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5주 주일설교. 시몬 베드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요 13장 36~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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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까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만난 인물 4명의 인물을 살펴 봤습니다.
4명의 면면을 보면, 예수님을 자진해서 찾아갔지만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을 듣고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가 있었고, 예수님이 찾아가셔서 만나주시고 내가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직접 들려주셨던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강제로 끌려와 예수님 앞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엎드려만 있던 음행하다 잡혀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 주셨지만 정작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가 두 번째 만남에서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한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은 이토록 다양하고 사연도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던 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모두에게 내가 곧 그리스도라는 신분을 밝히 드러내셨다는 겁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 이시고,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고백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에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메시아, 구원자) 예수를 확실하게 깨닫고, 믿고, 고백하게 이끌어 줍니다. 제가 이번 사순절에 요한복음을 정독 하시면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성경속의 인물이 되어 보시라고 했죠.
바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서 직접 듣고, 그 분 앞에서 신앙고백을 드려 보시라는 의도였습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전심으로 기도하고 진심으로 참회 하시면서 성경의 인물들 같은 만남의 은혜, 고백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13장에는 베드로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먼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베드로의 발을 가장 먼저 씻겨 주십니다. 발을 씻겨 주었더니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13:6)라고 어쩔줄 몰라 하는가 하다가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13:9)라고 말합니다.
이걸 천진난만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감정기복이 종잡을 수 없다고 해야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베드로를 항상 앞세우셨던 것은(바다위를 걸으시고 바다에 빠진 베드로를 건져 주시는 사건,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신 사건,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 하신 사건 등) 분명해 보입니다.
13장의 다른 장면에서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13:21)고 말씀 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식사하고 있던(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 13:23) 요한에게 말하기를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물어보라)”(13:24)고 재빠르게 재촉했습니다.
이렇듯 베드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마음이 급해져서 곧바로 대응했고, 예수님이 무엇을 물어보면 대답도 거침없이 잘했습니다. 궁금한 것은 못참으며 불의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장단점이 분명한 성격의 소유자가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려는 마음을 품은 가룟 유다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떠나자 예수님은 남은 제자들에게, “내가 일찍이 유대인들에 말햇던 것과 같이 이제 나는 떠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한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내 제자인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 이후에 오늘 본문으로 연결 됩니다. 36절을 읽어 드립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아멘.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라고 시작하면서 베드로의 이름을 굳이 시몬 베드로라고 부릅니다. ‘베드로(페트로스-바위)’ 라는 이름은 헬라어 이름이고 히브리식 본명은 시몬(시므온-들으심)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은 168번이 언급되었는데, 시몬 베드로라고 불려진 것은 총 21번입니다. 시몬 베드로, 유대식과 헬라식 이름을 함께 붙여서 거명 될 때에는 베드로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거나, 의미 심장한 말들이 고백 되어졌을 때입니다. 먼저 시몬 베드로가 고백한 말들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 21:17) 이런 말들을 할 때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다음은 시몬 베드로가 겪은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말고라는 대제사장 종의 귀를 베어버릴 때(요 18:10), 대 제사장 집 뜰에서 불을 쬐다가 예수님을 부인 할 때(요 18:25), 예수님이 부활 하신 무덤에 가서 세마포만 남겨진 것을 목격하였을 때(요 20:6),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베드로가 물고기 백쉰세(153) 마리를 잡았을 때(요 21:11)에도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시몬 베드로 이름이 나온 대화와 사건 내용 중에서 단 한 번을 제외한 모든 장면이 요한 복음에서 나옵니다. 요한은 작정한 듯이 베드로의 이름을 시몬 베드로라고 기록하면서, 그가 유대인 시몬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헬라식 베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열렬한 복음주의 자로 변해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비록 예수님의 수제자격인 역할을 하였지만, 그는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순종적이고, 가장 열성적인 증인의 삶을 살았던 제자중의 제자 였습니다. 요한 복음을 정독 하시면서 베드로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 보면 우리의 신앙 성장에 큰 도움과 유익을 주는 깨알 같은 감동을 경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나는 떠나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을 너희는 알지 못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시몬 베드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이 말이 라틴어로 “쿠오(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라는 유명한 말입니다.
1951년 머빈 르로이라는 영화 감독이 “쿼바디스”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남자 배우인 ‘로버트 테일러’와 여자 배우 ‘데보라 카’ 주연의 영화인데, 이 이야기는 외경인 베드로 행전 35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했습니다.
