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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

에반젤(복음) 2020. 2. 25. 12:39



교회론

 


 


가정은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주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을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모든 믿는 자들의 영적 가정으로서 교회를 통해 내가 낳음을 받았고 키움을 받고 저 천국까지 계속 살아야 할 터전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은 성도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교회라 하면 예배보는 장소, 또는 건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참 정의는 아니다. 교회의 참 뜻은 하나님께 부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함을 받은 무리를 말한다. 교회의 참 정의는 고전1:2 말씀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1, 교회의 성경적 명칭

 


1)구약의 명칭

 


구약에서 교회를 가르치는 두 가지 명사가 있다. "카할"과 "에다"이다.

 


(1)"카할"은

"부른다" "소집한다"를 의미하는 "카할"에서 왔다. 그러므로 명사(名詞) "카알"은 "회중" (출16:3, 레16:17, 민14:5, 대상29:1, 대하28:14, 대하30:2,25, 대하31:18, 스10:14, 등) 또는 "집회"  (창49:6, 시26:5)를 말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 총회"(신31:30), "여호와의 총회" (민16:3, 민20:4), "하나님의 총회" 혹 "회" (느13:1)와 같은 표현에 적용되었다.

 


(2)"에다"는

야아드(지정하다. 지정된 때와 처소에 모이다.)라는 동사에서 왔다. 이 용어는 "집회"(시7:7) 또는 "회중"(출12:3, 출16:1, 레8:3, 레24:14, 민3:7, 민13:26, 민14:36, 민15:24, 수9:19, 수22:16, 삿21:13,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 용어의 그 의미를 뚜렷이 구별 짓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이 두 용어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단체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회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2)신약의 명칭

신약에서도 70인 역의 두 용어인 "에클레시아"(불러내다.)와 "쉰아고개"(함께 오다)를 사용하였다.

 


(1)쉰아고개는

전적으로 유대인의 종교적 집회 또는 공(公)예배를 위하여 모인 건물인 회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마4:23, 마6:2, 마10;17, 막1;21, 눅7:5,)

 


(2)그러나 에클레시아는

일반적으로 신약의 교회를 지시한다. 다만 신약의 몇 구절에서는 세속 사람들의 회합을 의미하기도 했다.(행19:32,39,41)

 


(3)이 용어는 본래 공적인 사안의 논의를 위해 각 자의 집에서 집회소로 부름을 받아 나온 회중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이 말이 신약에서 교회를 지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였다.

 


(4)신약에서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신 분은 예수님 이셨다. 예수께서 자기를 주와 그리스도로 말씀하시고 천국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이 말을 적용 하셨다.(마16:18, 마18:17) 이 신앙의 작은 공동체야말로 메시야의 "에클레시아" 곧 진정한 이스라엘이었다.

 


(5)교회가 확장됨에 따라 이 "에클레시아"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가)그래서 지교회(支敎會) 곧 일정한 지역에 있는 신자들의 집단을 가르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행5:10,11, 행11:25,26, 고전11:18, 갈1:2,3)

 


(나)또 이 말은 가정교회(롬16:5, 고전16:19, 골4:15, 몬1:2)

 


(다)여러 지교회들이 합하여 된 교회(행9:31)

 


(라)보편적 유형교회(고전10:32, 고전11:22, 고전12:28)

 


(마)보편적 무형교회(엡1:22,23, 엡3:21, 엡5:23,24,25,27,29,32, 골1:18,24)를 지시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6)교회의 헬라어 원어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부르다" "불러내다"의 뜻에서 나온 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러내었듯이

 


(가)죄에서 의로

(나)죽음에서 생명으로

(다)어둠에서 빛으로

(라)세상에서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은 회중(모인 사람)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어 졌다.

 


(7)그러므로 교회란 구속의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는 말이다.(19:4-6 벧전2:9-10) 다시 말 하면 교회란 말은 하나님의 선택, 부르심, 중생, 회심(회개) 칭의와, 양자 됨의 은총을 입어

 


(가)이 세상에서 삼위일체가 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나)성화를 이루며

(다)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면서

(라)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왔고

(마)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으며

(바)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게 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어지고 있다.

 

 

 

3)교회 구분은

 


(1)지역에 따라 중국교회, 한국교회, 미국교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2)크고 작음에 따라 총회, 노회, 지교회, 가정교회로 나눌 수 있다.

 


(3)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이다.

 


(4)이단을 제외하고 교파에 따라서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등 많다 .

 

 

 

(5)그러나 이 모든 교회를 크게 둘로 나누면

 


(가)눈에 보이는 교회(가견적 교회)와

(나)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불가견적 교회)로 나눌 수 있다.

