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박사/전도의 창

복음전도의 전략및 전도의 모범

에반젤(복음) 2021. 7. 17. 16:46

복음전도의 전략및 전도의 모범

 

1. 성경적인 복음 전도 전략

- 복음 전도는 일종의 영적인 전투이다.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다른 신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돌아오라고 강권하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전도 대상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전도 전략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 한국 교회의 복음 전도자들은 일반적으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의욕은 많은데 전도해야 할 사람들의 종교적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고 일방적으로 외쳐버리고 마는 ‘전도자 중심의 복음전’의 형태를 취해 왔다. 그러나 성경의 전도자들은 듣는 사람의 종교적 상황도 고려해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미전도자 중심의 복음 전도’(receptor- oriented- evangelism)를 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1) 복음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 복음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 자신이다. 하나님은 전도자들의 복음 전도를 통하여 반드시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 전도자들을 살펴보면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기회가 오면 자기들 안에 함께 하시는 그들의 하나님을 선포했다.

2) 전도자들은 접촉점을 찾아서 복음을 전했다.

- 전도자들은 접촉점을 만들어서 복음을 소개하는 일에 익숙했다. 꿈을 해석하는 일로 제왕들을 만났지만 그 꿈을 해석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소개했고, 바다위에서 풍랑을 만난 선원들에게 풍랑을 일어나게도 하고 풍랑을 잔잔케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소개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접촉점으로 해서 생수를 말하면서 생수를 주시는 분인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 빌립도 이사야서 53장을 읽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그 본문을 접촉점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바울도 아덴에서 알지 못하는 신단을 접촉점으로 해서 알지 못하는 그 신을 알려 주겠다고 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3) 전도자들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 사람이 위기를 만났을 때 마음이 약해지고 누군가를 의지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자기 민족에게 다시 찾아가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도록 인도했다. 엘리야 선지자는 위기에 처한 사렙다 과부에게 찾아가서 어려운 기근을 이기게 해주고 죽은 외아들을 살려 주어서 하나님을 믿게 했다. 엘리야 선지자가 기근으로 어려움에 빠진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갈멜산으로 모이기 해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해서 믿게 했다.

4) 전도자들은 미전도인들의 처지에서 복음을 전했다.

- 히브리인들이 벽돌 굽는 일로 곤경에 처했을 때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 힘든 일을 감당하다가 드디어 그들에게 돌아가서 애굽의 바로와 맞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말씀을 선포할 수가 있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었을 때 그들에게 전도자로 서는 것을 자신은 원했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했고 이제야 히브리 노예들과 같은 처지에 서게 될 때에 그들이 받아들여 주었던 것이다.

5) 다른 신을 섬기는 미전도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미전도인들도 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어렴풋이 알고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도자들은 그들의 신과의 전적으로 다른 창조주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전파하며 증거했다. 다른 신을 섬기는 배의 선원들에게 요나 선지자는 분명히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했다.

- 사람들은 능력으로 신을 평가하고 섬기고 있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가까이 계신 신이라고 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는 미전도인드리에게 가장 좋은 전도 전략이다.

6) 전도자들은 삶으로 복음을 전도했다.

- 전도자들은 말로만 복음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증거했다. 요나는 말로써 배의 선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풍랑을 만난 것은 자기 때문이므로 자신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라고 하면서 자신이 책임을 지는 삶을 보여 주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기꺼이 들어가면서도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는 믿음을 보여 주었다.

7) 전도자들은 표적을 통하여 전도하기도 했다.

- 전도자들이 병자를 고치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불로 응답을 받기도 하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기도 하고, 풀무불 속에서 살아 나오기도 하고, 사자굴 속에서 살아 나오기도 해서 복음을 증거했다. 엘리사가 사렙다 과부의 즉은 외아들을 다시 살아나게 해서 이 과부로 하나님을 믿게 했고, 아합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멜산에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을 믿게 했다.

8) 하나님은 계속 전도하는 전도자에게 미전도자들을 인도했다.

- 하나님은 계속해서 전도하는 전도자에게 새로운 미전도인들을 보내주어 전도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사르밧에서 사르밧 과부에게 복음을 전하는 엘리야를 갈멜산으로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게 했다. 다시스로 가는 배의 선원들에게 전도했던 요나를 하나님은 다시 니느웨로 보내 니느웨 백성들에게 전도하게 하셨다. 예루살렘고 사마리아와 웃다와 욥바에 다니며 바쁘게 전도하는 전도자 베드로를 하나님은 가이사랴에 보내어 백부장 고넬료의 온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듣는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다.

9) 전도자들은 기도로 준비해서 복음을 전했다.

- 복음을 선포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는 한 사람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없다. 노아가 당시 부패하고 탈락한 사람들에게 120년 동안이나 심판을 선포했고, 예수께서 영으로 함께 하셨지만 노아의 가족 여덟 사람만 구원을 받았다. 믿는 사람이 많고 적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가늠할 수는 없다. 다니엘이 느브갓넷살에게 가서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자신도 기도하다가 왕 앞에 담대하게 섰다.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서원하며 기도하다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엄청난 기적을 일으켰다.

- 빌립보 감옥에서도 기도하다가 간수의 가정에 복음을 전했다. 복음 전도자들이 기도하면서 전도할 때에 성령의 능력도 나타났다.

10)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한 후에 회심으로 초청했다.

- 전도자들이 구원을 목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면서 듣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회심으로 초청했다.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에게 심판의 복음을 선포했는데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여 죄에서 떠나는 역사가 온 성에 일어났다. 회개와 믿음은 함께 일어나는데 회개가 먼저 일어나기도 하고 믿음이 먼저 생기기도 한다.

- 바울도 루스드라에서 이 헛된 일에서 떠나라고 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고 천지와 바다를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믿음을 선포했고, 아덴에서도 알지 못하는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다고 하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초청했다.

11) 전도자는 믿는 자가 적거나 회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 전도했다.

- 느브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하나님을 높이며 섬기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다니엘이 먼저 전도해서 느브갓네살이 하나님을 신앙고백했고, 사드락고 메삭과 아벳느고가 온 몸으로 하나님을 증거하자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다가 어려운 고난을 겪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가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상당한 기간과 여러 사람의 전도가 있었다.

-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시켰지만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스데반의 전도에 대적했던 바울도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아나니아의 전도로 말미암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12) 전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다.

- 예수님도 복음을 전파하면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고(행10:38), 빌립도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를 전했을 때 “더러운 귀신들”(evil spirits)이 나갔고(행8:7), 바울도 자신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하면서 따라다니는 “귀신”(a spirit)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내었다(행16:18). 사도 요한은 분명히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그 증거하는 말로 우리 성도들과 하나님을 참소하는 마귀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게12:11).

13) 전도자는 전도를 받아들인 사람을 다시 복음 전도자가 되게 했다.

- 예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 내려가서 물 길러 온 여인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예배하라고 하면서 자신을 바로 그리스도라고 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은 이 여인은 자기 동리에 들어가서 자기가 믿은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처음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믿은 사람들의 감격은 놀라운 것이다.

- 안드레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를 만나고 나서 곧 바로 자기 형제인 베드로에게 메시아를 증거했다. 빌립도 나다나엘에게 예수께 와보라고 하면서 예수를 증거했다.

14) 전도자는 가장을 먼저 전도해서 온 가정이 다 믿도록 했다.

- 노아가 하나님을 믿고 나머지 가족들도 다 하나님을 믿고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왕의 신하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온 가족이 다 믿었다. 예수께서 그를 영접해 들이는 삭개오의 집에 가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눅19:9)고 하셨다. 백부장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자기 가정에 초청해서 베드로에게 복음을 들었을 때 듣는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행10:44).

- 한 가장이 예수를 믿을 때 온 가정 식구들이 다 예수를 믿게 된다고 하는 가족의 단일성을 신약성경은 강조하고 있다고 말하는 주장에도 주목해야 한다.

2. 전도 대상자 선정 및 전도전략

1) 전도 대상자의 선정

전도를 하기 전에 먼저 누구를 전도할 것인지를 기도 중에 선정하여야 한다.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라면 어느 지역에 가서 어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보다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전도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짙은 전도대상자를 찿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전도를 나선 초보자가 처음부터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 거부를 당하거나 승강이를 하게 되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전도대상자가 복음을 받아들일 수용성이 높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전도에 도움이 된다.

(1) 교회의 성도들과 사회적인 관계망을 가진 사람 (특히 친구, 친척, 이웃, 동료 등)

(2) 교회에서 도와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 (영적인, 육체적인 환자, 무의탁 노인, 정신박약자, 농아자, 미혼모, 맞벌이 부부의 아이, 장애자, 죽어가는 사람과 그 가족 등)

(3) 어떤 종류이든 신앙을 가진 사람, 어떤 신앙을 경험했던 사람 (근래에 종교, 철학, 약물, 공상적인 계획, 유토피아적 약속, 또는 자기 자신 등 어느 것에든지 믿음을 상실한 개개인은 자기의 생활을 정상화하고 의욕을 불어넣어 줄 어떤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4) 대규모 문화 변동을 경험하는 주민 (예를 들면, 전통적 가치관의 퇴조, 결혼한 가족의 형태나 그 가치관의 변화, 또는 친척의 구조나 형태이 변화, 주요한 경제적 변동, 즉 실업, 낮은 고용 수준,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 기업 합병, 흉작, 공장폐쇄 등.)

(5) 일반대중(상류층보다)

(6) 중요한 인생의 변화를 겪은 사람 (인생의 안정기에 있는 사람보다)

이들이 복음수용에 개방적이 된다. 이제 개인전도의 경우 다음의 순으로 그 대상자 를 기록하자.

- 백지를 놓고 기도 중 나의 가족, 친척, 직장동료, 학교급우, 이웃, 지인(知人) 중 불신자의 이름을 기록하라.

