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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삶으로 드리는 예배

에반젤(복음) 2021. 8. 10. 06:19

 

예배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영적인 임재감이 없이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땅의 의식이 있고 하늘의 의식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가 저축이 안 된 사람은 땅의 의식에 빼앗겨서 진정한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배 드리는 시간조차도 예배를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나를 세우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 이전부터 하나님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그 의식을 가지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의식을 저축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기름을 넉넉히 준비했던 다섯 처녀만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기름은 영적인 임재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배 드리면서도 주님의 임재를 영적으로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삶 가운데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언제 오실 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을 의식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주님의 의식,

임재감을 내 안에 저축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는 아무나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과 의인을 동시에 사랑하십니다.

문제는 의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롬3:10절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자신은 의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 목사와 같은 대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칭 의인이라고 생각했던 이 사람들을 싫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죄인인 줄 알아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나는 아무 소망이 없다고 나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사람만 사랑하셔서 구원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모태로부터 죄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시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아담 이후로 인간 속에는 타락한 죄의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보게 하실 때는 거부감이 일어나고 썩 기분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의 죄를 보게 하시는 것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죄인인 줄 알면서도 누가 나더러 죄인이라고 하면 기분 나쁜 것은 나도 모르는 의인의식이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죄인이라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예배가 부담이 됩니다.

런 사람은 주님이 강하게 말씀하시면 튀어나가게 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흉악한 죄인입니다.”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고백이 안 되면 우리 안에 임재의식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감격이 있어야만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공적인 예배와 삶의 예배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예배는 사실 하나입니다.

공적인 예배에서 얻는 힘을 가지고 삶의 예배를 드려야하기 때문에 공적인 예배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공적인 예배가 없이는 삶의 예배가 불가능합니다.

공적인 예배에서 얻은 감동이 삶의 열매와 행동으로 나타나야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나타나는 열매들은 공적인 예배를 성공한 결과입니다.

공적인 예배를 통해 영적인 큰 힘을 얻어서 여러분의 가정, 직장, 이웃에게 연결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교주의의 영향으로 체면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형식은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내실이 없는 경구가

허다합니다. 나빠서가 아닙니다. 연약함 때문에 이중성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배의 형식은 다 갖추고 있었지만 자기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속이 썩은 줄도 몰랐습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오늘날 많은 성도들도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쓸모없어 밖에 버려져 밟히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안티기독세력들이 입만 열면 기독교 욕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맛을 잃은 소금처럼 내용은 빠지고 형식만 남은 쓸데없는 성도들 때문입니다.

혹시 내가 그런 성도는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적인 예배가 삶의 예배로 연결되기 위해 은혜를 듬뿍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인물 좋고 성격 좋아도 하나님의 임재의식이 없으면 환난의 바람이 불 때 자신을 추단할 수 없어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임재의식이 강하면 환난의 바람이 불 때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맛보게 됩니다.

 

먼저 믿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혀 말씀과 기도로 활활 타오를 때 처음 믿은 사람이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라도 그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고 예배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내 생각이 앞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나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중심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했다고 해도 지나고 나면 다 헛된 것뿐입니다.

사단은 타락한 죄의 본성을 가지고 나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야박하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눈에 티는 보는데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예배된 것은 영원한 저주뿐입니다.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마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복을 예비하시고 복 받을 자를 찾고 계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편에게 순종하거나 직장에서 상사를 섬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표입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타고 주님의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해서 세상과 육신을 이길 힘을 받아 사랑을 따라서

끊을 것을 끊어버리고 보완할 것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사1:11~17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진심이 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으면 양심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것을 하면 양심에 찔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돌아보아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버려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이후를 살펴보면 구원 받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에 대해 나옵니다.

이를테면 교회 안에는 서로 은사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대립될 수 있는데 그러지 말고 성도 간에는 자기가 가진 은사를 따라 서로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따라 주신 은사로 합력해서 머리 되신 주님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서로 참고 용납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의 덕을 세우는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지혜는 성경을 교묘하게 해석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사랑으로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설사 그렇게 못할지라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을 끊을 때 하늘로부터 모든 능력과 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배는 예배대로 드리고 돌아가서는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이 체질이 된 사람은 천하무적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우습게 아는데 목사의 말을 듣겠습니까?

“내 맘이야, 누가 뭐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내 안에 주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창세전에 예비된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예배는 축제입니다. 예배는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는 능력입니다.

참된 예배,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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