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2부-기혼자/새 카테고리2

가족상담의 목적과 원리

에반젤(복음) 2020. 10. 3. 00:34

가족상담의 목적과 원리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어린자녀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부모가 자녀들을 대하는 태도나 방법을 변화시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상담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부모를 중계자로 하여 행동수정을 하고 아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동을 집적 다루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 가족상담은 그 초점을 가족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는 것에 둔다.

 


1. 가족상담의 의미

가족상담과 함께 가장 널리 쓰이는 개념이 가족치료이다. 가족상담을 명확히 구별하기 위해서 우선 가족치료와 가족상담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준 1: 문제의 심각성

가족상담은 가족치료와 그 문제가 지니는 심각성에 차이가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가족치료는 비교적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것에 반해서 가족상담은 비교적 심각하지 않은 문제나 ‘정상적’이거나 ‘일상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는 문제를 다룬다는 견해가 여기에 해당된다.

 


기준 2: 문제의 종류

가족상담은 가정이나 가족의 현실적문제, 상황적문제, 환경적문제, 의식적문제를 다루는 것에 비해 가족치료는 가족의 무의식적 문제, 성격적문제, 개인내면심리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구별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상담은 가족구성원의 교육, 직업, 결혼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것이며, 가족치료란 태도, 감정, 정서 등을 다루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 문제점: 이러한 구별은 태도, 감정, 정서가 인간의 모든 문제에 관련되어 있으며 무의식, 성격, 내면심리 같은 것이 모든 현실적 문제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기준 3: 목적의 차이

가족상담은 예방과 교육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해 가족치료는 교정과 장애의 제거에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한 시점의 교정이나 치료가 다음 시기의 문제를 위한 예방이나 교육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예방이나 교육에도 치료적 활동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육, 예방, 치료로 구별하는 것에는 적지 않은 실제적문제점이 있다.

 


기준 4: 방법과 기법의 차이

가족상담은 주로 내면적 갈등을 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피상적 수준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가족치료는 무의식적 갈등을 다루어서 근본적 치료를 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지지적기법에서는 문제해결중심의 비지시적접근을 주로 사용하며 통찰기법에서는 해석, 직면, 탐색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고 보며 이런 차이로 가족상담과 가족치료를 구별하려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직면, 해석, 탐색, 무의식적 자료의 분석은 가족상담에서도 무척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종합해보면

가족치료의 개념은 가족의 여러 문제를 보는 관점이 ‘질병’이나 ‘병리’로 다루는 것에 초점이 있다고 하겠다. 가족의 문제를 질병으로 보거나 아니면 질병과 같은 논리의 체계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족치료의 기본입장이라고 하겠다. 질병이나 병리로 가족의 문제를 보는 경우 자연히 ‘의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개념과 모형이 가족문제에 적용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에 비해서 가족상담이라는 개념은 가족의 문제를 보는 관점이 ‘철학’이나 ‘교육’으로 다루는 것에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의 문제를 철학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가족들이 인간과 세계를 보고 생각하는 관점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가족의 문제를 교육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현재의 가족이 어떤 상태로 변화되어야 하는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족이 변화되는 길은 무엇인가와 같은 관점에서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가족상담을 철학이나 교육의 관점에서 파악하게 되면 여기에서는 근본적으로 가치판단의 문제가 제기된다.

* 어떤 가정과 가족이 좋은가?

* 훌륭한 가족의 삶을 영위하는 길은 무엇인가?

* 그릇된 가정의 삶이나 가족관계의 문제는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였거나 배워서 안 될 것을 배운 것으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

 


2. 가족상담의 목적

일반적 가족상담이론에서는 가족전체의 체제나 구조를 변화시켜서 문제를 일으킨 특정인물의 행동변화를 이룩하는 것이 실제적 목표라고 하겠다.

가족상담의 이론의 입장에서는 가족의 체제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가족체제를 정상적으로 바꾸는 것이 목적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구성원의 문제행동을 수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상당히 중요한 과제이다.

문제행동이외에도 가족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심각한 경우가 있다. 가족이 직면하고 있는 갈등, 스트레스, 불안, 그리고 상황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가족구성원이 하나의 전체로서 직면하고 있는 심리적, 사회적, 교육적, 종교적 문제 같은 것을 효과적으로 다루어 좋게 해결하도록 하는 것도 가족상담의 중요한 일이다.

부부간의 문제, 고부간의 문제, 세대 간의 갈등, 자녀와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잘 다루어서 원만한 가족관계의 형성과 발달을 촉진하는 것은 가족상담에서 추구하는 목적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3. 가족상담의 원리

거의 모든 카운셀러들은‘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수용과 공감적 이해가 지니고 있는 놀라운 힘을 알고 있다.

인간을 사물화하고 대상화해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 어떠한 상담도 완성될 수 없다. 과학적이고 체제적 접근법으로 상담은 무력하다. 상담의 힘은 오히려 주관적인 것과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개인의 독특한 내적심리과정에 초점을 두는 것에 있다. 모르는 것, 밝혀지지 않은 것, 비합리적인 것, 비현실적인 것, 무의식적인 것, 부조리한 것 등 ‘비합리성의 세계’를 카운셀러는 애정을 가지고 찾아간다.

인간문제에 있어서 용서의 개념이 없이 카운슬러는 어떠한 상담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 상담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카운슬러의 태도를 강조해왔다.

가족상담의 기독교적 원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련된 성경의 진리에서 찾는 것이 가장 적합한 접근이다. 에베소서에 보면 인간관계의 원리를 모두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명령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개인상담의 경우 카운슬러가 내담자를 무조건 존중하고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내담자가 마침내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존중하고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관계의 제반문제가 공감적 이해와 무조건적 존중의 결핍에서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두 가지 측면의 능력향상이 인간관계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다.

 


원리 1: 무조건적인 사랑

가족상담의 원리는 가족들이 무조건적으로 사랑의 진리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또한 가족들이 무조건 사랑하는 것을 성숙한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기독교적 상담의 기본이 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카운슬러가 내담가족을 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무조건적 사랑은 부모가 자녀를 낳게 되면 사랑으로 돌보는 것과 같이 일방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자녀들이 성숙하여 사랑의 능력이 길러지면 늙어서 연약해진 부모를 무조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가족상담은 무조건적 사랑을 가르칠 수 있는 최선의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원리 2: 무조건적 용서

가족상담은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족상담은 가족상호관계속에서 드러나는 허물, 과오, 죄, 악행, 부도덕, 비인간성 같은 것을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을 강조하고 이를 주요 원리로 생각하고 있다.

