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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응답의 6대 요소

에반젤(복음) 2021. 1. 18. 14:02

기도 응답의 6대 요소

(왕상 18:30-40)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 기도는 곧 응답이다 >

 

한 사람의 신앙 건강을 진단하는 5가지 지표가 있다. 말씀이 달게 느껴지는 것, 더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말과 생각이 늘 긍정적인 것, 전도하고 싶은 열의가 있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를 생활화하며 사는 것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기도가 없다면 영혼이 죽었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나를 축복해 주시고 진실한 기도는 작은 기도도 응답해 주신다.

 

어느 날 한 목사가 예배에 늦어 노란불로 막 바뀔 때 달리다 경찰한테 걸렸다. 경찰이 딱지를 손에 들자 목사가 그 손을 붙들고 갑자기 “하나님! 이분을 축복해 주세요.”라고 한 후 말했다. “제가 지금 설교하러 가야 하는데 늦어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경찰이 말했다. “별일이 다 있네. 그냥 가세요.” 목사가 그 설교를 교회에서 하자 한 성도가 신호위반으로 걸렸을 때 똑같이 경찰 손을 딱 붙들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분을 축복해 주세요. 늦어서 그랬어요.” 그러자 경찰이 “별일이 다 있네.”라고 하더니 딱지를 두개 뗐다.

 

하나님은 계산적인 거짓된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지만 진실한 기도에는 넘치게 응답하신다. 속상하면 기도하고 기도 잘한 증거인 마음의 평안이 있게 하라. 그러면 가장 적절한 때에 넘치는 기도 응답의 역사가 있다. 기도는 교회에서 모임 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신앙이 깊어지고 기도 응답을 체험하면 기도의 생활화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를 생활화하라는 말씀이다. 기도를 생활화하면 기도가 곧 응답임을 체험할 것이다.

 

기도는 문제를 풀고 닫힌 축복의 문을 여는 핵심 열쇠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라. 어떤 사람은 힘들 때마다 자동차 키를 만지작거리며 기도한다. “하나님! 기도는 닫힌 문을 여는 최상의 열쇠인 줄 믿습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와 시련도 나를 주저앉히지 못한다. 기도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응답받는 기도를 드리라. 기도 응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 기도 응답에 필요한 것 >

 

아합 왕 때 아합은 강대국 틈에서 살아남으려고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했다(왕상 16:31). 그때 이세벨이 유입시킨 이방신이 만연하자 하나님의 분노로 하늘 문이 닫혀 3년 6개월간(약 5:17) 비가 그쳤다. 그 후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이방 선지자들과 누가 참 신인지 대결하게 하셨다. 엘리야는 아합 왕과 온 이스라엘 백성을 갈멜산으로 모아 제단 위에 송아지를 놓고 불로 응답하시는 신을 참 신으로 하기로 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아침부터 바알에게 기도하고 제단 주변에서 춤까지 췄지만 응답이 없었다. 정오에 엘리야가 조롱했다. “큰 소리로 불러봐라. 너희 신이 묵상하나? 잠깐 나갔나? 길을 행하나? 혹은 잠들어서 깨워야 하나?” 그러자 바알 선지자들은 더욱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고 피가 흐르도록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했다. 그래도 정오가 지나도록 아무 일도 없자 저희가 미친 듯이 떠들었다(왕상 18:29). 그 부분을 이전 <개역한글> 성경에는 진언을 했다고 표현했다. 진언을 했다는 말은 무속인처럼 열광적인 방언을 했다는 뜻이다.

 

사교의 열광적인 자기네식의 방언까지 하면서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거의 하루 종일 기도했어도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바로 이어서 엘리야가 나와 갈멜산 정상에서 기도하자 제단에 하나님의 불이 내렸다. 어떻게 엘리야의 기도가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되었는가? 본문이 말해주는 기도 응답의 6대 요소가 있다.

