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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제극복과 지혜2*이동원목사

에반젤(복음) 2024. 2. 5. 10:13

 

 

 

 

문제극복과 지혜2

고린도전서 4장 / 이동원 목사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2.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판단을 받거나 사람의 판단으로 판단을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니라. 참으로 나는 내 자신을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나는 판단 받을 아무것도 스스로 알지 못하노라. 그러나 이로써 내가 의롭게 되지는 아니하였나니 오직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시니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오실 때까지 때가 이르기 전에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분께서 어둠의 감추어진 일들을 빛으로 가져가 드러내시고 마음의 의도들을 드러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리라.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들을 비유로 나 자신과 아볼로에게로 옮겨 적용시켰나니 이것은 너희가 기록된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을 우리 안에서 배우게 함으로 너희 중의 아무도 한 사람 편을 들고 다른 사람을 반대하며 우쭐대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느냐?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이제 네가 그것을 받았을진대 어찌하여 그것을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는 이제 배부르고 이제 부유하며 우리 없이 왕처럼 군림하였도다. 너희가 군림하는 것을 내가 [하나님]께 바라노니 이것은 우리도 너희와 함께 군림하려 함이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께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정하신 자같이 마지막에 두셨나니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며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멸시를 받도다. 11. 바로 현재 이 시각까지도 우리는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일정한 거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우리 손으로 일하며 욕을 먹으나 축복하고 핍박을 받으나 그것을 참으며 13. 비방을 당하나 간절히 권면하노니 우리는 이 날까지 세상의 오물같이 되고 모든 것의 찌꺼기가 되었노라. 14. 나는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들을 쓰지 아니하며 다만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를 타이르려 하노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다 해도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느니라.

 

16. 그러므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 17. 이런 까닭에 내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주] 안에서 신실한 자인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나니 내가 모든 곳에서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가 너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길들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지금 어떤 자들은 내가 너희에게 가지 아니할 줄로 생각하고 우쭐대고 있도다. 19. 그러나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곧 너희에게 가서 우쭐대는 자들의 말이 아니라 권능을 알아보리니 20. [하나님]의 왕국은 말에 있지 아니하고 권능에 있느니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가랴, 아니면 사랑과 온유의 영으로 가랴?“(고전4:1-21 KJV)

 

 오늘 우리가 고린도전서 4장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입니다. 우린 아직도 고린도교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문제 넘버원, 첫 번째 문제를 아직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문제들 앞에 직면해 있었으나 이 문제를 극복하고 문제를 넘어서서 마침내 성숙 할 수 있었던 그런 교회였습니다. 이 고린도 교회가 부딪혀 있었던 첫 번째 문제는 소위 분열의 문제, 혹은 분쟁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몇 가지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이 됩니다. 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나뉘어졌느냐?

 

 첫째는 그 사람에 대한 소속, 지도자에 대한 소속, 누구를 따라가야 되느냐? 바울을 따라가느냐? 베드로를 따라가느냐? 이런 사람에 대한 소위 소속감의 문제였고 둘째는 사람의 지혜를 높이는 그런 경향들, 어떤 지도자가 더 똑똑하냐? 누가 더 많이 아느냐? 사람의 지혜를 높이려고 하는 경향,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사람의 역할의 몰이해 특별히 지도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누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냐? 안 중요하냐? 이런 문제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 결국 누가 더 나은 지도자냐 이 사람에 대한 판단, 이런 판단의 경향이 고린도 교회 안에 다양한 그룹들을 그룹 핑을 분파의식을 촉진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4장에서 우리는 이 사람들에 대한 판단의 경향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결국 여기서 우리가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은 도대체 누구냐? 바울은 이 고린도전서 4장에서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중요한 세 가지 이미지를 소개합니다. 결국 영적 지도자 가 누구냐는 것은 이 세 가지 이미지를 온전히 우리가 종합할 때 영적 지도자가 누구냐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없지요. 옛날에만 있어요.

 

 그런 일은, 네, 저는 반드시 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영적 지도자들이 이런 고난을 꼭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어떤 고난에 대한 각오와 결단은 모든 영적 지도자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 주님보다 나을 것이 없잖아요. 우리 주님도 고난의 길을 가셨는데, 그러나 고난으로 끝난 것은 아니요. 고난 건너편에 영광이 그 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영광에 앞서서 그 분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었습니다. 십자가는 고난, 그리고 그 후에 예비 된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영광은 원하지만 뭘 원하지 않아요? 고난은 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우리의 궁극적 지도자가 되시는 그 분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면 복음을 위해서 수호하기를 원하는 모든 종류의 영적 지도자들은 어떤 고난을 반드시 각오해야 됩니다. 피할 수 없이 우리가 각오해야 되는 어떤 고난이 있어요. 이게 그냥 뭐 구경거리 정도가 아니라 바울이 어떻게 느꼈냐면, 더 아주 극단적인 언어를 여기 13절에서 쓰고 있는데요.

 

12-13절 읽겠습니다. ➤“12. 또 수고하여 우리 손으로 일하며 욕을 먹으나 축복하고 핍박을 받으나 그것을 참으며 13. 비방을 당하나 간절히 권면하노니 우리는 이 날까지 세상의 오물같이 되고 모든 것의 찌꺼기가 되었노라.”