가족관계에서 용서가 되는 것은 인내할 수 없을 영역을 넘어선 인간행위에 관련된 문제가 제기될 때이다. 너무나 중요하고 커다란 잘못을 하였기 때문에 용서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을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도 나쁜 일이나 큰 실수를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용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원리 3: 공감적 이해

가족상담은 초기에 카운셀러가 공감적 이해를 기본적 수준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 인간적 성숙을 가져오기 위하여서 우리들은 심층적순준의 공감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성숙한 가족관계를 위해서 공감적으로 이해하고 공감적으로 이해받는 체험이 요구된다.

공감적 이해는 깨어진 개인의 자아상, 갈라진 가족관계, 또는 분열된 사회집단의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무척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원리 4: 무조건적 섬김

섬김의 원리는 갓 태어난 아기를 부모가 돌보는 것과 관련시켜서 생각하면 좋다. 아기가 어떤 조건에 있든 그 아기를 살리고 또한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부모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돌본다. 아기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에는 아무런 조건이 따를 필요가 없다.

자아중심적이고 물질중심적인 현대인이 무조건적 섬김의 도리를 깨닫고 실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섬김이 없는 가정은 가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4. 가족상담의 과정과 기법

가족상담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은 가족구성원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는 점에서 세속적 가족치료와 차이가 없다. 기독교 가족상담에서 가족구성원전체가 상담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변화의 필요를 인식하고 변하기 시작한 가족들에게 가족상담을 통해서 어떠한 목표내지 목적을 달성하기를 원하는가를 구체적 행동목표로 진술하게 되면 대체로 소박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바람이나 희망들을 말하게 된다. 다양한 측면의 목표들이 여러 갈래로 진술되면 이를 묶어서 몇 가지 목표로 정리할 수도 있으며 또한 복잡한 목표들을 가족들의 언어 그대로 표현하고 그것을 상담의 목표로 설정하여도 좋다. 이런 경우 인지적 특성이나 정서적 상태를 나타내는 언어들은 가능한 피하고 구체적 행동을 진술하는 행동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도움이 된다.

문제가 심각한 경우 부정적 특성의 제거만을 상담의 목표로 설정하려는 경우가 있다. 부정적 행동의 제거를 가족상담의 목표를 삼을 수는 없다. 단순한 부정적 행동의 제거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없다. 기독교적 상담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개인과 가정의 역사에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기독교적 가족 상담에서 목표는 반드시 긍정적 특성을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절망과 증오 속에 있는 가족들에게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상담과정에서 다섯 가지에 초점을 두게 된다.

1. 가족관계와 그 밖의 인간관계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사랑의 정도,

2. 학교공부나 직장의 일과 같은 일에 대한 헌신의 정도,

3. 가정이나 교회, 그리고 학교 또는 회사에 대한 정서적 태도나 과제수행

4. 여가와 놀이에 대한 유연한 자세,

5. 하나님 또는 성경적 진리에 대한 확신의 정도이다.

 


기독교 가족상담에서는 사랑의 행위를 가르치는 섬세하고 정밀한 교육의 과정이 필요하다. 상담은 언제나 정밀한 학습과 교수의 행동으로 구성되는 역동적 과정이다. 그래서 기독교 가정교육에서는 가르치는 내용이 중요하다. 성경이 직접 활용될 수도 있다. 성경의 어떤 구절을 놓고 그에 관련된 감정, 생각, 연상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기독교가족상담은 기독교적 진리가 개인과 가정의 삶 속에서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실천되고 심화되어 하나님과 그 가족 자신의 직접적 관계에서 아무런 외부적 도움이 없이도 올바르게 실천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게 마련이다.

기독교 가족상담의 종결은 최초에 제기된 문제가 해결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사랑의 삶의 형식이라는 궤도에 진입되어 정상적인 가동을 하고 있을 때에 이루어진다.

 


강의 2 가족의 기원과 가계도(Genogram)

 


가계도는 3세대 이상에 걸친 가족서원에 관한 정보와 그들 간의 관계를 도형, 선, 단어를 사용한 도표로 작성하여 가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가계도는 여러 세대를 거처 온 정서과정의 강점과 약점을 반영한 것으로(최소 3대에 걸쳐서 도식화) 복잡한 가족유형의 형태를 한눈으로 볼 수 있으며, 가족에 대한 자료와 정서적인 과정에 관한 것들을 연결시켜 볼 수 있다.

가족의 역사를 얻으려고 작정한 가정 상담자들은 가족 도표 위에 가족의 3대나 그 이상의 가계지도를 그린다. 그들은 이 도표를 종이나 칠판에 그린다. 이 도표는 가족의 전체 구조를 제시해주기 때문에 가족들과 가족 경계선을 정의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도표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 간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표준화된 상징들을 사용한다. 속이 빈 원은 여성을 의미하고 네모는 남성을 의미한다. 결혼은 여성을 의미하는 원과 남성을 의미하는 네모를 연결하는 가로선으로 표시한다. 그 가족의 자녀들은 가로선(결혼을 의미하는 선)중간에서 밑으로 세로선을 그어 표시한다. 가로선을 가로질러서 가로선을 찌르는 두 개의 사선은 이혼을 의미하고 재혼은 새로운 배우자의 상징을 그리고 또 다른 가로선을 그려서 표시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족보를 만드는 것은 가족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위협을 줄이기 위하나 한 가지 방법이다. 상담자는 이름들, 나이들, 그리고 경력들과 같이 이미 확인된 정보를 질문하면서 족보 그리기 작업을 시작한다. 결혼, 이혼, 죽음, 이사, 그리고 재혼과 같은 중요한 삶의 변화를 이 과정에서 얻게 되며, 가족도표를 그려 나가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분쟁이 노출되기도 하고 가족의 위기들과 가족의 비밀들이 드러나기도 하는 등 상담에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이 발견된다.

상담자가 가족도표의 방법을 사용하든 아니하든지 간에 가족문제들을 점검하는 것은 가정상담의 첫 번째 단계가 되어야 한다. 가정상담자는 가족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하며, 가족생활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파악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Murray Bowen(1913-1990)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족구조를 도식화 한다.

