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바울신학

바울 생애의 자료들과 연대기

에반젤(복음) 2021. 7. 30. 12:24

바울의 신학(1)

 

 

I. 서론

 

 

1. 바울의 이름

 

바울서신에서 사도는 자신의 이름을 바울(paulos)로 부르고 있으며, 이 이름은 베드로후서 3:15과 그리고 사도행전 13:9이후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이 바꾸어지는 것에 주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셈식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헬라식 혹은 로마식 이름이었다. 다라서 "사울"이 회심할 때 바꾸어졌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 헬라식으로 바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2. 바울 생애의 자료들과 연대기

 

바울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얼마 되지 않지만 두 개의 주요 자료들이 즉 바울의 진정 서신들과 사도행전이 우리들에게 전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자료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선교 활동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는 그의 뚜렷한 문학적 경향들 및 신학적 관심사들에 의해 채색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활동 순서표] 에 있는 바울 서신과 사도행전 사이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임을 주목해야 한다.

 

(1) 누가는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돌아온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2) 누가는 바울의 선교 활동을 세 묶음으로 분류하고 있다.

(3) 누가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탈출하게 된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4) 누가는 바울이 스데반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을 묘사하는 반면 바울 자신은 단지 "하나님의 교회"혹은 "교회"를 핍박했다고만 말하고 있으며 스데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II. 바울의 생애

 

 

1. 젊은 시절과 회심

 

(1) 바울의 젊은 시절

 

바울이 출생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빌레몬서 9절을 토대로 주후(AD)처음 10년 이내에 태어났을 거라 추정하고 있다. 바울은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우리들에게 결코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의 이름 파울로스는 그를 로마의 어느 도시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유대적 배경을 자랑하며 "히브리인"이라고 부름으로서 이는 그가 도한 아람어도 말할 줄 알고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로도 읽을 수 있는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서신에 나오는 스토아의 수사적 논쟁의 흔적들은 그가 헬라 교육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누가는 바울을"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헬라도시인 다소에서 태어난,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로 나타내고 있다. 만일 바울의 대생에 대한 누가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그것은 바울의 헬라적 배경과 유대적 배경 모두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2) 바울의 회심

 

바울은 갈라디아서 1:16에서 그의 일생의 중대한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회심이 다메섹 근처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동사 "돌아갔다"는 말에서 추정된다. 따라서 36년경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도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2.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바울 서신에 의하면 바울은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을 두 번 방문하였는데, 한 번은 3년 후에 그리고 도 한 번은 14년 후 이다. 바울이 AD39년 다메섹에서 탈출한 후, 그는 처음으로 "게바를 심방하려고"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바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루살렘에 출입하고 계속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였으나 이일로 헬라파 유대인들을 자극하여 바울을 죽이고자 힘쓰게 된다. 이 일이 헬라파 유대인들을 화나게 함으로서 위험이 발생하여 형제들이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또 다소로 보냈다. 다소에서의 체류는 바나바가 방문함으로서 긑이 나는데, 바나바는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1년간 머무르면서 복음 전파에 전파하였다. 누가는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즉 "기근 방문"을 이 기간과 관련시킨다.

 

3. 바울의 선교

 

사도행전은 바울의 선교 활동을 세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누가는 현대인들이 선교 여행을 나누는 것처럼 제1차 선교, 2차선교, 제3차 선교 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바울의 선교 여행들은 대략 AD46-58년에 걸쳐 있었는데 그의 생애에서 가장 활동적인 기간이기도 하였다.

 

(1) 제1차 선교 (AD46-49)

 

바울은 예루살렘 회의 이전에 있었던 14년 동안의 선교 활동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어떤 상세한 내용도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의 빌립보까지 통과했기 때문에, 그는 제1차 선교 기사에서 남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을 언급할 수 있다.

 

(2) 예루살렘 회의 방문(AD49)

 

누가에 의하면 바울이 안디옥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 유대에서 온 회심자들이 안디옥에 도착하여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 이 주장으로 유대로부터 온 형제들과 바울 및 바나바 사이에 변론이 일어나게 되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및 그밖의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이 방문이 이른바 예루살렘 회의로 불리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회의는 초보 단계에 있는 교회를 유대교적 뿌리에서 해방시켜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열어 놓았다.

 

(3) 안디옥 사건(AD49)

 

예루살렘 회의 이후 바울은 안디옥으로 내려가 베드로와 함께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으나, 곧 유대교적 성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 회심자들과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베드로를 비난하였다. 베드로는 그들의 비난에 굴복하여 자신을 이방인 회심자들과 구별하였고 이방인 회심자들에 대한 유대교 음식 규정의 규율 문제가 이때 제기 되었다.