 

1. 참된 예배의 회복

 

본문 30절을 보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엘리야는 기도할 때 가장 먼저 무너져 폐허가 된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다. 당시 이세벨은 많은 선지자를 죽이고 많은 여호와의 제단을 헐었다. 그때 갈멜산 제단도 폐허 상태였는데 그는 기도하기 전에 그 제단부터 수리했다. 제단을 수리하는 모습은 신약 성도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교회를 잘 섬기라는 의미다.

내 눈에 선교지의 아픔이 잘 보이는 것도 축복 기회지만 교회에 떨어진 휴지가 잘 보이는 것도 축복 기회다. 하나님은 선교에 동참하려고 손을 내밀 때 그 손에 담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고 축복의 손을 내밀어 주시고 교회에 떨어진 휴지를 치우려고 휴지를 손에 잡을 때 그 손에 담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고 축복 기회도 잡히게 하실 것이다. 집을 청소하고 수리할 때 교회 청소와 수리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교회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더욱 기억될 것이다.

 

둘째, 참된 예배를 회복시키라는 의미다.

형식적인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명절에 부모님께 배 한 박스를 보내면서 좋은 배는 자기가 먹고 부모에게 썩어 문드러진 배를 보내면 부모는 기뻐할 수가 없다.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가? 비유적인 의미로 썩어 문드러진 배로 드려진 제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데 내가 하나님께 온전하지 않은 썩어 문드러진 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축복은 오히려 망하는 길로 가게 만들기에 차라리 안 주시는 것이 낫다. 기도 응답을 원하면 참된 예배 회복에 힘쓰라. 예배드릴 때 10분 전에 와서 드리는 것과 10분 후에 와서 드리는 것은 하나님은 상당히 다르게 받으실 것이다. 예배 준비 과정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께 내가 먼저 한두 입 먹고 남은 배를 드리지 말고 온전한 배를 드리라. 예배의 승리자가 인생의 승리자와 기도의 능력자가 된다.

 

2. 평안을 주는 믿음

 

엘리야는 제단을 수축할 때 열두 돌을 취해 제단을 쌓고 제단 주위에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그 위에 송아지의 각을 떠서 놓고 사람을 시켜 그 위에 4통에 가득 찬 물을 3번, 총 12통의 물을 붓게 했다(31-34절). 그러자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35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하늘의 불이 붙길 원하면 오히려 바짝 말려야지 왜 물을 붓는가? 그만큼 엘리야는 기적적인 기도 응답을 확신했다.

 

제단과 제물 위로 물을 넘쳐흐를 때 엘리야는 매우 평안했을 것이다. 믿음과 평안은 비례한다. 믿음이 깊어지면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처럼 얼굴에 광채도 난다. 얼굴에 구김살이 없게 하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면 인상부터 좋게 만들라. 그런 모습들도 다 믿음이 깃든 표식이다. 심각하게 인상 쓰고 전도하면 오히려 믿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마음이 불편하면 위벽의 긴장으로 위액 분비가 원활하지 않게 되고 결국 위에 상처가 나면서 소화 불량이 된다. 마음이 평안해야 몸도 건강해진다.

 

사람이 극도로 분노할 때 내는 콧김을 특수 장치로 액화시킨 후 그 액체를 흰 쥐에 주사하자 즉사했다는 얘기도 있다. 분노는 치명적인 독이다. 굳건한 믿음에 따르는 마음의 평안에 있게 하라.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시고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믿음의 기도는 엄청난 자산이다. 그 자산을 가진 한 사람의 힘은 믿음이 없는 850명의 힘보다 더 크다. 승리는 나의 능력보다 나의 믿음에 더 달렸다.

 

당시 이방 선지자들은 강력한 정치권력의 배경을 가졌지만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은 엘리야를 당하지 못했다. 나는 약해도 믿음을 가진 나는 강하다. 기도할 때 큰소리로 기도하고 손뼉을 치며 기도하고 가슴과 다리를 치며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방 선지자 850명은 하루 종일 고막이 떨어질 정도로 큰 소리로 기도해도 하늘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엘리야는 믿음의 기도로 금방 하늘 문이 열렸다. 큰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큰 믿음이 중요하다.