- 교회와 관계있던 분들 중 구역카드, 교회학교 각반 학생카드의 가족 중 불신자 혹은 전에 신앙생활하다 쉬는 사람, 그리고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으로 교회에 왔던 사람들을 기록하라.

- 축호전도, 노방전도를 받은 분들 중에 관심을 보인 사람, 더 접근해 보고 싶은 사람 등을 적어본다. 이들 중 이번에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떠오른 사람은 성령님께서 허락하시는 대상으로 믿고 카드에 이름을 기록하라.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다음의 대상들을 참고하여 보라.

가족 및 친척 이웃
조부모, 부모, 아내, 자녀, 친정부모, 장인, 장모, 형님, 오빠, 누나, 언니, 동생, 외가, 삼촌, 외삼촌, 사돈댁, 고모댁, 처가, 이모댁, 기타 친척 주인, 세든사람, 앞집, 옆집, 뒷집, 같은 동,같은번지, 반상회회원, 세탁소, 복덕방, 관리사무소직원, 이사온분, 자녀들의친구부모, 미장원, 주변가게, 통장집, 기타이웃
지역 친분관계
동사무소직원, 파출소직원, 경로당노인, 청소부아저씨, 우유, 요구르트판매원, 화장품판매원, 신문배달원, 학교선생, 자모회, 학부모회,병원, 은행, 미장원, 야채판매원, 파출부, 지역유지, 주민 친구중의불신자, 동창생, 선배, 후배, 고향사람, 종씨, 친목회, 믿다가낙심한사람, 교회출석도중포기자, 구역원가족, 계모임, 구역원 친척 ,구역원친구, 구역원이웃, 기타전지역,기타 친분이있는자
직장 및 생업 기타
직장동료, 회장, 사장, 직속상관, 부하직원, 기사, 수위, 단골손님, 종업원, 거래처, 직장 및생업에관련된사람가족, 그들의친구, 직장 주변사람들, 다방 거리에서만난사람, 사거리, 정류장, 역전, 지하철, 개인택시, 취미그룹, 버스안, 축호방문 가정, 목욕탕, 현역군인, 놀이터, 약수터, 우연히인사나눈사람

 

(2) 비신자 접촉을 위한 10가지 접촉 전략

① 복음에 수용적인 사람들에게 먼저 접근하라

- 어느 지역에나 항상 복음에 저항적인 집단과 수용적인 집단이 있다. 제한된 선교자원을 가진 우리로서는 우선 복음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② 사회적 관계라는 그물망(social network)으로 접촉하라.

- 개인주의가 발달할수록 잘 모르는 사람의 설득은 효과가 적다. 이른바 60년대의 노방전도는 거의 열매를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거부감과 무관심만 조장하게 된다. 친족이나 친구와 같이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통해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③ 사람들에게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라

- 죽은 다음에 천당가는 복음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는 복음이 되어야 한다. 현대인은 사후세계보다 현실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삶의 궁국적 의미야말로 기독교 복음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④ 불신자들의 순수한 의심과 질문에 관심을 가지라

- 비신자들이 흔히 가지는 질문들, 예를 들어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다가 오시는가? 등에 대해서 성경적 관점에서 분명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준비되어야 한다.

⑤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소외감, 즉 진정한 교제의 결핍이다.

- 소외감을 극복하도록 도와 주라.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교제그룹이 없기 때문이다. 소외계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잘 사는 사람들의 소외의식은 오히려 더 절망적일 수 있다.

⑥ 유례없는 정신적 자유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낮은 자존감 때문에 시달린다.

- 복음은 이러한 자신감의 결핍을 해결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창조의 교리는 인간을 죄인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은 바 되었음을 가르친다. 구원의 교리 또한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 이전에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강조한다. 복음의 구조는 좋은 소식(창조)-나쁜 소식(타락)-좋은 소식(구원)의 공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⑦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도록 하라.

- 현대인의 공통된 고민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야말로 현대인의 가장 확실한 믿음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와 실패를 나름대로 모방하는 보험사업이 갈수록 번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문제를 치료하는 확실한 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뿐이다.

- 역사를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현대인의 불안을 극복하게 하는 비결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⑧ 현대의 세속인은 그리스도를 못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못 믿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믿을 만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리스도도 믿을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⑨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라.

- 기독교에 대해 많이 들은 것에 비해 비신자들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대해 무지하다. 현대 사회에는 명확하게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는 프로그램만 있다면 접촉될 비신자가 얼마든지 있다고 할 수 있다.

⑩ 오늘 교회의 장벽은 복음의 장벽이라기보다 문화의 장벽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비신자에게 낯선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 문화적인 토착화를 시도해야 한다.

3. 가족, 친척전도

영혼구원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고넬료 가정은 복음을 받을 때에 고넬료뿐 아니라 온 집안과 친척이 함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복음을 받아 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약속은 가정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부모 형제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한다.

내 가족, 내친척, 내 이웃은 가장 시급한 전도의 대상이다.

총력전도를 전후하여 가정에 특별한 행사(결혼식, 회갑, 추도식, 자녀들의 백일, 돌 등)가 있을 때 , 불신친척들을 모으고 목사님의 전도를 듣게 하는 기회를 마련한다면 역시 좋은 전도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전도자 자신의 삶과 행실이 가족, 친척들에게 갖는 영향력이 전도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게 된다.

빌 브라이트는 가장 가까운 가족, 친척, 이웃들의 전도를 위한 전도 전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 당신이 접촉하는 사람들 즉 가족, 친구, 동료, 이웃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라.

2) 명단에 올라 있는 각 사람들을 위하여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준비시켜 주시도록 오늘부터 규칙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라.

3) 다음 한 달 동안에 명단에 올라 있는 각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의 행동을 먼저 취하도록 하라. 다정하게 집으로 전화를 걸거나,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거나 집에서 구운 빵 한 접시를 갖다 주거나 그의 일손을 도와 주거나, 점심이나 저녁 식사에 초대하라.

4) 명단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교회나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행사에 초대하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라.

5)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도록 하라.

특히 이 친족 전도 문제는 가장 가깝고도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너무 나를 잘 알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족과 친족 전도가 가장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도는 내가 하지만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것이 전도 후의 결과이다. 때문에 비관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만큼 쉬울 수도 있다.

4. 문서전도

1) 기독교 문서의 필요성

오스왈드 제이 스미스는 복음을 가지고 모든 인간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인쇄물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그의 신념을 피력한바 있다.

벤자민 플랭크린은 한때 말하기를 "나에게 26개의 납으로 된 군인(Lead Soldiers)을 주면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물론 26개의 알파벹 주형 타이프를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인쇄물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한국전체인구의 25%가 기독교 인구라고 하지만 우리의 모든 노력, 우리들의 모든 회의, 우리들의 모든 조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다수는 복음전도 책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문서전도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전도를 위해서 자신의 세계에 많은 매개체를 쓸 수 있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2) 기독교 문서 전달의 기회

(1)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이용할 것. 여러가지 좋은 팜프렛과 소책자를 휴대할 것(당신은 이 소책자를 구경해본 적이 있나요?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있는 이야기 입니다. 당신도 흥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개인적인 접촉을 강조할 것

(3) 하나님의 말씀을 직장 동료나 가까운 친지, 친구들에게 정하라.

(4) 가능하다면 언제나 책을 읽어라. 그러면 옆 동료도 호기심이 생겨 읽고 싶어할 것이다.

(5) 물건을 사는 곳에서: 전도 소책자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장소는 당신이 물건을 사는 상점이다. 상점주인치고 충실한 단골을 빼앗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때 교회 신문이나 잡지, 기독교 문서 등을 전달한다.)

(6) 거리에서: 주차한 자동차나, 심부름 온 사람에게.

(7) 공공장소에서: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에서 옆좌석의 손님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8) 당신 집에서: 집에 드나드는 전기 검침원, 수도 검침원, 우편 배달부, 아동서적 판매원, 신문배달 소년, 음식점 종업원 등 주부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접한다. 그들에게 전도책자를 나누어 줄 수 있다.

(9) 우편을 이용해서: 모든 기독교인의 좌우명을 "편지마다 전도지를 동봉한다"가 되어야 한다.

3) 기독교 문서 분배시 주의사항

(1) 깨끗한 옷을 입고 깨끗한 외모를 갖추도록 하라.

(2) 친절하고 유쾌하라.

(3) 대담하고 침착하라.

(4) 소책자를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호의를 배풀고 있다고 느끼게 하라.

(5) 문서를 당신이 손수 전하라.

(6) 팜프렛은 강요하지 말라.

(7) 좋은 팜프렛을 쓰도록 하라.

4) 기독교 문서 분배의 좋은 장소.

(1) 역이나 버스 정류소

(2) 집에서 집으로

(3) 시장

(4) 거리 골목 에서

(5) 버스, 기차 등

(6) 병원, 교도소, 기타 기관

(7) 우편을 통해서

5) 가정분배

(1) 기도

최초의 가장 중요한 준비는 기도이다. 당신의 일이 기도로써 충만해 있지 않으면 기껏해야 판매 전략과 다를 바 없다. 성령이 책 속의 진실을 강력히 느끼게 해야 한다.

(2) 문서

문서는 당신이 분배하려고 하는 지역의 경제적 수준이나 전하는 사람의 지식 수준을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3) 가정방문

- 집문에 접근시: 마음을 가다듬고 문이 열리자 마자 즉시 그리고 부드럽게 제시할 수 있도록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 일이다.

- 문간에 있거나 집에 들어갈 때

당신이 예고없이 문간에 나타난 것은 특히 당신이 방문하는 지방이 낯선 곳이라면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부드럽게 접근해야 한다. 만일 거부반응이 있으면 전도지만 주고 정중히 인사하고 나오라.

