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마태복음 강해

복음서 주해 - 조나단 에드워즈

에반젤(복음) 2019. 8. 17. 10:30



복음서 주해 (조나단 에드워즈)



I. 마태복음


1. 2장 10절 - “저희가 별을 보고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리스도를 찾는 그 박사들은 그들이 그별을 보는 이 기쁨을 갖기 전에, 거친 바위들과 산들, 모래 구덩이와 메마름과 뱀들로 가득 차 있는 바로 아라비아 사막을 건너 여행해왔다. 이 별로 표현되어진 그 사람, 바로 '광명한 새벽별' (계 22:16, 2장28절과 비교해보라)이신 그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나는 그 기쁨을 갖기 전의 일반적인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2. 5장 1-11절 -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이러한 지복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메시아가 세울 왕국 또는 천국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받아들인 잘못된 개념들을 정정하기 위한 특별한 계획을 가지신 것으로 보인다.


3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날에 메시아에 의해 제공되어질 것이라고 가지고 있는 기대 - 다른 나라들보다 부요하며, 명예스럽고, 탁월하기에 그들의 교만과 탐욕을 확실히 만족시켜줄 것이라는 기대 -를, 다른 사람보다 자랑하고 드러내고 싶어하는 그들의 육신적인 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4절에서는 그리스도에서 유대인들이 가진 환락과 쾌락과 축제와 같은 대단히 세속적인 그들의 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5절에서는 메시아의 통치 아래에서 그들의 영광을 이끌어줄 군사적인 대담성, 전쟁의 영웅적인 업적, 자기들에게 위해를 가한 로마와 그 밖의 이방 나라들에 대한거친 복수심에 대한유대인들의 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또한 5절에서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날에 그들이 풍족히 만족을 누리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감각적인 욕정과 세속적 소유에 대한 그들의 현세적인 욕구도 염두에 두고 있다.

6절에서는 그들이 메시아의 날에 보기를 원하고 바라는 바 이방세계의 황폐함과 대량보복의 장면에 대한 그들의 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7절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약속에서 그리스도는 필시 이사야49장 10절, 54장 10절, 60장 10절, 그리고 다른 병행구에서처럼 메시아의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상기하신 것이다.

8절에서는 메시아가 임했을 때, 그들이 기대했던 바 일들인 세속적인 승리자들과 황궁과 강대하고 번성한 나라들이 전념하는 음란하고 사치스러운 쾌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9절에서는 메시아에 의해 설립되고 번성되어질 그의 나라에서 그들이 기대했던바, 황폐케 하는 전쟁과 유혈이 난무하는 전투를 염두에 두고 있다.

10절에서는 화려하고, 환락적이며, 부하고 장엄한 천국 또는 메시아의 왕국에 대한 여전한 그들의 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11절에서는 메시아,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그들의 왕 아래에서, 제사장들이나 귀족들과 같은 대단히 명예스러운 존재로 나아질 것이라는, 그래서 이방인들을 그들의 노예로 소유하며 이방의 왕들과 귀족들조차 자신들 앞에 엎드려 자신들의 발 아래 있는 먼지를 닦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지복들을 통해 천국에 대한 바른 개념을 유대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하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 가운데 계실 때 몇 번이고 천국에 대한 설명을 하셨기 때문이다.



3. 5장 18절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물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던 방식과 형태는 그가 기적을 행하실 때처럼,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랐다. 다른 선지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했으나, 그리스도는 자기 스스로가 진술하는 방식을 사용하셨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는 주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그들을 영감시키셨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말했고, 주님의 말을 그들은 전달했던 것이다.

4. 8장 21절 - “주여 나로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즉 바꾸어 말하면, 나의 늙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머물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는 아직 그리스도를 따를 뜻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늙었고 그의 돌봄을 필요로 하고 있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이유는 그에게 아버지가 무엇보다 소중한 위치에 있었고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 그는 아버지를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5. 10장 17절 -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이 구절이 어떤 의미로 나타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어떻게 앞에 나오는 구절과 접속사 but으로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 절에서 그가 말한 것이 여기서는 자기 자신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한 바 그들은 이리 가운데 보내는 양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은 사람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의미하는 바 이리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다. 이리가 아니다. “나는 너희가 사람을 주의해야 함을 명하는 것이다."