둘째, 가족성원의 정보를 기록한다. 가족성원의 이력(이름, 연령, 출생 및 사망시기, 직업, 교육수준, 형제자매의 위치, 결혼상태, 종교 등), 가족의 역할(가족원의 정서, 신체, 행동에 관한 객관적 정보), 가족생활의 중요한 가족생활 사건 등을 기록한다.

셋째, 가족관계를 표현한다. 가족의 보고와 가족치료자의 직접적인 사정과 평가를 근거로 하여 가족성원의 관계를 각각 다른 선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가족상담자는 가족도표를 그린 후에 가족역사를 더 완전히 파악하기 위하여 좀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부부가 원하는 대로 부부와 함께 면담하면서 할 수도 있고 부부 각기 따로 면접하면서 할 수도 있다. 다음에 제시하는 개요는 취급해야 할 잠재적인 질문들의 목록이다. 상담자는 구체적으로 부부를 면접할 때에 이 질문들 중에 일부를 선택하여 질문하거나 또는 면접과정에서 일어나는 관련된 질문들을 물어야 할 것이다.

 


질문사례 1

1) 우리 가문에 흐르는 주제(theme)는 무엇인가?

2) 우리 집의 신화는?

3) 우리 집의 주인공은 누구며 악역은 누구인가?

4) 우리 집의 주인공은 누구였으며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어떤 것들이 요구되었는가?

5) 나는 누구와 가까웠으며 누구와 거리감이 있는가?

6) 나와 밀착되어 있는 이는 부모 중 누구인가?

7) 우리 집의 가장 역할은 누가 하는가?

8) 누가 집안에서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이로 인해 얻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9) 수직적(가족형태, 가풍, 가문) 긴장은 무엇인가?

수평적(전쟁이나 불시의 죽음, 장기질환 등) 긴장은 무엇인가?

10) 지금 잊고 싶은 기억들은 무엇인가?

 


질문사레 2

1) 부계질문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와 아동기에 가졌던 경험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의 정체성과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습니까?

당신의 아버지는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까?

 


2) 모계질문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와 아동기에 가졌던 경험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의 정체성과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습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까?

 


3) 부모의 결혼관계

당신의 부모의 부부간의 장점들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부부관계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아버지의 영적생활을 기록하세요.

당신의 아버지는 여성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남성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4) 나의 결혼관계

남편 또는 아내의 이전 결혼경력

결혼하기 전의 당신들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 어떻게 만났습니까?

* 당신의 부모님들은 모든 결혼계획을 승인했습니까?

* 당신들은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가졌습니까?

* 당신들 각자는 결혼 전에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 결혼하기 전에 당신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당신의 결혼관계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세요.

* 당신들은 어떠한 위기들을 함께 당했습니까?

* 당신들은 어떤 방법으로 함께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까?

* 자녀교육 때문에 고민했던 사례들이 있습니까?

 

질문사례 3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물려 준 것은 좋은 영향력도 있지만 나쁜 영향력도 있다. 이것을 구약성경 에스겔서에는 좋은 영향력은 단맛으로, 나쁜 영향력은 신맛으로 표현했다.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시다는 표현을 했다. 신포도는 아버지가 먹었는데 그 신맛은 아들의 입안에 생겼다. 아버지의 죄의 영향력이 그 아들에게 나타난다. 엄마가 어떠하면 딸도 그렇게 된다는 말은 엄마의 영향력이 그의 딸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든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은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지만 신맛이 자녀들의 입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자녀들의 입안에 단맛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단맛을 만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을까?

그것은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단맛과 신맛의 기원과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그 단맛과 신맛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부모가 물려준 단맛을 감사하면서 어쩔 수 없이 신맛을 물려주었던 부모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부모가 신맛을 물려주었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고 분노하면 그 신맛의 영향력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머물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후손들에게 신맛을 물려주었던 부모님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부모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신맛 대신에 단맛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게 된다.

모든 사람의 가정은 가정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가정의 역사 가지고 있다. 이 가정의 기원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이 가정의 기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물려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가정은 독특성과 고유성이 있고 우리는 우리 각자의 가정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가정을 가문이 좋다는 다른 가정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비록 나의 가정의 역사에 부끄러움과 불행이 있었지만 나의 가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해서 더 좋은 가정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1) 내가 경험한 가정의 기원

(1) 나의 아버지와 조부모와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 긍정적인 영향력

* 부정적인 영향력

(2) 나의 어머니와 외조부모와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 긍정적인 영향력

* 부정적인 영향력

(3) 나의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 부친이 나에게 물려준 단맛과 신맛은?

* 모친이 나에게 물려준 단맛과 신맛은?

* 그들의 결혼생활에 대한 나의 평가는 무엇인가?

 


2) 나의 가계에 흘러왔던 선한 영향력과 악한 영향력

(1) 여러 세대에 걸쳐서 전수된 선한 영향력

* 습관적인 선

* 건강한 영성

* 건강한 관계들

* 가족에 얽힌 미담들

(2) 여러 세대에 걸쳐서 전수된 죄의 성향들

* 습관적인 죄: 간음, 근친상간, 폭력, 학대(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교만, 살인

* 신접함: 미신, 신접함(점성술, 점), 심각한 정신적 충격, 사탄숭배, 조상숭배

* 건강하지 않은 관계들: 중독, 이혼, 적개심, 학대, 지배욕, 복수를 추구함, 속박

* 가족에 얽힌 비극적 사건: 문화적인 악, 억압, 저주들, 대학살, 전염병, 노예

(3) 나의 가계에 흐르는 단맛과 신맛은 무엇인가?

* 단맛

* 신맛

(4) 조상으로부터 물려진 신맛이 나의 세대에 끊어졌는가, 계속되는가?

(5) 내가 새롭게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단맛은 무엇인가?

 

3) 삶으로→ 어떻게 신포도의 악한 영향력을 끊을 수 있는가?

(1) 신포도의 신맛을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2) 신맛을 준 부모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때에 부모의 신맛이 없어진다.

* 만약 부모를 여전히 미움과 증오로 대하면 신맛이 없어지지 않는다.

(3) 배우자를 신포도를 먼저 이해하고 신맛대신에 단맛을 만들자.

