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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례설교] 화장 장례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요11:24-27

에반젤(복음) 2021. 1. 14. 12:05

화장장례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

제목: 마지막 날 부활에는
찬송: 228, 545
성구: 요11:24-27

1. 부활을 보여주신 예수님
오늘 화장예배 앞에 머리 숙인 우리는 다시 한 번 인생의 결과에 대해 예측해 보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한 가정의 슬픔과 영원한 세계를 향한 소망의 빛줄기가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가정과 특별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부모 없이 3남매가 힘겹게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사로는 병이 들었습니다. 슬픔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슬픔 가운데 두 자매가 생각해낸 것이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간을 지체하셨고, 그동안 나사로는 죽음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가정과 동네 사람들은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늦은 시간에 마리아의 가정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썩어 들어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얼마나 야속한 눈물입니까? 조금만 빨리 오셔도 충분히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왜 이렇게도 짜증스러울까요?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썩어진 육신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묻혀 있는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놀랍게도 나사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미 죽은 시신입니다. 이미 부패된 몸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그를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예수님이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리셨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부활의 실체’를 확증시켜 주기를 원했고, 자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2.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는 상관없이 고인의 시신은 몇 줌의 잿더미로 우리 앞에 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권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소망 가운데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의 죽음 몸을 다시 무덤에서 나오게 하신 주님이 잿더미가 된 고인의 시신을 죽음의 늪에서 나오게 하시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저항할 수 없는 부활하신 주님의 권세가 우리를 영원한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분 안에 연합되어 있는 자들은 반드시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것입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물론 불완전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현재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주님에 대한 신앙은 저버린 채 마지막 날의 부활에만 국한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 다시 한 번 마지막 날의 부활 신앙을 붙잡아야 합니다. 고인을 부활체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면서 남은 생애를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례예배란

장례예식을 잘 치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부활 신앙의 표현이기도 하다. 죽음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의 중대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국가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일들이 뒤따르는 인간사의 중대한 장면이다.

성도의 시신은 매우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생명의 부활로 나올 몸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담겨있던 육신을 정중히 다루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떠난 육신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겨 우상시할 필요는 없다.

장례의 의의는 무엇보다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과 이것을 계기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크게 도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항상 마음에 두고 봉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장례예식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다시 한 번 확신하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장례식에는 임종예배,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 위로예배의 다섯 가지 예식이 있다. 이 가운데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은 매우 중요한 예식이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장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발인(출관)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례예배 실제

1) 임종예배
사람의 호흡이 끊어져 인생의 종말을 고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때가 곧 임종이다. 세상에서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구원의 확신이 없이 임종하였다면 그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다시없는 비극이다.

* 어떻게 운명이 임박한 것을 알 수 있는가? 심장이 거의 멎어가는 사람은 그의 눈동자를 보면 안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멎어 있으면 곧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그때에 손발을 살펴보아서 손톱과 발톱이 새까매지면 운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운명하려 할 때 집례자가 기억할 것은 예수님만 의지하도록 권면하고, 마지막 임종 기도를 드리며, 찬송을 계속 부르는 것이 좋다. 또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임종시에 신앙고백을 듣고 유족들에게 “예수님을 잘 믿어라”는 한 마디의 유언을 남길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 운명한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운명한 다음 중요한 것은 입관식, 발인(출관)식, 하관식이다. 그러므로 임종예배가 끝나면 교회는 즉시 상가와 장례절차를 결정하고 최후의 행사에 대하여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상을 당한 식구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고와 행정상 법적 절차를 밟는 일에 협력하도록 한다. 우선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동사무소에 가면 매장 허가서를 뗄 수 있다. 다 준비되어 있으면 매장허가서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에 장례 일정을 논의하는 것이 좋다. 이때 교회법을 따르도록 다짐을 받아야 하고 시신 앞에서 배례나 곡을 하지 않아야 하며, 조객들은 묵도로 예의를 갖추도록 미리 알려두면 좋다.