 

 

 

    3, 기타의 명칭들

 


교회를 가르치는 여러 가지 명칭들을 알아두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1)신약 성경에 나타난 중요한 명칭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다.(벧전2:9,10, 눅1:68-69, 마1:21, 딛2:11-14)

 


2)성경에서 지교회(개교회)나 보편적(우주적)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였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고전12:27, 엡1:23, 골1:18)

 


3)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이 명칭은 위로 그리스도와 옆으로 성도들과의 유기적 통일체임을 강조한다.

 


4)구약에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 관계로(렘2: 호1:1-3) 신약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묘사하고 있다.(고후11:2,3. 엡5:24,25,31,32. 게19:7, 요3:29)

 


5)교회 또는 성도를 "성령의 전" 또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호칭하기도 한다.(고전3:16, 엡2:21,22, 벧전2:5)

 


6)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말 한 곳도 있다.(고전3:9,16,17, 고후6:16, 딤전3:15)

 


7)교회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갈4:26)

"하늘의 예루살렘"(히12:22)

"새 예루살렘"(계21:2)으로 묘사하였다.

이런 표현들은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이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더불어 교통하심을 나타낸다.

 


8)디모데전서 3;15절에는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로 묘사하고 있다. 이 말은 교회가 진리에 기초하여 세워졌으며 진리로 보전되며 양육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교회는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9)교회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입양된 하나님의 자녀들 곧 "하나님의 권속"이다. (엡2:19, 딤전3:15) 우리에게는 한 아버지가 계시니 곧 독생자를 보내주신 성부 하나님이시다.

 

 

 

           여러 시대의 교회관

 


    1, 교부 시대의 교회관

 


1)초기 교부들과 변증가들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성도의 교통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로 선택하신 백성으로 표현하였다.

 


2)이단들의 발생으로 제2세기 후반부터는 참된 보편적 교회의 유형적 특징들을 제시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3)그리하여 마침내 교회는 하나의 외형적 단체로 생각되었으며 사도들의 후계자인 감독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되었다.

 


4)교회의 보편성(普遍性)이 강조되면서 지교회들은 하나의 보편적 교회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5)교회의 속화와 부패로 여러 종파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제2세기 중엽에는 몬타너스 주의

제3세기 중엽에는 노바티안 주의

제4세기 초엽에는 도나티시트 주의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교회 회원들의 성결을 참된 교회의 표지(標識)로 삼았다.

 


6)초대 교부들은 이 종파들에 대항하여 교회의 감독제를 점점 더 강화하였다.

키프리아누스는 감독제 교회를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가 감독들을 사도들의 참된 후계자로 보고 감독단은 교회의 통일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말하였다. 이 감독에게 복종치 않는 자는 교회에서 끊겨지고 구원까지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7)어거스틴은 교회관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다. 도나티스트 파와의 논쟁은 그로 하여금 교회의 성질에 대하여 보다 더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는 교회를 피택자들의 단체 곧 하나님의 영을 모심으로 참된 사랑을 특성으로 가진 성도들의 교제로 생각하는 한편 일반적으로 키프리아누스의 교회관도 지지하였다. 참된 교회는 감독직의 계승에 의하여 사도적 권위가 존속되는 보편적 교회라는 것이다.

 

 

 

    2, 중세기의 교회관

 


1)키프라누스와 어거스틴에 의해 발전된 교회론의 체계는 중세기의 스콜라 학자들에게 인계되었으며 트랜트 회의 이후에 그들 계승자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그리고 교회론에서는 거의 발전을 보지 못한 교회의 성직제도도 치밀한 조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교회 조직의 발전에 따른 결과였던 것이다.

 


2)어거스틴의 성도의 교통으로서의 교회관은 외형적 조직체로서의 교회관에 가려졌다. 휴고는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세우신 두 권력이라 하였다.

 


3)양자는 다 같이 체제에 있어서는 군주적(君主的)이지만 교회가 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가짐은 교회는 사람의 구원을 돕고 국가는 현세적 안녕만을 위한 권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원수(元首)인 교황에 관한 교리는 점점 더 발전하여 교황은 사실상 절대 군주가 되었다.

 


4)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한 교회관은 가정, 학교, 경제, 과학, 사회, 및 문화의 전 영역을 교회의 지배 아래 두려고 하였다. 이것은 점진적으로 교회의 세속화를 몰고 왔다. 마침내 교회는 죄인의 구원보다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더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세속 주권자들에 대한 교황의 지배권을 주장하도록 만들었다.

 

 

 

    3, 종교 개혁기의 교회관

 


1)종교 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천주교)의 교회관을 따르지 않았다.

루터는 교회의 본질을 신자들의 영적 교통에서 찾았다. 또한 그는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직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하나의 교회에 유형성(有形性)과 무형성(無形性)의 두 면이 있는 것을 보았다.

무형교회가 유형하게 되는 것은 성직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순수한 시행에 의하여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유형교회는 항상 경건한 회원들과 악한 회원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인정하였다.