* 배우자의 신포도는 환경의 산물일 수가 있다(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죄)

* 고멜의 죄는 사마리아의 죄의 결과로서 사마리아에서 행해진 음란의 희생자이다.

(4) 부모와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죄악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영적전쟁).

 

 

 

제 3강 가정과 영성

 

현대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추구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영성은 포기하고 있고 단지 부분적인 지식, 실제적인 지혜를 찾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원적인 차원으로 종교를 수용하고 다양한 영성적 체험을 갖는 것이 성숙한 신앙이라고 말한다. 포용력있는 믿음의 탐구는 어느 종파에 얽매이지 않는다고도 한다. 이처럼 오늘의 시대는 영성의 혼동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영성의 회복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들이 속한 가정과 공동체가 온전히 변화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가정의 회복 역시 영성에 대한 관심추구, 그리고 적용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가능하다. 가정은 가족구성원들의 영성이 훈련되는 장이고 한 사람의 영성이 배우자와 가족들에게 직접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영적싸움의 최전선같은 곳이다.

 


1. 영성에 대한 이해

 

1) 영성과 영성형성

창조주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해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대로 인간의 영성이 성숙해 갈 때, 개인과 가정은 세워지고 지켜진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라고 말씀하고 있다. 기독교의 영성은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령,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갔던 믿음의 선배들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영성에 대한 비유 중의 하나는 ‘순례’(pilgrimage)라는 중요한 표현이다. 모든 순례자의 여정이 그러하듯 영성은 시작과 과정과 끝이 있다. 인간의 신비하고 핵심적인 영성의 출발은 죄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깨어짐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참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마음이 없다.

영성의 과정은 훈련이다. 채우기 위한 비움이고 살기 위해 깨어지고 죽어야 하는 훈련이다. 자기를 비우기 위한 면벽수련으로 내가 나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추한 내 마음과 인격과 삶에 채워질 때 인간은 온전해 진다.

 


2) 월라드(Willard)의 기독교의 영성형성

(1) 특별한 영적활동을 통한 훈련

복음주의자들은 근래에 ‘영적훈련’(spiritual disciplines)이란 표현으로 영성형성을 설명하고 있다. 넓게는 이런 훈련자체를 영성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런 점은 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행동 면이 강조가 되는 것이다.

 


(2) 영적인 측면 조성

영성형성을 내적 세계, 영, 또는 인간존재의 영적인 측면을 조성해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감정, 지식과 함께 개인의 마음과 의지를 형성하는 것이 여기에서는 주요한 목적이 된다. 여기서 형성되어지는 것은 명백하게 인간의 영적인 측면이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성

영성형성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과 다른 영적도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현존하심에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그 분의 말씀, 복음, 명령에 집중하고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요8:31; 15:7).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고 하신다. 성령은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요14:26).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음으로써 믿는 자의 영과 육 전체를 통해 행함이 있는 삶이 있게 된다.

 


3) 영성의 다양한 측면

첫째, 영성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급함을 의미한다(시편42:1; 마5:6).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진심과 성령으로 영감된 열정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성숙하게 이끌 것이다.

둘째, 영성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지식에 기초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예배와 순종으로 나아가게 한다(마22:37, 38; 요14:21, 23).

셋째, 영성은 성령으로 충만한 것을 말하고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께 삶과 사역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것이다(엡5:18; 갈5:16; 롬 6:12, 13). 이것은 계속적인 영적훈련의 결과이다.

넷째, 영성은 하나님의 목적과 영광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고 활용하는 것이고(엡4:1; 고전12:4-11; 롬12:3-13; 벧전4:7-11), 성령의 열매를 드러내는 것이다(갈5:22-23).

다섯째, 영성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세계관과 성경적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롬12:2; 빌4:8; 골3:16; 딤후3:16). 이런 생각이 균형있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이고 상담을 포함한 모든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이 확장되어져 간다(마6;33).

여섯째, 영성은 성경과 기도를 포함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자원과 초자연적 능력의 사용을 요구하는 영적싸움에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고전4:20; 엡6:1-18).

일곱째, 영성은 신비적 요소를 담고 있다(사50:10).

 


2. 영성이 회복되는 가정

1) 가정과 영적훈련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영성과 가정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영성과 매일의 삶은 종종 서로 관련이 없는 듯 취급되어 왔다. 영성은 단지 삶의 어떤 시간이나 일정한 부분을 떼어서 훈련해야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나누고 교회와 세상을 나누는데서 기인한다.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정적인 것과 활동적인 것을 구분하는 경향이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구분된 것이 아니고 긴밀하게 관련되어있다. 성도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정의 매일의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자기가 속한 가정과 일을 직접적으로 영성과 연결시켜야 한다.

이러한 영성과 매일의 삶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 영성학자들의 노력이 있어왔다. Boyer는 영성에 대해서 연구하는 가운데 초기기독교 수도사들이 광야의 척박한 환경 속에 거하며 보여준 헌신, 홀로함, 기도, 묵상의 삶에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으로 그는 그런 수도적인 광야의 영성이 어떻게 결혼해서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으며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광야에서의 수도원적 삶으로 지칭되는 영성은 ‘가장자리 영성’이고 사실 ‘중심의 영성’은 매일의 삶과 가정에서의 삶이라고 지적한다. 가장자리의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깊은 영적체험을 갖게 된다. 중심의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가정과 삶의 분주함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하고자 하며 평범한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한다. 둘 모두 동일하게 필요하고 귀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고 성도답게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가정의 훈련은 가장 호되고 가장 어려운 과정 중의 하나이다. 가정은 자기의 약한 점과 실패를 드러내 주는 장소이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삶의 현장이 가정이다. 신앙의 실체가 드러나고 인격이 폭로되는 곳이다. 힘들지만 가정은 이런 연약한 모습을 품어주는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파커(Parker) 역시 성도의 평범한 삶속에서 구현되는 영성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광야의 삶과 연결된 ‘묵상적 영성’과 세상 속에서 위치한 ‘활동적 영성’을 구분하였다. 묵상적 영성은 자기의 영적 현주소가 어디인지 살펴보게 하고 가면과 허식과 욕심을 버리게 한다. 활동적 영성의 경우는 가족이나 이웃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현장에서 나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두 접근방법은 서로 구별된 것이 아니고 온전함을 위해서 상호 필수적인 것이다.