6. 12장 30절 -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이 구절은 “그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어쫓는다"는 바리새인들의 말을 꾸짖으시는 곳에서 하신 말씀인데, 그리스도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이유는 이들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의 눈에는 이제까지 사려깊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실상은 종교적인 문제에 관하여 대단히 독보적이었으며,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거나 열성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그들 스스로를 지혜롭고 위대한 사람들로 나타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통상적으로 '사려깊다' 고 그렇게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기적을 행하시며 등장하셨을 때, 그리하여 수많은 무리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을 때, 나아가 열성적인 그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나타났으며,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어가자 바리새인들은 더이상 사려깊은 그들의 혀를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영광과 명성이 흐려지고 사람들의 높임과 존경을 잃게 되어질 위험에 놓여 있다고 생각되자 바리새인들의 인내는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전에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있던 것들, 즉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향한 신랄한 적의를 빈번히 드러냈던 것이다. 그들이 드러낸 것처럼 진실로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7. 14장 24-27절 - "배가 이미 육지에서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우리가 여기에서 듣는 것은 사람들의 회심의 사건과 관련하여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에 관한 생생한 재현의 이야기이다. 그 동할 때까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밤이 되자 바람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그들을 거슬렀다. 그리고 그들은 밤이 되도록 노를 저었다. 안전한 항구를 찾기 위해 열심히 애를 줬다. 그러나 어떠한 소망도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때쯤 그들은 거의 상심한 채 상황을 포기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항구에 도달하기 위한 더 이상의 어떠한 노력도 완전히 헛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주님 새벽 가까이 되어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다가오셨다. 광포한 파도 위를 걸어오시며 그것을 억누르며 굴복시키며 물결을 그의 발아래 잠잠케 하시며 그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로써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도와주시러 나타나기 전의 죄의 정죄 아래 있는 죄인으로 보통 묘사된다. 그들은 먼저 그들의 위험함을 느꼈다. 그리고 대단한 노력과 정신적 괴로움을 경주하게 된다. 그리고 극단의 노력이 소멸되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항구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8. 26장 65절 -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레위기 21장 10절의 법과는 정반대 된다. 이것은 거의 레위계열의 제사직이 곧 폐지될 것, 그들 대제사장의 겉옷이 찢기워질 것, 그리고 그들의 공시적인 명예와 특권이 제거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9. 28장 9절 -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 특별한 일로 이 여자들의 마음이 녹아내렸을 그 다양한 감정들을 생각해보는 것은 기쁘고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여자들에게 특별히 의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최근에 그리스도께서 당했던 일, 잔인하고 치욕스러운 죽음의 사건을 그들의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에 비통함으로 가득 찼고, 슬픔으로 압도당했다(26장 55-56절을 보라). 그러나 그들은 그의 몸에 바르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준비하여 갔다. 그들은 매우 일찍이 무덤에 왔다. 그들의 마음은 향유를 바를 일로 대단히 번잡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발견할 수 없었다. 요한이 우리에게 알려준 바에 의하면 그들은 그의 죽음에 따른 슬픔에 더하여 그의 시신에 기름을 바르려던 그들의 계획이 무산됨에 따른 실망의 슬픔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여기에 서서 실망과 슬픔에 젖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두 명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과 살아계심을 말해주었다. 이것은 그들을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했다. 이것은 그들이 무덤에서 예수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그들의 실망에 대한 걱정을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기대하지도 못했고, 말로 표현 못할 기쁜 소식, 그리스도께서 정말 그들의 사랑하는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슬픔에 빠져 있던 그들의 동료 제자들에게 그 기쁨의 소식을 나누려 달려갈 때 그리스도자신이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입맞춰주셨다. 이 얼마나 새로운 경이로움인가!

이제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천사가 그들에게 전해준 것이 진실이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의 사랑하는 주님 자신을 보는 것이다. 얼마전에 그토록 잔인한 죽음을 목격했으며, 결코 다시 볼 것이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그 주님께서 사셔서 그들과 만나주시고, 달콤하고 쾌활한 방식으로 그들을 맞이하시니 그 일이 얼마나 그들의 기쁨을 증가시켰겠는가! 그들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며, 그들의 부활하신주님에게 사랑을 나타낼 것인가! 그들은 와서 그의 발을 붙잡고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기쁨을 표현했으며, 그를 향한 그들의 경외심을 입증하였다. 더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과 겸손과 경배의 방식으로 말이다.



II. 마가복음

1. 6장 8절 -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민수기 21:18을 보라


2. 6장 7절 - "열두 제자를 보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여러 가지 면에서 둘을 함께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만일 하나를 보냈더라면 그들의 증거는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 둘의 증거는 그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의미한다.