 

3. 눈물이 섞인 예물

 

엘리야는 수축한 제단의 나무 위에 송아지의 각을 떠서 놓았다(33절). 각을 떴다는 말에서 ‘각’은 한자의 ‘다리 각(脚)’ 자로서 다리를 떴다는 말이다. 결국 번제를 드릴 때 각을 뜬다는 말은 제물의 머리와 네 다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제단 위에 올려놓는 것을 뜻한다. 제물의 각을 뜬 것은 눈물이 섞인 예물을 상징한다. 참된 제사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예물이 필요하다.

 

부모가 며느리로부터 밥상을 받았는데 밥상 위에 밥과 반찬은 없으면 며느리를 축복하고 싶겠는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 예물이 없다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싶겠는가? 이삭은 야곱의 별미를 받은 후 야곱을 축복했다. 하나님께 소중한 별미를 드리라. 가장 소중한 별미는 나 자신이다. 하나님은 내가 가진 소유보다 먼저 나 자신을 원하신다. 하나님 앞에 나를 온전히 드릴 때 하나님은 내가 축복 받은 후 입 딱 씻고 자기 주머니만 채우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내게 풍성한 축복을 내리실 것이다.

 

구원받은 순간 나의 몸과 마음과 소유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예배드릴 때도 일주일의 168시간 중 한 시간을 딱 잘라 168분의 1을 드린다는 마음보다 1시간을 대표로 드리면서 168시간 전체를 드린다는 심정으로 예배드리고 교회와 사역자의 필요에도 관심을 가진 표식으로 힘써 예물을 드리며 예배드리라. 헌신이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참된 신앙과 기복주의의 차이는 헌신의 차이에 있다.

 

당시처럼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아 물이 귀한 때에 엘리야가 갈멜산 위로 힘들게 가지고 온 물을 12통이나 제단에 부은 것은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과 같은 믿음의 헌신을 뜻한다. 그런 헌신을 보고 하나님은 하늘의 불이 내린 후에 하늘 문을 열어 큰 비까지 내려주셨다. 물을 넘치게 드리자 비교할 수 없는 넘치는 하늘의 물을 받은 셈이다.

 

하나님께 받고 싶은 것을 먼저 드리려고 하라. 물질을 원하면 물질을 드려 교회와 선교에 도움을 주고 힘을 원하면 현재의 힘을 선교에 보태고 재능과 건강을 원하면 현재의 재능과 건강으로 선교에 힘쓰라. 하나님이 주신 물질과 힘과 재능과 건강으로 먼저 헌신하라. 헌신이 없으면 믿음도 자라지 못하지만 축복도 받지 못한다. 헌신도 없는데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사탄의 미끼로서 나중에 보면 그 축복 받았다는 것 때문에 더 불행해지고 추락한다.

 

최고 권력에 있다가 추락한 사람을 보면 안쓰럽다. 차라리 그가 높이 오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사람은 몇 년 후를 알 수 없다. 헌신이 없어도 높아질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헌신이 있어야 축복도 있다. 어려워도 헌신하라. 어렵다고 헌신하지 않으면 가뭄은 계속되지만 어려워도 산 위로 가지고 온 물 12통을 힘써 제단에 부어드리자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어 수만 배의 소낙비로 그 헌신에 보답해주셨다. 나의 헌신이 인정받아 하나님이 한번 축복의 문을 여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왜 사람들의 믿음과 마음이 메마르게 되는가? 눈물의 헌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 밭이 좋아도 여러 계산과 핑계로 헌신을 피하면서 3년 6개월쯤 지나면 누구든지 마음이 메말라진다. 그러면 말씀을 들어도 과거처럼 감동과 감격과 감사가 없게 되고 결국 응답과 축복도 없게 된다. 헌신의 눈물과 예물을 교회와 선교 사역을 위해 많이 뿌리면 그때의 기도는 산을 움직이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이다.