2) 입관예배
입관예배는 고인의 시신을 씻은 후 옷을 입혀서 관에 모시고 드린다. 관에 뚜껑을 덮고 결관하여 관보를 씌우고 드리기도 하고, 관에 뚜껑을 덮지 않고 옆에 두고 드리기도 한다. 입관은 원칙적으로 임종 후 24시간이 지난 후에 한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다시 소생할까 해서 24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 앓던 분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별세 후 24시간이 경과되지 않았더라도 유족들의 요구에 따라 서두를 수도 있고 잠시 연장할 수도 있다.

묵도를 마치면 찬송을 부르고 성경봉독을 하고 설교를 하고 기도로 끝낸다. 입관예배를 마치고 나면 발인예배 시간과 장소를 자세히 알리고 폐회한다. 예배 후에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다. 유족이 상을 당해 보지 않았거나 전혀 장지에 관한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준비물과 과정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 상주는 입관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상복을 입어야 한다.
* 매장허가서를 받아 놓았는지 확인을 한다.
* 영구차는 준비되었는지 확인을 한다.
* 장지까지 따라갈 교인의 인원을 참고로 알려준다.
* 장지에 갈 음식 장만을 확인한다.

3) 발인(출관)예배
불신자들은 발인식을 영결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합당치 않다. 그 말의 의미가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이별이 없음을 생각할 때, 영결식이란 말 대신에 장례식 혹은 발인식, 출관식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발인예배의 집례자는 축도를 마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구차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예배 후 모든 조객들을 좌우로 질서 있게 세우고 집례자가 사진 든 사람의 왼쪽에 서서 팔을 잡고 앞으로 출발한다. 그 뒤에 꽃이 따라고, 상주가 따르고, 유족들이 따르고, 조객들이 따라 나와 영구차에까지 오면 사진은 집례한 목사님이 탈 선두차 앞에 실어 놓는다. 운구한 다음에 집례자는 영구차의 관을 넣는 쪽에 서고 그 옆에 상주와 유족들을 쭉 서게 하고 장지에 함께 갈 조객들은 먼저 차에 타도록 하고 산에 가지 못할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집례자는 인사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인사가 끝나면 상주들을 지시하여 차에 태운다.

집례자가 상주들이 탄 차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내려와서 선두차에 타고 출발하면 그 뒤에 영구차와 조객들의 차가 따르게 된다.

4) 하관예배
영구차가 산에 도착하면 발인식의 행렬과 같은 요령으로 묘지까지 운구한다. 이때 성가대가 있으면 찬송가 543장을 부르는 것이 좋다. 하관예배를 드릴 때에도 집례자는 관머리쪽에 서서 지휘를 하며 관을 내리게 한다. 관이 안장된 다음에 관보, 명정, 횡대를 다 덮고 다시 세 번째 횡대를 열어서 두 번째 횡대 위에 놓고 나서 상주는 집례자의 오른쪽에 서고 조객들은 집례자의 왼쪽에 서게 한다.

찬송은 291장같이 천국을 사모하는 것을 부르고 설교도 부활에 대한 것이 좋다. 특히 하관예배는 흙으로 된 몸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 돌아와야 하는 슬픔의 절정을 이루기 때문에 새로운 결심과 부활의 소망을 주는 말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슬픔은 흙속에 묻어 버리고 다시 무덤을 찾아올 때는 기쁜 소식들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축복기도를 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축도를 하고 하관예배가 마쳐지면 복토(覆土)를 한다. 집례자는 복토 순서를 말해야 한다. “복토 순서는 집례자, 상배자(미망인), 유족, 친척, 교역자, 장로님, 친구의 순서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제일 먼저 집례자가 복토를 한다. 복토를 하는 동안 성도들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복토가 끝나면 집례자는 폐회선언을 한다.