3. 10장 24-26절 -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그들이 놀랐던 이유는 두 가지 면에서였던 것 같다. (1) 이 말씀은 그들이 들어온 메시아왕국에 대한 설명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메시아왕국은 현세의 부와영광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들어 왔다. 따라서 그들은 부자들이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누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아해했다. 더구나 (2) 이 말씀은 그들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교육받아온 것들과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유대인들은 부자들에 대한 높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자들은 대개 그들의 율법학자들이거나 위대한 사람들이었고 부요하였다. 유대인들은 이들을 매우 존경하였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들을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입은 자들로 여겼다. 반면 유대인들은 가난할수록 천한부류의 사람으로 여기면서 그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러한 대조 속에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그들은 자기들 중 아무도 부자가 되어 출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유대인들의 가르침에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다. 즉 그 비유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녀이며 부자인한 사람은 지옥에 가고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지도 못한 반면, 가난한 이방인인 나사로는 저 멀리에서 오히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음을 말했다.



Ⅲ. 누가복음

1. 7장 37절 - “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이 여인은 아마도 전에 창녀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값비싼 향유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바르고, 또 그녀의 손님들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것은 그녀의 머리에 바르는 데 사용된 것으로 머리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장신구였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자기의 특별한 장신구인 머리를 그리스도의 발을 닦는 수건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그녀는 지금 참회를 하면서 자신의 소유물들을 예전의 방식으로 돈을 버는 데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귀한 향유가 들어 있는 값비싼 옥합을 깨어버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향유를 그리스도께 부은 것이다.

2. 7장 41,42절 -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그리스도는 자신이 빚 주는 자이신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시고 있다. 그는 죄지은 자들의 반대에 계신 분이다. 왜냐하면 그는 빚진 자들을 탕감해주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하더라”(48-49)그리고 그는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랑을 받는 분이시다(44-47).

3. 8장 1-3절 “‥복음을 전하실 새‥함께하였교…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자기들의 소유로 그리스도를 섬기며 그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함께했던 이 여인들의 무리는 요한계시록 14장4절에 언급된 어린양인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따라다니는 처녀들의 무리를 유사하게 연상시킨다.


4. 11장 24-26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이 구절들과 이 구절들의 앞에 있는 절들을 비교해보면 배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죄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바리새인들의 무리 중 몇 사람이 그리스도가 귀신들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리어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수군대기 전에 이것을 말씀하셨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이 장면에 대한 마태복음12장22절~25절의 말씀과 비교해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거기에는 한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갔음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것 등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악한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것은 이 바리새인들이 한때 하나님의 성령의 힘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이 잠깐 동안 그들에게서 나간 것 같았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을 일깨운 세례요한의 설교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밝아짐이 있은 후에 그들의 종교는 더욱 타락해간 것 같다(비록 그들은 여전히 나름대로 종교적 이었지만).그들은 영적인 자만감으로 꽉 차버렸고, 귀신들의 소굴이라는 정죄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렇듯 우리가 성경 속에서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설명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배교가 그 죄를 구성하는 요소들 증에 하나라는 사실 역시 분명한 것이다.


5. 14장 26절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못하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미워하고 그리스도와 바꿀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어진 것들로 바뀌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방식으로 한 공정한 재판관에게 뇌물을 미워(hate)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hate)자는 사느니라“(잠 15:27). 우리가 이 말씀과 같이 아버지 및 기타 등등을 미워하고 있는가? 이것은 그 재판관이 금이나, 은이나, 기타 좋은 것들을 그저 단순히 미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판결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들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아기서 8장 7절에 쓰여져 있다.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온 가산을 다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것은 단지 멸시를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찾고 갈망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표현인 것이다.


6. 16장 8절 - “주인이 이 옳지 많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라."

이 세상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자기 시대에 있어서 더욱 지혜롭다는 이 말의 뜻은 이 세상의 아들들이 그들의 세속적인 관심사들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그들의 세속적인 일들을 경영함에 더욱 지혜롭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 관련된 일들을 고안하고 그것들을 처리함에 있어서 더 지혜롭다.

반면 빛의 아들들은 그들의 특별한 관심사에 따른 특별한 일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지혜롭다. 즉 이 말은 이 세상의 아들은 세속적인 일 속에서 더 지혜롭다는 말이지 빛의 자녀들 중에서 똑같은 일 가운데서 더 지혜롭다는 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음에 나오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충고에 나타나 있다. 즉, 세상의 아들들이 세속적인 일들 속에서 지혜로운 것만큼 우리들도 우리의 특별한 일들(천국을 소유하는 일)속에서 지혜로와지라는 말씀이다.


