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3직론
기독론은 전통적으로 세 부분으로 분류되어 왔다· 즉 1) 그리스도의 위격 (Person: 한 위 격안에 결합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2) 그리스도의 지위(중보자의 겸비와 존귀), 3)그리스도의 사역이다.(Work)
이중 세 번째 항목은 자주 편리하게 그리스도의 직분이라는 제목 아래 다루어져 왔다.
이 용어의 배후에 있는 원리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사역은 그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적인 관계가 표현되고 있는 특정한 기본적인 임무들 또는 직분들에 대한 완벽한 성취라는 것이다.
이 직분들은 종종 예언자직, 제사장직, 그리고 왕직으로 분류된다. 이와 같은 범주들이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모든 것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이 직분들 사이에 약간의 중복됨이 관찰되어질 수도 있는 반면에 이와 같은 범주가 계속해서 시용되어져도 좋을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
(1)예수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그리고 일반적인) 명칭 가운데 하나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세 직분이 보통 하나님의 재가의 표시인 도유식(塗油式)으로 임직되었다. 그 세 직분은 제사장의 직분(출30:30, 40:13,15과 그 밖의 많은 구절), 왕의 직분(삼상10:1 15:1,17 등) 그리고 예언자의 직분(왕상19:16, 사61:1 참조, 시105:15)이다. 그러므로 이런 구조를 따라 그리스도의 사역의 성격이 발달되었는데 이것은 특별히 구약과 신약의 사이, 즉 옛 계약에 대한 기대와 새 계약의 성취 사이의 일치성을 나타내는 데 매우 접합하다.
(2)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라는 용어들은 사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다른 명칭들은 또한 여기에 강제로 적용시킬 수도 있는 반면에, 이런 명칭의 타당성을 의심할 만한 아무런 충분한 이유도 없다.
(3)이런 구분은 많은 고대인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이 구분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의 서문에서 분명히 나타나 있으며, 그때 이래로 애용되었다. 그것은 이 구분이 칼빈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I . 예언자(선지자)직 (The Prophetic Office)
예언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전달하기를 원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서 사용되는 사람이다. (출7:1,신18:18). 예언자에 관한 통속적인 관념 가운데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자로서 예언자를 생각하는 요소는 성서적인 개념 속에서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일찍이 모세의 활동기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예언적 지도(편주:여기서 예언적이란 앞날을 미리 말한다는 것보다 대변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전하신다는 의미로 보아야 함. 앞으로 사용되는 예언(prophecy)이라는 용어는 모두 이같은 뜻으로 사용될 것임)를 베푸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신18:15,18) 이러한 약속은 계속 출현한 구약의 예어자들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는데 이 약속은 베드로(행3:22-24)와 스데반(행7:37)이 고백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가장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메시야의 강림을 고대하던 사람들의 열망과 합치하였다. 그리고 메시야의 사명의 예언적인 성격은 그의 시대의 사람들 가운데서 까지도 인정을 받았다.(마16:14; 21:11,46; 눅 7:16; 요 1:23; 4:19; 6:14; 7:40; 9:17).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영생의 말씀을 가졌다는 것(요6:68)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다는 것(요3:34)을 특히 인정하였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일종의 예언자로 언급하였고(마13:57; 막6:4 눅4:24;13:33; 요4:44), 또한 성부로부터 온 메시지를 말한다고 주장했다(요8:26-28,40; 12:49,50; 14:10,24;15:15; 17:8). 그리스도는 진리에 대해 증거 하기 위해서 왔다(8:45, 46; 19:35). 사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왔는데,(요1:I7),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스스로 “나는 진리요'(요14:6)라든가 혹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8: 12; 9:5; 참조· 요3: 19; 12:35,36,46)라고 말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그리스도의 예언적인 말씀의 권위를 증거 하셨다.(마17:5; 막9:7; 눅9:35; 요 5:37; 8:18).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계 19:10)라는 구절을 읽게 된다.
그리스도가 그의 예언자적 직분을 행하신 두 가지 중요한 방법이 있다. 교훈과 모범을 보여주심이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을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을 통하여 하시고자하는 말씀을 나타내심이다.
Ⅱ. 제사장직 (The Priestly Office)
하나님의 이음으로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와는 대조적으로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대변자요 대표자로서 나타난다. 구약에서 이 거룩한 직책은 아마 어떤 다른 것보다도 더욱 주의 깊게 보호받았다.(특별히 제사장의 특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웃시야 왕이 받은 무거운 형벌을 참고 하라 ;대하26:16-21)
확실히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정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접근될 수 없는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거룩하심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심어주려는 것이었다.
