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종합/성탄절 설교

스크랩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마 1:18-23)

에반젤(복음) 2020. 12. 2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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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마 1:18-23)

 

오늘은 대강절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실 초림과 다시 오실 재림을 고대하는 절기입니다. 11월29일부터 12월20일까지 이 절기를 지킵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과거에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오셨고, 현재도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오셨고, 미래에 반드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이십니다. /할/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니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제목 소개!▶

 

여러분 성탄절, 하니까 무엇이 생각납니까? 미국에서 어떤 교수가 학생 40명에게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 하나씩 적으라고 했더니 많은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선물, 캐럴, 카드'등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대답하는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성탄절은 상업주의, 감상주의, 쾌락주의에 밀려서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John David'라는 사람은 두 개의 크리스마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예배하는 크리스마스요, 다른 하나는 X-Mas라고 했습니다. 이 'X'라는 기호는 그리스도의 약자이지만, 수학에서는 미지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X-Mas로 지킵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도 모르고 자기 욕망을 채우는 날로 지키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할/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런 성탄절이 이제는 점점 형식화 되어가고 있고, 놀이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구세군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는 '앞으로 언젠가는 예수 없는 성탄절,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믿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오면 맨 먼저 성탄절을 알리는 곳은 교회가 아니고 백화점이고, 술집이고, 우체국입니다. 성탄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맨 먼저 성탄절을 알려줍니다. 모두가 다 장삿속입니다.
▶성탄절 하면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크리스마스 추리'입니다. 매년 12월만 되면 거리에 추리가 등장하지요, 그러면 '아! 성탄절이 가까워 오는구나!' 전방에 고지에도 추리가 세워지고, 올해도 어김없이 시청 앞 광장에도 추리가 세워졌습니다.
추리는 원리 8세기 영국의 '보니 페이스'라는 선교사가 독일 어느 지방의 선교사로 왔는데 그 마을에서는 지방 신인 '오딘'신에게 매년 떡갈나무에 사람들이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 그것을 금지시키려고 궁리하다가 희생제사 대신에 전나무에 주님께 드릴 선물을 달아매는 것을 장려하면서부터 추리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16세기에 와서 루터가 전나무를 실내로 들려와 거기에 불을 밝히고 각종 선물들을 달아맨 것이 유행이 되어 오늘에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또 성탄절이 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생각납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이 산타할아버지의 존재가 굉장히 큽니다. 어른들이 선물을 사다주고는 그것을 산타할아버지가 사다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성탄절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타할아버지가 선물해 준 것으로 안 그 장난감을 며칠 가지고 놀다가 고장이 나면 아이들이 방송국에 전화를 해 '왜 산타할아버지는 고장나는 장간 감을 사다 주느냐?'하고 항의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순진합니다.
'산타클로스'는 전설 속의 인물이랍니다. 우리가 말하는 산타클로스라고 알려진 인물은 AD 270년 옛 터키 항구 도시였던 파타라에서 태어나 343년 12월6일에 사망한 '성 니콜라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선을 많이 베푼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분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어느 결혼 적령기에 있는 '세 자매'가 돈이 없어 '거리의 여인'으로 팔려나갈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몰래 갖다 주었는데 이 자루가 기원이 되어 오늘날 '선물을 담는 산타의 양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 니콜라스'가 산타클로스가 된 것은 여러 나라를 항해하던 네덜란드 선원들에 의해서 전해지는 과정 중에 네덜란드 발음인 '신텔 클라스'가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그 발음이 변하여 '산타클로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산타클로스가 좋은 선물을 주는 분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전설을 만들어 '말을 잘 듣고 칭찬 받을 일을 하는 아이들에게 성탄절 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다'고 하며 꿈을 심어주곤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산타의 유래입니다.
성탄이 되면 또 크리스마스카드도 생각이 납니다. 요즘은 좀 카드를 보내는 일이 뜸해졌습니다만, 카드는 원래 1843년에 영국의 미술교사 두 사람이 카드를 만들어서 서로 보낸 것이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이렇게 카드와 추리를 통해서 종소리와 캐럴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면 성탄절 카드를 보내고 추리를 만들어 놓으면 다 성탄절입니까? 아닙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①먼저 성탄절은 '하나님의 약속(예언)의 성취'입니다.
창3장의 죄에 빠진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창3:15절에 '여자의 후손'을 보내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언약인데 구약은 오실 메시아의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가 오시기 700년 전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셨습니다. 사7: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또 본문의 22-23절의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사7:14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또 사9: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백 년 전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 아이는 온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를 그 어깨에 걸머지고 있는 아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어깨에는 정사를 매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 아기가 우주를 통치하고 세계사와 민족사와 온 역사를 주관할 힘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과 민족들의 운명도 이 아기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분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며 그분은 만 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만 왕의 왕이 오심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할/
그 어깨에 세계를 통치하고 모든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짊어지신 놀라운 그분, 그분이 아기로 오신 날이 바로 성탄입니다. 만약 그분이 칼을 가지고 거대한 군사를 거느리고 오셨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접근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베들레헴 말구유에 자신의 거처를 삼고 탄생했습니다.