가정은 개별적인 영적 훈련을 받은 한 개인의 영성이 드러나는 곳만이 아니고 영적훈련 그 자체의 현장이다. 다른 영적훈련보다 더 보상이 있고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훈련장이다. 영적인 훈련이 없는 가정은 전투에서 실패한다.

성도의 가정은 공격받을 것을 예상해야 한다. 성도의 가정은 시험에 부딪힐 것을 예상해야 한다. 가정을 신실하게 인도하고자 할 때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가정에서 영적인 훈련에 무관심한 사람은 공격도 아픔도 없이 아무런 염려없이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를 진지하게 구하는 성도라면 그는 곧 공격이 있을 것을 예상해야 한다.

 

2) 가정과 영적영향력

영성형성이 이루어질 때 그것이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삶의 모든 부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영성은 인성, 몸, 지성, 관계성 등과 같은 인간의 여러 다양한 기능적 영역 중의 한 영역이 아니다. 영성은 인간의 육체, 인격, 관계, 감정, 지성의 중심에 위치해서 모든 것의 뿌리를 이루고 있고 모든 삶과 행위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기에 영성이 회복된다는 의미는 자기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자기가 속해 있는 가정에 전달되는 것이다.

 


(1) 영적리더십

한 가정의 지도자적 역할을 담당하는 부모의 균형잡히고 능력있는 영적리더십과 그로 말미암아 전달되는 영향력은 가정을 세우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어느 곳, 어느 시기이든 지도력이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런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고 또한 차세대의 리더십이 배워지는 곳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혈연공동체인 가정이 건강한 영력지도력 아래서 건실하게 세워질 때, 교회와 사회가 요구하는 지도자가 배출될 것이다. 가정을 향한 수많은 유혹과 거친 급류와 영적전쟁에서 리더십을 가장 잘 발휘해야 할 사람은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다. 가정의 지도자로 세워진 부모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인격과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가족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야한다. 중요한 사실은 지혜로운 가정의 지도력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성에서 그 출발점을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지혜를 소유하게 된다. 자기 삶과 가정에 임하는 질서있는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추구할 수 있다.

 


(2) 예수님의 영적리더십

지혜로운 리더십은 효과적으로 교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점차 그 관심을 더해하고 있는 현대 리더십 이론 중의 하나가 관계중심의 리더십인데 여기서 “리더십은 사람들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로 정의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점에서 가정의 지도자들에게 대표적인 모델이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해 힘이나 지위를 갖고 있지 못했던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삶과 관심사들 속에 들어가셔서 함께 하셨다. 관계를 맺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주님은 오늘날 보편적으로 심기는 지도력으로 알려지고 있는 독특한 리더십 유형을 보여주셨다. 그 분은 겸손한 종으로 오셨고 이 종으로서의 지도력의 핵심되는 요소는 사랑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계명을 주셨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라는 것이고 이런 섬김과 사랑의 지도력을 실천한다는 것은 힘과 처세를 중시하는 지도급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세상을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랑이신 자기를 분명히 들어내셨다.

 

 

 

 

 

 

(3) 영적분별력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은 가정을 이루신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지 자녀와 배우자를 관찰하고 조용히 묵상하고 실천하는 분별력을 가졌다는 것을 말한다.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는 가정에 임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질서를 분별해야 한다.

지혜문서로 대표되는 지혜자들의 관찰이 가정들에게 전해주는 지혜는 첫째, 도덕질서 내지 공동체의 질서이다. 지혜문서 가운데 잠언은 가정의 질서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창조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즉 하나님이 가정을 허락하신 의도와 부여하신 뜻과 질서를 분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연히 이 가정의 창조질서에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과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징계라는 도덕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무엇이 옳고 정직한 것이고 의로운 것인가에 대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

둘째, 역질서로서의 지혜(counter order)는 가정에 닥치는 환난과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데 도움을 주는 영적분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욥기와 전도서로 대표되는 역질서의 지혜는 인생의 불공평, 불의, 불가해성 등을 다루고 있다. 어떤 세상의 잣대나 원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생의 고난과 신비는 그 가운데 역설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분별이 필요하다.

셋째, 분별력은 관찰을 통해서 형성된다. 가정을 바르게 인도하려면 그 구성원인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관찰이 가능하고 실제적인 영적 영향력이 발휘될 수 있다. 미국에서 전국의 기독학생들이 모이는 수련회에서 그들의 출신성향을 통계조사 했다고 한다. 대부분이 무모가 서로에게 헌신하는 기독교신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 부모와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의 부족은 영향력의 결여와 직결되어있다.

 


강의 4 가정과 성: 성상담의 실제

 


1. 왜 성은 말하기가 어려운가?

1) 상담시 내담자의 일반적인 불안

① 성전문용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 행위와 몸의 구조, 느낌, 절정 등에 관해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한다. 그들은 상담자와 이야기할 때 성에 관련된 저속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불편해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전문적인 바른 용어를 확실히 모른다. 예를 들면 가끔 남자들은 질과 자궁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② 숨김없는 대화: 성에 대하여는 상당한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에 내담자의 두 번째 불안의 원인은 숨김없이 말하는데서 오는 당황함일 수 있다. 숨김없이 말하는 데서 오는 불편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③ 상담자의 성: 내담자는 상담자의 성에 대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여성들은 여성상담자와 깊은 내용을 나누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남성 상담자와 상담하는 것이 높은 불안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지만 어머니와 멀었던 여성은 남성과 상담하는 것이 더 편안할 수 있다. 이것은 남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④ 용납하기 어려운 성행동의 보고: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금기된 생각을 털어놓는 내담자는 그 내용을 상담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또한 상담을 계속해도 안전한지를 점검하게 될 것이다. 불편함은 내담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수치심, 양심의 가책, 죄의식 등의 감정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그 불편함은 상담자의 비언어나 언어의 메시지에 의해서 과장되거나 경감될 수 있다.

⑤ 성에 대해 말하기: 많은 개인이나 부부가 친밀한 성 생활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을 부적절하고 기독교인답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돌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⑥ 비밀의 노출: 다른 어떤 영역보다 성의 영역에서는 비밀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성에 대한 도움을 구하러 오게 되면 그들은 그 비밀의 일부를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비밀을 말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⑦ 일반적인 문제의 나눔: 어떤 내담자들은 개인이든지 부부든지 그들이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성적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을 어렵게 느낀다. 그들은 그 문제로 인하여 매우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문제로 상담하는 것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안심하기도 한다.