 

(4) 음식 문제들에 대한 예루살렘 훈령

 

바울이 베드로가 안디옥을 떠난 이후 야고보가 사도들과 장로들을 다시 소집 하였으며, 협의 결과 야고보는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편지를 보내어 권면하기를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짐승과 음행을 멀리하도록 하였다.

 

(5) 제2차 선교(AD50-52)

 

실라가 바울을 동행하여 안디옥을 출발해서 그들은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지나 남갈라디아의 도시 즉 더베와 루스드라로 나아갔다. 비르기아를 지나 북갈라디아로 가서 거기서 새로운 교회들을 세우고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다. 바울은 환상에 응답하여 빌립보의 항구인 네압볼리로 갔다.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쫒은 것 때문에 투옥되어 매질을 당한 후, 바울은 암비볼라와 아볼로니아를 경유하여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논쟁으로 인하여 마침내 아덴에 이르게 되었다. 아덴 사람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실패한 바울은 고린도로 나아갔다. 바울의 고린도 체류가 끝날 무렵 그는 총독 갈리오앞에 글려 왔으나 갈리오는 그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유대법에 관한 것으로 간주하여 무리들을 쫒아 냈다. 고린도를 떠나 겐그리아 항구에서 출발하여 에베소와 가이사랴로 향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후 그는 안디옥으로 가서 거기에서 1년 이상을 머물렀다.

 

(6) 제3차 선교 (AD54-58)

 

바울은 안디옥을 떠나 북갈라디아와 부르기아를 지나 에베소에 이르렀다. 그의 선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에베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도 이 기간에 기록하였다. 에베소를 떠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드로아로 갔으나 그 곳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려고 작정하였다. 나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 10-13장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하였는데 이는 그의 세 번째 방문이었으며, 아마도 57년 겨울에 도착하여 아가야에서 3개월간 체류하였다.

 

4. 바울의 마지막 투옥

 

바울의 남은 생애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58년 이후의 몇 년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간 동안 바울은 긴 수감 생활을 견디어 내어야만 했다.

 

(1)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과 체포(AD 58)

 

예루살렘에 도착하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 앞에서 야고보에게 문안을 하였다. 그리고 7일 간의 의식 기간이 거의 끝났을 때 아시아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는 바울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바울이 모세 율법을 위반하고 성전을 더렵혔다는 이유로 그를 성전에서 끌어내어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바울은 안토니아 요새에 주둔하고 있는 천부잔에 의해 구출 되었다. 그러나 그 천부장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유대 총독 안토니우스 벨릭스에게 보냈다. 벨릭스는 2년 동안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2) 가이사에게 호소: 로마로 여행(AD60)

 

새 총독 포르시우스 베스도가 부임하자 바울은 그의 로마 시민권 덕택으로 로마에서 재판받기를 청구하였다. 베스도는 이러한 청구를 허락했다. 바울이 이 로마 투옥 기간 동안 빌레몬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립보서를 기록했다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 이다.

 

(3) 바울의 마지막 생애

 

바울의 생애 마지막에 관한 그 밖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 우리는 교회의 전승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들은 전설적인 내용들로 심하게 채색되어 있다. 네로의 박해에 의해 바울이 죽음을 당했다는 우세비ㅣ우스의 증언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네로의 박해는 AD64년 여름부터 황제가 죽을 때가지 지속되었다. 다라서 바울이 순교를 당한 연도를 정확히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바울은 지금의 바실리카 성당의 근처에 있는 오스티엔시스 길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울의 신학(2)

 

 

제1장

 

 

I. 목표, 한계, 문제점들

 

서신들 안에서 바울은 특정 주제들을 발전시키며 도한 보다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교회들을 격려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서신들은 이 이중적인 목적을 예증하고 있다. 바울의 신학을 묘사하는 일은 사도의 사상을 하나의 형태로 체계화하는 일인데, 사도 자신은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 된 형태로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서 신학자는 단순히 개별 본문들을 자기들이 당면한 문맥으로 해석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바울의 전체 메시지를 나타내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리고 문맥적 상황을 넘어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들의 상관적인 의미까지도 포함하지 않으면 안된다.

 

 

II. 바울의 배경

 

 

바울의 신학에 영향을 미친 다섯 가지 요소들을 고려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모두가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1. 바리새적, 유대교적 배경

 

바울이 모세 율법을 반대하는 논쟁적인 단락들이,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바리새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으로서 그의 생활을 자랑스럽게 회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흐리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때때로 그는 구약 성경 본문들을 적절하게 고치거나 도는 자기가 인용하는 구절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며 또한 어떤 본문을 알레고리화 하기도 하고 혹은 원래의 문맥과 아예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의 유대교적 배경이 그로 하여금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의 행동의 통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성경을 인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아울러 기독교 복음을 예고하고 혹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준비로서 구약성경을 종종 인용한다.