 

4. 꾸준한 기도 생활

 

엘리야는 제단에 물이 넘쳐흐르는 상황에서 저녁 소제 드릴 때에 기도했다(36절). 갈멜산 대결에서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기도해서 응답이 없자 바알 신의 이목을 끌기 위해 춤까지 추고 바알 신의 불쌍히 여김을 받기 위해 자해하고 오후에는 진언(무차별 방언)까지 했다. 그래도 엘리야는 계속 지켜만 보고 정오가 지나고 오후 3시가 지나도 기도를 시작하지 않았다. 사실 해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온도도 높아 불이 붙을 확률도 컸지만 엘리야는 하루 종일 가만히 있다가 저녁 소제 드릴 때에야 비로소 기도하러 나섰다. 왜 그렇게 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에 소제를 두 번 드렸다. 아침 소제와 저녁 소제다. 결국 소제 시간은 아침과 저녁의 정기 기도 시간이다. 엘리야가 저녁 정기 기도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기도한 것은 꾸준한 기도 생활의 중요성을 교훈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에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데 늘 기도 가운데 살지 못하면 일정한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이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이다.”라고 생각하고 힘써 지키는 것이 좋다.

 

베트남 전쟁 때 한 군인이 적진에 폭탄을 터뜨리는 죽음의 작전에 밤 11시에 투입되도록 명령 받았다. 그 군인은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으로서 그 작전을 새벽 5시에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대장이 허락했다. 마침내 새벽 5시에 적의 총알을 뚫고 성공리에 작전을 수행했다. 나중에 신문기자들이 새벽 5시의 작전을 주장한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매일 새벽 5시는 어머니가 늘 저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하지 말라. 꾸준한 기도 생활이 인생 승리의 비결이다.

 

5. 하나님을 높이는 삶

 

엘리야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구하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36-37절). 그는 철저히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를 드렸고 기도 응답도 하나님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구했다. 그의 기도에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목적이 없었다. 축복을 달라고 기도할 때 축복 받으면 그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선교에 동참하고 선한 일에 활용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하라. 그때 응답도 멋지게 이뤄질 것이다.

 

예전에 입시 때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밀물처럼 늘다가 입시 후에는 썰물처럼 줄었다. 그런 기도는 가치가 떨어진다. 입시 특별기도회는 부작용이 많다. 그런 기도를 드리는 것은 실력 이상을 기대하며 드리는 것이기에 자기 실력대로 나와도 마치 하나님이 기도를 안 들어주신 것 같다. 그래서 실망했다고 특별기도 후에 시험 드는 사람이 많다. 사실 그렇게 시험들 줄 다 알고 하나님이 안 주신 것이다. 수시로 시험 드는 마음에 축복을 내리는 것은 축복의 남용이다. 하나님은 이기적인 특별 기도보다 꾸준한 기도에 관심이 많으시다.

 

어느 날 기도원에서 한밤에 한 여자가 산 기도를 하는데 정상이 아니었다. 가만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원목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절벽 가까이에서 한 여자가 가끔 늑대처럼 소리치며 기도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까 이런 기도였다. “하나님! 그년은 주고 이년은 왜 안 줘요?”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서 주먹질까지 했다. “하나님! 주세요. 주세요. 그년! 노. 이년! 예스.”