⑧ 상처받기 쉬움: 성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성이라는 특별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상처가 되기 쉽다. 그래서 친밀하게 성문제를 다루기가 어렵다. 더구나 성생활의 실패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에 관한 것은 보여주지 않고 나누지 않도록 교육받아 왔다.

⑨ 가치관의 누설: 성적인 것에 대한 대화는 예상되는 내담자의 통계적 상황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깊은 성적인 비밀, 감정, 반응, 행위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다른 삶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우리를 위협하고 가끔 방어와 불안을 야기한다.

 


2) 과거의 상처 다루기

① 어린 시절의 성 학대: 성 상담의 주된 결과 중 하나는 과거의 상처를 현재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과거의 성 학대의 고통은 남자나 여자나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그 고통을 나눌 때 생기는 불편함이 사람들에게 저항을 불러일으킬지라도 현재의 어려움을 치료하려면 과거의 상처를 먼저 원상 복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②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는 성에 대해 말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갖게 하는 과거의 상처의 또 하나의 근원이 된다. 사람들은 신체적인 문제나 비만 또는 사고에 의하거나 선천적인 장애 등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의 신체는 모든 외부적 기준에 의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③ 과거의 성경험: 과거의 성경험이 개인의 가치, 양심, 이미지 등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고통스러워 할 수 있다. 혼외임신이나 혼전성교 등에 관한 경험을 나눔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을 수 있다.

④ 낮은 자존감: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존감은 성적 자존감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낮은 자존감은 개인적 성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데 어려움을 가져 온다. 성적자존감은 문화적 ? 사회적인식이나 우리가 믿는 신화나 과거의 경험 또는 지식의 결핍에 의해서 손상될 수 있다.

⑤ 불편한 감정과 자극: 격렬한 상처, 분노, 두려움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 외에 성에 대한 노골적인 대화는 상담자나 내담자 모두에게 성적인 자극을 일으킨다. 내담자에게 이러한 자극이 느껴질 때 임상기록에 이 관찰을 기록해야 한다. 함께 나눈 정보와 관찰된 자극사이의 연결이 연구되어야 하지만 상담자는 의도적으로 그것으로 인한 자극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3) 정리

성적갈등으로 도움을 구하러 오는 부부는 그들의 성생활에 대해 적나라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 허가(permission)를 필요로 한다. 허가를 해주는 것은 기독교상담자가 전문가로서 기독교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다. 이 허가를 해주는 것은 먼저 의사표현을 하며 성생활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용납하고 격려하는 태도에 의한다.

내담자는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하여금 결혼 안에서 성적만족을 누리도록 의도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만족을 얻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불안과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성적 자존감을 쌓고 새로운 성행위의 방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옛것을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성은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성에 대하여 편안하고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2. 세상과 분리된 기독교상담자

 


책임있는 성상담자와 책임있는 기독교 성상담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술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지만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첫 번째 차이는 실제적인 것이다. 많은 내담자들이 그들의 종교적 배경으로 복잡하게 얽힌 개인적 성생활의 문제를 가지고 기독교상담자를 찾아온다.

두 번째 큰 차이는 성에 대한 전제 조건과 연결된다. 성경은 인간의 성에 대한 귀중한 견해를 제시한다. 성은 가정의 보석이나 가보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에서 성은 쓰레기 보석조각이나 14살 아이에게 주어져 학교에서 다 닳아져 버린 후 자전거가방 밑바닥에 내던져지는 것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성경은 성에 대해 귀하게 평가한다. 성에 대한 높은 수준과 질이 성취되도록 하는 헌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성은 결혼을 위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성을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표현한다. 성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평생 존경하고 간직하고 충실해야 할 가장 깊은 헌신이라고 가르친다. 기독교 성상담자가 성과 성욕에 대한 이런 수준 있는 견해를 창조자로부터 부여받은 귀한 선물로 여길 때, 그들은 세상과 분리된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아무런 벽이 없는 자유롭고 열린 관계를 경험하면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아니하니라”고 말씀한다. 그들의 관계는 힘이나 위협이나 사회적 신화나 문화적 차이에 기초를 두지 않았다. 후에 성경은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언급하고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었다고 가르친다(고전15:45-50). 이러한 신앙적인 확신은 그리스도인에게 성에 대한 수치심 없이 자라게 하는 잠재력이 된다.

 


1) 창조질서의 일부로서의 성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계획과 디자인에 따라 창조되었고 출생되어진 존재이다. 성경은 성적 기능을 위한 교훈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성적 존재와 결혼에 있어서 성적관계로 얼마나 가치있게 만드셨는가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을 포함한 육체를 하나님의 생각대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타락이전에 죄없는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완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다.

성적연합에 대한 성경의 첫 번째 언급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와 수치가 놓이기 전에 주신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창세기 2: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성교(sexual intercourse)가 우리의 불순종한 죄악된 인간의 본성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과 디자인인의 일부라는 것을 말한다. 성적연합은 죄와 수치가 없는 축복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는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창2:25).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동행했고 대화했다. 죄가 이 열린 관계를 방해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상징에 대해 생각이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비로운 두 몸의 연합에서 육체와 영혼이 하나로 용해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육체와 영혼이 서로 강렬하게 용해됨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시는 관계, 즉 그분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성적관계를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기분전환적인 성으로서의 의미를 두지 않고 성례전(sacrament)의 수준에까지 승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2) 구약성경의 원리

구약성경에는 인간의 존재를 성에 대한 견해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 히브리사람들은 항상 인간을 다양한 부분으로 나누지 않고 통합적인 전체로 보았다. 반면에 헬라 사람들은 인간의 육체를 경멸하고 영혼을 고결하게 보았다. 그들은 이러한 이원론적이고 영지주의적인 견해로 인해 전 인간에 대한 존중하지 못했다.

인간의 첫 경험에 대한 구약성경의 기록인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라는 말씀은 육체적 연합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육체적, 정서적, 영적차원을 망라한 신비로운 연합을 말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이러한 존재로 연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성의 연합에 관한 성경적 견해이다.