 

2. 헬레니즘적 배경

 

바울이 강한 유대교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로마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헬라어로 서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등은 그가 도항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전문적인 수사학자로 훈련은 받지 않았지만, 그의 작문 및 표현 양식은 종종 헬라 수사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3. 바울이 받은 계시

 

바울의 신학은 무엇보다도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체험과 그 체험에서 발전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영향을 받았다. 바울 자신은 이 체험을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나타내신 아들의 계시로 말한다. 그 "계시"가 바울에게 인식시킨 것은, 첫째,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신적 행동의 단일성으로서, 그것이 구약과 신약 모두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둘째,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본 환상은 바울에게 메시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가지고 있는 구원론적인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셋째, 그 계시는 바울에게 구원사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바리새적 배경이나 혹은 그의 헬라적인 문화적 뿌리 훨씬 이상으로, 예수님의 계시가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찰력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4. 바울, 예수, 초기 전승

 

바울일 최소한 그리스도에 대한 몇 가지 관념들은 교회의 초기 전승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는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적 요소들을 자신의 서신에 삽입시켰다. 아울러 그의 신앙고백 형식문도 교회에서 사용되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서신에서 진부한 용어를 사용하는 몇 가지 권고적 부분들은 바울이 교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이끌어낸 권면적 혹은 교리 문답적 내용을 통합시키고 있음을 인식한다. 바울이 초대 교회 전승에 의존하고 있다는 도 하나의 측면은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그가 알고 있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바울이 예수님의 지산사역 기간에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이유는 목격자가 아니었던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낭, 죽음, 부활의 구원 효과들을 강조했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바울의 관심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절정을 이루는 사건들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예수의 생애 중에 일어난 사건들을 암시하는 것은 놀랄 만큼 적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신학적, 케뤼그마적 성격이 있는 문맥들 속에서 기록되고 있다.

 

5. 바울의 사도적 경험

 

바울의 신학의 발전에 있어서 도 하나의 요소는 사도로서 그리고 소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들을 세운 선교사로서의 경험이었다. 바울의 사도적 경험은 영지주의자들과의 접촉에서 나온 산물인가? 이것은 오늘날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발한 영지주의가 바울 시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바울의 가르침 속에서 결국 AD2세기의 만발된 영지주의 형태 속에 넣을 수 있는 요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기껏해야 이들 요소는 바울 서신에서 원시적인 연지주의적 요소들에 불과하다.

 

 

 

제2장

 

 

I. 지배적인 관점들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론

 

 

1. 바울 신학의 열쇠

 

바울의 신학, 그 본질과 핵심, 또는 그 중심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종교개혁 이후로 루터파와 칼빈주의 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였으며, 19세기에 F.C Baur는 헤겔 철학을 이용하여 "육"과 "영"사이의 반정립에 비추어 바울 신학의 핵심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 R. BULTMANN은 신약 신학이 "초대교회의 케뤼그마와 함께 함께 시작된 것이지 그 이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는데 말하자면 초대 교회의 케뤼그마는 역사의 예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바울의 신학에 대한 BULTMANN의 논술은 주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에서 BULTMANN은 바울의 인간론적 개념들을,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의, 현재적 실재와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인간의 의, 화해, 은혜, 말씀, 교회, 성례, 믿음등과 같은 바울의 개념들을 다룬다.

 

그러나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 이같이 접근함으로서 로마에 있는 바울의 개념들의 발전을 너무 배타적으로 다루어 그 밖의 다른 모든 개념들을 종속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보다 최근에 J.C Beker는 동일한 문제에 직면했는데 그는 바울의 가르침에 상황적 일관성 있는 중심 둘 다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신학에 대한 열쇠는 사도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거듭 무엇을 진술했는가에 비추어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도"는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을 구원론의 중심에 놓으며 그리고 그 밖의 바울의 모든 가르침은 이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론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한다.

 

2. 바울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인 복음은 특히 기독교적 의미를 지닌 단어이며, 또한 이것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바울에 의해 발전된 것이 거의 분명하다. 복음이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의 의미를 요약하는 개인적인 방식이 되었는데, "나의 복음" "내가 전파하는 복음" 혹은"우리 복음" 으로 말할 수 있었다.