 

원목이 가까이 가서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가 원목을 보고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면서 푹 쓰러졌다. 얼마 후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대화 중에 원목이 ‘그년’이 누구냐고 물었다. 사연을 들으니까 ‘그년’은 자기 교회에 믿은 지 2년도 안 된 한 여자라는 얘기였다. 그 여자가 산에 가서 예언의 능력을 받은 후 교회에서 인기 짱이 되었는데 자기는 교회를 오래 다니고 열심히 충성했어도 그런 능력을 받지 못한 것이 너무 질투가 나서 자신도 능력을 받겠다고 결심하고 기도원에 왔다가 그런 쇼를 벌인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영성을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려는 기도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금식기도도 영성과 절제 능력을 과시하고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지 말라. 왜 금식기도를 하는가? 세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깨끗한 존재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다. 오래 굶은 기록을 세우려고 금식하거나 자랑하려고 금식하거나 남이 금식하니까 나도 질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금식하지 말라. 그런 금식은 귀신을 쫓아내게 하기보다 귀신에게 사로잡히게 한다.

 

어떤 교주는 “40일 금식기도 3번”이란 글귀가 있는 명함을 돌린다. 어떤 사람은 “내일부터 3일 금식한다.”라고 광고한 후 그 전날 11시 59분까지 엄청나게 먹는다. 칼로리로 따지면 며칠분의 음식을 다 먹은 셈이나 다름없다. 금식이나 기도가 영성 자랑의 수단이 되면 안 된다. 기도할 때 욕심을 채우기보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특히 하나님을 높이려는 마음의 바탕을 가지고 기도해야 그 기도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된다.

 

6. 응답 이후의 결단

 

엘리야가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하자 마침내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는 물론 돌과 흙까지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핥았다(38절). 성경에 돌과 흙까지 탔다는 기록은 본문이 유일하다. 놀라운 기도 응답의 역사다. 기도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이 곧 나타나지 않아도 기도를 포기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우물을 잘 파는 우물 도사였다. 누군가가 어떻게 그렇게 우물을 잘 파느냐고 그 비결을 묻자 그가 말한 핵심 비결은 ‘나올 때까지 파는 것’이었다. 기도도 기도 응답의 요소를 갖추고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라. 그러나 기도 응답 받을 때까지만 기도하지 말라. 기도 응답 후에 어떻게 하느냐는 것도 그 전의 기도 응답을 이루게 하는 요소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능력으로 누군가가 기도 응답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도 미리 아시고 응답을 내리신다. 그러므로 응답 후에 잘하겠다는 마음에 거짓이 없게 하라.

 

엘리야가 기도 응답 후에 어떻게 했는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고 모두 잡아 기손 시냇가에서 죽였다(40절). 이것은 영적인 의미로 죄의 본성을 철저히 죽이는 것을 상징한다. 가끔 보면 다급한 문제가 해결되고 한숨을 돌리면 어느새 죄에 다시 손을 대는 경우도 많다. 축복 받는 것보다 축복을 간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기적보다 기적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 응답 이후에 굳게 결심해서 나를 죄로 이끄는 그림, 글, 오락, 각종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 사랑과 교회 사랑과 이웃 사랑을 새롭게 결단하고 실천하라.

 

응답 받은 후에 자랑에 빠져서 은근히 자기 영성과 신비를 자랑하는 일이 없게 하라. 요새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속칭 ‘예수 점’을 행한다. 그런 저주 받는 행위에는 눈길도 주지 말라. 신명기 18장 10-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자, 점쟁이,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자, 무당, 진언자, 신접자, 박수, 초혼자를 가증하게 여기신다고 했다. 호기심으로라도 점치는 식의 거짓 예언에 이끌리지 말라. 그런 말은 한 마디도 듣지 말고 자신을 잘 지키라. 귀신에 현혹되면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침탈을 겪는다.

 

응답과 체험 이후가 중요하다. 내가 은혜 받으면 사탄은 너무 배가 아파 파상 공세를 펼칠 것이다. 은혜 체험 후에는 영성과 교만 시험이 따라오기 쉽다. 은혜를 체험하면 더욱 겸손해지고 사랑을 다짐하고 사명을 새롭게 해야 계속 하나님의 축복이 내 곁에 머물 것이다. 지금도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 늘 참되고 바른 기도 생활로 기도 응답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주일설교(20.11.22) -

 

 

ⓒ 이한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