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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약에서의 삼위일체(2).

에반젤(복음) 2021. 7. 15. 06:28

구약에서의 삼위일체(2).

 

 

성경은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본체론적으로 증거하지 않는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여 말하지도 않는다.

성경은 첫 창조질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역사이다.(출25:22)

에덴에서 출발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진행되는

언약역사를 따라 시행된 하나님의 사역이다.

따라서 성경은 영원세계의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적인 하나님을 증거한다.

구약성경은 사람 중보자를 통한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하고

신약성경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거한다.

 

구약에서의 사역방식은 어떠한가?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영을 주시고 그를 백성에게 보내셔서 역사하신다.

모세에게 주신 영은 어떤 영인가?

모세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영이다.(민11:16-17)

모세는 죄 아래에 있는 사람 중보자이다.

따라서 그에게 주어진 영은 두려워하는 종의 영이다.

모세와 그에게 속한 이스라엘이 종된 백성으로서 행하도록 주어진 종의 영이다.

이처럼 옛 언약 아래에서 역사하신 성령은 두려워하는 종의 영이다.(민11:24-26. 롬8:15)

이는 옛 경륜이 죄 아래에서 시행된 경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구약성경)은 종된 백성으로서의 자태를 요구하는 종의 도리이다.(갈4:1-3)

 

모세는 종된 중보자이다.

그는 휘장으로 가리워진 하나님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도 휘장으로 가리우신 하나님만을 알 뿐이다.

이스라엘은 모세가 증거한 이상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통해서 행하신 일 이상을 이스라엘에게 행하지 않으신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중보자 모세에게 속하여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은 모세를 믿음으로 그가 증거한 여호와를 믿었다.(출19:9, 요5:46-47)

이스라엘은 모세의 말, 곧 율법에 순종함으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가 하는 일은 여호와의 일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모세, 모세에게 주신 영은 사역적인 면에서 같다.

이것이 옛 언약에서의 하나님의 사역방식이다.

 

본체론적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근거구절이 창세기 1:26-27절이다.

그러나 창세기 1:26-27절은 하나님의 성소로서의 세상창조와

하나님의 동반자인 인간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어전회의를 증거한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라고 의논하셨는가?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대상이다.

그는 하나님과의 바른관계에서 창조된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릴 대리자이다.

하나님께서 의논하셔서 아담을 지으신 것처럼

아담은 하나님과 의논하는 가운데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할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이다.

이처럼 아담과 만물은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존재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존재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의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설명이 된다.

다른 구절인 욥기서와(욥1:6-12) 열왕기서도(왕상22:19-23)

본체론적인 삼위일체를 위한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위한 어전회의를 증거하는 장면이다.

 

개혁신학은 계시란 숨겨지고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계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각 시대의 언약에 의거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서 계시는 나타나고 증거된다.

하나님의 사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언약백성과의 만남과 대화, 교제와 동행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처럼 계시는 각 시대의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따라서 계시는 언약역사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진다.

이것이 율법과 복음과의 불연속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헬라철학의 뼈대에 의거한 하나님의 내적 존재방식에 의거한 본체론적인 삼위일체가 아니다.

각 시대의 언약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사역에 의거한 사역적인 삼위일체이다.

하나님의 본체와 속성도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나타난 본체와 속성이다.

 

하나님은 역사에 사신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본질서, 곧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오셔서

자기백성과의 만남과 대화, 식사와 교제를 행하신다.(창15:1-6)

이러한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고 증거된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심이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옛적에는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이루어졌다.(히1:1-2)

이는 하나님의 사역,

곧 계시가 그리스도 안의 완성을 향하여 진행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직접 오셨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다.

이제는 부활의 영으로 오셔서 믿는 자들을 직접 챙기시며 만유를 다스리신다.

이러한 신령한 통치가 시행됨으로

옛 경륜은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의 일로 온전케 되었다. (히10:1-14)

 

성경은 기자가 신앙적인 의도와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사역을 취사선택하고 편집하여 기록한 구원역사이다.(눅1:1-4)

기자들은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성경은 모든 시대와 장소를 아우르는 초시대적인 교훈집이 아니다.

성경은 각 시대의 언약에 의거한 역사적이고 문자적이며 문법적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성경기자의 의도와 목적을 따라

기록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당대의 문자적인 의미를 알아야 한다.

당시의 단어와 문장의 의미는 문맥에서 한정이 된다.

성경언어와 문장은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가진다.

문맥을 떠난 의미와 해석은 그 의미가 성경적이라고 할지라도

본문의 의미를 파괴하는 경건한 거짓말이며

이단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