- 구내에 있을 때

당신이 가정 방문을 하고 있을 때엔 개인 소유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문을 닫고 들어간다거나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닦고 들어가는 등의 외견상 사소한 일로 당신의 좋은 인상을 남겨 둔다. 접촉이 짧기에 당신이 떠난 후에 오래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다.

5. 전도시 발생되는 질문에 대한 대처법

1)복음전도의 저해요소

(1) 유교적 영향

. 이기적인 가족 중심주의- 가정제도를 중시하며 공동체보다는 혈연관계를 더욱 중시여긴다.

. 주체성을 상실- 체면이나 가문을 들먹이므로 핑계를 댄다.

. 보수적인 전통, 권위에 맹종- 제사제도에 대한 맹종과 함께 거기에 의미를 둔다.

. 현실주의- 인간과 인간관계를 중시 여기며 이를 중요하다고 여긴다.

(2) 불교적 영향

. 수양, 명상, 운둔, 도피, 금욕등을 강조하는 형태의 자기 노력의 종교이다.

. 부처를 통한 극락이나 예수를 통한 천국을 동일시 여기는 종교의 일반성을 강조한다.

(3)무교적인 영향

. 교리도 원리도 없는 정성만을 요구하는 신앙(?)이다.

. 신령한 힘으로 재앙을 쫒고 복을 가져오기를 원하는 기복중심이다.

. 거룩과 세속을 엄히 구별하려 한다.

. 보는 관상 및 환각의 경지에 이르기를 원한다.

(4) 성서에 나타난 잘못된 신앙개념

그리스도교 바리새파 성구
기독교는 마음의 신앙강조 형식적인 신앙강조 롬2:28-29
도덕을 강조. 하나님과 의도덕 인간과의 도덕,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순종과 축복의 관계) 의식을 강조,예배, 금식, 기도, 십일조 및 행위강조 막7:8-11
하나님의 법(말씀)을 따르기를 원함 사람의 법을(전통)따르기를 원함 막7:1-8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를 원함 사람의 의를 나타내기를 원함 눅18:9-14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생활함 의무의식(의무감)을 행함 요1서4:8, 마22:37

 

2) 방해요소와 극복방안

(1) 방해요소 1 - 사회적인 상황(행5:36-37; 요일2:18-19)

- 비정상적인 교회의 모습과 이단, 사이비 종교, 기타 종교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현상들로 인해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실추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결국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1992년 시한부종말론 사건, 1995년 구원파 사건, 일본의 이단종교 테러사건 등이 그 예이다. 실제로 그 해 한국교회의 성장률은 다른 해보다 두드러지게 둔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특정 사건이 교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뿐 하나님의 진리를 막을 수는 없다(벧전1:24-25).

(2) 방해요소 2 - 가치관의 갈등(롬13:14; 갈5:16-17)

- 세상의 가치관과 교회의 가치관은 같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요일2:16)

- 성경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자연히 교회의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된다.

(3) 방해요소 3 - 교회내 부정적 요인(살후3:11; 딤전5:13)

- 전도할 경우에 부딪히게 되는 방해요소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교회 자신일 때가 있다. 불신자나 낙심자들 중에서는 교회와 기독교인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① 전도를 방해하는 교인의 유형

- 배타성(요삼8): 기존신자들에게만 친절하고 새신자, 방문자에게는 무관심한 교인

- 고립(고전5:10):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교회 안에서만 활동하는 교인

- 부정적사고(마16:22-23): 매사에 비관적이며 적극적이지 못한 교인

- 교만(잠16:18): 하나님과 사람에게 본이 되지 못하는 교인

② 전도를 방해하는 교회의 증세

- 상호오해 증세(고전1:12):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갈등

- 친교과잉 증세(요일2:2): 지나친 친교로 성도들의 관심이 내부로만 쏠리는 현상

- 열정감퇴 증세(딤후3:5): 형식적인 신앙만 남고 실제 능력이 결여된 상태

- 영적 발전 제한 증세(계3:15): 영적 활동과 성령의 역사가 제한되는 분위기

(4) 전도의 방해요소를 극복하는 방법

- 교회의 마인드를 전도지향 마인드로 바꾸라. 교회가 전체적으로 전도와 선교에 관심이 없다면 우선 담임목회자가 전 교인을 대상으로 영혼구령과 선교가 교회의 1차적 사명임을 가르쳐야 한다.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해야 한다.

- 적극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과 다르다고 해서 세상에서 따나 있을 수는 없다. 결국 주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주도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추구할 때 전도를 막는 장애물이 하나씩 제거될 것이다.

- 치밀한 전도전략과 대응지침을 세우라. 개인적으로 전도할 때 만나게 되는 반대 질문에 유연히 대처하려면 이에 대한 성경적인 대응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관계 서적을 연구하거나 훈련을 받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접 전도하면서 부딪쳐 보는 일이다.

3) 전도시 반대질문 대처법

(1) 지금 당장 기적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믿겠습니다.

- 눈은 아무리 보아도 절대로 만족이 없습니다(잠 27:20). 예수님이 기적을 더 많이 베풀어 주실 수도 있었는데, 사람은 절대 기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LA에 지진이 났을 때는 교회가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다 나가고 텅 비더랍니다. 기적이나 어려움으로는 예수님을 잘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정성과 마음을 다해 성령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고 믿는 것은 확인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0장29절에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으며,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안보고 믿는 것이 믿음일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깨닫게 해서 자신을 믿게 하시는 분이시지, 보여주셔서 믿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실 때에도, 눈으로 뭘 보려고 하시거나 귀로 뭘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말씀과 평안을 동반한 마음의 깨달음을 척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행 17:11; 롬 8:16).

마귀는 자꾸 보여주고 들려줌으로써 믿게 하려 하는데, 물론 이것이 성령의 역사와 비슷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에 입각한 마음의 평안으로 예수를 믿으십시오. 기적은 마술사에게 요구하는 태도지 하나님께 요구할 것이 못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2) 세상 삶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언제 교회를 나갑니까?

- 행복한 삶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교회를 못나오시는군요? 그러나 환경으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려고 환경을 바꾸는데 그런다고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쾌락은 끝없이 더 강한 자극만을 원할 뿐입니다. 그래서 방탕한 친구들이 더 강한 것을 원하다가 결국 마약을 투여하지 않습니까?

- 진정한 행복은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3) 전도는 왜 하는 것입니까? 필요하면 다 알아서 찾아서 갑니다. 제게 전도하지 마세요.

- 전도를 한다고 누가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또 교회에서 월급이나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전도를 하는 이유는 '전도를 해야만 하며 하는 것이 절대로 좋다'는 가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와 비슷합니다.

암을 완치할 수 있는 약을 발견한 후,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고 또 알지도 못한다고 해서 그 약을 혼자만 가지고 있다가 활용도 하지 않고 죽는다면 그것은 인류에 대한 중대한 범죄이기 때입니다.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서고 싶어서 내려보니 앞이 절벽 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많은 운전자들이 모르고 달려 가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절벽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운전자들이 스스로 알때까지 기다리며 그냥 죽도록 놔두겠습니까?

-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든 못받든 제가 알고 있는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 52장 7절에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고 했습니다.

(4) 우리 집안은 대대로 믿는 종교가 있습니다. 공연히 하나님을 믿었다가 집안에 풍파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면서까지 예수님을 믿어야할 만큼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셨군요? 그러나 예수 님이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면서까지라도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면 선생님께서는 믿으시겠군요.

- 잔잔한 물가에 여객선이 지나가기 위해서 일어나는 물가름은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장을 위한 고통은 각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지나가면 엄청난 이득을 보시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큰복입니다.

두 아이가 늑대의 자식이 되어 10년 넘게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다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부모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대로 그 늑대들과 함께 사는 것이 더 편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생각해서 그냥 내 버려 두시겠 습니까?

이처럼, 선생님 식구들이 하나님 믿기를 전혀 원치 않는다고 해서 늑대같은 미신을 믿도록 그대로 내버 려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렘 2:27)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슥 1:3)

그러므로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하나님을 선택하십시오.

 

(5) 아무리 내가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나름대로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깨끗하게 살았음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으로 보내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당신은 하나님을 참 좋은 분으로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옛날에 참으로 좋은 추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스리는 부족에서는 누구 집의이든지 1년에 한번씩 제비를 뽑아 제물로 드리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마음씨 좋은그 추장도 그렇게 정해진 법만은 어길 수 없었습니다. 어느 해 추장은 자기 딸이 제비에 뽑히자 그 딸과 함께 죽었다고 합니다.

- 하나님께서도 정해놓은 법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희생시키신 후, 누구든지 그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다는 원칙을 정해 놓으셨습니다(요 1:12;계 3:20).

- 인간이 생각하는 의로움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옷과 같은 것입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그러므로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기준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을 당신의 의도대로 변경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분께서 정해놓으신 법을 따르십시오.

- 자신의 죄는 자신의 의로움으로 씻겨지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음으로서만 죄를 용서받고 낙원(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6) 실천적인 행동으로 전도를 하십시오.

- "저희 믿는 자들이 평소에 모범을 보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먼저 사과를 하십시오.

프란시스라는 성자는 그렇게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제자와 동네 한바퀴를 그냥 돌고 오니까 제자가 왜 전도를 하지 않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때 프란시스는 "이미 우리는 전도를 했느니라."라고 말하더랍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전도가 더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사람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예민하거나 까다로운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성경을 직접 읽어서 하나님의 도를 전달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7) 믿으려면 일찍 믿었어야지 너무 늦었어요.

_ 늦었다는 기준은 무엇이며, 빠르다는 나이는 몇살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시는 인간들은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모두 어린 아이들과 같습니다. 나이드신 할아버지 라도 그분의 아버님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실 때는 아이와 같은 그런 심정입니다.

-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다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그 수명이 다 된 끝날에라도 돌아오시기를 간절하게 기다리십니다.

"…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신 4:30, 31).

