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요엘 강해

[스크랩] 요엘 (개론)

에반젤(복음) 2019. 9. 26. 10:14




요엘(개론)




1. 저자
저자는 '브두엘의 아들 요엘'이다(1:1). 요엘이란 히브리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를 뜻한다. 미가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이 이름은 그의 부모에 의한 신앙 고백을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엘의 개인 경력은 예언서에 나타난 사실에 국한된다. 구약성경에는 열세명의 또 다른 인물들이 요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선지자 요엘은 이들 중의 어느 누구와도 동일시될 수 없다. 그의 메시지는 주로 예루살렘 및 유다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언급은 그가 남부 팔레스틴의 시민으로 아마도 예루살렘의 거주자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시온'은 2:1,15,32 및 3:16,17,21을, '시온의 자녀들'은 2:23을, '유다' 및 '예루살렘'은 2:32과 3:1,16,17,18,20을, 그리고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은 3:6,8,19를 보라). 그는 성전, 예배 및 제사장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입증해 보여준다(1:9,13,14,16 및 2:14,17을 참조하라). 그러나 제사장들에 대한 혹평은 그가 그러한 신분의 일원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2. 저작 시기
학자들은 본서의 저작 시기에 대하여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제시된 여러가지 연대들중에 두가지 주된 주장이 있는데, 그것들은 각각 (1)이른 연대로, 유다 왕 요아스의 통치시기인 주전830년경과 (2)포로후기로 바사 시대인주전 400년경이라는 주장이다. 이 가운데 늦은 연대를 지지해주는 논거들이 있다. 포로기 이전의 다른 예언서들과 같이 당대의 왕에 대한 언급이 서두에 없다(1:1). 또한 북왕국(사마리아)이 언급되어있지 않은데 그것으로 보아 북왕국이 멸망한지 오래 되었음이 분명하다. 요엘은 유다에 대해 이스라엘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는데, 포로기 이전의 어느 선지자들도 이렇게 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주전 722년(즉 사마리아 멸망) 이전에는 열 지파를 지칭할 때에만 사용되었다. 포로기 이후의 사회에서는 귀족이나 왕이 아닌 제사장이 지도자였다. 또한 3:1,2,17은 포로 생활이 이미 발생했었음을 암시한다. 포로기 이전을 저작 시기로 보는 주장 또한 강력하다. 제사장들이 부각되고 귀족과 왕이 빠진 것은 어린 왕 요아스를 대신하여 다스린 대제사장 여호야다 때문이다. 사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에서 기인되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저자는 본래 북왕국의 사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야곱의 영적 축복을 합법적으로 계승한 유다에 대하여 절절히 사용될 수 있었다. 포로귀환(3:1)은 단지 소유의 회복을 의미할 뿐이다(욥기 42:10을 참조하라). 요엘서 3장에는 포로기 이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없다. 요엘3:4-6은 오바댜서에 묘사된 것과 동일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다.

3. 저작권
요엘서는 전통적으로 한 사람의 작품인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주후 1870년경, 버네스(M.Vernes)가 2:28에서 3:21까지는 1:2에서 2:27까지를 기록한 저자가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여 동일한 저자가 이 두 부분을 모두 기록했음을 인정하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두 부분사이에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본서가 단일 문학작품이 아님을 입증하려는 하찮은 시도들이 계속 행해졌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고등비평적인 견해는 요엘이 본서의 책임있는 저자이나 수세기에 걸친 성서의 전래 과정을 통하여 후에 수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4. 문체
요엘서의 문체는 고어체인데 이는 아모스 및 미가와 유사하다. 이들의 문학적 유사성은 뚜렷하다. 다음을 비교하여 보라 ; 1)요엘 3:18과 아모스 9:13, 2) 요엘 1:4과 아모스 4:9, 3) 요엘 2:11과 스바냐 1:14,15, 4) 요엘 2:3과 에스겔36:35 및 이사야 51:3. 5 ) 요엘 2:11과 말라기 3:2, 6) 요엘 3:10과 이사야 2:4.

5. 저작동기
본서의 직접적인 동기는 메뚜기떼와 가뭄으로 인한 땅의 황폐였다. 비길데 없이 품위있고 강한 시적 운율로 선지자는 메뚜기떼의 침입을 군대와 같은 형태로 묘사하며, 그것들이 여호와의 날의 전조라고 생각한다. 그는 모든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땅은 회복되어 비옥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또한 하나님의 신이 언약을 내리시고, 백성은 대적들에게 승리할 것이며, 온 우주가 거룩해지고 평화롭게 되는 시대가 임할 것이다.

6. 교훈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는 것이 본서의 주된 교훈이다. 그 날은 여호와께서 원수들의 멸망과 형제들의 높이 들리움 가운데 나타나실 날이다. 이 날은 자연계에 특별한 현상의 나타남이 동반될 것이다(2:30,31). 여호와 앞에서의 인간의 마음 자세와 생활태도가 그 날에 대한 그의 반응을 결정할 것이다.

7. 신학적 의미
본서가 기독교 신하에 끼친 지대한 영향은 오순절에 시몬 베드로가 본서를 인용한 것에서 나타나며, 여호와의 날에 대한 본서의 약속은 성령 강림에 의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이것은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핵심 요소가 성령의 부으심이며 그것은 오순절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자들이 예언의 다중적(多重的) 또는 복합적 성취라고 일컫는 것을 예증한다. 요엘의 예언은 예수님의 오심과 성령의 부음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그 외의 예언들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때에 성취되어질 것이다. 신실하게 믿는 자들의 전체 공동체에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요엘은 여호와의 날의 중요한 표징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심판의 경고이며,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다. 메시야의 "오시는때"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계속될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절정에 이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