구약성경의 교훈은 성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성례전 이상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전당”(Hall of Faith)에 나오는 구약성경의 남자와 여자들의 삶을 예로 들 수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라합 등을 보면 이들의 성적인 생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을 통한 교훈은 하나님은 인간을 성적인 본능을 가진 존재로 용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적인 범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함께 하신다. 성적인 문제에서 믿음의 사람이었던 다윗과 라합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계속해서 쓰임 받을 수 있다.

 


3) 신약성경의 원리

신약성경은 남자와 여자사이의 장벽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무너졌다고 가르친다. 남자와 여자가 더 이상 다른 성적기준에 의해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가르침은 구약성경을 기준으로 볼 때는 급진적인 출발인 것이다. 신약성경은 상호의존관계를 분명히 가르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성을 확실하게 깨닫지 않고 같은 역할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 동등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적관계에 있어서도 상징되어있다. 성의 영역에서도 남성의 지배나 조종의 때는 지나갔다.

신약은 남자와 여자가 성적만족과 이완에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가르친다. 여자들 역시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남자들과 똑같은 성적만족과 이완을 필요로 한다. 남자와 여자 둘 다 성적 만족과 성취를 기대할 권리가 있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자신의 몸을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아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명령이다. 이 명령은 성적욕구에 대해서만은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대한 반응이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의 사랑의 개념은 결혼관계에 있어서 기대되는 부분이다. 사랑은 결혼에 있어서 성 행위를 위한 기본 원리가 된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의 관계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엡5:25,28).

 


4) 성적만족 - 성경적 기대

결혼 안에서의 성적만족은 성경적으로 격려되고 기대된다. 남편과 아내는 항상 서로의 성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임신기에만 성적욕구를 갖는 동물의 세계와 다르게 창조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만이 남편과 아내 사이의 성관계의 목적이 아니다. 성경은 성적만족의 개념을 더하셨다. 아가서는 서로의 육체를 전적으로 즐기는 남편과 아내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이다. 아가3:1; 5:10-16; 7:1-11은 남편과 아내를 서로의 육체를 즐길 수 있는 커다란 쾌감의 원천으로 보았다. 잠언5:18-19도 부부의 육체적인 관계의 정당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결혼 안에서의 성에 관한 소중한 견해에 기초하여 기독교상담자는 열정적인 성을 수용하는 데 깊은 갈증을 느끼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세계에 매우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기독교의 성을 아주 좁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부들이 서로에게 쾌감을 주고 즐기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줄 때 성경은 보다 더 큰 기쁨, 더 큰 해방감, 더 큰 만족감을 가져오는 새로운 자유를 가르쳐 줄 것이다.

 


강의 5 결혼과 부부갈등상담

1. 결혼

1) 배우자선택

결혼생활의 시작을 가정생활의 첫 단계라 한다면 배우자 선택은 결혼생활로 들어가기 전 준비단계이다. 이것은 두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연합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① 전통문화에서의 배우자 선택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결혼

오늘날의 추세: 개인주의 영향으로 부모합의에 의한 결혼과 확대가족은 점차 소멸되었고 그 대신 낭만적인 사랑과 핵가족이 결혼의 근거로 등장함

 

② 현대사회에서의 배우자 선택

가) 낭만적사랑: 11세기 유럽사회, 결혼한 귀족부인과 미혼의 기사 또는 서정시인과의 사랑

* 낭만적 사랑의 대상이 변함(미혼여성으로 바뀜)

* 사랑과 신실성을 동시에 중요하게 여김

나) 20세기 전반기: 낭만적인 사랑에 대해서 반대해서 의지적 사랑 강조

* 에? 프롬: “사랑은 연습해야할 일종의 기술로 훈련과 집중과 인애와 최고관심을 필요로 한다. 사람이 사랑할 때 주는 것, 돌보는 것, 책임감, 존중, 지 식으로 특징지워진다.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문제는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으로만 사랑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 1950년대 사랑: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낭만적인 것

 

2) 배우자 선택이론

① 비슷한 사람과 결혼한다는 이론

② 정반대의 사람에게 끌린다는 이론

③ 여과이론

첫째, 잠재적 결혼배우자: 전 영역

둘째, 동족 배우자여과기: 유사한 배경

셋째, 동형 배우자여과기: 취미와 특성

넷째, 상보적욕구 여과기: 가장 좁은 문(가장 절실한 욕구를 충족)

다섯째, 결혼대상자결정

④ 자극 - 가치 - 역할 이론

배우자선택을 개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배우자를 찾으려는 개방시장

자극단계: 신체적 매력, 사회적 능력, 지위

가치단계: 서로의 삶의 표준과 신념이 양립할 수 있는지 평가함

⑤ 바퀴와 시계태엽이론

친밀한 관계: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됨

자기개방: 상대방에게 자신을 개방하고 함께 나눔

상호의존: 상대방이 막역한 친구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존재를 인식

친밀 - 욕구충족 : 공감적으로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상대방에 의해 채워짐을 앎

 


2. 건강한 결혼관계 형성

결혼할 때 배우자는 자기의 가족환경에서 성장해왔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인적인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결혼은 두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두 가족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본가에서의 영향

① 역할모델로서의 부모

부모는 말로 자녀를 가르치지만 자녀는 부모의 실제행동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갓 결혼한 부부는 부모로부터 습득된 잘못된 행동을 인식하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② 지원

부모나 친척들의 사회적이고 정서적이고 경제적인 지원은 신혼부부로 하여금 견실한 결혼생활을 준비하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③ 분화

결혼에서 굳건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분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로부터 떠나지 않고는 부부로 하나 됨이 없다.

④ 적응

본가에서 어느 정도로 융통성 있는 생활을 하였느냐가 이후 결혼생활에서의 융통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융통성이 있는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가정생활의 변화에 더 개방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다.

 


2)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

두 사람이 결혼하고 친밀하고 상호 요구할 수 있는 부부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두 사람은 다음의 4가지 상호작용, 즉 경쟁, 갈등, 조절, 동화 중의 어느 한 가지 형태로 상호작용하기 시작한다.

어떤 가정이 갈등적인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이는 견고한 결혼의 기초를 다지는데 있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동화는 분리된 개체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인 반면 조절은 두 분리된 두 명의 개체가 서로 다르다는 것에 합의 하는 것이다.