▶사9:6절에서 아기 예수 그 분의 모습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⑴'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메시아의 모습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장성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고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참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이라야 죽지'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인성을 말씀해 주는 구절입니다.
⑵'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아기는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자기 아들을 세상에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요3:16).
⑶'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정사라는 말은 곧 정부, 정권이라는 뜻이며, 통치지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통치자요. 만 왕의 왕으로 이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만 왕의 왕이십니다. 이 세 가지가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또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이름을 다섯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⑴메시아의 첫째 이름은 '기묘자'입니다.
'기이하고 묘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것을 'Wonderful'이라는 단어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서 하는 일이 모두 신기하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묘자는 '이 아기의 이름은 아주 놀랍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의 '정체에 대하여, 존재에 대하여 놀랍다는 단어 외에 다른 단어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기묘자라는 말은 너무 신기하고 오묘하여 인간이 가히 해석할 수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탄생은 놀랍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여자의 후손인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신 그분의 탄생이 기묘하고 그분의 죽으심도 기묘한 일이요, 그분의 부활하심도 기묘한 일입니다. 그러면 왜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그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까?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⑵메시아의 둘째 이름이 설명해 줍니다. '모사'입니다. 여러분, '모사'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영어에서는 'Counsellor'라고 번역했습니다.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보혜사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문제라도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예수님은 그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을 바꾸어서 즐거움이 되게 하십니다. 아무리 흑암 가운데 행했다 할지라도 큰 빛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하던 멸시를 바꾸어서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모사는 '카운슬러'로 우리 인생을 바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시37:5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할/
⑶메시아의 셋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실 수도 있습니다. 바람과 풍랑을 잠잠케 하실 수도 있습니다. 중풍병자도 고치시고, 눈먼 자, 귀가 먼 자도 고치십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죽은 자를 셋이나 살렸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생명의 주인 되신 전능하신 그 하나님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믿/ 우리가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그 분을 영접하면 됩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⑷메시아의 넷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여기 아버지란 '창조자 혹은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히 살아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보호자요, 사랑으로 양육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를 감싸주십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족합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그 분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를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 분을 멀리 떠났더라도 탕자가 두 손들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처럼 우리도 뉘우치는 심정으로 그 분께 돌아오면, 그 분은 무한하신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십니다.
⑸메시아의 다섯째 이름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주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평강을 허락하십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참된 평강, 곧 'Shalom'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십니다. 그분만이 참 평안의 공급처입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평화의 주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이사야는 주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평화의 왕이 탄생하신 날이므로 우리는 모든 싸움을 그쳐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평화하고, 교회에서 평화하고, 직장에서 평화하고 사회에서 평화해야 합니다. /할!/ 우리는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피스 메이커'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2차 대전 때 불란서에서 연합군과 독일군이 전쟁을 할 때 12월 24일 연합군 병사 3명이 밤에 길을 잃었습니다. 춥고 배도 고팠습니다. 산길을 헤매다가 그들은 불빛을 발견하고 조심해서 다가가 보니 민가였습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문을 열었습니다. 군인들은 춥고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자, 독일군에게 발각되면 큰일 날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군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한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한참 후 또 다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주머니가 내다보니 이번에는 독일군 병사 2명이 총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담대히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들도 나무나 추우니 따뜻한 곳에서 몸을 녹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거실 난로 앞으로 그들을 안내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몸을 녹이다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12월 25일 새벽이 왔습니다. 아주머니와 어린 딸과 아들이 성탄절 새벽 찬송을 불렀습니다. 군인들이 각각 깨었습니다. 독일군, 미군, 불란서군, 영국군이 함께 모였습니다. 5명의 군인과 3명의 주인이 함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주님이 오심을 같이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감격스런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날이 밝자 그들은 각기 병영으로 돌아가서 성탄절 휴전을 선포하고 전쟁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할/
여러분!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 분은 만 왕의 왕으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기묘자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사로 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지금도 그 분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
우리의 모든 짐을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저와 여러분을 괴롭히는 고통과 흑암의 권세와 멸시 천대 저주 질병 실패 그 모든 것을 깨끗하게 벗어버리고 마음의 천국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할/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 탄생인 성탄절은 순간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심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②유대 땅에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오셨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 들였습니까? 그 당시 사람들에게서 몇 가지 부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무관심'의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특히 이사야가 7백 년 전부터 이 땅에 메시아가 태어나리라고 예언을 했고, 그래서 때가 차서 마침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심합니다.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난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무관심이 문제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와도 예수와는 관심이 없고 오직 즐기려고만 합니다.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성탄의 의미를 '하나님은 너무나 높은 곳에 계시고 인간은 너무나 낮은 곳에 있고,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하고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과 사귈 수가 없어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셔서 인간을 위로하시고 구원하시고 고치시고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모르고 뜻도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지가 저주입니다. 모르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오신 예수를 그렇게 무관심 속에서 맞이했습니다.
오늘날도 이 무관심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무관심을 깨뜨리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멘!/