십자가 위의 한쪽 강도는 죽기 바로 전에 믿었습니다(눅 23:3-43). 나이 많다는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안 으니 예수를 믿도록 하십시오.

(8) 예수님의 피가 왜, 그리고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까?

- 레위기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원칙에 대항할 수는 없습니다.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예수님 몸 속의 피를 화목제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7)

이 예수의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미지의 자녀에게 예수님의 자녀가 되는 소유권 이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9) 예수님 한 분의 죽음으로 어떻게 수많은 인류의 죄가 모두 용서를 받습니까? 나는 못 믿겠습니다.

- 상당히 일리있는 말씀처럼 생각됩니다만, 그러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산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물론, 당신의 기준으로 계산을 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 일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자로되 죄가 없으시니라"(히 4:15).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을 하나님께서는 인류 전체로 바라보신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고 한 말은 그가 예수 님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죄까지 십자가에서 깨끗하게 씻겨졌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은 데서 나온 고 백입니다.

-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혼자 지고 가셨습니다(사 53:6; 요 1:29).

하나님의 계산법은 의인 한 명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계산법입니다.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장점 하나만으로도 들어 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계산법입니다.

 

(10) 저는 죄가 많아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런 분한테는 아주 강하게 이야기해 주어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만나고 싶어하시는 분이 바로 선생님 같으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 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2-13)

- 스스로 죄를 깨달으시는 것을 보니, 성령께서 선생님을 버리지도 않으셨을 뿐더러 성령님이 역사를 하고 계시는군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은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일체 죄책감을 갖지 않습니다(딤전 4:2).

마가복음 2장 10절 말씀을 반복해서 읽으십시오. 그러면 말씀이 믿어지면서 선생님의 마음에 담대함이 임할 것입니다.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

-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두가지 뿐인데, 혹시 그런 죄를 범하셨나요?

첫째, 성령을 훼방한 죄입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함심을 얻지 못하겠고"(마 12:31)

이는 분명히 알면서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왜곡하는 것으로, 요한일서 5장 16절에서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히브리서 10장 26절의 '짐짓 범하는 죄'가 여기 속합니다.

둘째, 성령을 거역한 죄입니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이는 노골적으로 성령에 대항하고 투쟁하면서 공개적으로 욕하고 항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7장 54절을 보면, 스데반이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하는 것을 사람들이 듣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이는 성령을 거역한 죄입니다.

이 두가지가 아니라면 다 용서를 받습니다. 선생님께서 지은 죄가 위와 같은 것이 아니라면 마음 놓으십시오. 다 용서받습니다. 이렇게 상대방이 심각하게 생각하는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도 심리 치유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기에 못 박도록 결정한 자들과 못박은 자들을 모두 용서하셨습니다(눅 23:24).

(11) 이제 더 이상 앞으로 죄도 짓지 않고 교회도 안 나갈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음처럼 유도 질문을 합니다.

- 죄를 더 짓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니 선생님은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것과 죄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 그렇다면 과거에 지은 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는 작은 것 하나 때문에라도 인간을 지옥으로 데리고 갑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 당장이라도 가족이 굶어 죽게 되는 한계 상황을 맞게 되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죄를 안지을 것 같습니까?

-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러면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받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제 지은 죄나 7년 전에 지은 죄나 미래에 지을 죄까지 이미 2000년 전에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13).

골로새서 2장 13절에서 말하는 '모든 죄'가 바로 과거·현재·미래까지 다 포함한 죄를 말하는 겁니다.

미래의 죄 역시 지은 후에 회개로 고백할 때에만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만약에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12)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좀 편안하게 쉬고 싶습니다

- 몸이 편하다고 마음까지 편한 것은 아닙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은 휴일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사람은 그 일이 정말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오히려 몸을 쉬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요일 하루라도 좀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건 몸을 쉬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가는 것에 별 의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육체의 휴식도 필요한 때가 있지만 영혼의 안식은 육체를 지배합니다.

-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 말대로 교회를 한 달만 다녀보십시오. 정말로 무의미하고 보람이 없는지 아니면 마음이 가볍고 행복해지는지 한 번 느껴보십시오.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몸의 양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 1절에 하나님은 목자시며 우리는 양이기 때문에 우리를 쉬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셔서 올바르게 짐지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고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

지금 마음에 고민이 있으신가요? 고민 해결하는 법을 예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이 방법을 교회에 나가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13) 정리할 것좀 처리하고 믿겠습니다.

- 어두운 방을 정리하려면 먼저 전기불이 필요합니다.

그 불은 예수님과 같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마음으로 모셔 들여야만 주변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에 바른 판단이 서게 되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됩니다.

- 기독교는 선행을 자격시험처럼 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죄인된 모습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가서 항복을 하는 것이 의원으로 오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마 9:12).

구원은 선물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14) 교회와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니까 내게 교회를 가자거나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 당신은 지금까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면서도 하나님이나 교회에 대해서 한 번도 깊이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으신가 보군요? 여기 책(또는 테이프) 한 권을 드리겠습니다. 읽어보시고(또는 들어보시고) 생각해 보십시오.

_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에 대해서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라고 영적인 면에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 또,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이 인정을 하든 안하든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하고 계시고 당신은 그것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서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전하고 나서 돌아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히브리서 4장 말씀대로 살아서 운동력있어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귀에 쟁쟁거리게 됩니다.

(15) 종교는 다 같은 것 아닙니까?

- 죄 짓지 말고 올바로 살자는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나의 죄를 위해서 나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종교 지도자는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 죽기 전에 3일 후의 부활을 예언하시고 그대로 행하신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 28:6)

- 다른 종교는 원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니"(롬 3:23)

-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16)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이제 와서 비겁하게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지옥에 가면 내 친구들이 많아서 걱정 안합니다. 나는 기꺼이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 일단 지옥이 있다는 사실은 믿으시는군요? 그렇다면 지옥이 있는 것처럼 천국도 있다는 것을 당연히 믿으시겠군요?

가룟 유다와 십자가의 한쪽 강도는 하나님께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서 스스로 죄를 해결하겠다는 듯이 지옥을 선택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불이 나면 친구가 옆에 있다고 걱정되지 않겠습니까? 친구가 함께 목욕탕에 있다고 위안이 되겠습니까?

-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알고 계십니까?

지옥은,

● 구더기도 죽지않고 불도 꺼지지 않으며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함을 받게 됩니다(마 9:48, 49).

● 슬피 울며 끝까지 회개를 못하고 이를 갈면서 있는 곳입니다(마 25:30).

● 마귀와 그의 사자들도 함께 있는 곳입니다(마 25:41).

● 위와 같은 일들은 영원히 계속됩니다(마 25:46).

● 한 방울의 물도 없습니다(눅 16:24).

이런 곳에 가시겠습니까? 마음 고쳐먹고 예수 믿으세요.

(17) 교회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믿을 자신이 없습니다.

- 믿는 것이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방법으로 믿으면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믿으면 너무 쉽고 재미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신 30:11)

- 시험이 오면 그것에 넘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그러시지요? 그러나 사람은 성경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할 것이 없나니"(고전 10:13)

- 믿는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붙잡혀서 끌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 붙잡은 사람을 중간에서 손을 떼시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좇아가노라"(빌 3:12)

(18) 다른 종교를 경험해보지 않고 기독교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독단 아닌가요?

- 그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세계는 그만두고 일본만 하더라도 종교(잡신)가 만가지 이상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세월에 그것들을 모두 경험해볼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부모가 자식이 부모를 못찾는데도 불구하고 100년이 걸려서라도 스스로 찾아오도록 지켜만 보겠습니까?

- 세상 종교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으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19) 하나님보다 차라리 과학을 믿겠습니다.

- 75초 후에 폭파될 것도 모르고 쏘아 올렸던 미국의 우주선에 대한 사실을 알면서도 과학을 믿고 싶습니까?

물론 어떤 사람은 그 사실을 직시하고서 믿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뼈아픈 말을 했습니다.

"과학은 75초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장님이고, 신앙은 알면서도 못걸어 다니고 행하지 못하는 앉은뱅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과학이 신앙을 업고 걸어다니고 신앙은 방향을 제시하면서 함께 협력체제를 형성해야 합니다. 이 말은 과학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학은 신앙의 도움을 받아야 좀더 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세계적인 석학들도 이를 위해 신앙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신처럼 과학에 관심이 많으신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붙잡고 위대한 일을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 학문이라는 것은 결국 연구의 결과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나마 그 결과도 더 자세한 연구를 한 사람들에 의해서 무너지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요 1:1-3)임을 부인하지 마시고 가장 기초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세우고 말씀에 입각해서 모든 일을 성취하십시오.

(20) 죽으면 그만이지 예수는 뭐고 지옥은 뭡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유머스럽게 풀어나가십시오. 지옥이 없다는 사람에게 "당신은 죽어서 지옥이나 가시오." 하니까 펄쩍 뛰더랍니다. 그때 "지옥이 없다면서 왜 화를 내십니까?" 그러면서 좀 여유를 두고 다음처럼 말씀하십시오.

- 지옥이 있으므로 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에 준비를 이미 했는데 죽은 다음에 지옥이 없다면 크게 잘못 되거나 크게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옥이 없는 것으로 확신하며 마음대로 살다가 막상 지옥에 가게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찌우라 간조 목사가 어느 비 올 것 같은 날 우산을 가져갈까 말까 하며 망설이는 두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좀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우산을 가져가면 안전할텐데 어느 쪽을 선택하겠니?"

선생님께서는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불편하지만 안전한 쪽입니까? 아니면 편하지만 위험한 쪽입니까?

- 예수님께서 분명히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요 14:1-4)

- 그리고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21) 예수도 한 인간에 불과한데 그를 왜 믿으며 또 무엇을 믿습니까?

- 이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어떤 진한 감동을 마음으로 느끼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좋은 예화를 활용하십시오.

- 당신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만 증명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셨으며 14장 9절에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하셨습니다.