 

(1) 복음의 계시적, 묵시적 성격

 

그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통하여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알려졌다. 그리하여 복음은 새 시대의 실재, 종말의 실재를 나타낸다. 이에 비해 복음의 묵시적 성격은 바울이 이를 "신비, 비밀"로 보는 것과 관련시켜야 하는데, 이 비밀은 오랫동안 하나님 안에 감추어 졌다가 이제 나타난바 되었으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새로운 계시이다.

 

(2) 복음의 역동적 성격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힘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도한 그 복음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3) 복음의 케뤼그마적 성격, 바울의 복음은 바울 이전 케뤼그마 전승과 관련되어 있다.

 

(4)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복음의 규범적 성격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행동, 교회, 직분자들 그리고 인간적인 가르침 등을 비판적으로 감독한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의 규범적인 성격은 또한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이 규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울러 인간들에 의해 고안된 율법주의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성격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5) 복음의 약속하는 성격

 

복음은 옛적에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지속시킨다.

 

(6) 복음의 보편적 특성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3. 하나님과 그의 구원사 계획

 

복음에 대한 이해에서 바울에 의해 덧붙여진 신비라는 개념은 광범위한 전망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특히 하나님의 세 가지 특성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하나님의 진노이다. 이 특성은 바울이 구약성경에서 물려받은 것인데 이곳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신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악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다. 둘째, "하나님의 강직성"혹은 "하나님의 의"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적, 사법적 활동을 묘사하기도 한다. 즉 하나님은 "의"로 심판하신다. 이러한 문맥 안에서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은 그가 법적으로 의롭게 행하신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하남님의 사랑"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구원사 계획의 기초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사 계획이라는 말로 생각하고 있는 모든 주석가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원 계획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역사적, 집합적, 우주적, 그리고 종말론적 차원들을 나타내고 있다.

 

(1) 신적 계획의 역사적 차원은 창조에서부터 그 완성까지 인간 역사의 모든 국면들을 내포하는 것에서 나타난다.

 

(2) 신적 계획의 집합적 차원은 이스라엘이 감당한 역할에서 나타난다.

 

(3) 신적 계획의 우주적 차원은 바울이 창조된 전 우주와 인간 구원을 연관 시키는 데서 나타난다.

 

(4) 신적 계획의 종말론적 차원도 역시 중요하다. 왜냐하면 만일 종말론이 이미 시작되었다면 다른 관점에서 볼때 그 "끝"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적 측면과 함께 또한 현재적 측면도 있다. 이 현재적 측면에 따르면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구원을 받았다. 바울의 종말론의 이중적 측면은 다양하게 설명되어 왔는데 C. H. Dodd와 R. Bultmann과 같은 학자들은 그 종말론의 지배적인 측면을 "실현된 종말론"이라고 부른다.

 

4. 구원사에서 그리스도의 역할

 

그리스도의 고유 이름인 "예수"만으로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는 곧 그리스도 예수의 의미, 혹은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기독론에 주요 관심이 있음을 가리킨다.

 

(1) 선재하시는 아들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혹은 "그의 아들"로 부르고 있다. 유대 세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저변에 있는 지배적인 사상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임무를 위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과 그러한 부르심에 상응하는 순종이라는 개념이다. 바울은 기능적 기독론을 능가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아들"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곳에서 구원 계획의 마지막을 다루고 있으며, 이때 "아들 자신"이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신 그분에게 복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할을 완수함으로서 그리스도는 "아들"이시며, 아버지와 관련을 맺는 것이다.

 

(2) 그리스도

 

70인경에서 christos는 히브리어 masiah,즉 "기름 부음 받음 자"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칭호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바로 직후에 나사렛 예수에게 적용되었으며, 이는 분명히 빌라도가 예수님의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칭호에 의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바울의 christos사용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칭호의 빈도가 아니라 이 칭호가 사실상 예수의 두 번째 이름이 되었다는 점이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은 것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계시는 바울의 과거를 갑작스럽게 중단 시켰을 뿌만 아니라 그 자신의 메시아적 신념을 교정시켜 놓았다. 말하자면 그 신념이 바울에게는 두 번째 천성이 되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곧 예수님의 두 번째 이름이 되었던 것이다.

