나라를 기다리도록 하기 위해서 요나에게 이런 일을 시켰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낸 것은 이스라엘 중의 선민 즉 망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서도 선택되고 남겨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보고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려는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망할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킬 때 다시금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이요 따라서 하나님은 결단코 이스라엘을 멸망시켜버려서 인간에게 잊어버리게 하실 분이 아니라 다시금 이스라엘을 세우실 것을 보여주는 계시라고 할 수가 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이것을 믿도록 하기 위한 계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요나서는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위해서 뿐이 아니라 언약이 있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이것은 이방인을 위해서 선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선포한 것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지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나는 이 사실을 확실히 잘 알지 못하고 있다가 니느웨 사건 이후에 깨달았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요나서가 우리에게는 주는 의미는 중요하다. 오늘날 이스라엘 참여한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깨닫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나 시대에 주셨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가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교회된 우리들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믿지 않는 자를 전도한다고 하기 전에 먼저 부름 받은 교회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모습이요 믿는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의 모습이 없다면 전도와 선교는 헛일 것이다. 자기가 믿음을 모르면서 전도한다는 것은 헛된 구호에 불과하면 인간의 열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는 문제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자기 교회도 사랑할 줄 모르고, 자기 이웃 자기 형제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전도할 수가 있겠는가? 전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십자가가 전달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들의 구호와 말만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주님을 바르게 믿으며 십자가에 동참한 자가 되어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다.



Ⅲ. 내용 분해

  1. 요나의 사명과 불순종, 그 형벌 1 : 1 - 17

  2. 요나의 기도와 구원 2 : 1 - 10

  3. 요나의 전도와 니느웨의 회개 3 : 1 - 10

  4. 요나의 불평과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 4 : 1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