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끝없는 질문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쓰신 영적인 책, 성경은 이생과 내생에 대하여 명쾌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과 우주만물과 모든 존재의 근원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코 쉽게 사사로이 해석할 내용이 아닙니다. 영적인 책이니 영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읽고 깨닫는 자들에게 무궁무진한 인생 재료를 공급합니다. 인간만사의 재료창고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인터넷시대에 걸맞게 말한다면 무제한의 Data-Base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 라고 말씀하셨으니 성경의 말씀들을 음식물 재료로 가정해 봅니다. 아주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을 많이 만들어 자신도 배불리 먹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풍족히 대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훌륭한 재료를 가지고도 요리솜씨가 좋지않아 자신도 제대로 먹지못할 뿐만아니라 남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풍족한 재료를 앞에 두고도 요리를 하지 않아 배를 굶주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효경(孝經) 열번 읽고 애비 뺨친다”는 말이 있습니다.부모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책을 열번이나 읽고 기껏 한다는 짓이 아버지 뺨을 때린다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멋대로 읽고 자기 입맛에 맞도록 해석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 되겠지요. ☞효경(孝經) : 유교 경전(經典)의 하나. 공자(孔子)가 제자인 증자(曾子)에게 전한 효도에 관한 논설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편저(編著)한 것으로, 연대는 미상이다.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사(士)·서인(庶人)의 효를 나누어 논술하고 효가 덕(德)의 근본임을 밝혔다. 한국에 전래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시대에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하였을 때 그 시험 과목의 하나로 쓰인 기록이 있고, 그 후 유교효도의 기본서로서 널리 애독되었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효경언해(孝經諺解)가 간행되어 더 널리 유포되었다.
성경에서도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다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 또한 마찬가지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책을 믿음과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마음 없이 사사로이 자신의 지식의 잣대로 읽으면 빗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단사설이 성경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성경 500독(?)하였더고 자랑하며 사이비 종교 교주가 된 사례가 실제 있습니다. 오랫동안 성경 번역작업에 종사하던 목사님이 어느날 몇 시에 예수님 재림하신다는 종말론을 내세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몇 해전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처음부터 '내가 이단이 되어야지'하며 결심하고 성경을 읽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모두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려는 귀한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끝은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만 것이지요!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될 잠재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신 차려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아는 것이 먼저냐?' '열심이 먼저냐?'하는 말이 생깁니다. 초상집에서 밤새도록 슬피 울고 아침에 출상하는데 "누가 죽었지?"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한 비록 이단까지는 가지 않았더라도 말씀들이 왜곡되고 치우쳐있는 모습을 현대 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기 전 우리가 스스로 인정해야 할 사항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 역사는 죄로 인해 황폐해졌다'는 전제하에 기록된 것이기에 성경을 읽는 나 자신은 어떤 성향의 인간인가를 알아들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 하나님 조차도 창조하신 후 '원더풀'하시며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인간이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 죄라는 바이러스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오염되면 갖가지 영적인 병이 들게 됩니다. 죄는 그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여기에 오염되면 그 첫 시도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자녀들이야 당연히 그러므로 차치하더라도 설령 하나님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켜 나가게 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부패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우겨보아도 하나님께서 '너는 그런 인간이다'라고 말씀하시니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다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예수를 1년을 믿었던 10년을 믿었던 평생을 믿었던 다 마찬가지입니다. 불세례 받고 방언과 예언과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40일 금식기도 한 사람도 물론 다 포함됩니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나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더욱 성경을 읽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기 쉬운 것은 인간의 마음이기에 하나님조차 인간을 땅위에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실 정도였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기원전 1500년경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노라고 사랑의 계약을 체결한 이스라엘은 그로부터 1500년이 경과하였을 때 하나님을 처형한 것입니다. 바로 그 계약 내용을 스스로 잘지켜 나간다고 생각한 자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계약을 파기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계약을 더욱 잘 지키기 위해 계약의 핵심내용을 파기해 버린 셈이지요! 참으로 기막힌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 그 때 그 사람들 중에 나와 당신이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서건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복음 전하신지 어언 2000년... 그 말씀은 또 얼마나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변질되어 왔는지를 쉽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1500년만에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처형할 만큼 변질되고 왜곡되었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복음으로 승화되어 우리들에게 주어진지 어언 2000년, 그 말씀은 또 죄인된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얼마나 변질되고 왜곡되어 왔을런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단순하게 계산하더라도 1500년보다 2000년이 더 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듣기에 대단히 거북스러운 말이지만 우리 모두는 살인 전과자입니다. 그것도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죽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끔직한 사실입니까? 아무 죄없이 그리고 아무런 저항없이 인간들의 손에 그렇게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흉악한 범죄자 인생들을 향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애타는 심정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재판장이 사형수를 찾아가서 회개하고 믿기만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고 살려줄 뿐만아니라 천국 시민권을 주겠노라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 블로그에서도 몇 군데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처형한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은, ◈ 보이는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며, ◈ 들리는 (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며, ◈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잣대로 하나님과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죄에 오염된 인간의 심성은 이렇다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와 당신이 바로 그렇다는 말이지요! 기분 상하셨더라도 어쩔수 없는 사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으로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군사정권시절 민주화 투쟁하다가 수감 생활한 적이 있는 어느 목사님이 감방에서 할 일도 없고 하도 심심해서 성경을 읽고 은혜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차근차근히 매일 읽으니 6일만에 통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마음먹고 매일 매일 3장(章)씩 만 읽으면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1년이면 한번 통독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독이냐 정독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요. 초 신자일수록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읽을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다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본다는 말과 같이, 그리고 망원경으로 보고 현미경으로 본다는 말과 같이 먼저 전체 윤곽을 파악한 후에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를 알아도 정확하게 올바로 알 필요는 있습니다만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알려는 것은 반드시 무리가 따르게 되니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지가복음”이요 내 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내가복음”이라고 하는 교인들간의 농담도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해석의 가장 좋은 참고서는 성경 그 자체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의 그 어느 유명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그리고 일평생 목회에 헌신한 목사라고 할 지라도 성경상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고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실 뿐입니다. 살아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죽은 후에 천국 가서 예수님에게 직접 여쭈어보자 하는 여유도 필요합니다. 다만 성경은 우리들의 지적욕구나 호기심을 채워 주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고 범죄한 인생들이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기에는 충분할 만큼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라는 주제만은 항상 염두에 두시고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려고 하면 이단으로 치우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구원과 상관없이 단순한 지식과 호기심으로 대하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몰라도 될 것을 알려는 것은 교만이요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은 태만입니다. |
출처: 연수임마누엘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주님닮기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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