 

(3) 주 (kyrios)

 

아마도 특히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 대해 훨씬 더 중요한 바울의 칭호는 퀴리오스(kyrios), 즉 "주"이다. 바울은 구약 성경, 특히 그가 구약성경 본문들을 인용하거나 설명하는 구절들에서 여호와에 대해 "퀴리오스"를 사용한다. 바울이 부활하신 대해 kyrios를 독립적으로 사용한 것은 흔히 그의 헬라적 배경에 기인한다고 말해 왔다. 바울에게 있어서 "주"라는 칭호는 무엇을 의미하였는가? 첫째, 이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지위를 가리키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둘째, 극히 존귀하게 되신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그 분과 동등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셋째, 재림하실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가 그 후 점차 초기 단계의 예수님 에게도 반영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넷째,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여호와에 대해 사용하기에 이르렀던 칭호를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했다는 사실은 예수를 여호와와 동등한 수준에 놓으며 또한 그의 초월적인 지위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4) 고난, 죽음, 부활

 

신적 계획의 결정적인 순간은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 죽음, 부화이었다. 바울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부활에 이르는 서막으로 본다. 바울은 고난, 죽음, 부활과 떼어서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바울이 예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국면에서 예수가 아들로서 복종하신 것이 실제로 드러났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5) 주와 성령

 

우리는 이미 바울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로 불렀음을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여러 곳에서 바울은 영과 그리스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바울에게 있어서 영은 능력의 영인 "활력을 주는 영"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랑, 소망, 믿음의 원천ㅇ다. 이 영이 인간들을 "율법으로부터", 그리고 비도덕적인 모든 행위로부터 해방시킨다.

 

5. 그리스도 사건의 효과들

 

"그리스도 사건" 이라는 용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생애 및 부활의 삶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의 복합체를 가리키는 일종의 간단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보다 중요했던 것은 이한 여섯 가지 결정적인 순간들의 복합체였던 것이다.

 

(1) 칭의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의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이미지는 "칭의"이다. 이 개념은 윤리적이든 법정적이든 간에 사회적 관계, 혹은 재판상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의롭게 하셨다"고 바울이 말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재판석 앞에서 무죄 혹은 결백함을 선고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칭의의 과정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해 이루어 놓으신 일의 결과로 인하여 하나님 없는 죄인을 옳다 하시고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시작한다.

 

(2) 구원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사건의 효과를 나타태기 위한 매우 일반적인 방식은 "구원"이다. 이 이미지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국가적이든 대격적인 것이든 혹은 도덕적인 것이든 간에, 악과 해로부터의 구원 및 구출을 나타낸다. 이 말을 사용할 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았다"는 것, 말하자면 악으로부터 구원받았음을 인식하고 있다.

 

(3) 화해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의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다른 이미지는 "화해"이다 화해는 분노, 적대감, 혹은 소원에서 사랑, 우정, 친밀감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바울이 이 이미지를 그리스도 사건에 적용할 때 그는 항상 인간들, 원수들, 혹은 죄인들을 자신과 화해하는 하나님 및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예증에서 놀라운 일은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의 이러한 효과를 인간에게서 우주 자체로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화해의 개념은 "속죄"와 동일하다.

 

(4) 속죄

 

바울은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또 하나의 효과를 "속죄"라는 이미지로 표현한다. 바울은 오직 로마서 3:25에서만 그리스도 사건의 효과로 이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여기서 그는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에 대한 구약적 연관성을 반영시킨다.

 

(5) 구속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의 효과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구속"이다. 이 이미지가 바울에게서 나왔다고 말하기란 어렵다 이 말은 헬라 세계에서 노예들의 거룩한 해방과 관련이 있다. 바울이 "구속"을 그리스도 사건의 한 효과로 생각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고남, 죽음 등이 속박과 노예 상태에서 죄인들을 해방시키는 일종의 속전으로 인정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함"으로 부른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일의 부담이 되는 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6) 자유

 

구속이라는 이미지와 관련있는 것으로서 바울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그림은 "자유"이다. 바울은 이 이미지를 그리스도 사건에 적용함으로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인간을 해방시켜 그들에게 자유 도시 및 자유 국가의 시민권을 부여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사건의 이 효과는 또한 종말론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의 운명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7) 성화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의 효과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성화"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의 거룩함"이 되도록 하셨는데 말하자면 인간들이 하나님께 새로이 헌신되고 또한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삶을 맞추도록 하는 수단이 되도록 하셨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인간들을 서서히 "주님께로 향하도록" 새롭게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8) 변화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인간들을 서서히 "주님께로 향하도록"새롭게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9) 새 창조

 

전술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바울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 새 창조" 이다. 바울은 이 이미지를 세상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구약적 언급들에서 가지고 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성을 새롭게 창조하셔서 " 새 생명"을 주신 것을 의미하는 데, 이는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공유하기로 되어 있는 삶이다.

 

(10) 영화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지막 이미지는 "영화"이다. 이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능력의 또 다른 측면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 즉 우리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아 지금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미리 그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부여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 (일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