시내산의 율법제정시부터 오직 아론과 그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직을 맡게 되었으며(출29:9,40:15),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았다. 그리고 오직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허락되었다.(히9:3) 더구나 수송아지는 일년에 한번씩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제로서 드려왔다.(레16:11) 히브리서 기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제한들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들을 내포하였다. 즉 구약의 제사장직이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에 빠지지 않고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자이며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나타남이 일시적인 것만이 아니라 또한 영원한 자를 기대하여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멜기세덱에 관한 불가사의 한 구약의 구절들은 (창14:18-20;시110:4) 이와 같은 열망에 대한 골자로서 제시될 수도 있다. 이 구절들은 분명히 히브리서의 기자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직을 예시하는 것으로써 특별히 언급되고 있는 사실이 주의를 끌고 있다.
그리스도가 그의 제사직을 수행하는 두 가지 주요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봉헌과 중보 사역이며 이 두 가지에 치유를 첨가할 수 있다.
Ⅲ. 왕직(Kingly Office)
성서의 언어에서 ‘왕’이라는 용어는 20세기에 보통 이해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영역을 갖고 있다. 왕은 그의 영역 안에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경제권. 군사권을 모두가지고 있었다. 왕은 간혹 그의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하여 무제한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렇게 많은 영역에서 지도력을 갖고 있던 왕의 통치는 쉽게 포학과 독재에로 빠질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시민정부에 이르는 최초의 단계는 하나님의 통치가 강조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도력을 행사하는 합당한 대표자를 통하여 수행되는 일종의 ‘신정정치’(theocracy)였다.
이런 대표자들 가운데는 모세, 여호수아 그리고 사사들이 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 국가들처럼 보이는 왕을 가지기를 갈망했다. (삼상8:5)
이 왕들 가운데 몇몇은 이스라엘에 영광과 권세를 가져다 주었으며, 그 군대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 왕들 가운데 대다수는 결과적으로 이 나라의 행로에 덫이 되었다. 바벨론 포로시에 이 왕권은 이 나라의 독립과 함께 붕괴되었다. 헤롯가의 왕권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갈망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든 왕인 다윗의 통치약속이 회복되기를 갈망했다.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 경건한 자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메시야적인 왕권에 대한 기대였다. (사55:3,4, 렘23:5;30:9 겔3422-24; 37:24-25 등)
복음서 기사에서 특히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왕권과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계가 강조되었다. 이것도 예수의 족보(마1:1,6)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눅1:32,33), 동방박사의 방문(마 2:2), 나다나엘의 고백(요1:49). 조세의 지불(마17: 25.26), 예루살렘의 승리의 입성(마21: 5-9; 막11:9,10; 눅19:38; 요12:13), 빌라도와의 대화(마27:11; 막15:2,9; 눅23:2,3; 요 18:33, 37; 19: 14,15), 회개한 행악자의 임종 시의 요구(눅23:42), 그리고 십자가의 명패 (마27:37; 막15:26; 눅23: 38; 요19:19)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십자가의 명패의 경우에서는 비록 조롱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인식이 그리스도의 왕권에 주어졌다는 것을 주목할 만하다·
예수 자신은 왕권이라는 말을 광범위하게 그의 자상사역의 과정에서 사용했다. 특히 예수가 자주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나라’라는 표현 속에서 사용했다. 그러나 예수는 왕권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많은 다른 경우에도 사용했다. 즉 예수가 ‘주’라는 명칭을 자신이 사용하거나 또는 남들이 그에 대하여 그같이 부르는 것을 묵인했을 때 (마7:21,22;21:3 그리고 막11:3과 눅19:31의 평행구절; 마22:43-45과 막 12:36,37과 눅 20:41-44 등)
예수 그 자신과 관련해서 ‘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마25:34,40;27:11; 막15:2 눅23:3, 요18:37) 그 자신을 솔로몬에 비유할 때(마12:42 ,눅11:31), 그의 영광 혹은 그의 보좌에 관하여 말할 때 (마16:27과 막8:38과 눅9:26),
그리고 하늘나라가 그들 안에 있고(눅17:21) 이 세상에 있지 않다(요18:36)고 주장할 때이다.
이와 같은 구절들에서 볼 때 예수는 약속된 메시야-왕을 고대한 이스라엘사람들의 민족적이며 세속적인 욕망을 아주 초월하였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스라엘에 국한된 통치권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통치권은 그이 백성과 우주를 다스리신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해 생각한 것은 일반적으로 이런 넓은 범주 속에서 한 것이다.(살전2:12, 딤후4:1, 계11:15). 이런 견해는 “왕중의 왕이며 만주의 주”라는 명칭에서 가장 잘 요약되어진 것 같다.(딤후6:15, 계17:14, 계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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