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종합/성탄절 설교

우리에게 가장 좋은 소식

에반젤(복음) 2020. 12. 20. 00:58

제목 : 우리에게 가장 좋은 소식
본문 : 로마서 1:1-7

우리 나라를 빛내는 박찬호 선수가 5년동안 923억원의 돈을 번다고 한다. 매일 5000만원 이상을 버는 액수이다. 923억원의 돈이 얼마나 큰 액수인가 하면 2000원짜리 햄버거로 온 국민을 다 먹일 수 있고, 3억원짜리 아파트가 308채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박찬호가 날마다 5000만원을 번다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한 푼도 없겠지만 왠지 기분 좋은 뉴스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기쁜 소식보다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소식이 훨씬 많은 것 같다. 테러의 소식, 전쟁의 소식, 질병의 소식, 가난으로 인한 가정의 불화 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소식이 많이 있다. 특별히 올해는 테러와 전쟁으로 인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긴장하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접할 때에 각종 게이트이니 리스트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참으로 답답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소식이 있다. 천안역에 10만원을 동봉한 편지가 배달되었다. 손자를 본 50대 할머니가 40년 전, 10살 때즈음에 언니와 함께 천안에서 온양으로 온천욕을 다니면서 서너 차례 무임승차를 했는데 어려서는 철이 없어서 몰랐고, 젊어서는 바빠서 잊고 살았는데 할머니가 되고 보니 손자들에게 떳떳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용서를 구하며 10만원을 편지와 함께 보냈다고 한다.
1988년 어느 가정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부부가 도저히 그 아이를 키울 수가 없었다. 결국은 그 아들을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기로 하였다. 세월이 흘러서 입양한 아들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는데 일종의 백혈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집에는 다섯 살 된 아들이 또 있었는데 아들의 피를 검사해 보니 유전자가 형의 유전자와 정확하게 맞았다. 다섯 살된 아들은 영문도 모른 체 왜 내 피를 자꾸 빼내느냐고 묻는다. 할 수 없어서 부모가 사정의 이야기를 했더니 다섯 살된 아들이 기쁜 마음으로 형을 위해서 수술대 위에 올랐다고 한다. 결국 이 골수는 형에게 수혈되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좋은 소식이다.
50대의 할아버지가 간경화에 걸려서 1년 밖에 살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손자가 할아버지를 위하여 간의 일부를 떼어 드렸다. 손주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이렇게 엄청난 수술을 받으며 간을 이식하여 드렸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수술하고 바로 만날 수 없으니 병실 밖에의 유리창에서 손주가 할아버지를 향하여 사랑의 하트 모양을 그려주는 아름 다운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이같이 이 세상에는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지난 날에 지은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 좋은 소식이다. 죽어 가는 사람이 살게 되었다는 것이 좋은 소식이다.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던 형이 살아나게 되었고, 간경화로 죽어가던 할아버지가 손주의 간을 이식받아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온 인류의 가장 좋은 소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소식이다. 왜냐면 모두가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살 길이 열렸다니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목자들은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내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인류최대의 기쁜 소식이다. 좋은 소식이다. 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려졌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몇 년간의 생명을 연장받아도 기쁜데,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얼마나 기쁜가?
독일어에 Heil (하일)이라는 말의 표현은 구원과 치유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원과 치유는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병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병이 치유받았다는 것이다. 병에서 고침받은 사건은 곧 구원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가 죄의 병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피를 나눠주시고, 그 피를 통해서 우리의 죄의 병이 모두 치료 받았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 길이 열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자신의 강한 것을 자랑하며 산다. 내가 어디에서 공부하고, 얼마나 많은 재산이 있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누가 있고 하면서 자랑하면서 산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고쳐주신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신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주변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는가 지키는가를 시험하려고 하였다.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손 마른 사람이 고통 중에 있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라 말씀하신다. 그 손을 고쳐주셨다. 약한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신다. 이 세상은 우리의 자랑거리를 내 놓으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병든 부분을 내 밀라,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내밀라,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내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온전케 고쳐주신다. 우리를 강하게 붙잡아 주신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소식인가?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 소식 기쁜 소식이요, 좋은 소식이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에게 살 길이 열렸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연약한 부분이 강하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가?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기를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하였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우리를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에 복음의 능력이 임하기를 바란다. 살 길이 열려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강건해 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데 아무에게나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믿는 자에게 임한다." 강하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믿는 자에게 임한다." 복음의 능력이 똑똑한 사람에게 임하는 것도 아니다. 복음의 능력이 많이 가진 자에게 임하는 것도 아니다. 복음의 능력이 예쁜 사람에게 임하는 것도 아니다. 복음의 능력은 믿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하심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대로 나타난 사건들이다.
가버나움에 중풍병에 걸린 환자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어느 집에서 말씀을 전하신다. 친구들이 들것에 실어서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온다. 너무나 사람이 많아서 들어갈 수 없자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님 앞으로 그 중풍병자를 내려 놓았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고 병을 고쳐주셨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 이 여인은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소망도 없다. 반겨주는 친구도 없다. 그러나 단 한가지 예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에서 고침받으리라는 뚜렷한 믿음이 있었다. 많은 사람을 헤치고 이 여인은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찌할 수 없을 때가 많이 있다.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복음을 마음에 되새기라. 좋은 소식을 되새기라.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은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복음을 위해서 몸바치는 사람이 되었다. 바울 스스로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도다." 복음을 위하여 선택받았다는 고백이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좋은 소식이다. 예수님이 곧 복음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간 사람은 참으로 복있는 사람이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어느 작은 마을에 다이아몬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이 분은 얼마나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는지 빛나는 것이면 좋아할 정도이었다. 가정 형편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 이웃집의 아주머니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은근히 시기하는 마음도 생겼다. 결국 이 아주머니는 다이아몬드 반지 때문에 병에 걸려 눕게 되었다. 의식을 잃기 까지 하였으니 자녀들이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죽기전에 어머니의 원이라도 풀어주자 하여 옆 집 아주머니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빌려다가 의식을 잃은 어머니의 눈 앞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여주면서 "어머니, 다이아몬드 반지가 여기에 있어요"라고 귀에 소리를 치니 의식을 잃었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자식의 손에 쥐어졌던 다이아몬드를 입으로 삼키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빌려온 다이아몬드 반지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 용변으로 나올까하여 자세히 봐도 나오지 않았다. 옆집 아주머니에게 큰 일이 났다. 결국 운명하신 후에 화장해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찾아서 돌려드렸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무척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느 교인이 집을 잘 지어서 입주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자 가장이 나에게 요청이 있다고 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10년이 되셨고, 돌아가시기 전 10년 전에 그 아들을 불러 놓고 "네가 지금은 예수를 않 믿지만 내가 죽고 예수를 믿으면 이 찬송을 좋아할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이 찬송을 녹음하여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그러니 그 테이프가 20년이 된 것이다. 이 분의 소원이 어머니의 테이프를 들으면서 함께 찬송가 355장을 불러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찬송을 부르며 눈시울을 적셨다. "아골 골짝 빈 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복음을 위해서 살던 어머니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가?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복음이다. 좋은 소식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을 귀하게 여기자. 복음의 전달자가 되자. 복음을 위해서 살자.

'성탄절 종합 > 성탄절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의 소식을 들은자들  (0) 2020.12.20
성탄의 목적  (0) 2020.12.20
변화의 성탄절  (0) 2020.12.20
베들레헴에서 나신 예수  (0) 2020.12.20
성탄절 기념 설교 자료  (0) 202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