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아모스 강해

[스크랩] 암5 행위나 형식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이다 / 김형익목사

에반젤(복음) 2019. 9. 30. 10:12




5장 행위나 형식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이다.

1.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기대했던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말씀을 듣고 경외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바램이기도 했다. 하지만 4장에서 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선지자는 이제 이스라엘의 멸망을 애통해하는 애가를 지어 부른다(1~3). 그러면서 선지자는 다시 주를 찾으면 살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한다(4~17). 애가를 지어 부르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존재인 이스라엘의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그들은 살아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미 죽은 자와 다르지 않았다. 다시는 살아 일어날 수 없는 죽음에 던져 질 것을 선지자는 애가를 불러 예언한다.

2. 하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 애가를 부르는 것은 여전히 회개하고 돌아올 자들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살 길은 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4).” 그것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이다. 선지자는 벧엘, 길갈, 브엘세바에 세워진 신당에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다(5). 거기서 드려지는 모든 십일조와 제사는 하나님께 가는 길이 아니다(4:4~5). 그것들은 다 인간이 만든 인위적 종교의 모형들이다. 선지자는 회개하지 않는 결과가 얼마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임할지를 거듭 강조한다(8~13, 16~17). 그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운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심판을 막을 자는 없다. 산성에 숨어서 심판을 피해보려고 하는 자들에게도 심판은 임한다(8~9). 도무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길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고 살아가는 이 백성들의 죄를 다시 선지자는 고발한다(10~13). 이 죄가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백성들 가운데서 마치 애굽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장자를 칠 때에 그 땅을 가득 채웠던 울음이 그치지 않게 될 것이다(16~17).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17).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넘어가시지(pass over) 않으신다. 그들을 지나가실 것이다!

3. 선지자가 제시하는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뿐이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그들의 삶 속에서 행위로 증명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않는 삶이고,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고 정의를 세우는 삶이다(14~15).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전과 같이 그렇게 정의를 쓴 쑥으로 변하게 하고(정의를 시행하지 않으므로 원통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공의를 땅에 던지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7).

4.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근거없는 낙관적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이다(18~20). 그들이 적어도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입으로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에, 십일조와 제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런 낙관론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그들이 바라던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일어나 그들의 대적을 파하시는 날이다. 그러나 선지자가 전하는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 공의를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치시는 날, 이스라엘의 심판의 날이다. 형식적으로 드려지던 모든 제사는 다 헛된 일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멸시하고 미워하시는 일이다(21~2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정의를 물처럼,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일이다(24).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예를 들어 선지자는 다시 지적한다(25~26). 결국 이런 삶은 심판을 면할 수 없다.

5.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가 무엇인가? 그들의 신앙 생활은 지옥에 가지 않을 만큼의 최저선을 정해놓고 행하는 생활이었다. 선지자가 통렬하게 비난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이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청교도 목사 매튜 미드는 『유사 그리스도인』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식탁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위선자에 불과했습니다.” 문제는 순종이다. 단순한 행위나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이 이것이다.

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마음 없는 섬김, 믿음 없는 순종의 행위와 형식에 머물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마지막 심판의 때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저희로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전심으로 순종하는 삶 살게 하시고 그것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정의와 공의와 사랑으로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