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칼럼]
/ 한국교회의 성령세례, 평양대부흥운동
배본철 교수의 성령론(19)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에 있어서 성령세례 또는 성령의 능력 경험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본다. 한국교회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성령세례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조사함에 있어서, The Korea Mission Field는 근본적인 사료(史料)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여러 자료들 가운데 최근의 저작으로 총신대학교 교수인 박용규의 『평양대부흥운동』은, 방대한 양의 관계 자료들을 바탕으로 당시 성령운동에 대하여 통찰력 있는 조명과 평가를 했다. 특히 이 책의 부록을 통해 그는 평양대부흥운동을 전후로 한 성령의 능력과 임재 현상에 관계된 유용한 연표(年表)를 제공하였다.
대부흥운동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에 나타났던 오순절적 성령의 능력 체험에 대해서, 당시 선교사들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종합적인 분석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것은 뚜렷한 현상, 즉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시각과 청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래서 집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령께서 강하게 임재 하셨다는 의식 속에서 기도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죄에 대한 통회 자복과 회개가 있었다. 성령의 임재로 인해 사람들은 영혼 속의 죄악을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성령께서는 사람들 속에 강렬한 회개의 영을 부으셔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죄악과 내면적 죄 성을 자백하며 통회하였던 것이다.
의도된 바가 없었지만 종종 매우 강렬한 육체적 나타남(physical manifestation)이 동반되었다. 때때로 그들은 자신의 이마나 손바닥을 마루에 치거나, 마치 귀신들이 잡아 찢기라도 하듯이 울부짖으며 문자 그대로 고통 속에 몸을 뒤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몸을 지탱할 힘도 없이 기력을 쏟고 나서는, 발을 뻗고 엄청난 흐느낌과 울음 속에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해 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웨슬리의 부흥운동이나 웨일스 지역의 부흥운동이나 또는 현대 오순절운동 등에서도 자주 나타났던 것으로, 주로 성령의 임재에 부딪혀서 죄악을 격렬하게 회개할 때 일어날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성령을 받을 때까지 간구하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참다운 회개와 믿음의 기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집회에서는 새벽 2시까지 참회와 울부짖음과 기도가 번갈아 가면서 지속되었다. 다음 날 저녁에도 같은 현상이 더욱 강렬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회개가 온전히 되고 또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은 것이 확인되기까지는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장로교와 감리교를 막론하고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에 대한 선교사들의 기술은, 이 부흥운동을 명백히 기도의 능력과 철저한 죄의 통회와 성령의 권능의 임재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단지 평양대부흥운동에서만이 아니고, 그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부흥운동의 전반적인 특징이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대부흥운동은 명백히 중생과는 별개의 경험으로서, 성령세례 혹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일을 중시하였다는 점을 또한 확인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심령의 변화를 체험했을 때, 대부흥운동에서는 대부분 '성령이 임했다', '성령을 받았다', 또는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하였다. 초대 선교사였던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도 평양의 대부흥운동을 가리켜 "한국교회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Horace Grant Underwood, The Call of Korea, 6)고 했으며, 홀(E. F. Hall)은 미 북장로교 선교부 브라운(Arthur Brown)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길선주가 평양부흥운동 기간에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적었다. 또 북장로교 선교사인 무어(Moore)는 명목상의 크리스천이었던 어떤 젊은이가 성령세례를 받고 난 후 즉각 자기의 부모를 주님께로 인도하고, 또 여름성경학교를 이용하여 많은 어린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였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브레어(William Newton Blair), 프레스턴(J. F. Preston) 등 대부분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중생과는 별개의 체험으로서의 성령세례, 성령강림과 같은 단계를 전제하고 기술하였다.
이처럼 성령론적으로 볼 때, 특히 성령세례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경험한 대부흥운동의 성령론은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과는 상이하다.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은 카이퍼(Abraham Kuiper), 핫지(Charles Hodge), 워필드(B. B. Warfield), 개핀(Richard Gaffin), 스토트(John Stott) 등으로 대표되는데, 이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신학자들을 통해 성령 은사의 중단성(中斷性)과 함께 중생과 연관하여 성령세례의 단회성을 강조하는 성령론의 한 노선이 발전돼 왔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노선의 차이점은,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은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시적인 것으로 보지만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성령론은 오히려 이 둘을 구분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대부흥운동 당시에는 이러한 성령론적 논제는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가르친 성령세례가 주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경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노선 사이의 갈등이 시작된 것은, 해방을 전후로 해서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배우고 돌아온 한국인 신학자들이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을 가르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한국 신학계는 종전의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이나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관념에 대항하여, 중생을 성령세례와 동시적으로 보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과의 마찰이 심하게 일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성령론은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 보다는 오히려 웨슬리안이나 오순절주의에서 말하는 성령세례 관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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