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박사/선교의 창

[스크랩]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

에반젤(복음) 2021. 8. 18. 19:59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 

 

아더 글라서(Arthur Glasser)

I. 창조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계시

시공간에 일어난 최초의 사건은 창조 사건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기 시작하셨다.1) 그분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창조의 신비는 그리스도를 통해 풀린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와 궁극적 의미와 목표를 이해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오직 그분께만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완전함이 드러나 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아우러진 우주는 정교한 질서로 운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고대인들은 오늘날 정령을 숭배하는 문화를 가진 집단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정령숭배 사상을 철저히 논박한다.
창조 기사에는 독특한 면이 있는데 그것은 창조 사이사이에 휴지 기간이 있다는 것이다즉, 흑암의 세력을 굴복시키심, 깊음 위에 있는 흑암의 세력, 혼돈하고 공허한 땅, 리워야단의 존재가 있었고, 말씀과 행함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창의적인 표현들이 세상에 질서를 세움,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는 과정에서 빛이 창조되었고, 부득이하게 빛과 어두움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 땅에 생명 있는 것들을 창조할 수 있는 무대가 세워졌다.

인간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해 주셨다. 하나님은 다가오는 구속적 목적을 온전히 이루시고 자기 계시 과정을 계속해 나가시기 위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궁극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창조는 약속이다. 모든 통치권, 모든 은혜, 율법의 은혜, 질서의 은혜, 선택의 은혜 칭의의 은혜, 성화와 영생의 은혜에 대한 약속이다. 더 나아가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 가운데 행하신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강력하게, 목적 지향적으로 필요한 변화의 길을 가리키시며 백성들 가운데서 행하신다.

초대 교회의 복음 선포에 있어서 창조의 위치와 역할은 중요했다. 창조는 복음이다. 개개인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개인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게 해주는 복음이다. 페르디난드 한(Ferdnand Hahn)은 “이방인들에게 행한 사도들의 설교는 하나님 아버지와 맺은 언약보다 창조주 하나님의 돌보심을 전제로 하였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본성: 남자와 여자

창조기사는 신비로운 인간의 본성에 대한 포괄적인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창5:1-2).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남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성적으로 구별되어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존재한다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동적인 상호작용과 교제가 하나님의 형상을 기본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돕는배필” 이는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돕는 자”라는 단어는 성경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자는 남자의 아랫사람으로 남자를 편리하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말한다. 아담과 이브의 상호관계와 상보성은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형성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영적인 본질이 있다-인간들은 육체에 영혼이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사회 심리적 유기체가 되었다.(전인적인: 온전한 인간) 인간은 창조주와 특별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특수하게 창조 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인간은 본질적인 종교성을 타고났다.

문화현상이 선교학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모든 인간의식과 경험은 개념적이기 때문에 이런 개념들은 특정한 사회, 역사적 상황에 따라 언제나 문화적 옷을 입게 된다. 믿음은 문화적 형식이 없는 “순수한 실재”로만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문화적 형식도 규범적인 것이 될 수없다.

창조 기사는 온 우주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은 그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와 성품을 전해 주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래서 선교적 대사명은 창조 기사가 암시하는 것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전 인류 공동 조상에 대한 위협

전 인류는 조상이 같다. 구약이 온 인류를 하나의 대가족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인류가 가진 통일성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구약은 어떤 종족도 ‘본질적으로 열등’하지않으며 ‘인간이라 부를 가치조차 없는 민족’은 세상에 없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신약에 나오는 문화와 인종적 장벽은 생소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국가 형태를 갖추어 가던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했다. 하나님이 허락하실 새로운 세상을 함께 누리게 될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보았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런 통일성은 사라졌다. 인간은 사회적 책임보다는 개인의 도착적인 자유를 이루기 위해, 집단 이기주의가 가진 불합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켰다.
① 가인과 같은 자기중심주의, 즉 개인주의로 인해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 냉담해 졌다. 사회와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룩한 창조 질서를 풍요롭게 하고 넓혀나가야 한다. 이것이 “거룩한 백성”으로 이 세상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② 민족주의의 위험성이다. 민족주의는 성경과 대립한다. 인류가 공동 조상을 가졌다는 성경적 관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민족주의를 표면적으로 정의하면 다른 미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의식적인 자기주장이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자들은 모든 인류를 한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런 문제들은 계속해서 교회와 국가 사이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선교사들이 가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문화적 우월감으로써, 의식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인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민족중심주의적 성향이 있다. 이것은 죄다. 이 죄는 이상하게 고백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애국도 성경적으로 해야 한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다른 민족들을 존경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애국해야 한다.

