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0: 11 양들을 위해 - 요 10: 13 달아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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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한 목자 ( 10: 11-18 )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자신이 장차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암시한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0: 28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9: 12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말했다.
사도 요한도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했다(요일 4: 9-10).
그러나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다.
그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며 이리는 양을 늑탈하고 헤친다. 삯꾼은 거짓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결국 양들을 죽이는 자들이다.
목자와 삯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목자는 양을 위해 일하지만, 삯꾼은 오직 물질적 이익을 위해 일한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의 유익을 위해 수고하고 필요하다면 양을 위해 희생도 할 수 있지만, 삯꾼은 자기에게 이익이 없으면 언제든지 양을 버리고 떠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한 목자이시요 삯꾼이 아니시다. 또 그는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이 삯꾼이 아니고 선한 목자로 일하기를 원하신다.
요 10: 11 양들을 위해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이 구절은 예수 자신이 선포하신 말씀이다.
어떤 선언보다 권위 있는 지상 최고의 증언이다. 이 선언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
1] 나는 선한 목자라.
(1) 목자에 대하여는, 구약에도 많이 예언하였다.
* 창 49: 24 -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 민 27: 17 -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 삼하 5: 2 -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 대상 11: 2 -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 시 23편 -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사 40: 11 -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 겔 34: 23 -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 슥 11: 4-8 -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도다. 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 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이 구절들을 보면, 여호와 자신이 바로 하나님 백성의 선한 목자라고 선언했으니,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때 그 예언들은 성취되었다.
(2) 선한 목자라.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을 말한 것이다.
* 막 10: 17-18 –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 눅 18: 18 -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즉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말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초월해서 자유롭게 계시는 본질적인 성품을 가지셨지만, 지으신 만물과의 관계성 속에서 여러 가지 성품을 나타내신다.
성경에는 창조 이전에 홀로 계시던 하나님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고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일관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셨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를 증거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목자와 양과의 관계, 그리고 토기장이와 질그릇과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홀로 계시기를 좋아하시지 않으시고, 지으신 모든 피조물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리시고, 지으신 만물을 섭리하신다.
하나님에게는 초월적인 본질 외에도 인류와의 관계와 교제를 통해서 인류에게 끼치는 감화력이나 영향력이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의 속성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와 근본적으로 구별된 다른 분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과 같은 성품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과 하나님이 관계를 맺고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 롬 1: 18-25 –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출애굽기 29장 45-46절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사시기를 기뻐하시는 뜻을 분명하게 밝혀주신 것이다.
그러한 뜻을 가지신 하나님은 회막이나 성전에 영적으로 임재해 계시다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친히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
* 요 1: 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빌 2: 5-7 –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이시다.
만남을 강조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K. Barth)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만나 함께 존재하는 역사와 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오셨다가 다시 승천하신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으로 강림하셔서 온 우주와 인류 가운데 임재해 계신다. 인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은 어떠한가?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 16).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나, 지으신 만물을 섭리하실 때 나타내신 성품의 근본이 사랑이셨고, 죽어 가던 인류를 용서 하사 구원하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사람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의(義)로우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바르고, 공평하고, 흠이 없는 세상을 건설하는 기초가 된다.
하나님의 법이 바르게 지켜지고, 사람들끼리도 공평하고 역사가 바르게 굴러가도록 영향력을 끼쳐 주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서 율법도 주시고 선지자도 보내시고, 종내 에는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박으시는 일까지도 하셨다.
사람들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정의를 실천하여, 바르고, 밝고, 공평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미 6: 7 -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셋째,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 2) 하셨다. 거룩하다는 말은 속된 것과 구별된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죄와 악으로 오염되어 있는 이 세상의 것으로부터 깨끗이 구별되어 계신다.
우주 만물은 타락하기 이전에 창조 당시의 원형을 회복하여 거룩하여지도록 해야 한다.
넷째,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만물의 선함의 근원이시다. 모든 선한 것들이 그로부터 나온다. 그는 어떤 가치의 판단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모든 가치를 초월하시는 동시에 모든 가치의 근원이 되신다.
이러한 신을 철학자 플라톤은 지고선(Summum Bonum)이라고 불렀다.
출애굽기 34: 6에서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을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라고 고백하였다.
다섯째, 하나님은 길이 참으신다
하나님은 지으신 만물을 향하여 어머니와 같은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길이 참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 신가를 알고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2]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예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는 희생을 말한다.
* 요 13: 37-38 –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 요 15: 13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요일 3: 16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헹스텐벌키(Hengstenberg)는 그 말이 그 양을 위하여 목숨을 대속물(代贖物)로 주실 것을 가리켰다고 한다.
* 막 10: 45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 20: 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사 53: 10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
* 사 53: 10 -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고데이(F. Godet)도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란 말씀이, 다른 이의 요구에 응하여 생명을 내어 놓음, 혹은 바침, 또 혹은 희생함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요 10: 12 삯꾼 -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
사람이 양을 돌볼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많은 양을 사육하는데에는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삯꾼은 일정한 계약 조건에 따라 자기의 인력을 제공하고 그 댓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일꾼은 양을 헤치는 이리가 나타나 양을 공격할 때 주인과 같은 책임 의식이 같지 못하다.
따라서 이리가 역습하면 삯꾼은 자기의 목숨을 보호하게 된다.
1]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1) 삯꾼
유대인들은 양이 100마리가 넘으면 양을 칠 일꾼이 필요했다.
일꾼들은 품삯(임금)을 받고 양을 치는데 임금에만 관심이 있지 주인처럼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양을 돌보지는 않는다.
2]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Wolf)는 히브리어 "스엡"을 모든 영어 성경에서 "Wolf"(이리)로 번역했다. 이리는 세계 각지 민화에 자주 등장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북아메리카까지 넓게 북반구에 분포하며 사람과는 예로부터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이리의 분포로 서남단으로 보지만 귀중한 양에게 해를 입히는 잔인한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창세게 49: 27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는 이 지파의 잔악함을 표현하고 있다.
스바냐 3: 3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는 뼈도 안 남기고 다 먹어치우는 이리처럼 악한 재판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으로 박해하는 사람들을 이리로 그리고 자신을 좋은 목자로 은유하여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양을 물어가는 짐승을 가리키는데 예수님은 가짜 목자가 바로 이리라고 지적하셨다.
* 마 7: 15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 16)고 하셨다.
3]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리가 양을 물어가는 것은 그들의 먹잇감으로 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양으로서는 가장 경계해야 할 강도일 뿐이다.
요 10: 13 달아나는 것 -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
이리가 양을 헤치기 위해 달려드는 것을 보고 달아나는 사람은 그가 주인이 아니라 삯꾼이기 때문이다.
1]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사람이 이리와 겨루어 싸워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리가 양을 약탈하기 위하여 달려들 때는 삯꾼들은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달아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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