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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상담, 심방과 상담

에반젤(복음) 2020. 12. 9. 01:13

설교와 상담, 심방과 상담

 

 

 

 

1. 설교와 상담

목회상담에서 심리학적 통찰력을 현명하게 사용함으로 교인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돌볼 수 있다는 생각은 교회 안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에는, 교회가 간직해 온 풍부한 목회적 자원을 통해서도 일대일의 개인상담에서 이루어지는 돌봄과 치유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견해가 여러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목회적 자원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중 하나인 설교를 상담학적 측면에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설교에는 전통적으로 네 가지 차원 즉 복음적, 목회적, 교리적, 그리고 도덕적 차원이 있는데, 무엇보다 설교의 중심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이 우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설교의 중심이 죄책감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성도의 심리적 치유이거나 위로하는 차원에 머문다고 하면 그것은 바른 설교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급격히 변해 가는 사회 속에서 많은 갈등과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는 효과적인 치유를 위해 상담에서 하듯이 먼저 그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설교는 인간이 영과 정신과 신체 그리고 인간관계가 뒤틀려 있을 때 이를 바로 잡아주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건강하게 살도록 인도하는 일이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정확한 명제적 진리를 선포한다고 해서 오늘날 성도들이 경험하는 불안, 외로움, 죄책감, 분노, 우울증, 열등감 등의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상담적 통찰력과 설교의 만남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마음을 공감하는 사람을 만날 때 쉽게 열린다. 설교자가 자신의 생각하던 이야기를 대신해 줄 때, 또는 자신의 상처 입은 마음을 공감해 줄 때 설교를 듣는 청중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받아주지 못하고 열등감으로 미워하던 마음도 자신을 받아주는 설교자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보게되며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설교자가 교인들의 삶의 현실을 이해하고 저들의 고뇌와 마음을 읽는 것은 상담에 있어서 필수적인 경청하고 공감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교인들은 자기들의 문제에 대해 심리적인 해답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으로부터의 해답을 기대한다. 이것은 프루이저(Paul Pruyser)의 말처럼, 최근 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전문상담자를 주위에 두고도 목사를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상처입은 사람들이 심리적인 도움을 넘어서 영적인 도움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중이 삶에서 겪는 여러 갈등의 문제를 파악한 후 해결의 원리들을 성경에서 찾아내어 그들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목회상담에서 중요시하는 시각조정이다. 물론 이때 권위적인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말씀 가운데서 깨닫도록 대화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상담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이러한 목회적 설교는, 어떤 이에게는 예방적인 측면에서, 다른 이에게는 치료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설교는 오늘날 현대인이 중요시하는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할 수 있으며, 또 한편 오늘날 상담이 장기 치료의 형태를 갖고 있는데 반해 단기 치료의 형태로 효과 있게 사용되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렇게 상담적 관점에서 설교를 생각해보는 이유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전통적인 신앙과 세속 가치의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접근은 더 이상 신앙전통만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기 힘든 현대의 다원주의적 상황에서 성도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전통적인 복음설교와 함께 종종 시도해 볼 필요가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 심방과 상담

목회자에게는 심리상담가나 정신치료자에게 부여되지 않은 특별한 기회, 즉 어느 시간이나 구애받지 않고 교인들을 심방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환자가 아무리 아프다 할지라도 환자가 찾아와서 의료진료를 요청할 때까지 의사는 기다려야 하지만, 목회자에게는 교인들의 집이 언제나 개방되어 있다. 오히려 교인들은 그들의 영적 복지를 위해 목회자가 방문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목회자는 여러 사역 중에서 이러한 일을 또한 감당하도록 안수 받았으며 위임을 받은 것이다.

심방과 상담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에서 목회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화해시키는 일이었다. 즉, 죄를 지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받고 화해를 성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죄를 지은 자가 공중 예배시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죄를 하나하나 고백하고 감독으로부터 사죄의 선언을 받음으로 화해를 이루었다. 중세 초기에 와서는 죄를 범한 자가 그 죄의 경중에 따라 교회가 정하는 고행을 실천하고 감독의 용서의 선언을 받음으로 화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중세기의 성례전 전통이 수립되면서 교회는 죄의 용서를 위해 고해성사를 제도화시켰다. 신부와 일대일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고해성사는 심리적으로 볼 때 죄짐을 벗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드류대학의 토마스 오든은 말한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인정치 않던 개신교는 집집마다 심방을 했던 사도들의 관행(행5:42; 20:20)을 근거로 해서, 개인간 대화할 수 있는 가정심방이라는 형태를 회복시켰다. 고백을 대신한 형태인 이러한 개신교 심방은 1920년대 중반 이래의 목회상담 운동과, 비록 무의식적이라 할지라도, 개인간 대화를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그동안 한국교회의 심방은 기도회 중심이었고, 그 중에서도 성서의 말씀으로 권면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심방이 개인의 영적성장과 교회성장에 큰 역할을 해온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에서 이러한 심방은 성도들의 심령 속에 깊이 눌려 있는 죄책과 억압과 불안과 상처들을 더욱 깊이 숨기게 할 뿐, 내면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치유받고 용서받게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심방에서 주의집중, 경청, 공감 등의 상담기술을 잘 사용하여, 성도들이 숨겨진 아픔을 내어놓도록 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주더라도 먼저 성도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기초 위에서 하는 것이 심방에서 습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심방에서 상대방의 얘기를 조심스럽게 들어주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었다.

물론 심방은 위로와 격려와 용서의 제사장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면하고 지적하며 대결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하는 예언자적 측면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는 성도들의 시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꾸도록 지시적인 도전을 해야할 때가 있다. 이것은 성서 말씀을 통해 직접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대화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즉, 심방하는 중에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가정의 여러 형편들을 살피고 이해하면서, 적절한 순간에 이런 일상문제들에 대한 신앙적인 해석을 줄 수가 있다. 이를 위하여 목회자는 인간의 신체, 가족, 정치문제, 환경, 성(性)문제 또는 청소년문제, 경제문제, 사회악, 자연환경문제 등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상담학적 관점--경청과 공감을 통한 문제파악과 시각조정--을 가지고, 심방에서 성도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찬송이나 성경구절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 말씀들, 그리고 각 개인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는 일반상담에서는 얻을 수 없는 커다란 영적·심리적 돌봄의 효과를 갖게 된다. 심방의 기회야말로 한국적인 목회상황에서 효과적인 상담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