문화적 명령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부여하신 첫 번째 책임은 이미 인간존재의 본질로 자리한 특정 활동을 하라는 문화적 명령이다. 하나님이 문화적 명령에 사용하신 핵심 용어는 “다스리라”, “일하라”, “지키라” 그리고 창조물들의 “이름을 지어라”였다. 이 명령은 여러 가지 책임을 동반하였다. 문화적 명령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가진 모든 인간들이 이 세상에 대한 대리 통치자 역할을 하고, 이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동참하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이 가진 창조적 본능을 나누어 주셨다. 문화적 명령 안에 인간 존재의 모든 것과 물질세계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문화적 명령에는 인간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제외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며 스스로 하나님 역할을 하려 하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인간은 인간을 위한 최상의 존재다.” 문화적 명령은 모든 남녀들을 불러 문명과 문화를 이루어 나가는 일에 참여하라고 주신 명령이다. 복음 명령은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은혜로운 사역을 말한다. 책임감을 상기시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동역한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새 역사를 시작하실 때, 문화적 명령과 복음 명령은 하나로 융합될 것이다. 신약성경은 복음 전도와 사회책임을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이 문화 창달에 참여하는 일상생활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이다.”
II. 타락과 유혹

아담과 이브는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지식을 따라, 자기만족을 위하여 창조물인 세상의 가치로 창조주를 거역하며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사탄은 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먼저 이브를 선택했고,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담도 돌연 이브를 따랐다. 그의 죄는 더 고의적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다스리고 돌보는 역할과 책임을 거부했다. 하나님의 지도 아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문화적 명령을 수행해 나가는 것을 거절했다.

결과적인 죽음의 과정
실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에게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병들어 죽을 것이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남자와 여자, 결혼관계, 형제와 형제, 인간과 환경 사이를 갈라놓을 것이다. 저주받은 세상에서의 삶은 끊임없는 괴로움을 안겨 줄 것이다. 그들이 무화과 나 잎사귀로 벌거벗은 수치를 가렸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그분이 기대하셨던 처음 목적과 전혀 다르게 사용한 결과였다.

1) 여자에게 미친 타락의 영향: 타락의 결과로 여자의 사회적 위치는 점점 낮아졌다. 하나님과 나뉨의 결과로 아담과의 관계도 나뉘어지고, 호전적으로 변할 남자들에 반해 더욱 수동적이 되고 어려운 짐들을 많이 지게 될 것이다. 이모두가 죄의 결과다. 여성의 능력이나 재능이 남성보다 열등하게 보이는 것을 역할과 환경의 차이인데도 남성들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

2) 사탄의 멸망: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과 충돌하게 되게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주제는 그리스도가 이 최종 승리에 관한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삼일 만에 육체로 부활하심으로 모든 악을 정복하신 능력을 보여주셨다. 부활절은 구속사에 일어난 사건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다. 부활의 결과 우리는 두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첫째, 여자의 후손과 타락한 영의 세계는 원수 관계이지만, 종말에 하나님 나라가 온전하게 세워질 것이다. 둘째, 죽음에서 다시 사신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 –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쫓아내셨고 하나님과 누리던 행복한 교제도 사라졌다. 인간이 하는 모든 노동은 하나님이 내리신 징계에 나타난 쓰라린 아픔이다. 인간 남녀의 반역적인 교만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죄를 심판하신다. 이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가지셨던 목적이었다.

3) 은혜의 암시: 역사 속으로 죄와 반역이 들어와 인간의 역사는 어둡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된다. 죄로 인한 나뉨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내신다. 아담과 이브가 느꼈을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시고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
반틸(Cornelius Van Til)은 은혜적 관점에서 타락을 설명한다. 죄의 보편적 실존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강조하기보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강조한다. 타락이후 인간에게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폭넓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모든 인류는 이 땅에서 이미 오래 전에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죄는 모든 사회 조직과 모든 족속들 가운데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봉사에 앞장서야 한다.

가인과 아벨: 가인과 아벨 사건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보여준다. 유혹적이고 충동적인 인간문명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가인의 타락성은 그가 한 행동으로 증명되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하나님은 무죄한 희생자와 회개 없는 죄인 모두를 소중하게 대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가인의 계보: 가인은 한 사람을 살해 했고, 라멕은 무모한 살인을 찬양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과는 멀어져 갔지만 문화를 발전시켰다. 하나님은 후일 가인의 후예들이 발전시킨 기술 문명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유익하게 사용하게 하신다. 또한 방랑의 생활을 해야 하는 그들을 도시에 정착하게 하시고 그 운데서도 유익한 것들을 취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켜 준다. 성경은 문명의 발전과 혜택이 독실한 신자들에게만 주어졌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각주)—————–
이 글은 아더 글라서(Arthur Glasser)가 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의 1부 제 2장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반역하는 인간”이라는 부분을 신경규 교수(고신대)가 요약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