 

두 번째 부류는 예수 탄생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이를테면 당시 제사장 서기관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평생 예언서를 탐독했고, 연구했고 머리로 외웠습니다. 언젠가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예언 그대로 태어나리라고 지식적으로 말했습니다.
신앙은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 신앙은 가슴입니다. 당시 제사장 서기관들은 정작 그 기다리던 예수가 이 땅에 오셨는데도 오히려 의심을 했습니다. 믿지를 못했습니다. 기독교는 아는 것이 능력이 아니고 믿는 것이 능력입니다. /믿/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믿으면 많은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은 확실히 믿으면 확실히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 우리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할/
기독교는 지식이 전부가 아닙니다. 당시 제사장 서기관은 성경지식이 풍만했는데도 정작 예언하신 예수가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아기 예수 탄생을 가슴으로 믿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성탄절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셋째부류는 '박해자'들입니다.
이를테면 헤롯 같은 사람들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그 먼 곳으로부터 걸어서 헤롯 궁에 찾아왔습니다. 와서 묻기를 '이곳에 왕이 나섰다는데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천사들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전달을 받고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을 오면서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났으면 왕궁에서 태어났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의심 없이 왕궁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마구간에서 태어났으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물어보니 헤롯은 금시초문입니다. 오히려 이 땅에 왕이 태어났다는 말에 크게 놀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자리가 위태할까봐 그런 것입니다. 권세 자들이 불쌍한 것은 한시라도 정치적인 라이벌이 나타날까봐서 안심을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재를 하고 그래서 상대방을 죽이려고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왕이 태어났다는 말에 그만 질겁하고는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을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꿈에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빨리 애굽으로 피신하라는 계시를 내립니다. 그래서 어린 예수는 화를 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도 헤롯과 같은 박해자가 있었고, 지금도 박해자가 있습니다. 헤롯은 자기 아들이 자기 자리를 넘본다고 죽인 정신병자였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자기 아들을 죽이고 7일 만에 창자가 썩어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박해자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네 번째 부류는 동방의 박사들입니다.
마2장을 보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만 왕의 왕이신 예수가 탄생하심을 알리는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찾아와 경배 드렸습니다. 이 사람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매우 신비한 사람들입니다.
베들레헴에서 그렇게도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 메시아가 태어났는데도 어느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 땅은 치리 하는 헤롯왕은 몰랐습니다. 평생을 예언서를 연구하고 공부하던 제사장 서기관들도 몰랐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집 울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는데도 그 여관집 주인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의 태어나심을 알고 찾아온 사람들은 뜻밖에도 저 멀리서 살고 있던 동방의 박사들이었습니다. 여기 동방은 당시 페르시아 지방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오늘의 이란이나, 이라크 지역을 말합니다.
거기서 예루살렘까지는 천릿길입니다. 그들은 산 넘고 물 건너 거기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빈손으로 왔습니까? 아닙니다. 아기 예수께 경배 드리면서 '황금, 유황,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얼마나 신비로운 일입니까?
그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가 하면 눅2장을 보면 천사들이 밤에 나타나 알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들은 이방 땅에서 예언서를 읽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고 장차 오실 그 메시아를 고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경건한 신앙 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왕이 나셨다고 계시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산 넘고, 물을 건너 베들레헴 마구간에까지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축복입니까?
여러분! 그들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동방박사들이 경배 드린 베들레헴 마구간 줄 믿습니다. /할/
즐거운 성탄절이 이번 주 금요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탄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 당시 서기관들처럼 지식으로만 아는 성탄절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처럼 메시아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지켜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시민들처럼 무관심 속에서 성탄절을 지켜도 안 될 것이고,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성탄절을 지켜야 합니다. /아멘!/

 