 

 두 가지 표현을 썼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인들이 제일 싫어했던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해요. 하나는 뭐냐면 먼지이고 또 하나는 때, 목욕탕에 가서 밀리는 때, 그런데 그 표현을 썼어요. 때로는 세상의 더러운 것 취급을 받고 먼지 취급을 받고,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 그런 취급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비방을 당한즉, 그는 비방을 당하면서도 권면 하고, 네, 12절에는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면서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견디고 참으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 이예요. 저는 어떤 의미에서 지금도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다보면 이런 고난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빌리 선데이 라는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가 있었는데요. 이 전도자가 사역 초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이 분이 아주 말을 잘하는 그런 전도자였어요. 그러나 좀 야성적인 스타일에 전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틀이 잡히지 않은 그런 설교자로서, 젊은 목회자로서, 어떤 개척교회 비슷한 어떤 작은 교회에서 일을 할 때였습니다. 초기 경험이었는데, 한 번은 아주 열렬하게 자기 깐에 침을 튀기면서 열심히 설교를 끝냈는데 저 뒤에 나와서 이제 교인들과 인사를 건네는데 어떤 교인들은 와서 "아! 목사님 그런 열렬하고 뜨거운 설교를 처음 들었습니다." 아 칭찬을 맡아 하는 거예요. 그 옆에 이제 아주 나이 많은 목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 "기도해!" 그랬어요. "뭐라고 기도할까요?" "교만하지 말게 하소서" 그래서 교만하지 말게 하소서!

 

 그 다음에 어떤 교인이 오더니 "목사님! 무슨 설교를 그렇게 무례하게 하십니까? 시험 들게 하십니까?" 그래서 옆에 있는 목사님을 쳐다보니까 목사님이 또 "기도해!" 그러더래요, 그래서 "뭐라고 기도할까요?" 그러니까 " 낙심하지 말게 하소서!" 네, 사역을 하다보면 칭찬을 받을 때고 있고, 격려를 받을 때도 있고, 낙심할 때도 있고, 이 목사만이 아니요, 여러 이 목자들도 마찬 가지예요, 영적 지도자들의 반열에 서서 사역을 하다보면 이런 일들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또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나고 언젠가 제가 얘기했지만 제가 성경인물 중에서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인물은 요나입니다.

 

  요나. 그 이유가 왜 그래요? 요나 같아서 그래요. 나하고 비슷해요. 어떤 때는 막 도망가고 싶어요. 내가 왜 목사를 해 가지고 목사 안 하면 그럴 필요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여러분도 그런 때가 있을 거요. 목장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섬기다 보면, 이따금씩 가슴 아픈 일도 경험 하다보면 내가 이거 괜히 목자를 해 가지고 고생한다. 생각될 때가 있어요, 도망가고 싶은 때가 있고, 그러나 우리 주님이 고난을 받으셨다면, 내가 그의 제자라면 우리가 나중에 얻을 그 놀라운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면 이만한 고통과 고난쯤이야 견딜 수가 있어야 한다. 고통을 통과할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 저는 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 일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 세기의 아주 유대나라의 이스라엘에 이단자가 한 사람 일어났습니다. 기적을 행하고, 말씀도 잘하고, 자기를 다시 온 메시야라고 부르짖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다녔어요. 그러나 그의 삶이 너무 호사스럽고 왕과 비슷한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한번은 어떤 젊은 그리스도인 이 그에게 도전을 했어요. 도전을 "나는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왜 그대는 못 믿는가?" 그랬더니 이 젊은 청년이 이단자에게 유명한 말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선생이여! 당신의 손을 나에게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손에 만약 못 자국이 있다면 당신이 나의 구세주라고 나도 고백을 할 것이요"

 

 우리는 우리의 손에 있는 못 자국 그것을 오히려 훈장처럼 생각하고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받는 고난, 저는 이것이 모든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반드시 가져야 할 삶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는데, 나는 구경거리처럼 취급을 당한다, 죽이기로 작정된 사람처럼, 사형수처럼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축복하겠다, 나는 참겠다, 견디겠다. 복음을 위해서, 이것이 바로,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종들이고 영적인 사역자들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두 가지 이미지를 봤어요.

 

 첫째는 노예, 두 번째는 검투사, 혹은 사형수, 마지막 이미지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의 사이에 있어서 스스로를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14-15절에 나와 있어요. 14절15절을 읽겠습니다. ➤“14. 나는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들을 쓰지 아니하며 다만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를 타이르려 하노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다 해도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느니라.”

 

 여기에 15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다하여도, 무슨 말이냐? 하면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많은 스승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죠,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나에게 깨우침을 주고 도움을 주는 많은 스승들이, 선생님들이 우리 주변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너희들과 나와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냐?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고, 처음으로 교회를 세웠고, 그래서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 관계는 그냥 영향을 미치는 선생님들과의 관계 정도가 아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일종의 내가 영적인 아비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아비로서 바울이 그들에게 존경받고 싶어서 바울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책망 할 수가 있다는 것이요. 그 책망을 받겠느냐? 그 책망을 받겠느냐? 고린도 교인들은 많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문제를 넘어서서 성숙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주어진 충고나, 이 따끔한 교훈을 그들이 제대로 수용 할 수가 있느냐?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아비라면 내 책망을 받아 달라 이 말입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요.