로마 집정관이었던 아그립바에게는 첩이 네 명이나 있었습니다. 이 첩들이 어느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날 설교 제목이 “순결”이었는데 그 설교를 듣고 이 첩들이 그날부터 아그립바와의 잠자리를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집정관인 알비누스의 아내도 베드로의 ‘순결’ 설교를 듣고 잠자리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집정관 알비누스와 아그립바가 베드로를 증오하고 죽이기로 공모하였는데 그 비밀이 사전에 누설되어 이 첩들과 믿음의 형제들이 베드로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종용해서 베드로는 마침내 위협을 느껴 변장을 하고 조용히 로마를 떠났습니다.
베드로가 막 로마성을 벗어났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로마로 들어오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분이 예수님인 것을 발견하고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핍박과 박해를 핑계삼아 죽음을 피해서 달아나니 내가 십자가에 다시 달리려고 로마로 가는 중이다”라고 대답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은 베드로는 그 길로 다시 로마로 들어가서 끝내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죽기 위해 십자가 앞에 섰을 때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오 십자가의 이름, 숨겨진 신비여 십자가의 이름으로 표현된 형언할 수 없는 자비여, 지상의 경력을 끝내는 자리에서 나는 당신을 붙잡습니다, 사형집행자들이여 나의 머리를 아래로 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시오” 이 말을 마친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찬미하며 기쁨으로 죽어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순교정신에 감동을 받은 후세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녀 이름을 ‘베드로’ 혹은 ‘피터’라고 지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 이름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베드로의 이름이 시몬 베드로에서 베드로라는 이름만 남은 것은 그가 순교를 한 이후 깊게 각인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은 단순한 두 개의 이름을 붙여서 부른 것에 그치지 않고 옛사람과 새 사람, / 듣기만 하는 자와 보고 듣고 믿은 것을 증언하는 자, /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기를 거부하는 자와 죽기까지 순종하는 순교자의 차이를 보여 줍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라가는 제자로 살아가면서 죽도록 충성하고, 정녕 죽음과 맞부닥친다 하여도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이름은 예수님 앞에서 고결하고 존귀하게 불려질 것입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시몬 베드로의 물음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세 번이나 죽음을 예고하셨는데도 아직도 예수님이 죽음의 길을 가셔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베드로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이러한 무지한 장면은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지를 단 번에 깨트리는 결정적 사건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40일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제자들은 무지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복음이 세상에 충만하게 펼쳐 나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믿음의 증언자들로 변화 되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정, 열심, 궁금증, 질문, 가까이에서 계속해서 주고 받는 질문과 대답 등을 멈추지 않은 것은 베드로만이 가지는 최고의 장점이었습니다.
“지금은 따라 올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베드로가 나중에 순교할 것을 예고 하신 대로 베드로는 죽음의 그 길로 거침 없이 나아갔습니다. 이런 강력한 믿음과 순종의 결과는 현재 시점에서처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물음들이 하나씩 모여서 굳건한 기반이 된 것입니다.
당장은 어리석고 무지하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행동인 것 같지만 예수님 앞에서 자꾸 무엇인가 알려달라고 묻고 들으려는 자세는 결코 무지함이 아니며 거대한 순종으로 나아가려고 조금씩 진도를 높여가는 필수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무지함은 도무지 물으려고도 하지 않는 거부의 마음과 알려고 하지 않는 철저한 무관심에사 나옵니다.
베드로와 비슷한 경우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이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자신들이 예수님 우측과 좌측에 앉으면 안 되겠냐고 다른 동료 제자들 앞에서 선수를 쳤습니다. 얄미운 행동이고 전체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이간질을 벌이는 나쁜 행위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자신도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한 말대로 12제자 중에 가장 먼저 순교를 했습니다. 그가 높은 자리에 앉혀 달라고 질문할 때 자신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할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막상 그 잔이 죽음의 잔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이 한 말을 얼른 취소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죽음의 길을 결연히 걸어 갔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무엇인가 하려고 계속 묻고, 듣고, 알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든 깜짝 놀랄일이 일어나고야 맙니다. 그 일이 어떤 순종과 충성과 희생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그가 그러한 일을 감당할 능력이 택도 없이 부족하다고 하여도 결국에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 그를 통하여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며 자신과 함께 동행하기를 요청하고 자신이 말씀 하시는 일을 거침 없이 수행 하겠다고 앞장서는 사람에게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가 그 당시에는 무모하고 무지하고 이간질 하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앞서 나가려고 하는 마음과 열정을 오직 선한 것으로 바꾸어서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결말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면 무슨 일이든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능히 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나를 따라 올수 없다는 말씀에 열정이 너무나도 지나친 베드로의 과욕이 나옵니다 37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아멘.