5) 위로예배
산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상주들을 다 모아 놓고 위로예배를 드림으로써 모든 장례절차는 끝나게 된다. 위로예배는 상주들이 가장 허전해 하는 때이므로 더욱 정성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때 교역자는 다른 급한 심방이 있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하며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끝마쳐야 한다. 이때 상주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장례 때의 가장 많은 질문들

1. 임종시 곡을 합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별세했을 때 슬픔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연스런 감정이 북받쳐 우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계속 곡하는 것과 옛날 유교식 장례에서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곡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2. 상을 당했다고 알리는 등을 다는 것과 촛불 켜는 것, 향을 사용해도 됩니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상가임을 알리고 등을 다는 것은 문상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말하듯 귀신을 불러오는 것은 아닙니다. 촛불은 어두음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상가의 상징행위로 혹은 분위기나 냄새 제거의 목적으로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3. 위패를 모시거나 지방을 써서 붙여도 됩니까?
이것은 기독교인으로 거부합니다. 유교식 장례법으로 사당이 없는 가정에서 화선지에 ‘누구누구씨 신위’라고 위패를 써서 예식을 가졌었습니다. 지방을 써서 모시는 것도 돌아가신 혼령이 그 자리에 임재한다는 빙의의 신앙 표현입니다. 믿는 이들은 조상의 넋을 종이에 써서 붙여 모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모셔야 합니다. 추모식 때 중심의 상징이 필요한 경우 위패나 지방 대신 아무개 성도의 제 몇 주기 추모제라고 써서 붙이는 것은 괜찮습니다.

4. 상례시 음식물을 상위에 진설해도 됩니까?
고인의 영정 앞에 음식을 차리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인이 평소에 잘 드시던 음식을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하여 차려놓는 것을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죽은 자는 음식을 차려 놓아도 먹을 수 없습니다. 불필요하게 유가족들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5. 운명한 후 고인의 옷가지를 지붕으로 던지거나 사잣밥을 준비하는 것은?
귀신들이 황천까지 안내한다는 의식의 표현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에 올라가지 귀신이나 사자들이 안내하는 것이 아니기에 필요 없습니다.

6. 수의와 유가족들의 복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는 이들 가운데도 고급 수의를 고집하는 경우를 봅니다. 몇 백만원, 혹은 유명한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몇 천만원까지 한다니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수의를 미리 마련하면 장수한다는 속설도 믿을 필요 없습니다. 간소한 수의를 마련하는 것은 좋습니다. 꼭 삼베로 만든 수의가 아니어도 평소에 잘 입던 양복 등을 입혀도 됩니다. 유가족들의 경우 집안의 풍습대로 하되 삼체로 만든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자는 흰색, 혹은 검은 색 치마 저고리를 입거나 깨끗한 검은 양장을 입어도 될 것이며, 남자는 검정색 양복에 삼베 상장을 팔에 끼는 것도 무방합니다.

7. 임종시 돌아가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이건 조심해야 합니다. 금방 돌아가실 듯 보여도 나중에 가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환자 앞에서는 장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강압적으로 고백을 받아내려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예수님 믿으세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평안하세요” 정도로 말씀드려도 다들 알아듣습니다. 운명시간이 가까워 오면 오히려 가족들보다 환자 분이 마음이 차분하답니다.

8. 비기독교인의 상가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은 괜찮습니까?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사도의 조언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케 할 경우를 위해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종교적인 이유로 거리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두어 가지 이유에서 상가에서 음식을 잘 먹지 않습니다. 하나는 유가족을 생각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분주하고 슬퍼하는 가족들 앞에서 떠들며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고, 봉사하는 이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며, 또 다른 이유는 음식을 여러 사람들이 먹다보니 위생적으로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멀리 간 경우, 혹은 가족들과 대화가 필요한 경우에 간단하게 떡이나 차를 마시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9. 문상을 가서 어떤 말을 상주에게 해야 합니까?
정중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 받으세요. 천국 가셨습니다. 힘내세요. 주안에서 큰 위로 있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말씀드리면 됩니다. 저는 특히 큰 며느님이나 둘째 혹은 셋째나 고인을 모시고 살았던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노라고 혹은 “고인에게 제가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10. 문상객이 뜸할 때 상주는 휴식을 취해도 됩니까?
본래 예로는 어긋나겠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상주도 쉬어야 합니다. 사람의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 순번을 정해 쉬고, 혹시 조문하러 갔을 때 내가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조용히 물러 나와야 합니다. 어쩌다 쉬러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와서 불러내면 어찌 쉬겠습니까? 나중에 연락을 드려 그때 갔었는데 뵙지 못했노라고 하면 더욱 감사할 것입니다.