 

 마지막 절 한번 보세요. 20-21절 같이 읽겠습니다. ➤“20. [하나님]의 왕국은 말에 있지 아니하고 권능에 있느니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가랴, 아니면 사랑과 온유의 영으로 가랴?”

 

왜 이런 말을 합니까?

 

 고린도 교인들은 말만 그냥 많이 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능력에 있다, 여기서 능력이란 의미는 삶이라는 의미예요. 너희들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정말 하나님의 능력이 너희들의 삶을 바꾼 흔적을 가지고 인생을 사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말만 많단 말 이예요. 말만 많다고, 이따금씩 진정한 성숙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고 판단만 하고, 비판만 하고, 이런 분위기를 유도하는 교인들이 종종 있어요, 종종 있어요.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은 바울은 그것이 교만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교만함,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18절에서 그것을 지적합니다. 18-20절을 읽겠습니다. ➤“18. 지금 어떤 자들은 내가 너희에게 가지 아니할 줄로 생각하고 우쭐대고 있도다. 19. 그러나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곧 너희에게 가서 우쭐대는 자들의 말이 아니라 권능을 알아보리니 20. [하나님]의 왕국은 말에 있지 아니하고 권능에 있느니라.”

 

 교만한 너희들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다. 너희들이 얼마나 말 잘 하느냐 올바른 소리하는 것처럼 너희들이 말 잘 하냐, 그걸 보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의 능력을 알아보겠다. 너희들의 삶의 현장을 보여 달라 이 말이에요. 정말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제대로 전도하고 있는지 뭐 전도도 안 하고 영혼도 사랑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면서 말만 하고 파벌만 만들고 말이지 고린도 교회 안에 이런 교인들이 있었단 말입니다. 바울이 가슴 아파 하는 거예요. 너희들이 나를 아버지로 안다면 내가 복음을 전해서 너희들이 예수님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내가 아버지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더냐? 내 말을 들어다오 이 말입니다.

 

  내 말을 들어다오. 한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어버이 하고 좋은 관계, 특별히 성장과정에 있어서 부모의 충고와 교훈을 제대로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싫은 소리여도 부모가 하는 잔소리, 부모의 교훈을 좀 받고 고치고 이게 성숙이란 말 이예요. 바울이 그런 뜻에서 내가 아비와 같은 심정에서 말한다. 듣겠느냐 이 말이요. 교만하지 말고 말만 너무하지 말고, 정말 하나님의 능력이 지배하는 삶을 보여 달라. 바울이 가슴 아파서 하는 소리. 그 말씀 붙들고 살아가기보다도 바울이 설교 더 잘 해, 베드로가 설교 더 잘 해, 앉아서 말이지 영적 지도자 판단이나 하고 앉아있고, 따지고 앉아있다 말이요.

 

 이게 그 당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현장이었어요. 그것이 현장이었어요. 이런 현장은 어느 교회, 어느 역사 속에나 있을 수가 있는 모습입니다. 특별히 머리가, 신앙적인 지식이 축적될 때 우리가 이 판단의 유혹, 또 교만한 자리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위대한 설교를 들었느냐가 중요함 것이 아니라 그 설교를 붙들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단 말 이예요, 어떻게 사느냐. 오늘 설교 잘했다, 오늘 설교 그렇지 뭐, 오늘은, 겨우 반응이 그거란 말이지. 설교의 판단을 위해 설교가 선포됩니까?

 

 헨리 나우엔의 책방에 가도 이 나우엔의 많은 책들이 있는데 요즘 그 영성 운동에 큰 별처럼 많은 감동처럼 글을 남기신 분이예요.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이 분이 테레사 머더, 테레사 수녀를 인도로 방문했을 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그렇게 성자 같은, 예수님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비밀은 비결은 뭡니까?" 그 때 나우엔이 들었던 대답은 아주 평범한 대답이었어요.

 

 아주 평범한 대답, 그러나 오랫동안 그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해요. 테레사가 이런 말을 했어요. "무슨 비결이 있겠습니까? 그냥 주님 말씀 따르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리고 주님의 종들의 말씀. 주님의 종들의 말씀을 주님 따르려고 애썼고, 주님의 종들이 준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단순한 삶, 그게 크리스찬 라이프예요, 뭐 별거예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아는 게 많은지 그냥 핏대 올리고 떠들고 소리 지르고 하지요.

 

 앉아서 판단이나 하고 앉아있고 삶이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 고린도 교회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가 첫 시간부터 계속 강조했지만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이 말을 잘 받아들였어요. 반항하지 않았어요, 반발하지 반항하지 않았어요, 잘 받아들이고, 고쳤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교회가 되었어요. 저는 우리교회도, 그리고 이 시대의 교회들이 이런 성숙한 교회가 되고 성숙한 교인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