③그러면 동방박사들은 어떻게 성탄절을 지켰습니까?
⑴성경말씀대로 믿고 지켰습니다.
저들은 이상한 별을 보았을 때 그별이 메시아 탄생을 가리키는 성경의 예언(민24:17)의 성취라고 믿고 성탄을 지켰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고 성탄을 지켜야 합니다.
⑵깨달은 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탄생한 줄을 깨닫고 그 메시아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먼 길을 떠나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⑶귀한 예물을 바쳤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귀한 예물을 기꺼이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마2:11절하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대상16:29절에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이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할/ ▶여기서 예물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황금은 예수님이 이 땅을 통치하시는 '왕'이심을 상징한 것입니다. 왕상10장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부유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금이라는 단어가 무려 열 번 이상이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앉는 보좌를 비롯해서, 그가 쓰는 방패들, 심지어는 그가 마시는 그릇까지 죄다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를 상징하는 신상을 만들되 어떤 신상을 만들었습니까? 단3:1절에 기록된 대로 그는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또 바사 왕 아하수에로가 에스더에게 자기 손에 있는 홀을 내밀었을 때, 그 홀이 무엇으로 만든 홀이었습니까? 에5:2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것은 금으로 만든 금홀입니다. 이처럼 황금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유향'은 제사 때 쓰는 것으로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상징한 것이고, ㈂'몰약'은 시체 보존을 위해 쓰는 것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가시관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죽으실 것을 벌써 알고 몰약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드린 예물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큽니다. /할/
⑷아기 예수를 만난 후에도 천사의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지시하기를 '헤롯왕을 만나지 말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지시를 할 때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④아기 예수 탄생하실 때 오신 곳이 곳 세 곳입니다.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자!
⑴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셨습니다(마1:23). 동정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처녀란 순결의 상징입니다. 정절의 상징입니다.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순결한 처녀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람, 깨끗한 사람, 청순한 신앙인품의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심을 가리키는 교훈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모습에 대해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정결한 심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의 육신의 신분도 순결한 처녀였지만 그의 속 사람,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처녀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돌아보지 않았던 사람이 마리아입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러한 믿음입니다.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아브라함, 생명을 걸고 골리앗과 싸웠던 다윗,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을 지켰던 다니엘과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등 모두가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⑵말구유에 오셨습니다(눅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더라.' 예수님의 일생을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영광이 가득한 하늘나라에서 추한 세상에 내려오시되 하려한 궁궐이나, 부자의 호화로운 저택을 택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요셉의 가정을 택하여 오셨고, 탄생은 말구유였습니다.
이처럼 가장 비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멸시받고 천대받는 가난한 사람, 죄인, 고아, 병든 사람의 벗이 되셨습니다. 말구유에 탄생하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하셨습니다.
⑶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마2:6).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시되 거룩한 땅 예루살렘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도시 로마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문화의 도시 아덴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유대 고을 가운데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즐겨 찾으시는 곳은 작은 곳입니다. 즉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⑤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⑴여기서 아기 예수가 오신 목적의 첫 번째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특히 '저희 죄에서'는 '자기들이 지은 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자신이 죄를 짓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마귀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를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롬3: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는 말은,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죄를 '하마르티아'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빗나간다'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제멋대로 빗나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총기사고 가운데 오발이라는 게 있습니다. 실수로 잘못 발사되는 것, 빗나가는 것이 오발사고입니다. 마치 오발사고처럼 빗나가는 것, 제멋대로 사는 것이 하마르티아 즉 죄입니다.
