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초대 교회사

[스크랩] 유럽대륙의 교회역사

에반젤(복음) 2021. 7. 14. 02:20

유럽대륙의 교회역사

 




1. 독일
(1) 프로이센 교회연합
19세기 독일에서 등장한 것은 1817년 프로이센 교회연합이 결성되었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된 것이 아니다. 당시 왕이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종교개혁 300주년이 되는 해에 루터교회와 칼빈교회를 연합하여 연합복음교회를 만들었다. 왕실은 개혁교회였고 다수의 국민들은 루터교회였다. 그리고 1822년에는 공동예배서를 발간해서 모두 다 이 예배서에 따라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Schleiermacher는 이전에는 교회의 일치를 주장하다가 막상 왕이 주장하니 까 반대하였다. 그에게 교회는 불가시적인데 왕이 제도적인 것에 의한 통합을 시도하니까 반대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루터파 목사들이 반대하여 구 루터파가 생겼다. 반대한 목사들은 투 옥당하거나 성직을 박탈당하였다. 그 다음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때에 와서는 루터파의 자유를 인정하였고 프로이센 복음루터교회가 되었다.
(2) 내지 선교
Wichern은 경건주의 출신이다. 1848년 불란서 2월 혁명, 1848년 공산당 선언을 보면서 교회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1849년 내지 선교회를 조직하였다. 그는 다양한 단체들을 조직해서 선교활동했다. 자매단, 형제단, 선원, 실업가, 죄수들의 집단을 형성해서 자기들의 동료들 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였다. 다음에는 주일학교, 기독교 문서선교운동 등을 하였다. 그 다음 에는 이러한 단체들의 전국적 조직체 결성하였다. 그 다음에는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를 독일의 큰 도시를 다니면서 주최하였다.

2. 덴마크
(1) Mynster
그는 대학 다닐 때에는 합리주의자, 범신론자였다. 그러나 Kant를 공부하면서 합리주의를 버리고 이성만능의 사고 방식을 버렸다. 낭만주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 30세가 되었을 때에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신앙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내적 평안을 체험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 는 설교하고 경건서적을 통해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2) Grundtvig(1783-1872년)
뮌스터의 영향을 받았다. 덴마크가 낳은 가장 훌륭한 목회자였다. (☞ 덴마크는 그가 살았기 때문에 달라졌다고 평가된다.) 그는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머니를 통해서 Mynster를 알게 되고 영향을 받게 된다. 참된 기독교는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이다. 나아 가서 국가생활이 기독교의 신앙의 행동에 의해서 변화되어야 한다. 그는 노래하는 교회 (singing church, 1300 여 개의 찬송가를 지었다), 기뻐하는 신앙(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총 을 기억하고 항상 기뻐해야 한다.)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농민학교를 만들었다. 민주 주의 국가의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강조하였다. 성인교육을 장려하였다. 농업협동조합 운동을 하였다. 그는 신앙운동을 하면서 세례와 성찬을 강조했다.(☞ 高교회적이다) 그는 만년에 세계 사를 쓰는데 세계사의 초점은 그리스도라고 보았다. 이 시대는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가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3) Kierkergaard(1814-1855)
일생동안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죄의식이 상당히 강했던 사람이다. 성경에 있는 말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Hegel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 Hegel은 위대한 철학자의 정신 안에서 절대정신과 화해가 이루어지고 일치된다고 하였 다.) 본질의 세계에서는 화해가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실존의 세계에서는 화해가 불가능하다. 그는 19세기 사상사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 19세기 사상사는 대체로 인간 안에 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해서 신과 인과의 격리성, 신의 타자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 생활을 3단계로 묘사하였다. 첫째는 미적 단계이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될 수 있는 대로 쾌락을 추구한다. 의무감이 결여되고 책임을 지기 싫어한다. 두번째는 윤리적 단계이다. 이단계에 있는 사람은 사회에 참여하고 의무감, 책임의식을 가진다. 마지막 세번째 단계는 종교적 단계로 무한한 것에 관심을 둔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종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 는 소크라테스의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종교이다. 소크라테스의 종교는 진리가 인 간 안에 내재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깨워 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해서 그리스도의 종교는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자기 밖에 있는 하나님을 향해 비약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신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3. 노르웨이
(1) Hauge
노르웨이는 1,500마일 해안지대 사람들이 흩어져 살기 때문에 성직자들이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그래서 평신도 순화전도자들이 활동하였다. 평신도 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국교회의 냉 랭함을 비판하고 회심, 거룩한 삶을 강조하였다.
(2) Johnson
Hauge의 운동을 발전시킨 사람은 Johnson이다. 그는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Neander의 영향을 받았다. 내지 선교회를 조직해서 노르웨이에서 선교하였다. 그는 신앙의인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였다. Hauge와 비슷하게 책자운동을 벌였다.
4. 스웨덴
두 개의 대학교가 중심이 되었다. 웁살라 대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룬트 대학이다. 웁살라대학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강조하고 교회나 성례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룬트 대학교는 교회와 성례를 중시하는 입장이었다. (☞ 나중에 룬트 대학교는 20세기에 들어 오면서 Aulen, Nigren등의 룬트학파가 형성되었다.)

5. 스위스
(1) Vinet
그는 처음에는 지나친 복음주의운동을 비판하였으나 나중에 온건한 복음주의 운동을 받아들였다.스위스에서 복음주의적인 각성운동을 벌였다. 정부가 교회를 간섭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교회의 독립성을 주장하였다. 마침내 그는 자유교회를 형성하였다. 스위스에서 Vinet의 각성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 중에 유명한 사람은 앙리 뒤낭이다. 그는 부유한 가문출신 각성운동의 영향을 받아들여서 1863년 국제 적십자사를 조직하였다.

5. 종교사회주의 운동
(1) St cker
그는 1874년 루터교회의 목사로서 궁정 목사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가 근로 대중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동입법, 사회보장제도 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루터파의 두 왕국설에 밀려서 루터교 안에서 이 운동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 나중에 이런 정신을 이어 받은 사람이 Harnack으로서 Social Gospel이다. 이것은 독일 안에서는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미국에 건너가서 영향을 미쳤다.) 반면에 개혁교회 내에서 이 운동을 상당히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다. 첫번째 사람이 Kutter이다.
(2) Kutter
저서 가운데 {Sie M ssen}(당신은 해야한다)이 있다. 그는 원래는 경건주의 출신이다. 한계를 느끼면서 종교 사회주의 운동을 하였다. 기독교 사회가 황금만능주의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현재는 오히려 기독교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관이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가 해야 하는 일은 인간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교회는 가난에 허덕이는 대중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한다. 사회적 불의를 가져오는 금력에 대해서 비판해야 한다. 이 사람은 정치운동은 하지 않고 끝까지 교회에 남아서 교회를 개혁시키려고 하였다.
(3) Ragaz
또 한 사람은 Ragaz이다. 원래는 자유주의 출신이었는데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사회적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나중에 사회 민주주의 운동을 지지하고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여 정당 활동을 하였다. (☞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Karl Barth, Paul Tillich 등이 젊었을 때에는 종교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