- 리빙스턴이 선교사역을 마친 뒤 한쪽 팔을 잃은 채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신사이셨습니다. … 그분은 제게 마태복음 28장 20절의 약속을 충실히 그대로 지키신 분이었습니다.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나는 선교지에서 줄곧 체험했습니다. 나는 그분이 신사이고 그분이 진실된 분임을 인정합니다."

예수님은 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전인격을 우리는 다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다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도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그분을 믿으시면 선생님은 구원을 받습니다.

(22) 예수를 믿는다면서 할 일 못할 일 다하고 다니는 위선자들이 싫어서 교회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 그렇겠습니다. 사람들은 한 단체에 들어갈 때 그곳 사람들의 생각이 자기의 생각과 맞는다고 판단될 때에야 비로소 그 단체에 소속하기로 결심합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나름대로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하얀 도화지에 조그마한 까만점 하나만 떨어져도 금방 눈에 띄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은 작은 잘못도 금방 눈에 띄는 겁니다.

반면에 검은 도화지는 검은 점 큰 것이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잘못은 아무리 커도 누가 탓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많은 공무원들의 범법행위가 뉴스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공무원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범법을 저지른 공무원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모범 공무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작은 것 하나 때문에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몇몇 성숙되지 못한 신앙인 때문에 천국을 포기하시겠습니까?

- 어린 아이, 또는 훈련이 덜 된 사람은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이 덜 성숙한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신앙의 성장 과정에서 실수는 누구나 있으며 그 실수는 위선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성공의 어머니 노릇도 합니다.

(23) 왜 선행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 아이들이 만든 장난감은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대개 어른들의 양에는 차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선한 행실은 하나님의 기준에 양이 차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기 때문입니다(사 64:6).

연로한 자들, 수족을 사용 못하는 장애자들, 당장 죽어가는 환자들은 몸이 불편해서 선을 행치 못한텐데, 그렇다면 이들은 천국에 갈 수 없으니 공평치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가지는 믿음은 누구나 공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의 차이는 있으나 마음에는 차등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행위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원칙을 정해놓으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 9)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이유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천국에 모인 사람들까지라도 시간만 나면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24)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라면서요?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부활에 대한 사실을 묻는 질문이니 부활의 증거를 알려드리면 됩니다.

- 부활은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예언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마 26:61)

- 성경에 보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베드로 그 외 예수님의 제자들, 바울 등 500여명이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증거를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고전 15:3-8)

-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마 28:11-15).

-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눅 24:15, 39-43, 요 21:9, 행 1:4-11).

- 지금 살아서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 7:55)

(25)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합니까?

- 아버지는 계시지만 자식들이 너무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가정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자식들이 그 아버지가 원하거나 정해놓은 법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신앙과 자식 신앙은 다른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기록해서 반드시 지켜야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 계명을 지키지 않았으며, 그로 인한 혼란은 사람들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회에까지 몹시 괴로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 바울 사도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말했습니다.

길거리에 휴지가 왜 이렇게 많이 떨어졌느냐고 불평하기 전에 나도 언젠가 휴지를 버린 적이 있음을 상기하십시오.

사람은 사회정의를 외치면서도 자신은 휴지를 거리에 몰래 버리고, 공의를 외치면서도 시험볼 때 컨닝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데도 세상이 부조리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부조리한 것입니다. 세상 끝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26) 저 자신만 믿겠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또한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 제가 말하는 믿음은 대인관계에서의 믿음이 아니라 대신관계에서의 믿음입니다. 대인관계에서는 당신이 누군가를 믿든 믿지 않든 당신의 판단하에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과 결부시켜서 맞대응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만큼 높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 믿음은 '현재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서 믿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그러므로 현재 당신 자신에 대해서 당신 스스로가 믿는 것은 당신이 모두 경험하고 눈으로 확인한 것인데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확인된 통계'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입니다.

- 믿음의 총 결론은 '우리의 영혼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그런데 당신은 당신 자신을 믿어서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골라서 믿어도 되지만 하나님은 꼭 믿어야 합니다.

(27) 성경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니까? 못믿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전도자의 기를 꺾으려는 사람이니 다음처럼 답하십시오.

- 아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때 손을 얹고 선서를 하는 성경을 믿지 못하십니까? 그러면 학교 다니실 때 국사책은 믿으셨습니까? 세익스피어 작품을 세익스피어가 쓴 것 맞습니까?

- 실례하지만 성경을 얼마만큼이나 읽어보셨는지요? 성경이 몇 권인지는 아시구요?

구약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했는데 그 내용들이 구약성경입니다(왕하 7:1;렘 10:1; 겔 37:4; 미 6:1).

-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구절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딤후 3:15)?

- 물론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지만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벧후 1:21).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저자가 40여명이고 그 기록 연대가 1,500년에 걸쳐서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서로 만난 바도 없이 기록을 했는데 성경의 내용은 모두 일치합니다(사 34:16).

- 구약에서 예언된 사실이 역사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그로부터 700년 후에 세례 요한이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놀라운 일 아닙니까? 또 미가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니라"(미 5:2)

그런데 정말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마 2:1)

이렇게 성경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위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볼 때 이제는 성경을 인정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권유하십시오.

(28) 믿고는 싶은데 마음 속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 정말로 믿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저를 따라서 아래 성경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2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이제는 저를 따라서 입으로 시인해보십시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싶지만 잘 안됩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 금방 따라하신 내용을 믿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음이 있는 자로 여기십니다(롬 10:9, 10).

더 이상 고민하지 마십시오. 이젠 믿음을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강하게 할 수 있을까 염려하십시오.

(29) 저는 죄가 없는데 교회에 다녀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분들에게는 "죄가 무엇이라고 알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다음에 아래와 같이 설명을 해나가십시오.

- 내 몸속에 병이 있는지 알든지 모르든지 그 병은 나를 점점 쇠약하게 하고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내게 있는 죄 역시 내가 그것을 알든지 모르든지 그 죄는 나로 하여금 판단력을 무디게 하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 성경은 사망의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선생님은 죽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죽음을 인정하시는 것처럼 선생님은 죄인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

-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죄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현상을 보거나 느낄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사망으로 나타나고 느낌은 불안, 초조, 공포감을 느껴본 적이 없으십니까?

- 성경에서는 죄를 4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① 불신(不信) :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롬 14:23)

② 불선(不善) : 선을 알면서 행치 못하는 것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③ 불법(不法) : 법을 알면서 지키지 못하는 것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④ 불의(不義) : 의를 알면서 행치 못하는 것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요일 5:17)

(30)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나요? 이에 대한 답변은 유머스러워야 하며, 인용하는 성경 구절도 마음에 일침을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 믿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막 6:6)

- 믿지 않으면 심판하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는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

-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 1:14)

석가모니를 믿어서는 죄사함을 못 받습니다. 그분이 살아서 이 자리에 들어오신다면 예의상 일어나서 맞이해 줄 수는 있지만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그분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익성, 즉 죄사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특권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31) 고통스러운 일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도 못 믿고 교회도 못나가겠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시오.

- 고난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거나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빨리 교회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도피성입니다.

- 혹시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인가 살피고 그렇다면 오히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벧전 1:6,7)

- 고난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시려고 주시는 것이지 고통을 주려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한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 4:12)

- 고난 중에는 기도하라고 했으므로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약 5:13)

- 고난은 징계일 수도 있습니다. 징계라고 생각되면 행실을 고치십시오(히 12:5, 13).

- 고난은 결국 사람에게 유익을 끼칩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서 훈련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영원히 살 곳은 따로 있습니다(계 21:1).

그러므로 이 세상은 고난이 있는 광야입니다. 광야는 훈련을 받는 곳이지 행복을 누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고통스러운 일이 있으면 빨리 교회로 나오십시오.

(32) 헌금을 내는 것이 부담이 되어 교회에 안나갑니다.

- 혹시 어느 교회에 가셨다가 교회 건축을 위해서 헌금하라는 말을 들으시고 상처를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상처받지 마십시오. 그 말은 선생님에게 한 말이 아니니 신경쓰지 마시고 건축헌금을 강요하지 않는 교회나 교회 건축이 끝난 교회로 다니십시오.

-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헌금을 내라는 강요를 받아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교회는 헌금에 대한 일정금액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은 돈이라도 정성껏 드리면 됩니다.

그것도 드리기 싫어지면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서 헌금을 하고 싶으실 때까지 그냥 다니십시오. 사람들이 볼까봐 내는 것은 체면유지비지 헌금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즐겨내는 헌금을 원하지 체면유지비를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안낸다고 해서 그것을 탓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한 단체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그 회원들의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원하여 내는 헌금을 원하는 것이지 결코 일정액수를 정해서 내도록 강요하는 단체는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헌금에 대해서 몇 구절을 언급하고 있는데 교인들은 그 명령에 따르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결코 목사가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를 기뻐 받으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 25:2)

또 하나님은 정성을 보십니다. 적든 많든 형편껏 정성으로 내는 것을 기뻐하시며 결국 이 헌금마저도 다시 돌려주십니다. 그러니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그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 7)

(33) 너무 바빠서 교회에 못나갑니다

- 우선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교회는 나중에 나오시구요(거듭나게 한 후에 교회에 나오라고 하면 나옵니다).

- 좋은 일을 왜 미루십니까? 꼭 해야 하는 일도 미루십니까? 수면, 식사, 관계성에 의한 만남 등은 미루지 않을텐데요. 물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바쁘신 것이지요? 그러나 교회를 다니려면 부족한 시간 가운데서도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 교회의 예배는 11시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못 나오시면 새벽이나 저녁에 나오십시오. 나무를 하러 가는 사람이 도끼날을 가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전 10:10).

- 주일은 일 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성회로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라고 만드신 날입니다(레 23:3).

