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사명과 교회생활 1. 교회 내에서의 집사의 역할 1) 집사의 사명 우리는 사도행전 18장을 중심으로 집사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18:1-3절 사이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고 하는 두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이탈리아 로마 교회에서 고린도로 이주하여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하게 된 이유는 크레스투스에 의해 정치적으로 로마인에 있는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키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였던 그라우디오는 AD 49년에 로마시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하는 추방 칙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그후 이들은 18절에서 바울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집사의 사명은 첫째로 목사를 돕는 헌신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7:8-16절에는 우리들은 집사의 직분이 어떠한 것인지를 참고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멜렉 족속들과 싸울 때, 모세는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손을 높이 들었을 때 아론과 훌이 그 팔이 내려가지 않도록 옆에서 팔을 하나씩 붙들어 그 싸움이 이기도록 도왔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도 초대교회에서 집사들을 선택한 목적이 바로 사도들을의 영적 능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돕는 것에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집사들의 사명의 최우선적인 것은 바로 목회자의 영적 능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돕는 것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을 도왔던 아굴라와 브르스길라 집사 내외는 얼마나 바울을 돕는 삶을 살았는지, 바울은 로마서 16:4절에서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목회자로서 자신들을 가리치고, 지도하였던 바울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을 정도로 바울을 사랑하였고, 그를 위해 다방면으로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집사들의 사명은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24-26절 사이에 보면, 아볼로라는 학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볼로는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운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에서 벗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볼로와 브리스길라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초기에 성경에 나타나는 집사들을 보면 모두 복음에 열정이 있었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 빌립 집사, 에바브로디도 집사, 아굴라 집사, 브리스길라 집사, 베베 집사 등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한 열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집사의 사명 중에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잘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셋째는 재정관리와 교회 봉사의 사명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최초의 집사였던 루디아 집사는 자신의 집을 복음의 확장을 위한 교회로 내놓았고, 빌립보서 4:15-16절에는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라고 기록하여 바울에게 재정적 후원을 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2:25절에는 빌립보 교회의 집사였던 에바브로디로 집사에 대해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8:3절 역시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집사의 집에 거하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6:23절에는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라 하여 교회의 모든 재정을 담당하고, 바울에게 경제적인 생활비를 공급하였던 사람이 가이오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집사의 직분은 하나님 안에서 함께한 형제로서, 함께 수고하는 군사로서 목회자와 교회에 재정적인 물질을 공급하며, 목회자의 가정을 돌보는 또다른 교회의 사역자들인 것입니다.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7집사를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목회자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을 대신하여 교회의 전반적인 행정과 구제 사역을 하면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가정을 돌아보기 위함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목회자와 집사와의 관계 데살로니가전서 5:12-13절에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집사들과 목회자와의 명확한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 안에서 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12b-13a절 사이에서 우리는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보듯 목회자는 성도들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 성도들을 주님 안에서 다스리는 사람, 권면하는 사람으로 지칭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3:17절에는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22:16절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고 했고, 사도행전 20:28절에는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여 감독자를 성령께서 세우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어서 6:6절에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명령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디모데전서 5:17절에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목사가 교회에 청빙되는 것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이 말씀들을 근거로하여 우리는 집사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운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며, 기쁨으로 목회자가 목회할 수 있도록 범사에 물질적으로, 행정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와야함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섬기는 모든 지체들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목회자의 생각을 중심으로 그 방향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Para-church의 영향으로 흔히 말하는 평신도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교회는 평신도들에 대한 역할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 운동은 성경적이지 못한 질서를 낳게 되었습니다. 만인 모두가 제사장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가르치게 되었고, 목사의 권위가 상실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 편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통해 고라 자손의 반역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민16장). 그들은 모두 다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동일한 레위지파 중에서 특별히 아론의 후손들만을 대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에 불만족하였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하였습니다. 하루에 250명의 제사장이 땅이 갈라져 음부로 떨어지는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도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생겼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염병을 일으키셨고,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일만 사천 칠백 명이 죽었다(민16:4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평신도 운동의 단점은 평신도들의 사역의 범위를 확대시켰으나, 문제는 만인 제사장이라 주장하여 하나님이 세운 목회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3) 교회 안에서의 집사들이 해야할 일들 우리가 조금 전에 보았던 데살로니가전서 5:13-22절을 통해 교회 안에서 집사들이 행해야할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1) 너희끼리 화목하라 2) 규모없는 사람이 교회 안에 있다면 그 사람을 권계하라 3) 마음이 연약한 사람을 안위하여 주라 4) 힘이 없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라 5) 오래 참으라 6) 항상 선을 촞으라(15절) 7) 항상 기뻐하라 8) 쉬지 말고 기도하라 9) 범사에 감사하라 10) 성령을 소멸치 말라 11) 예언을 멸시치 말라 12)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13) 악은 모든 모양이라고 버리라 이 13가지의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개인 신앙의 문제, 교회 안에서의 형제들과의 관계성 그리고 사회 생활에서의 사회적인 활동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개인의 신앙 생활은 성령의 충만한 삶입니다. 바울은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성령의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질서와 바른 교제를 위해서 성도들 간에 화목, 교회 안에서 질서를 세우기 위한 권계 그리고, 연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돌보며, 붙들어 줄 것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사회 생활에서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항상 선을 좇을 것과 범사에 생각을 깊이 하여 좋은 것을 취할 것 그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것 등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집사들의 역할은 개인적인 신앙의 계속적인 훈련,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 간의 화목을 위한 신앙의 모범, 사회적으로는 바른 윤리와 삶의 가치를 실천하는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사명자로서의 집사 그리스도인들은 세 번 태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육적인 탄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9:4절에는 “모든 산 자 중에 참여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감사인 것입니다. 