롬6:23절을 보면 '죄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죄를 범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면 죽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당시 범죄하고 떠남으로 해서 인간의 모든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 근본 문제 3가지가 나옵니다.
㈀창3:1-6절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간에게 영적인 죽음과 파멸이 왔습니다.
㈁롬3:23절에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이 내리 닥치기 시작하므로 인간 속에 참된 안식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참 행복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마귀에게 묶임을 당해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어떤 존재입니까? 요10: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할/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해 이 땅에 저주가 왔고, 재앙이 왔고,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을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인간이 지은 그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할/
㈀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요14:6).
㈁제사장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깨끗케 해결해 주셨는데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도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만 왕의 왕으로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인간 근본 문제에서 벗어나 축복된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성탄절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는 날입니다. /믿/
⑵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두 번째 목적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기 '임마'는 '함께'라는 말이고, '누'는 '우리와'라는 의미고, '엘'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할/
㈀임마누엘은 동행을 의미합니다. 그 분이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한마디로 수지맞습니다. 인생의 길이 열립니다. 형통의 길이 열립니다. 창39:2-3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할/
▶옛날 어느 나라에 사냥을 아주 좋아하는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사냥을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그만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나무꾼이 그 왕자를 구해서 정성스레 치료한 뒤 왕궁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임금님이 너무 고마워서 나무꾼을 불렀습니다.
'내 아들을 살려 주었는데 너에게 큰상을 내리고 싶구나,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말해 보라!'고 말하자 '임금님, 제가 할 도리를 한 것인데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그저 임금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소원이 있다면 저희 집에 한번 오셔서 하룻밤만 묵어 가시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임금님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임금님의 행차를 위해서 대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파송되어, 좁을 길을 넓히고, 좋은 식사를 준비하고, 나무꾼의 집도 멋있게 새로 지었습니다. 이 나무꾼은 어떤 소원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만 임금님과 하룻밤만 함께 지내기를 소원했을 뿐인데, 그의 모든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이 달라지고, 진입로가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고, 집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임금님하고 하룻밤만 잔다고 해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하물며 세상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그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마28:20절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할/
여러분, 우리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우리 곁을 다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또한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언젠가는 다 우리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이 오늘 예루살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이 성탄절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리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해 주실 주님께서 나의 주님으로 이 땅에 오신 날이 바로 오늘 성탄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임마누엘이 되심은 바로 하나님 사랑의 표현의 극치입니다. 요일4:10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셨고,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할/
오늘 성탄절의 귀한 은총이 사랑하는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의 생애와 가족 위에 넘치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2009년 12월 20일 대강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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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송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