(34) 교회를 다니면 포기해야 될 것과 절제해야 될 것이 너무 많아서 싫습니다

- 그것도 사실입니다만 세상의 이치는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습니다. 돈은 잃을지 모르지만 대신 양심의 자유를 얻는다면 그것은 종국적으로는 이득입니다.

- 세상 사람이 사실상 가장 원하는 것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그 마음의 평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이 한가지 들어오면 참으로 불편해하는데 그것은 그 가치관이 마음의 평안을 깨는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에 다니게 되면 교회 속의 가치관을 새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기 위해 나타나는 그러한 현상은 성장을 위한 잠시의 고통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모두 이기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면 가장 큰 이득인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가지고 집중력을 발휘하여 보다 많은 일들에서 이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 사실, 죄를 안짓는 것보다 죄를 날마다 짓는 것이 더 힘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게 쉬울까요?

- 포기하기가 겁나서 끊기 어려울 것만 같은 것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우선 교회부터 다니면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게 되면 하나씩 정리가 될 것입니다.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27)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

- 세상에서도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덜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거나 절제해야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35) 예수를 믿게 됨으로 당할 핍박이 두려워서 못 믿겠습니다. 일제 시대 독립군에 투신을 하려면 총에 맞아 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가 있어야 했답니다. 예수 믿는 것도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더 잘 믿게 됩니다.

이렇게 핍박과 독립군을 연계시켜 말을 하면 마치 예수 안 믿으면 자기가 겁쟁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때 다음처럼 말씀하십시오.

- 핍박은 그리스도인들을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 핍박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구원 얻은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 3:2, 3)

- 핍박은 오히려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도 경건하게 살지 않으면 핍박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핍박 안 받고 안 믿든지, 핍박 받더라도 예수 잘 믿든지 그거야 선생님 마음이겠지만 이왕이면 잘 믿는 게 좋지 않습니까?

(36) 저는 집안의 장손인데 제사를 못지내게 해서 안믿겠습니다

- 제사는 중국의 주공이라는 사람이 만든 관습일 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추도예배를 드리는데 그것은 제사보다 훨씬 더 좋은 제도입니다. 이는 죽은 자에 대한 올바른 예의이며 후손으로서 드리는 참된 효성의 표현입니다.

-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천국(낙원)이 아니며 음부(지옥)에 가게 되어 있고 그곳에 있는 영혼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가 없으며 후손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눅16:19-31).

그러므로 그 영혼에게 제사 드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 제사를 잘 지내야 후손이 복받는 것이 아니고 고인이 생전에 선행을 한 덕택으로 그리고 자녀가(출 20:6), 부모님 생전에 효도를 다 해야 복을 받습니다(엡 6:1-3). 그리고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신 28:2 ; 엡 1:3)

(37) 예정된 사람은 언젠가는 믿는다면서요?

- 믿어진다는 자체가 예정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혹시 안 믿어집니까? 그러면 예정 안된 것입니다. 순종하면 예정된 사람이 됩니다. 누가 평생 같이 살 부부를 서로 고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고르고 골라서 사람을 예정하시며 그런 자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계속 개인적인 욕심이나 예정을 내세워서 하나님 믿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 예정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통해서 끝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시는 수도 있습니다(사울왕과 가룟 유다).

- 순종과 불순종은 사람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기에 불순종에 대한 책임(죄값)은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만일 순종과 불순종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다면 불순종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결론이 됩니다.

(38)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말하기 귀찮아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음처럼 질문하십시오.

- "당신은 중생, 곧 거듭났셨습니까?" "왜 믿으시나요?" 이렇게 계속 질문하면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이때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으시지요(벧전 1:9)?"라고 말한 뒤 아래 내용을 잘 설명해 드리십시오.

- 믿는다는 것은

●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 금식하는 것도 아닙니다.

● 주일을 성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결과로 나타내는 행위일 뿐입니다.

- 믿는다는 것은 로마서 4장 14, 16절 말씀대로

●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과

●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수 있게 하시는 것과

● 없는 것을 있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런 것을 믿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당신이 믿는다면 정말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교인들이라 할지라도 이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진정 거듭나셨는지를 살피시고 가까운 교회로 가주신다면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39) 세상의 악으로부터 지켜주시지도 않는 하나님을 무엇 때문에 믿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기만 하면 말씀 한마디로 사단을 없애 버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 1장 12절 말씀대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대로 두고 보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들을 분명하게 지키십니다. 누가 자기 재산을 지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고정자산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철저하게 지키십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에 보면 양의 피를 문설주 좌우에 십자가 형식으로 발랐을 때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못들여다보고 건너 뛰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피를 바른 것과 똑같기 때문에 사단이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 19절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 19)

- 모든 어려움에는 교육적인 효과가 깃들여 있습니다. 합력해서 선이 되기 때문입니다(롬 8:28).

마귀는 중생된 자, 곧 거듭난 자를 손도 대지 못합니다. 물론 유혹은 할 수 있습니다(요일 5:18). 그러나 빼앗아 가지는 못합니다. 귀신들이 거듭난 자를 둘러 진을 치고 괴롭힌다면 천사는 그 귀신들을 진쳐서 마귀의 공격을 막고, 또 가만두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 또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을 지키십니다.

● 사단이 베드로를 청구했으나 예수님께서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습니다(눅 22:31, 32). 그래서 베드로가 사단에게 끌려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영혼들을 예수님께서는 단 한명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요 6:39)

● 예수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요 10:28).

● 예수님께서는 멸망의 자식을 제외한 우리들을 보전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요 17:11, 12).

- 하나님의 사랑에서 아무 것도 우리를 끊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롬 8:37-39). 돈으로 사랑을 끊을 수 없는 부모님의 사랑 보다 더 큰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40)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더군요.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필요를 못느낍니다.

- 어떤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던가요? 제가 알기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요14:13)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응답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이 그 이름으로 간구하면 응답하신다는 것이지, 단순히 주문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하면 응답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을 진실로 믿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셨습니까?

- 하나님의 기도응답에는 3가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알았다', '기다려라', '안된다'로 응답하십니다.무조건 '알았다'만 응답은 아닙니다.당신은 이 가운데서 '안된다'는 응답을 받으시고 상처를 입으셨군요?자식이 부모님의 '안된다'는 말 한마디에 집을 나갑니까?또 어떤 사람이 한국에 문제가 좀 있다고 해서 당장 이민을 가겠습니까?자식이 달라고 한다 해서 그에게 위험한 것까지도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입장을 이해하십시오.

- 그리고 혹시, 사람이 할 일을 하나님께 구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께는 사람이 할 일에 대해서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시험을 잘 보려면 먼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 할 일이지요. 그런데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요한복음 11장 19절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신 것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라는 것입니다.

(41)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든가 아니면 이해시켜 주십시오

- 이런 사람에게는 한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는 10가지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제가 언젠가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다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 미국의 유명한 한 과학자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10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동전 10개를 보이지 않는 주머니에 넣고 흔든 후 꺼낼 때, 순서대로 1부터 10까지 계속해서 나올 확률은 100억분의 1입니다. 이런 미세한 확률이 우주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① 지구의 돌아가는 속도의 정상화입니다. 지구는 시간당 1.600Km로 돌고 있습니다. 이런 지구가 만약 한 시간 당 160Km로 돈다면 사람들은 낮에는 타 죽고 밤에는 얼어 죽을 것입니다.

② 지구와 태양과의 떨어진 거리가 신비스럽게도 아주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③ 지구가 23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4계절이 나타납니다. 만약 지구가 수평이라면, 하루에 두 번씩 물에 잠기게 되어 대양 증발 수증기로 남북은 얼음 덩어리로 되어 있을 겁니다.

④ 지구와 달이 80.000Km라는 알맞은 고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는 하루에 두 번씩 물에 잠기는 일이 없습니다.

⑤ 지구의 두께가 3m만 더 두꺼웠으면 산소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동식물은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⑥ 대기권의 두께가 지금보다 얇았더라면 지구는 별똥들에 의해서 날마다 불바다가 된다고 합니다.

⑦ 연어의 행로입니다. 연어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바다에서 태어나 강물로 올라갑니다.

⑧ 장어의 행로입니다. 장어가 바닷가에서 알을 낳고 죽으면 새끼들은 다시 호수나 강으로 돌아옵니다. 아메리칸 뱀장어가 유럽에서 잡힌 일이 없고, 유럽 뱀장어가 아메리카에서 잡힌 일이 없답니다.

⑨ 호주의 선인장이 빠른 속도로 번식되는 것을 억제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선인장만 갉아 먹고 사는 곤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⑩ 사람은 폐를 가지고 있으며, 곤충은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은 성장을 억제시킵니다. 만약 곤충도 폐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만큼 성장할텐데, 다행스럽게도 곤충은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런 10가지 사건들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동전 10개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우연이 우주에서 일어난다고 볼 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이 일들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우주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역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집 한 채가 우연히 지어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집 한 채도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는데 우주가 어떻게 우연히 이루어집니까? 히브리서 3장 4절에서는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2장 19절에서는 마귀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마귀도 믿는 하나님을 어째서 선생님께서는 믿지 않습니까?"라고 역 질문을 해 보십시오.

(42) 목사와 교회 중직자들의 행실에 실망했기 때문에 교회는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 목사나 장로, 중직자나 교인들 가운데도 가룟 유다 같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자들이 진실된 자들과 섞여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5절 말씀대로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 목사와 장로와 중직자들은 전쟁터로 말을 하자면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르는 사람이므로 그만큼 부상당할 확률도 많고 포로로 끌려갈 확률도 많다는 것을 참고해야 합니다. 고장 난 자동차와 완전히 끝난 자동차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장 난 것은 고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3장12절 말씀대로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일에 양보가 없습니다. 비리를 일으킨 지도자들도 문제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보통 문제가 아니니 그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43)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기도는 가끔 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친구만 만들어 주어도 잘 다닐 유형입니다.