삶의 긍정이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둘째는 영적인 탄생입니다. 요한복음 1:12-13절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사명자로서의 탄생입니다. 이 탄생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자신이 새롭게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과 동시에 왜 하나님이 나를 거듭나게 하셨는가라는 이유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의 죽음으로 국내 정세가 악화되고 외세 침략의 위험이 가중되는 민족적인 위기 상황과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사야 6:8절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3:9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말하였고, 10: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줄을 알게 되었고, 출애굽의 역사를 믿음을 통해 감행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명자로서의 탄생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감당할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게 되며, 자녀된 삶을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 집사 직분의 사명적인 의미 (1)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사명 따라서, 집사의 직분을 가진다는 것은 사명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의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됩니다. 집사의 직분은 일종의 청지기 직분이기 때문에 먼저는 영적인 권능과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육체적인 생명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시며, 사명자로서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은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분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첫째로 자신의 삶을 관리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시간, 물질과 재물의 소득을 위한 노동, 문화 활동, 지식 활동 등의 외적이고 사회적인 전반적인 활동과 함께 가사와 자녀 교육 등의 기본적인 활동 등을 통한 자기 관리와 자기 창조를 이루어야 합니다. 전도서 3:22절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28:3절에는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창조사역과 섭리사역과 관련하여 자연을 보호하며, 모든 물질가치와 상대가치에 반하여 생명가치와 절대가치로서의 인간의 중심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낙태반대, 모든 전쟁의 반대, 자연파괴에 반대하는 적극적인 활동과 가치를 가져야 하며, 생명가치와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른 인권 유린의 문제를 반대하며, 부정과 부패에 대해 적극적인 사고와 인식을 사회 활동을 통해 가져야 합니다(암5:14-15, 5:24). 셋째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의 활동이 이루어져 합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있습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관심 분야가 있습니다. 교회 활동 속에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그 분야를 만들어가고, 그 위치를 확보해가야 하며, 그러한 사람들과 교제하며, 친교를 나눌 필요성이 있습니다(엡4:11-12). 따라서, 우리는 자기 달란트에 대한 긍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고린도후서 1:19절에는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였고, 빌립보서 4:13절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2) 영적 사명자로서의 책임 영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집사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율법에 따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으나, 신약시대는 구약을 완성하고 신약을 시작하신 주님의 부활의 아침으로서, 교회의 전통에 따라 그리고 우리가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약속에 따라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6절에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judge)하지 못하게 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구약시대는 율법에 따라 안식을 준수하였다면, 신약시대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날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구약의 전통적인 안식일에 대한 정신은 그대로 신약시대에는 주일의 개념에 존속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사야 58:13-14절의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는 말씀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둘째는 십일조의 신실한 구별과 정성된 헌금입니다. 먼저 헌금의 경우를 살펴보면,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이 가장 귀한 헌금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누가복음21:1-4에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헌금은 많은 액수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성과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7절에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9:10절에는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라고 하여, 모든 씨의 시작은 하나님이시며, 풍헝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열매를 더하여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헌금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에는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헌금은 자신의 신앙의 고백이며, 감사의 고백이며, 축복의 씨앗이요, 천국의 창고를 채우는 저축인 것입니다(마6:19-21). 십일조에 대해서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지만, 십일조는 온전하게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율법에서 정하기 전부터 아브라함과 야곱이 행하였으며,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법으로 규정하였고, 예수님도 십일조를 드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마23:23). 성도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게 되면 하나님은 첫째로 양식의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말3:10). 둘째는 사업이 흥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말3:11). 셋째는 십일조를 통해 명예를 얻으며 칭송을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말3:12) 그러나,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도둑으로서 하나님의 창고를 갈취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고, 야곱은 약속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서, 가정이 파괴되었고, 개인적으로는 생명의 위험과 이방 백성들과 전쟁의 위기가 있었으며(창34:- 35:8), 약속된 십일조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복음 전파와 적극적인 선교 참여 그리고, 훈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설립 목적 자체가 성장에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초대교회는 역동적으로 교회가 성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성장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의 하나는 첫째로 양적인 성장입니다. 양적 성장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기초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자들이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성령에 충만함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집사의 직분을 맡은 제직들은 선교와 전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 받았음이라는 소명의식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5절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라고 말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1:27절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며, 집사의 책임과 의무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교육과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가르침 없는 교회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가 교회이기 때문에 진리를 기초로 하지 않는 교회는 기둥을 세울 수도 없고, 성장할 수 없으며, 교회의 참된 목적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지체가 서로를 돌보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는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사의 직분, 예배위원의 직책, 섬기는 자로서의 직분 등 다양한 교회의 직분을 감당함으로서 개인, 가정, 민족, 세계를 향한 선교 목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기도의 운동과 성령 충만의 역동적인 역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말씀에 튼튼히 서서 성령체험을 통한 믿음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료/설교센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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