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자료실/- 신앙의 글

중요한 질문 (행 22:6-11)

에반젤(복음) 2021. 10. 19. 05:40

중요한 질문 (행 22:6-11)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이 시간 “중요한 질문”이라는 제목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앤서니 라빈스는 그의 저서 ‘거인이여 깨어나라!’에서 “질문이 답을 만든다. 질문이 인생을 바꾼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즉 우리가 얻으려는 답은 우리가 하려는 질문에 달려있다. 성공한 사람은 더 나은 질문을 하고 그 결과 더 나은 답을 얻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질문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반면 실패자는 그 질문이 실패의 답을 얻을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합니다. 신앙생활도 매사에 하나님께 묻기를 시작할 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을 보면 사울의 질문이 나옵니다. 그가 위대한 사도가 되었던 것도 위대한 질문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했던 질문은 모든 인생이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요?

 

1. 주님 누구십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6-8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사울이 했던 “주여 누구시니이까?”한 기도가 왜 귀할까요? 이것은 우리 영혼의 구원과 관련된 운명이 결정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르면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했습니다.

 

여기 알다는 것은 아는 것은 물론 인격적인 만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앓이 얼마나 중요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을까요?

 

마16:13-17에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고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셨습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느냐에 따라 영생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독생자 예수를 구주로 보내주신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하신 구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원주의를 주장하며 유일하게 못 믿는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진실로 믿는다면 구원 얻은 것입니다. 성경을 통달해도 예수님을 모르고 부정하면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마24:5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마7:20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셨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박식한 것 같아도 결론이 다르면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가르치거나 자기를 높이면 거짓선지자입니다.

 

미혹된 사람 중에 하나님의 자녀가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 이건 아니라는 마음 한 구석에 세미한 음성이 있을 텐데 그 때 ‘하나님, 진짜 예수가 누구입니까? 진짜 예수가 이 사람입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다면 그는 그 미혹의 길에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구주라는 사람이 자꾸만 늙고 병들고 죽고 말을 바꾸고 딴소리하고 돈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걸 보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야지요. 그런데 왜 돌아오지 못합니까? 미혹에 빠져 위대한 질문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위대한 질문을 많이 한 사람 중 하나는 인도의 성자 선다싱 목사입니다. 선다싱은 1889년 인도의 전통적인 시크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시크교란 이슬람과 힌두교가 혼합된 그런 종교인데 그는 자기 종교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고 학교를 기독교 미션스쿨에 다녔는데 기독교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죽음을 생각하고 참 신이 살아 계시다면 자신에게 나타나 달라고 3일 동안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만일 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마지막 날 아침 5시에 그 지역을 통과하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할 생각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이 밝아 올 때까지 그는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5시15분전 그가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 갑자기 밝은 빛이 그의 방을 비추고 얼마 후 빛이 사라지더니 예수님이 나타나서 선다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언제까지나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너를 구원하러 왔다." 이때부터 선다싱은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였고 예수를 위해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가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그 저서에는 예수님께 드린 질문과 답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유명한 저 마하트마 간디가 선다싱을 그의 아슈람(인도의 전통적 암자 수행자를 위한 교육시설)에 초청하여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를 물었는데 그가 깊은 영적 동기에서 예수를 믿은 것을 알고 자기 아쉬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기도회에 참석시켰습니다.

 

또 한 번은 우리 한국을 동방의 등불로 애찬했던 시성 타고르도 본래 범신론자였는데 썬다싱의 체험을 듣고 그 때부터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인격신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타고르의 시집을 보면 그 기도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질문의 결과였습니다.

 

2. 중요한 질문은 주님 무엇을 할까요 하는 질문입니다.

 

10절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여기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이 질문은 이제껏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충격과 한탄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위해 해왔다고 믿었는데 결과적으로 메시야를 핍박하는 사람밖에는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믿는 자를 핍박하고 가두고 죽이고, 예수를 멸시하고 욕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토록 열심이었지만 예수 만나 보니 헛일만 저지르고 말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나온 기도가 바로 “주님 무엇을 해야 하리이까”였습니다. 사울이 발등을 찍으면서 배운 기도가 바로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였습니다.

 

진정 이 질문을 드릴 수 있다면 그는 헛된 세월 보내지 않고 하나님의 귀히 쓰임 받는 성공적인 큰 일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를 위대한 예수님의 동역자로 만들어 줍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된 것처럼 우리가 매일 이런 질문 가운데 산다면 더욱 예수님의 맘에 합한 동역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모셨다면 당연히 여쭈어야 합니다. 내 꿈과 계획을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늦어집니다. 겸손히 사명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매사에 늘 여쭙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이 자아처리를 위하여 야곱은 97년이 걸렸고, 모세는 80년이 걸렸습니다. 다윗의 성공은 하나님께 여쭌 것이고 사울의 실패는 여쭈지 않고 자행자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질문함으로 얻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역사상 중요한 교리들은 모두 문답 형태로 기록되었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산파술에 능했다고 합니다. 산파술[産婆術]이란 대화상대자로 하여금 무지를 자각하게 함과 아울러 거듭된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진리의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칼빈도 교회를 이단에게서 지키기 위해 예리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질문을 통해 배우는 것은 천부적인 방법입니다. 어린이들 보세요. 어린이는 본능적으로 물음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른보다 빠르고 질문하여 얻은 답은 잊지 않습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께 여쭈면 응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체험이 있습니다. 더구나 질문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존중해 드리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의 질문이 12가지가 나타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등등 가장 귀중한 것을 질문을 통해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인생이 그 무엇보다 "주님 누구시니이까"한 이 바울의 질문을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예수를 구주로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들이 “주님 제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매사에 질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성공적인 삶과 아울러 성령과 동역하는 하나님의 귀한 일군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 일생에 좋은 질문 많이 하여 여러분의 삶에 행복과 승리와 은혜가 넘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