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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삭개오의 구원 과정을 보라

에반젤(복음) 2020. 12. 13. 17:46

[주일설교]

/ 삭개오의 구원 과정을 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9-10)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향한 복음이며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유대 왕족의 아브라함부터 유대왕족의 족보를 따라 예수님께 까지고, 누가복음은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으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후로 예수께로부터 하나님 아버지께 까지 족보가 거슬러 올라갑니다(눅 3:21-38) 이미 여기서부터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의 통로가 다름을 예시합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를 통해 바로 하나님께 까지 나아가는 길이 열렸음을 말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여리고는 유대인은 이미 출입을 경원시하는 이방 땅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수군거리는 걸로 봐서 율법과 성전과는 이미 관계가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성전을 지키고 있는 한 죄인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삭개오의 구원은 율법 없는 이방인의 구원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구원을 위해서는 율법이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율법이 필요한 것은 죄가 뭔지를 알고 그 율법의 요구가 사랑이므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도록 하며 그 안에서 진리를 순종하므로 사랑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또는 초등교사라고 말합니다(갈 4:24)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430년 전이었습니다(갈 3:17) ‘믿음의 법’이 먼저 들어오고 죄를 알게 하기 위해 율법이 그 후에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 먼저가 아니라 믿음 먼저여야 합니다. 만약 율법(십계명을 포함한 구약의 계명들)을 가르치고 행하다가 안 되면 회개하라는 식으로는 아직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스라엘과 같겠지요. 그 사람들은 아직까지 구원이 보류되어 이방인의 구원의 수가 찰 때까지 수용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입니다(롬 11:25) 바울은 이를 두고 신비라고까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믿음의 법보다 율법을 먼저 배워 행하라고 가르친다면 얼른 가서 유대인 뒷줄에 서서 이방인 다음에 올 믿음의 법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리고로 지나가시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한 번 봐야겠다고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 구원을 받기로 작정이 된 사람의 반응입니다. 구원의 주께서는 그 앞을 지나가시고 구원을 받을 사람은 구원을 받을 사람은 잽싸게 낚아채듯 영접(카타람바노)을 합니다. 우리가 느끼고는 있지만 다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메커니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구속의 하나님 앞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그 말씀 앞에 이와 같은 반응을 하는 게 정상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버려진 존재일 겁니다(유기)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에 나아가서 키는 작고 사람은 운집해 있으니 그만 엉겁결에 돌 무화과나무 위로 기어 올라갑니다. 뽕나무든 돌 무화과나무든 그 나무가 무슨 영험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삭개오로 하여금 자신을 버리고 나무에 올라가게 하신 주님의 행차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 하시는 장면입니다. 구원 받을 백성들을 향해 암탉이 날개로 덮거나 그 위를 날개를 너풀거리며 지키고 돌보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주님만 영접하면 물과 성령으로 나게 하시고 영생을 주시려고 성령은 언제나 잃어버린 자들 위에 운행하십니다.

 

드디어 삭개오를 부르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가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눅 19:5) 그 말에 홀리듯 삭개오는 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눅 19:6) 이것이 사실 구원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고 우리 가운데 들어오시면 구원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그렇지만 그 구원을 받은 우리에겐 그 다음의 과정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너 회개 해야겠다 그래야 구원을 베풀겠다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자들이 삭개오의 죄를 고발합니다. 드디어 삭개오는 율법을 생각합니다. 그 즉시 그 입에서 소유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연보가 아닌) 남의 등을 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나섭니다(눅 19:8) 행위의 법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재물에 눈이 먼 자신을 돌이킵니다. 그래서 삭개오의 존재가 주님을 모시므로 포기 되고 그 다음에 자신의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유가 포기됩니다. 이 회개로 인해 주객이 바뀌고 보물이 바뀌게 됩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회개입니다.

 

주님을 모셔 들이기 위해 돌이키는 회개가 참 회개입니다(행 2:38) 율법의 조항에 대해 아무리 회개를 한다고 울고불고 해도 그건 개구리 낯짝에 물 끼얹기 밖에 아닙니다. 주님을 모시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제대로 된 십자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훈련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이방인을 유대인으로 만들지 마세요.

 

오늘도 율법을 잘 지키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신앙의 인물에 대한 중계방송이 각 교회마다 한창이겠지요? 믿음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세요. 회개 시키려고 애 쓰지 말고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도록 복음을 전하세요. 믿음이면 다냐고요? 행함이 없고 회개를 하지 않고 헌금도 안 드리는 게 신자냐고요? 그리스도를 제대로 영접하도록 해 보세요. 율법 보다는 행함이 더 중요하고 믿음보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더 중요합니다. 들음이 없으면 믿음은 없으니까요(롬 10:17) 말씀을 들은 믿음 곧 그리스도를 모신 믿음은 반드시 삭개오와 같은 회개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믿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면 하나님께서 ‘쟤가 우리를 믿는다는데 잘 봐 줘라’ 하시고 말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믿음에는 엄청난 비밀의 언어가 왕래하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신기한 각양 좋은 은사들이 공급이 됩니다. 무제한으로 다시 말하지만 무제한으로... 그게 바로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그래서 밖으로 회개가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고 행함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남을 용서하는 구원의 업적이 쌓이고 인격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드디어 주님께서 육성으로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의 임명장을 주시며 삭개오에게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당연히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예정이 된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우리들에게도 베푸실 구원이시며 회복이 되는 족보입니다. 삭개오는 이후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구원의 즐거움 가운데 벅찬 가슴을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겁니다. 제발 하나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양떼들을 데리고 율법과 같이 교훈에 교훈을 더하는 교육은 그만 두세요. 아이들 데리고 성경퀴즈 하듯 성경 공부하는 것도 제발 멈추세요. 복음을 전하세요. 그 아들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이 담긴 살아 있는 말씀을 전하세요.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면 정말 대책이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