7. 16장 9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즉 너희의 이 땅에 있는 재산과 물질을 가지고 하늘에 있는 친구들을 사귀라.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그리고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너희의 친구들에게, 마치 불의한 청지기가 자기에게 관리하라고 주어진 재산들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어 그들을 친구로 만들 듯이, 너희에게 맡겨진 이 땅의 재물들을 주어 그들을 너희의 친구로 삼으라. 너희의 이 땅의 재물들을 그들에게 나누어주라. 그것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은 곧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형제들 중에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나누어준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하늘의 천사들을 우리의 친구로 삼게 될 것이다. 이 친구들은 우리가 실패할 때에 우리를 받아줄 것이다.

이것은 불의한 재물이라고 불리워졌다. 왜냐하면 이것은 과거에 우리가, 말하자면, 훔치고 횡령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소유인 양, 마치 불의한 청지기가 그의 주인의 것을 착복하였듯이, 마구 사용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재물들을 얻기 위해 불의를 행하였다. 마치 청지기가 주인의 재물을 자신의 소유로 삼고 그것들을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기 위해 불의해졌던 것처럼 그리하였었다. 죄란 근본적으로 이 세상을 사랑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이 본래적으로 죄와 타락을 그 목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목적을 불의한 재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삶에 의해서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죽음에 의해서 우리는 이 모든 세상의 채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마치 청지기가 자기의 청지기 생활 동안 주인의 것들을 착복한 것 때문에 자기가 누리던 그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직위에서 쫓겨나듯이 말이다.

인간이 저지른 첫 번째 범죄는 우리의 최초의 부모들에게서 하나님이 위탁해주신 이 땅의 낙원을 빼앗아간 것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 부모들은 그 낙원을 잘 관리하고 돌보아야 할 청지기였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은 불의한 청지기들에 의해 사용되고, 그들에게 위탁된 만물들이 그들의 소유물이 되어 그들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마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얻은 모든 소유물들과 즐거움들을 잃어버리고서 그것으로 우리의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불의한 재물을 더 잘 사용하는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은 우리가 청지기직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날 때 우리를 영접해줄 것이다.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라는 표현을 주목하라. 이 표현은 영혼들의 상태에 구별점이 있다는 분명한 설명인 것이다.


8. 16장 12절 -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남의 것이라는 표현은 이 세상의 것들을 나타내고 있다. 앞절의 표현에 의하면 이것은 '불의한 재물' 이라는 표현과 마찬가지이다. 즉, '우리의 것' 이라는 표현은 천국의 축복과 즐거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절에서 이것은 '참된 재물'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우리들의 소유가 아니다. 즉 그것들은 단지 우리에게 잠시 동안 맡겨진 것들일 뿐이다. 그리고 곧 우리에게서 다시 가져갈 것들일 뿐이다. 앞에 나온 이러한 사실들을 반영하고 있는 비유에 의하면 우리는 단지 그것들의 청지기일 뿐이다.

이렇듯 지상의 가나안 땅에서 얻은 이스라엘 자녀들의 소유물들은 그들 자신의 것들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그들의 영주이신 하나님의 소작인으로서, 그리고 그의 땅에 잠시 머물러 사는 나그네로서 그의 것을 개선시킨 것임을 의미할 뿐이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이렇듯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는 다만 청지기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 고유의 유업들로 하늘의 축복들을 받는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행복이 있다.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다. 결코 우리들에게서 가져가지 아니할 것이요,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위에선 딘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나그네일 뿐이지만 하늘에선 하나님의 가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만약 너희가 남의 것에 대해서 충성되지 않는다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것을 주겠느냐? 만약 너희가 단지 잠시 동안돌보라고 맡겨둔 것들을 소유하기에 적합치 못하다면 -너희에게서 그것들은 빨리 다시 가져갈 것인데 -영원히 주어질 것들에 대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적합한 자들이 될 수 있겠는가? 즉 너희는 이 땅에서 잠시 빌려준 것이며, 잠시 동안너희 손에 맡겨둔 것으로써 너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는 너희의영원한 유업들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너희가 만약 단지 몇 일 동안 맡겨진 것들에도 충성치 못한다면 영원한 유업을 위해서는 얼마나 충성된 자들일 수 있겠는가?


