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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의인이 받는 상급에 관하여(로이드 존스 성경교리 강해시리즈 3권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중에서)

에반젤(복음) 2020. 10. 18. 18:04

누가복음 12장, 고린도전서 3장과 고린도후서 5장에 나타나는 판결은 어떠한가 하는 의문입니다.

눅12:47~48에서 주님은 많이 맞는 종과 적게 맞는 종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 안에 어떤 차별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눅 12:47)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않거나 그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그종은 많이 맞을 것이나,(눅 12:48) 알지 못하고 매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고, 많이 맡은 자에게는 더 요구할 것이다."

 

그때 바울이 고전13:13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고전 3:13) 각 사람의 행위가 드러날 것이다. 그날이 그것을 밝히 보여 줄 것이다. 그것은 불로 드러나게 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유일한 토대이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위에 우리가 어떻게 짓는지 매우 주의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주는데, 그 이유는 나무와 풀과 짚이나 보석을 사용하여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터인데, 나무와 짚, 풀은 불타 없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공력이 그와 같이 불탈지라도 “자기는 구원을 얻된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15절).

그것은 믿는 자들을 위한 어떤 특별한 종류의 심판을 의미하는 듯이 보입니다.

 

다시 고린도후서 5:10에서 우리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오직 그리스도인인 신자들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말은 신자들 중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합니다.

이것은 구원의 관점에서 할 말이 아니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3:15에서 그 사실을 매우 분명히 확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공력이 모두 불타 없어진다 해도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구원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있습니다. 바로 그 터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와 공로는 자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엡 2:8)

(엡 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를 구속하여 구원하는 것은 주님과 그 분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완전한 사역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차이를 가져오게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동일하거나 동일한 지위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고전 15: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들의 영광도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서로 다르다.

 

그 장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모두 영광중에 있을 것이며 구원받을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 이후의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상문제를 위해 고려될 것입니다.

그러한 차이가 존재할 때 어떻게 우리가 모두 최고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이해하긴는 어렵지만 성경은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이 그것을 여러분 앞에 밝혀야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그것이 바울이 다음과 같은 말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고후 5:11).

바울이 설교자로서의 자신의 청지기직을 변호하는데 그처럼 열정적이며 충실했던 이유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개념은 개별적으로 마음에 간직합시다

.

보상을 위한 이 심판이 그 큰 심판의 날과 관계되어 일어날지 그 후에 일어날지는 성경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에 따라 그와 같은 차이와 구별이 존재하리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그 사실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는 것은 타당하고도 유익한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몸이 행한 행위"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저희의 몸이 행한 일이 따르는" (계14:13) 복된 죽은 자들에 대한 말씀이 나타납니다.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는 강조 속에서 행위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으로서 우리의 신신함에 근거한 차이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범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 이신칭의라는 중요한 교리를 위해 싸워야합니다. 그러나 그 교리를 주장하는 중에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하나님'우리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과 이 세상에서

리그리스도인으서 우리가 행한 행실이 다가오는 세상에서 영광중에 거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다른 모든 가르침의 가치를 열어 드리는 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글의 흐름상 번역의 내용이 이상해보여 lamad가 첨가) 매우 슬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에는 슬픔과 탄식, 불행, 비참함, 눈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기쁨, 충만한 행복,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한 차이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닌지 가끔 추측해 봅니다.

매우 신실히 살아온 사람들은 아마도 조금 더 주님께 가까이 거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볼 것이나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주님께 가까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출처: 개혁주의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라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