“지금은 나와 함께 죽지는 않겠으나 나중에는 너도 죽게 될 거야”라고 하셨는데 베드로는 “왜 나중에 해요? 지금 당장 따라 갈래요?(지금 당장 죽을래요)” 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진짜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을 염두에 둔 말이 오고 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예수님 앞에서 말한 것은 그 말이 무거웠던지 가벼웠던지 진심이든지 사심이든지 결국에는 말대로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대충 말하거나 허언으로 말하였어도 말한 대로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귀에 들리신대로 반드시 행하시는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한다고 한 것은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말로 한 것도 허투루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가볍게 여길지라도 예수님은 그 말씀을 기억 하시고, 기대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제가 기도에 대해서 말씀 드리면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대 하신다는 말씀 기억 하시죠. 신중하게 기도 하시고, 기도하시며 하신 말씀은 무르거나 잊어버리지 마시고 꼭 실천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 가장 영광이 되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옆에 있다면 입을 막고 말리고 싶을정도로 너무나 거침 없이 말한 베드로는 열정과 열심만으로 당장 목숨이라도 내 놓을것 같은 의기양양함이 있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런 호기로운 그 모습에 반할 수 있지만 우리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에 아직은 그러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약함을 다 아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절 38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아멘.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가장 큰 열심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가장 단호한 말씀으로 일거에 잠재우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에 베드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여서 얼굴이 벌게 졌을 겁니다. 그토록 이 말씀은 베드로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을 정도로 직선적이고 매정함이 묻어납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아마도 베드로는 이 말씀대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선택을 주저 없이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 입술에서 말한 대로 이루어가시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이루시는 때와 장소와 상황, 방법은 오직 주님 만이 결정하십니다.
오늘은 예수님과 만난 인물 베드로의 면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먼저 그는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두 개의 이름이 주는 의미가 우리에게는 죄인과 의인, 옛 사람과 새 사람, 믿음 없음과 절대 순종 등으로 구별 되어 짐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의 이름이 예수님의 이름과 결합 되어서 의인의 이름 하나만 남게 되도록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순절을 보내십시오.
다음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의 행방을 묻는자가 되십시오. 주님이 가시는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은 겸손과 순종의 길입니다. 당장은 우리가 무지하고 무모함이 있다고 하여도 열정, 열심, 관심을 증가시켜 예수님에게로 자꾸 나아가고 묻기를 멈추지 않으면 됩니다. 열심이 특심이 되어 쌓여 갈 수 있도록 전심으로 기도하고 진심으로 참회하며 인내와 절제의 사순절을 보내십시오.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 두 말씀을 묵상 하시면서, 나의 현재 믿음이 정말 나를 부인하고 내기 지어야 할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의 길을 걸어갈 진심의 마음이 준비되었는지 점검하시는 사순절을 보내십시오.
베드로가 현재 시점에서는 죽을 준비, 죽을 순종의 믿음이 없음에도 당장 목숨을 버리겠다는 말을 하였지만,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에 가로막혔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가 말한 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주님은 반드시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루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과거에 말한 것이 있는데 실행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나는 주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세 번 부인 할 것같이 무모한 말들을 한 것이 내 삶에서 믿음으로 역사하도록 순종할 준비가 되어 가는지를 잘 점검 하십시오.
신앙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는 두 사람과의 전적인 일대일의 관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나도 예수님과 일대일로 무언가를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이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을 해 나가려는 것인지 그림이 그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열정도 없고 당장 주를 위하여 죽을 수 있다는 말은 두려워서 입 밖에도 내지 못하는 연약한 마음이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영광 받으실 순간에 순종으로 결말을 이루도록 여러분 자신을 준비시켜 가십시오.
지금 당장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어떤 시기, 어떤 상황, 어떤 방법으로든지 내가 입으로 말했던 그 일들을 반드시 이루게 하시도록 인도해 주고 계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나도 주를 위하여 지금 당장 000을 하겠습니다” 고백하는 날이 올 것이고, 그 고백이 이루어지는 고결한 순간이 오게 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전심으로 기도하고 진심으로 참회 하며 열정과 열심을 늦추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이 걸어가신 겸손과 순종을 본 받아 이웃과 세상에 부활 영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강력하게 증언하며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인생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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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베드로의 질문이 우리의 질문이 되게 하셔서, 주님이 보여주신 순종의 길을 따라가도록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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