11. 문상 시에 기독교인이 영정 앞에 절을 해도 됩니까?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사드릴 때와 문상 때는 다릅니다. 제사의 죽은 자를 위해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조상을 귀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를 표하는 방법으로 절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아까 적은 음식문제처럼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하기보다 고인을 추모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12. 상주와는 어떻게 예를 표해야 하나요? 절을 합니까? 일어서서 인사합니까?
입식인 경우, 가정에서 장례를 치를 때 절을 합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도 무방합니다. 저는 절하기보다 허리를 굽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조문객이 적은 가정은 문제가 아니지만 수천 명, 혹은 수백 명이 찾아오는데 절을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 상주들이 힘들어 견딜 수 없습니다. 상주가 엎드리면 나도 엎드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서서 절을 해도 무례가 아닙니다.

13. 입관 때 반함을 하거나 고인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잘라 넣어도 됩니까?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배격합니다.

14. 추모예배는 장자의 집에서만 드리나요?
옛날 농경사회에서 제사를 드릴 때 장자가 무언가 있어야 제삿밥이라도 먹는다 생각해서 장자에게 유산을 물려주어 제사도 장자가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법이 바뀌어 딸들도 유산을 상속하게 됩니다. 추모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고인을 추모하고, 가족끼리 화목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나 셋째, 혹은 따님의 가정에서 추모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15. 화장을 해도 됩니까?
아직도 몇몇 교회에서는 매장만을 고집하고 가르칩니다만 현재 우리나라 국토는 좁은데 매장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못되어 육신은 먼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먼저 화장의 풍습을 권장해야 합니다. 화장 후 유골을 부수어 강가에 뿌리거나 산기슭에 뿌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여보호에 맞지 않고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보다는 평소에 잘 가는 기도원이나 교회 앞마당에 뿌리는 것이 의미 있고, 요즘엔 납골당이 잘 되어 있어서 화장을 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습니다.

16. 이장을 할 경우 몇 년째에 합니까?
보통 20년이 지난 후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육탈되어 백골만 남아 이장하기 좋습니다. 만약 부득한 경우에 이장할 때는 마음이 약한 이나 여성들은 피하고, 대표가 산 일 하는 사람들과 협력하여 이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17. 매장 시 지방에 따라 시신만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지방에 따라 매장할 때 관에서 유해를 꺼내 따로 매장하는 탈골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방의 풍습에 따르면 되고, 그 때문에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간소하게 목관을 사서 써야 경제적입니다.

18. 고인이 사용하던 성경을 관에 넣어도 됩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이장할 때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시신 손가락 유골이 성경책을 파고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성경 등은 후손이 잘 보존하면서 신앙 유산으로 남기면 좋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이며, 천국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 예배하므로 성경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19. 묘 앞에 세우는 비석에는 무슨 말을 적어 넣을까요?
아무개 성도, 아무개 집사, 권사, 장로 등으로 쓰되 비석은 간단하고 검소하게 합니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세우면 됩니다. 크다고 자랑할 일도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적다고 부끄럽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비석에 아들 이름만 새기거나 아들, 딸, 사위, 후손의 이름을 새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인이 살아 생전의 가족들의 이름은 손자들까지 놓으면 나중에 아이들과 고인과의 연결고리가 되므로 좋습니다. 고인의 이름 생년월일, 간단한 성구들을 넣으실 수 있으면 그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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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은혜로운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Gid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