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요나 강해

[스크랩] 제 31강/ 서른 한 번째 구원드라마(욘 1:1-4:11)

에반젤(복음) 2019. 9. 30. 14:02




  서른 한 번째 구원드라마(욘 1:1-4:11)


세계선교 사명에 대한 순종


I. 배경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서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 가드헤벨에서 출생했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엘리야가 살린 과부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요나는 어린 시절을 여로보암의 부친인 요아스 시대에 보내었고, 성인 시절은 여로보암 2세가 전 솔로몬의 영토를 회복한 부흥기에 살았다. 그가 활동했던 이러한 시기는 솔로몬 이후 다시 한 번 그 영광을 재현했던 여로보암 2세 때다.(왕하 14:25) 그는 여로보암 2세가 북쪽 원정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다른 선지자들은 민족의 앞날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예언을 했지만, 요나는 조국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과 같은 낙관적인 예언을 한 민족주의자였다. 이스라엘은 이때에 자신들이 번영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던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요나서는 다른 선지서와는 다른 면이 많다. 우선 다른 선지서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죄악을 지적하고, 그 죄로 인하여 나라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요나는 나라의 멸망이 아닌 (여로보암 2세를 통한) 영토 확장을 예언했고, 자기 나라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다른 나라(앗수르)의 심판을 예언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고 요구한 반면에, 요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을 거부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회개한 니느웨를 용서하시자 그 용서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II. 본문과 해석


  요나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세계 선교의 사명에 관한 부분으로 1:1-2:10이다. 둘은 이방인의 회개와 구원을 다루고 있는 3:1-10이다. 그리고 셋은 억압의 도시 니느웨와 피압박민 요나에 관한 이야기로 4:1-11이다.


1. 첫 번째 예언: 세계 선교의 사명(1:1-2:10)
  1) 사건의 개요
  하나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예언을 전하라는 명을 내리신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 한다. 그래서 그는 걸음을 돌려 욥바로 가서 다시스행 배를 타게 된다. 그 배가 바다를 지나가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태풍을 일으키신다. 결국 선원들은 이것이 요나 때문인 것을 알게 되고 요나를 바다에 집어 던진다. 이로써 바다는 잠잠해 진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사흘 주야를 그 뱃속에 있게 하신다. 이 때 요나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자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여 그를 육지로 토해 내게 하신다.
  2) 사건의 의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 저 큰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1:2) 그리고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다시스로 가려다가 바다에 빠지는 고통을 겪고 돌아 왔을 때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이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불의와 강포의 도성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 민족들도 그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택된 종에게 고난을 겪게 하시면서까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러 니느웨로 갈 것을 명하신다.
  이 선교 명령의 중요함은 요나서의 서두(1:2)와 후반부의 서두(3:2)에서 동일한 표현의 반복된 사용으로 강조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바로 이 선교 곧 니느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하여 불의와 강포를 버리고 구원받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 요나에게 명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2. 두 번째 예언: 이방인의 회개와 구원(3:1-10)
  1) 사건의 개요
  여호와께서 다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신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로 가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친다. 이에 니느웨 백성들은 여호와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회개하고 악행을 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신다.
  2) 사건의 의미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여 살아난 후 니느웨 사람들에게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에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이렇게 말한다.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shub)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niham)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ehub)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niham)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3:8-10)
  이 본문에서 이방민들의 회개의 필요성과 이에 따른 하나님의 구원 가능성을 shub 동사와 niham 동사를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나 3:8에 나오는 강포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hamas이다. 이 말은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의 즉 억압과 착취와 박해 등 인간에게 저질러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가리키는 데 쓰이는 말이다. 이 본문은 강포로부터의 회개가 구원의 조건임을 제시한다. 여기에서는 회개가 단순한 종교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의와 공평과 평화의 삶을 살지 않는 한 회개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재앙에서의 구원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을 못살게 굴던 악한 행실을 모두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하나님께서 그의 크신 사랑을 이방인들에게도 드러내실 것이라는 것이다.


3. 세 번째 예언: 억압의 도시 니느웨와 피압박민 요나(4:1-11)
  1) 사건의 개요
  요나는 니느웨의 구원을 보고 화가 나서 이런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기도한다. 그리고 요나는 이 도시가 장차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도시의 동편으로 가서 앉는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요나의 머리 위로 박 넝쿨(아주까리의 일종)이 자라게 하시고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면하게 해 주신다. 그러나 이튿날 하나님께서 벌레를 보내어 그 박 넝쿨을 쏠아 말라 죽게 하신다. 그리고 해가 뜰 때 뜨거운 열풍이 불어오게 하신다. 그래서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었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투덜거린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을 끝으로 요나의 편협한 마음을 질책하시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신다.
  2) 사건의 의미
  하나님의 사랑은 요나서 4:2-3의 요나의 기도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 가운데 더욱 구체화된다. 하나님께서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과 가축들이 살고 있는 니느웨를 어찌 구원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신다.(4:9-11)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포함한 모든 만민에 대한 그의 크신 사랑을 베풀고 계신 것이다.
  이같은 세계주의적 사상은 포로 후기에 팽배해진 편협한 민족주의에 대한 반기로 볼 수 있다. 비록 포로기 이래로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의 지배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나 그들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하는 것은 바른 신앙인의 삶이 아니라는 사상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III. 신학적 의미


1) 하나님의 주권
  요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민족에게 미치며, 또 어디에나 미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원수 날인 앗수르의 죄악까지도 살펴보셨으며, 심지어 물고기 뱃속까지 감찰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은 누구도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신다고 한 것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요나는 하나님의 주권에 거역하다가 회개할 때까지 고통을 받았다.


2)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심판을 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나를 보내셔서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이것을 안 요나는 이를 이행하지 않기 위하여 온갖 반항을 하며 도망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요나의 발걸음을 앗수르로 향하게 하셨다. 그리고 앗수르 거민들이 그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만 택한 백성이라는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그 일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항의를 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을 통하여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요나에게 가르쳐 주셨다.


3) 선교와 전도의 필요성
  요나는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앗수르는 당연히 멸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보내셔서 저 앗수르를 구원하고자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주님께서 이 마음을 담아 마 28:18-20에서 말씀하셨다. 모든 족속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준엄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렇게 선교와 전도는 우선적인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를 지키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