9. 19장 12절 -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이 비유에서 나타내는 표현은 유대인들에게 더욱 친숙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의 최근의 왕자들이었던 헤롯, 아켈라우스, 등등이 실제로 그랬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왕국의 왕위를 받기 위해 잠시 동안 유대땅을 떠나 먼 나라- 로마 -로 가서 로마 황제에게 유대에 대한 왕권을 임명받아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왕위를 계승하고 그 왕권을 시행하였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먼 나라로, 로마보다도 훨씬 위대한 도시로 가셨다. 그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에 대한 왕권을 로마제국의 황제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하신 분으로부터 수여 받으셨다.


10. 19장 17절 -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이제 그 귀인이 온 나라에 대한 왕적 권세를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에 그는 도시들의 통치 체제를 재배치할 권세를 가졌다.

11. 21장 37절 -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이 구절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보통 넓은 평야에서 습관적으로 묵으셨다는 사실이 증거된다(그는 예루살렘에서 잠자리를 갖지 아니하셨다).즉, 거기에서는 그를 초대하는 친구도 없었고, 그는 여관에 투숙할 돈도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 따라서 그는 감람산에 있는 어떤 장소로 가서 묵으시는 것이 습관이었다. 이 장소는 그와 그의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배신한 유다를 발견한곳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다음 장 39절에서 이것이 언급되어 있다. 즉 그 밤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리고 또한 이러한 것이 요한복음 18장 1-2절에도 있다(요7:33과 함께 요 8장 또한 보라). 이렇듯, 우리는 아가서 5장 2절에서 비유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배울 수 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지내던 동안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그는 추위와 비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묵으시면서 자주 크게 고생하시곤 하였다.



IV. 요한복음

1. 1장 9절 -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이 세상 가운데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비취어진 어떤 사람이 있었다. 이것은 현재나 미래가 아닌 언제나 과거의 일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비춤을 받았었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비춤을 입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빛은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아무리 민족이 다를지라도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까지 비추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세상에 오셨을 때, 참빛은 모두를 향해 비취는 빛이 되셨다. 모세는 그가 참빛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직 유대민족만을 비취었다. 매우 평행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골로새서 1장 23절을 보라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2. 1장 18절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구약 아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과 실재를 사물의 형상으로 주셨다. 이러한 실례 중의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가 구약 아래서 꽤 자주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의 성육신도 일종의 이러한 형상과 증거이다. 그가 실제적으로 그것들을 성취하시기 전에 영적인 세계 속에서 그의 교회에게 그의 영광스러운 것들을 형상과 증거로 주셔서 체험케 하시는 것이 지금까지도 여전한 하나님의 방법이시다. 즉 그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내기를 기배하셨다. 그의 즐거움은 사람의 아들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기뻐하였고, 그래서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몸을 취하기로 하셨다. 즉 그는 인간의 형상을 기뻐하셨고, 그래서 그의 장래의 성육신의 형상으로 취하시었다.


3. 4장 36-37절 -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심는 자는 그리스도이시다. 복음의 사역자들은 단지 그리스도가 심은 것들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사실 들판을 갈고,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는 것을 다 그리스도께서 하신다. 그분은 또한 심기어진 씨앗에 물도 주신다. 말씀과 규례와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값으로 사서 주신 것들이다.

이렇듯 사역자들은 단지 추수기에 열매를 추수하기 위해 보내진 일꾼들을 의미한다. 영혼들을 불러모으는 일이다. 그들의 구원의 기초는 이미 그리스도에 의해서 놓여졌다. 씨를 심으신 그분은 그 밭의 소유자이자 추수의 주인이시다. 사역자들은 오직 그분에 의해 심기어진 씨앗들로부터 나온 그 밭의 열매들의 추수에 보내어진 일꾼이요 종일 뿐이다. 심은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할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와 파송된 칠십인이 돌아와서 그들의 성공을 그분께 이야기하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눅10:17, 18, 21, 37).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 관한 분명한 진술이다. 그리스도는 자기가 이 땅에 있는 동안 씨앗을 심으시고 미래 그의 교회의 모든 기초를 놓으셨다. 반면 사도들과 다른 사역자들은 그분의 승천 후에 추수장에서 열매를 모아들였다.


4. 14장 13절 -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는 특히 앞선 절에서 언급했던 일들과 기적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내가 그것을 주겠다"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하겠다”라고 되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