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설교 /<<이 동원 목사>>

영화 <아바타>와 <위대한 침묵>의 컨트라스트

에반젤(복음) 2022. 4. 1. 23:51

 

영화 <아바타>와 <위대한 침묵>의 컨트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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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주변 사람들의 성화로 두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아바타>-무지 무지하게 재미있는 영화다. <위대한 침묵>-무지 무지하게 재미없는 영화다.
<아바타>-무지 무지하게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다.
<위대한 침묵>-무지 무지하게 돈이 안 들어간 영화다. <
아바타>-졸 시간이 없도록 만드는 영화다.
<위대한 침묵>-졸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아바타>-이 나라 모든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다.
<위대한 침묵>-몇 몇 안 되는 곳에서만 상영하는 영화다.
정말 두 편의 영화는 컨트라스트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사용 가능한 모든 비쥬얼의 영상과 심미적 색채를 총 동원하여
테크놀로지를 통한 엄청난 시각 효과를 연출하였다.
이 영화가 가능하도록 동원된 우리 시대 팀워크의 천재성은 충격의 3-D로 감동의 거대한 쓰나미를 경험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위대한 침묵>의 감독 필립 크로닝은 수도원 측과 협의하여
일체의 인공조명이나 인공 사운드를 사용하지 않는 단독 촬영의 조건으로 다큐멘타리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침묵>에서 침묵의 사운드(?) 외에는
바람 소리, 물소리, 찬양 소리, 톱 켜는 소리 등의 자연스러운 소리만을 접할 뿐이다.

그런데 두 영화의 잔영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솔직하게 난 <아바타>를 잊어가고 있지만, <위대한 침묵>을 잊을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아바타>를 보고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을 느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피상적으로 보면 두 편의 영화가 다 현실 도피적이다.
<아바타>는 우리를 인류 마지막 희망의 행성-판도라로 우리를 도피시킨다.
<위대한 침묵>은 우리를 프랑스 알프스의 산중 해발 1,300m의 계곡으로 도피시킨다.
그러나 실제로 판도라로 도피하고픈 충동을 느낀 관객들은 많았어도
아마 카르투지오 수도원으로 도피하고픈 관객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아바타>는 가상현실로 우리를 인도하여 생태계 보호의 당위성과
가상적 로맨스의 행복의 환상을 꿈꾸게 하는 정도의 레슨을 교육 할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정직한 삶의 현실과 직면하여 치열한 행복의 물음을 묻게 하는 현실이 부재하다.
그런데 <위대한 침묵>에는 그것이 존재한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거기에 있다.
수도사들의 진지한 얼굴과 눈빛과 나를 직면하게 하여 “인생은 무엇인가?”를 묻게 하는 질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됨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게 하는 질문이 있다.
그리고 문득 문득 뜬금없이 나오는 대사 “내가 바로 그분이다”는 문자가 지금도 살아서 내게 다가옴은 웬일일까?

그래서 나는 <아바타>보다 <위대한 침묵>을 관람할 것을 더 추천하고 싶다.
비록 수도사의 유일한 취미가 고양이 먹이 주기
그리고 그들의 유일한 오락이 눈덮힌 산에서 미끄럼질 하는 놀이였다 해도
그들이 추구한 묵언 수행의 가치는 결코 도피적이 아니다.
만일 맹인 사제의 마지막 고백처럼 우리도 “주님을 가까이 함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영화를 보다가 졸고 나오는 한이 있어도 그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내게 어디서 그 영화 상영하느냐고 묻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인터넷 초보 수준이면 찾아낼 수 있느니까. 아-멘.

이동원(지구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