결혼에서 희생에 의하여 한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 없어져 버리는 동화는 성서적인 것이 아니다. 조절은 두 사람이 고유의 인격을 갖지만 하나의 단일체가 되어 서로에 대한 헌신, 의미를 부여하고 봉사하는 것에서의 하나 됨에 동의하는 것이다.

 


3) 새로운 역할배우기

결혼이란 다양한 역할을 감당해야만 하는 무대이다.

① 역할습득

어떤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새로운 역할들에 대해 갖게 되는 기대를 역할습득이라고 한다. 실제로 두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자신들의 나머지 삶이 어떨 것인가 하고 상상한다.

② 역할수행

결혼한 후에 부부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역할에 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③ 역할 갈등

역할갈등은 부부간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다를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지 배우자가 미성숙하거나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역할갈등은 적절한 의사소통과 갈등해결 기술로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

④ 역할형성

배우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상대배우자, 가족, 교회, 지역사회, 크게는 사회에 의해 객관적으로 설정된다고 할지라도 부부역할은 그 역할을 경험하고 실행해가는 과정을 통해 주관적으로 설정되어간다. 바람직한 결혼이란 각 배우자가 상대배우자에 대해서 하나님이 독특하게 의도한 모습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발달시키고 창조해 가게끔 하는 것이다.

⑤ 결혼에 있어서 역할적응

개인적 만족을 얻고자 하는 욕구, 사회로부터 압력, 변화된 생활양식 및 책임 또는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결혼에서는 지속적인 적응이 필요하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배우자의 각각의 역할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유연성이 있어야 하고 배우자는 각각의 역할에 동의해야 한다.

각각 배우자는 결혼관계로부터 만족과 기쁨을 누려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부부는 서로를 향한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헌신을 기초로 하여 각각의 역할에 있어 유연성을 갖고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해 개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3. 부부갈등 상담

1) 부부갈등의 본질

‘행복한 결혼’이란 비교적 고도의 상호요구가 만족되는 결혼이다. 반대로 불행한 결혼이란 상호요구가 극도로 좌절된 결혼이다. 만일 인간관계가 만성적이고 채워지지 않은 정서적 요구로 가득 차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자존심을 감소시키고 결국은 거절, 분노, 공격 등의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부부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두 개의 요구조직의 갈등, 즉 한 사람의 요구가 다른 사람의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데 있다. 예를 들면 3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온 한 여인과 한 남자는 서로를 ‘부모의 관계’로 만들려는 양립하기 어려운 요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유아-부모의 의존관계에서 서로가 ‘어린이’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2) 결혼관계 상담의 초점과 목표

결혼관계의 상담은 정신의 내적 인격갈등을 해결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결혼관계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둔다. 결혼관계 상담에서 ‘병든’ 결혼관계는 그 자체가 치료의 대상이 된다. 이 관계에서 당사자들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이다. 인간관계가 좀 더 건설적이 될 때,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다.

 


상담자가 결혼한 부부를 도울 수 있는 10개의 목표:

1. 의사소통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상호보복의 악순환을 저지시킨다.

3. 관계결속을 위해 함께 일할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4. 상호작용의 본질을 인식하도록 하며, 특히 서로 간에 고통을 자아내는 원인과 서로의 이미지에서의 그들의 상호작용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5. 그들의 갈등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게 한다.

6. 함께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일하면서 그들의 결혼생활 중에 생긴 고통과 기쁨의 원천에 대해 함께 사고하는 경험을 가지게 한다.

7. 서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주장의 무익성을 알게 하고 서로 ‘긴장해제’를 시작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서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면을 용납하도록 한다.

8. 결혼생활에서 각자의 무책임의 영역에 관해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도록 한다.

9. 서로에게 만족을 주는 성적 및 인격적 요구를 불러일으키는 관계의 방법을 발견하고 경험토록 한다. 그리하여 보다 성숙한 관계에서의 장기적인 만족감을 경험케 한다.

10. 가정 밖의 관심사를 찾게 하고 ‘확대한 가정’으로서 보다 만족할 수 있는 관계를 발견케 한다.

 


3) 관계상담의 방법론

결혼상담은 불안하고 비뚤어진 인간관계를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돕는 과정에서 부부를 감싸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상담의 기본원리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각자가 자기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두 사람에게 각각 서로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부부상담을 통하여 그들은 불화의 성질을 알게 된다. 즉 각자의 감정과 태도 및 행동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고통과 불만을 생기게 한 장본인이었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부부관계가 성숙해 가고 있는 모습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욕구를 함께 계획하고 상의하고 타협할 수 있는 그들의 증대된 능력에서 나타난다.

대부분의 결혼관계의 ‘병’은 의사전달의 과정에서 생긴 병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진실한 대화’가 빠져버린 결혼생활이 그렇게 희귀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결혼관계는 서로 말이 없는 가운데서도 격렬한 고통을 자아내는 것이다. 상담자의 참여는 이들 부부로 하여금 그들의 고통의 원인이 된 문제들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게 한 것이다. 서로 간의 공격으로 마비된 그들 결혼 관계는 ‘2인 그룹’은 중재자이며 동시에 의사전달의 촉진제의 역할을 맡은 한 사람의 멤버가 참여한 3인 그룹이 되었다. 중립적인 제 3자는 그들 2인 그룹의 성격과 상호작용을 바꾸어 의사전달이 다시 시작되도록 돕는 것이다.

* 상담자가 어느 한 사람만 오래 만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더 어려워진다. 한쪽만을 만났을 경우 적어도 다른 쪽의 사람도 만나야지 공평한 느낌을 주게 된다.

 


4) 상담자의 역할

결혼상담에서 상담자의 기능은 모든 경우에서 ‘결혼을 구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사자들이 인격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가장 큰 약속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인가 발견하고 실행하도록 돕는 데 있다.

* 어떤 경우 인간관계가 인격가치로 역전시킬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파괴적이어서 차라리 이혼이야말로 상호인격적인 것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때가 있는 것이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너무 중요하고 좋은 내용이라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보관해 둡니다.

* 많은 결혼상담관계가 그처럼 행복한 결말을 내는 것은 아니다. 결혼은 복잡한 인간관계이며 결혼문제는 쉽게 취급하기가 힘 든다. 훌륭하게 훈련받은 목사도 그가 도울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로 그는 자기가 대결할 수 없는 한계점에 종종 부딪치는 것이다. /김영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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