- 기도를 하시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믿으시는군요? 역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들도 당연히 믿을 것이구요.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교회로 모이는 것을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말 3:7)

"모이기를 폐하는 어던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5)

- 하나님께 가끔 전화만 하지 마시고 교회에 나갑시다.

(44) 현재 저는 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교회를 나갑니까? 이 장사를 조그만 더 하고 정리한 후에 다니겠습니다.

- 이런 분들에게는 성경보다는 탈무드의 이야기를 들려 주십시오. 탈무드에 보면 학생들이 랍비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랍비여, 공부하는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 안되지."

그러자 다른 학생이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랍비여,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공부는 해야 합니까?"

"... 당연하지."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술 장사를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술 장사를 하면서도 예수는 믿어야 합니다.

- 용서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보시고 좋아하십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아 용서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바리새인 유지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나 예수님 발 밑에서 울더니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에 적시고 입 맞추고 자기의 긴 머리털로 닦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죄 많은 여인의 죄를 다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지켜본 바리생인은 마음 속으로 '이분은 선지자가 아닌가 보구나. 선지자라면 이 여인이 어떤 자인 줄 알았을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의 마음을 뚫어보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발을 씻을 물도 주지 않았거늘 이 여인은 너와 달랐다. 500데나리온 빚진 자와 50데나리온 빚진 자를 모두 탕감해 주었을 때 누가 더 감사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500데라니온 빚진 자나 50데나리온 빚진 자나 다 같습니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는 50덴리온 빚진 자보다는 500데나리온 빚진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의를 내세우는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많은 죄를 지었다 해도, 하나님은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술 장사를 다 청산 한 뒤 예수를 믿으려 하지 말고 지금 그 모습으로 교회에 나오십시오, 서서히 여건이 되는대로 정리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4) 전도 문제점과 전도 전략

① 서구 교회들과 같은 징후들

- 이제 한국 교회에는 피와 땀을 흘린 개척 1세대가 물러나고 고난을 모르고 자란 2세대와 자기만을 아는 3세대가 교회를 이끌어 자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평신도들이 땀 흘리며 전도하는 수고 대신 “나홀로 신앙”으로 이 기적이고 개인주의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러한 현상이 결과적으로 교회성장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물질의 부유가 인간성을 황폐하게 만들고 도시를 범죄와 타락의 소굴로 만들었던 서구 사회의 모습들이 이제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으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하나님 말씀이 새삼 생각나는 시대가 되었다. 신앙이 없는 물질 제일주의는 사람들의 심성을 부정하게 만들고 도시를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만드는 것이다.

⇒ 우려되는 현대인들

․ 물질의 풍요로 신앙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불신앙의 현대인’

․ 배타적이며 나만을 아는 ‘이기적인 현대인’

․ 아파트 생활로 이웃간 대화가 단절된 ‘고독한 현대인’

․ 유희와 쾌락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현대인’

② 처음부터 이론적인 전도 방법은 거부감을 줄 수 있다.

- 현대 대부분의 전도 방법은 아무나 붙잡고 전도지를 읽어주며 결론부터 요구하는 전도 방법으로 이러한 전도 방법은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서구인이나 공원에 앉아서 소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맞는 서구식 전도방법이다. 아직 신앙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열지도 않은 불신자에게 결신부터 받으려고 해서는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기 쉬운 것이다.

- 상황에 따라서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을 소개하고 사랑을 베풀어서 새신자로 등록시킨후 성경 공부 시간을 통하여 차근차근히 가르치는 것도 효과적인 전도다.

-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1절에서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없는 자와 같이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하였으니 사도 바울은 율법을 내세워 전도함으로서 그들을 어렵게 하지 않고 그들의 형편에 맞추어그들과 함께 어우리며 생활속에서 전도를 하였던 것이다.

⇒ 시정하여야 할 전도 방법

․ 아무에게나 즉흥적으로 전도함으로(전도인을 기피함)

․ 만나자 마자 처음부터 신앙이야기로(거부감을 줌)

․ 상대방에 대한 정죄로 시작함으로(기분ㅇ르 상하게 함)“당신은 죄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 길가에서 지나가는 말로 전도함으로(귀담아 듣지 않음)

․ “예수 믿으세요”라고 단번에 결신을 요구함으로(거절부터 받게됨)

․ 계획도 없이 아무 집이나 무례하게 방문함으로(냉대를 받음)

③ ‘아무나 단번에 결신부터’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 전도인은 길가에서 아무에게나 복음을 증거하는 것 보다 이제는 주변에 전도대상자를 찾아서 전도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차분하게 앉아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하여야 한다. 오늘날 많은 전도인이 냉대를 받는 것은 “아무에게나, 단번에, 결신부터”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 언행 일치가 중요하다. 전도인은 구원의 이유와 목적을 성경 구절로 잘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구절을 암송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전도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서는 성경 암송의 애로 때문에 전도를 단념하도록 만들어서는 안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하지만 그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불신자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면 그(전도인)를 주시하고 있는 불신자들의 시선이 결국 그(예수 그리스도)를 흠모하게 되는 것이다.

④ 전도는 ‘누구나’할 수 있으나 훈련을 받아야 한다.

- 많은 평신도들이 전도 훈련을 받지 않고 단순히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만으로 섣불리 전도를 시작함으로서 전도대상자를 귀찮게 하고 결국 불신자로부터 냉대를 받음으로서 전도란 어렵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전도란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당부한 지상 명령이므로 “누구나”전도를 하여야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아무나 섣불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 전도하고자 원하는 평신도인은 먼저 전도 훈련을 받아서 정신 무장을 하고 또한 여러 가지 전도 전략에 대하여 충분히 숙지를 한 후에 전도 현장에 나가야 한다.

- 시대에 맞는 실제적인 전도 훈련이 필요하다.

․ 전도 훈련을 회의로 결정하는 비극적인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 교회는 사람들의 뜻이 민주주의 원칙으로 결정되는 곳이 아니다.

․ 회의가 많은 교회는 주님의 뜻보다 사람의 뜻이 역사하는 교회가 된다.

․ 교회의 회의는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므로 종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전도)을 위하여 어떻게 몸을 바칠까(헌신)를 토의하고 결의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⑤ 전도하려면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 전도를 하고자 원하면 먼저 “나도 한번 전도 해보자”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전도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이 바뀌어서 “전도는 쉽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사람이 행동을 바꾸려면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 왜냐하면 행동은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 누구나 “전도는 쉽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새롭게 각오를 하고 나가서 전도가 행동으로 실천될 때에 그의 헌신적인 수고는 결국 성령의 도우심으로 놀라운 전도 열매를 얻게 되는 것이다.

- 구호

․ 전도는 쉽다!

․ 나도 할 수 있다!

․ 나는 전도에 자신있다!

․ 나도 한번 전도 해보자!

․ 내가 변해야 우리 교회가 성장한다!

․ 우리 교회 성장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⑥ 전도가 생활속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 사람들의 행동은 90%이상이 습관에서 나온다.

-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전도에 자신이 없고 은사가 없는 사람이라도 전도를 습관으로 만들면 누구를 만나든지 자연스럽게 전도할 수 있는 것이다.

4. 성경에서의 전도의 모범

1) 모세의 전도법(출18장 01절 ~ 12절)

(1)순종하여 전했습니다.

- 본문 8절에는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의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고하매...” 라고 언급되어 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지 않았다. 모세가 스스로 한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한 것이다. 모세는 지금 자원하는 마음으로 전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성경에서 자발적으로 전도한 첫 번째 사람이 바로 모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최초의 전도자이다. 그러나 모세는 처음부터 자원해서 전도하지는 못했다. 주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여러 차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거부했던 사람이다.

- 그는 우선 자기는 자격이 없다고 핑계를 댔다. 출 3:11을 보면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자기는 지난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던 사람이다. 하나님께 제대로 제사를 드린 일도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산 적도 없다. 말하자면 지난 40년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자기가 어떻게 전도하겠느냐는 말이다.

- 오늘도 우리 핑계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지금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내가 어떻게 전도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순종하며 입을 열기만 하면 그 뒤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 출 3:13을 보면 모세가 이렇게 말을 한다.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말하자면 뭐라고 전해야 할지 모르니 못가겠다는 것이다.

- 오늘도 우리의 핑계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내가 뭐 알아야 전도하지?” 전도하려고 해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해야 할 말을 가르쳐주시겠다는 것이다. 요 14:26을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우리가 가서 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할 말을 생각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순종하기만 하면 해야 할 말은 주님께서 생각나게 해 주시고 이끌어 가신다.

- 그뿐 아니라 자기는 말주변이 없다고 핑계를 댄다. 출 4:10을 보면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말하자면 말주변이 시원치 않아서 전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의 핑계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자기는 배운 것도 없어서 전도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자기는 성격이 소심해서 남들 앞에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도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주님께서는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준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시며 그 형편대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이다.

-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설득에 손을 들었습니다. 순종하여 애굽으로 갔다. 정말 놀랍게도 모세는 위대한 일을 이루어 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며, 저들이 모두 모세의 말을 듣고 애굽에서 출애굽하게 되었다. 완강하게 버티던 바로도 끝내 손을 들고 말았다.

2) 가까운 사람에게 전했다.

- 본문을 보면 모세는 억지로 마지못해 전하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았는데 자원하는 마음으로 전했다.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변화시켜주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시작은 억지로 마지못해서 전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면 우리 마음에 자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기 때문이다.

- 모세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전하기로 작정한 사람이 장인 이드로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전할 사람을 지시해 주셨지만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자 모세는 전할 사람을 자기 스스로 찾았습니다. 그렇다. 우리 안에 전하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면 우리 마음에 또 전하고자 하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전할 대상을 찾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해야 한다.

3) 사실 그대로를 전했습니다.

- 18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의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고하매”라고 했다. 모세는 장인에게 자기가 지금까지 체험한 일들을 그대로 전했다. 살을 붙이거나 설득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를 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내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그것을 그대로 전하기만 했다.

- 전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겪고 체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나 공부해서 알게 된 이야기는 힘이 약하다. 자기가 예수 믿으며 체험한 이야기 예수 믿고 난 뒤에 변화된 것들 이런 것들을 전하면 된다. 성령께서 그 사실이 전해지는 과정에 역사하신다. 듣는 사람의 심령을 움직이시며, 구원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역사가 시작된다.

= 첫째, 예수 믿고 난 뒤에 내게 일어난 변화를 살펴봐야 합니다.

= 둘째, 예수 믿고 난 뒤에 좋은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 셋째, 예수 믿고 생긴 일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 전도는 안 해 본 분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금 쉬고 있는 사람에게도 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전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지금 시작해야 한다. 처음에 억지로라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내가 겪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말해보자.

2) 예수님의 전도법 (요 4 : 1 - 26)

(1) 주의

- 7절 - 물좀 달라 ( 주의를 집중시켜 대화의 실마리를 끌었다 )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2) 관심

- 10절 - 나는 생수를 줄 수 있다 (영적인 것을 유발시켰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말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먼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3) 욕망

- 15절 - 욕망을 끌어 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4) 각성

- 16절 - 각성이 중요하다 (죄 문제를 각성 시켜라)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5)결정

- 25-26절 - 결정적인 순간에 그리스도를 소개하라(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에 대한 관점 변화 ♠

9절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 유대인 남자 ( 어떤 낯선 남자 유대인 )

내게 뭔가를 줄 수 있는 유대인

선지자

메시야

3) 안드레 전도법(요01장 35절 ~ 42절)

- 본문 35절에는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어서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40절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고 언급하고 있다.

-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기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 전도하는 내용이 또한 기록되어 나타나 있다.

(1) 안드레에 대한 간단한 소개

-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이다. 직업은 어부였고, 본문을 통해 침례 요한의 제자였음을 알 수 있다. 안드레가 침례 요한의 제자라는 것은 그가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란 걸 보여준다. 두 제자가 침례 요한의 말을 듣고 한 행동이 무엇인가? ‘예수를 좇았다’고 했다. 37절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날 함께 거했다고 했다. 예수님을 보고 또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만남의 소중함을 위해 시간까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2) 안드레의 전도

- 예수님을 만난 후 안드레가 한 일이 무엇인가? 자기의 형제 시몬 베드로를 전도한다. 성경을 보면 ‘먼저’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다른 어떤 일보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전도한 일이다. 이것은 우선 순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 안드레가 베드로를 찾아가 전도한 내용이 무엇인가? 41절에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이다. 안드레가 증거한 것은 자신이 만난 예수, 자신이 체험한 예수이다. 그렇게 간절히 소망하던 메시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이 ‘메시야 사상’ 이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그 날 함께 거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그 분을 ‘메시야’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자신이 변화된 정도에 따라 전도의 우선 순위가 바뀌어지는 것이다. 세상에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리고 바쁜 일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런 모든 일들 중에 전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3) 안드레의 인품

- 안드레는 기독교 역사상 첫 번째 교인이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상 첫 번째 전도자가 되었다. 이 정도면 안드레가 기독교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그의 존재는 독특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복음서를 통털어 세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 요 6:에 보면 에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자리에 모인 장정만 오천이 넘는데 그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한다. 계산이 빠른 빌립이 에수님께 “조금씩 나누어 준다하여도 이백 데리나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안드레가 어떻게 했는가? 요 6:8에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안드레는 말만 하는 자가 아니었다. 절망만 하고 있는 자가 아니었다.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 성경을 보면 안드레의 이름은 언제나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고 ‘베드로의 형제’로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전도한 베드로의 그늘 아래 늘 가려져 있었다. 기독교 역사상 첫 제자이지만 에수님의 사랑받던 세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자리에는 늘 제외되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안드레 때문에 존재한 것이다. 하루에 삼천 명을 회개시킨 일은 없지만 삼천 명을 회개시킨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 유세비우스의 ‘교회사’를 보면 A.D 260년에 기록된 책 ‘안드레 행전’이란 책이 있었다고 한다. 그 책에 보면 안드레가 러시아의 남부 스키티아라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위기를 당하기도 하고, 그후에 그리이스의 아가야 지방으로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하는데 X자형의 십자가에서 순교를 당했다.

-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복음의 사역의 주연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또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안드레는 진실한 구도자였고, 열심있는 증거자였다.

4) 바울 전도법(행14장 01절 ~ 7절)

-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전도의 역사책이다. 우리 인생은 주님이 위탁하신 전도의 삶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도가 끝나는 날, 우리의 삶은 소극적인 삶으로 변화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전도한 기록을 중심으로 그의 전도의 특징(법)을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도전이 되기를 기대한다.

(1) 바울은 선교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 1절에 보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라고 바울의 적극적인 자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은 적극적인 사람이 이루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마 11:12). 그러므로 인생은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항상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는 이방인들이 찾아와서 개종을 하여 유대교인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것을 구심력적 선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특징은 이방인들을 찾아가서 선교하는 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고, 바울의 방법이었다. 이것을 원심력적 선교라고 부릅니다. 이런 적극적인 자세가 우리의 모든 일에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2) 전도나 (선교)에는 항상 장애물이 따라 온다.

- 2절에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우리는 전도나 선교를 하면 금방 축복이 따라 온다고 착각하고 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다. 항상 장애물이 먼저 찾아온다. 그 장애물은 아주 여러 가지이다. 욕을 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정치와 결탁을 해서 핍박하기도 하고, 폭력을 가지고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 지방의 풍습을 혼란케 한다고 감옥에 가두기도 한다. 혹은 가난과 질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 주님이 없는 혼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은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장애물은 한 단계 더 올라 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우리는 장애물이 있음으로 인해서 더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된다. 교회 안에 염소가 없다면 우리는 게을러지고 말 것이다. 염소가 있음으로 인해서 목회자(성도)는 더욱 기도하게 된다.

(3) 어려운 환경에서 바울이 전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즉 “주를 힘입어” 선교에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를 힘입기만 하면 모든 일을 극복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 3절에 보면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중요한 것은 주를 힘입어 전도할 때에 기적이 일어나고, 전도의 열매가 맺혀졌다는 점이다. 3절 하반절에도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시니.” 인간은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힘이 있다. 그러나 힘 중에 최고의 힘은 바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이시다. 시편 18편 1절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란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다.

(4) 전도(선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은 뱀 같은 지혜를 가져야 한다. 지혜는 분별력을 말한다.

- 5절 하반절과 6절 초두에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여기서 도망하였다고 하는 것은 결코 비겁함이 아니다. 운전할 때 defensive driving(방어적 운전) 하는 것과 같은 뱀과 같은 지혜의 원리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무조건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다. 나사렛에서 그를 죽이려고 했을 때에 피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해야 할 때에는 피해야 한다.

(5) 바울 전도(선교)의 특징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다른 말로 말하면 문이 열리는 대로 전도하고 선교하였다는 점이다.

- 6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도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루스드라와 더베 지방으로 갔는데 그곳에 가서 7절에 보니까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본 내용이 나온다.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간절히 청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래서 바울은 소아시아로 향하던 그의 방향을 유럽으로 향하게 하여 먼저 빌립보 교회를 필두로 선교를 시작하여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로 바뀌게 된다.

- 바울은 선교학을 모르는 분이 아니었다. 선교학의 대가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교학적 이론보다는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선교를 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선교의 문이 닫힐 때가 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는 것이다. 앞이 막힐 때에는 옆으로 돌아가고, 옆에도 막힐 때에는 뒤로 돌아와서 준비하고,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

5) 빌립의 전도법(행8장 4절 ~ 8절)

(1) 빌립은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 "너희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6:3).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중에서 칭찬 듣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성도들에게 칭찬 듣고 이웃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하나님에게 칭찬 듣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디모데도 사람들에게 칭찬 받았다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행16:2). 도르가도 욥바 사람들에게 칭찬 받았다고 했다.

- 에바브로디도와 오네시보로는 사도 바울의 칭찬을 받았고 가이오는 사도 요한의 칭찬을 받았다.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은 자기의 기분과 뜻대로 행동하지 않았고 성령님의 기분과 뜻대로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2) 빌립은 달려가서 전도한 사람이었습니다.

- 빌립은 행동적인 전도자였다. 실천적인 전도자였다. 달려가는 전도자였다. 생각만 하고 말만 많이 하는 사람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동하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이 도움이 된다.

- 12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빌립은 이론가였지만 7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은 행동가였다. 빌립은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달려가되 자기 기분과 뜻에 따라서 자기의 유익 위주로 달려가지 않고 성령의 기분과 뜻에 따라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 위주로 달려갔다. 달려가되 편한 곳으로 달려가지 않고 편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갔다. 그가 달려 간 곳은 사마리아와 가사 광야와 가이사랴였다. 모두 멸시를 당하던 곳이었고 거친 곳이었고 이방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빌립은 지역주의나 민족주의를 초월하여 어디든지 달려가서 전도한 행동가였다.

(3) 빌립은 온 가족과 함께 전도한 사람이었습니다.

- 빌립과 그의 가족의 마지막 정착지는 가이사랴였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가이사랴에 가서 살았다. 즉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살았다. 온 가족이 선교지에 가서 함께 전도를 했다. 빌립의 아내와 딸들은 그곳에서 전도를 했을 뿐 아니라 전도자와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도 했다.

- 행21:8을 보면 빌립의 가정은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을 자기 집에 여러 날 머물게 했고 음식을 대접했다고 했다.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행21:8). 빌립에게 네 딸이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아버지를 따라서 전도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9). 여기 예언하는 자란 전도하는 자란 말이다. 빌립과 그의 온 가족은 한 평생 전도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