 


2)그러나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우위를 가진다는 로마교회의 관념에 대한 반대의 주장으로 교회는 말씀 전파와 성례전 시행 이외의 모든 일에 있어서 국가에 종속하게 되었다.

 


3)칼빈과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도 어느 정도 교회가 국가에 굴복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재세례파는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였다.

 


4)칼빈과 개혁파 신학자들은 교회의 본질을 루터와 같이 성도의 교통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통일성을 성직, 말씀, 성례와 같은 객관적 규례에서 찾지 아니하고 주로 신자들의 주관적 교통에서 찾았다. 그들은 교회의 참 표지(標識)를 말씀과 성례에서뿐만 아니라 권징의 신실한 시행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4, 현대의 교회관

 


1)18세기는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신앙에 대한 관심과 교회에 대한 열심히 없어지고 교회를 사회의 한 단체로 여기게 되었다. 현대 자유주의 적인 교회관의 특징은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께 속한 단체로 보지 않고 인간적인 기관으로 보는 것이다.

 


2)20세기 중반에 "하나님의 선교" 사상이 등장하면서 교회를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 선교의 출발점을 교회에서 하나님께로 돌린 것은 옳으나 교회를 선교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만 생각한 것은 성경적 교회관의 일면만 본 것이지 전체를 보지 못한 잘못된 견해이다.

 


3)교회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으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를 받았고 성령의 인(印)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이 은혜를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4)천국 생활을 앞당겨 살면서 조만 간에 천국으로 갈 사람들을 안내하는 천국의 인도자이다. 교회는 세상을 섬기기 위한 하나의 봉사 기구가 아니다.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상대해야 하는 하나님의 단체이다.

 


5)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별이 명확해야 하는 것처럼 교회와 세상과의 구별도 명확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 사상이 본래 의도 한 바는 아니나 그 사상의 실제적 적용과정에서 교회를 평가 절하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선교 목표가 선명하지 아니한 애매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교회의 본질 (本質)

 


    1, 로마 카톨릭의 개념

 


1)초대교회는 교회의 본질 문제를 충분히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본질을 성도의 교통에서 찾았다.

 


2)제 2세기 말엽에 이단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참된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야만 하게 되었다. 키프리아누스 때로부터 종교개혁 시대까지의 교회는 외형적 조직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았다 외형적 조직체 곧 교직정치 제도는 마침내 교황 제도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3)로마 카톨릭 파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교회는 세례를 받고 동일한 믿음을 고백하고 동일한 성례에 참예하며 지상에서 유일한 가시적 원수(可視的 元首) 밑에 있는 합법적인 목자들에 의하여 치리를 받는 모든 신실한 자들의 단체"이다.

 


4)그들은 "교훈하는 교회"와 "교화 받는 교회"를 구별하였다. 가르치며 치리하며 덕을 세우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와 교훈을 받으며 치리를 받고 성례를 받는 교회를 구별하였다.

 


5)카톨릭 교파도 교회의 무형적 면을 인정하지만 그들이 "교회" 라 할 때 그것은 신자들의 유형적 단체를 의미한다. 참된 교회는 교황을 머리로 하는 성직자들의 교훈과 치리 아래 있는 신자들의 단체라는 것이다.

 

 

 

    2.헬라 정교회의 개념

 


1)헬라 정교회는 로마 교회를 "참 교회"로 인정하지 않고 참 교회는 헬라 정교회 하나뿐이라고 주장한다. 헬라 정교회도 로마 교회처럼 교회의 무형적인 면을 인정하지만 교회의 외형적이고 유형적인 면을 강조한다.

 


2)이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성도의 공동체에서 찾지 않고 감독의 성직 제도에서 찾는다. 이 교회는 교황권을 거절하지만 사실상 그것을 성직자 단에서 보유하고 있다.

 


3)교회의 무오성을 주장하는데 그 무오성은 감독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에 각 교회 회의와 대회에 권위를 둔다. 이 교회는 무형 교회를 말하나 실재에 있어서는 유형적으로 체현(體現)되지 않는 교회는 부분적이며 불완전한 것으로 본다.

 


4)그들에 의하면 교회는 실제적이며 현실적이며 가시적(可視的)인 실재(實在) 들이다. 즉 실현(實現)되지 않는 그리고 실현 될 수 없는 이상(理想)이 아니라는 것이다.

 

 

 

    3,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개념

 


1)종교 개혁은 로마교회의 형식주의와 그 형식적 교회관에 대한 개혁이다. 개혁자들은 교회의 본질을 교회의 외형적 조직체에서 찾지 않고 "성도의 교통"에서 찾았다.

 


2)루터와 칼빈은 교회를 그리스도를 믿어 성화되고 그 머리인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성도들의 공동체로 이해하였다.

 


3)개혁파 교회의

 


(1)벨직 신앙고백서는 "... 그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성화되어 인(印) 치심을 받은 참된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인 하나의 보편적 교회를 믿으며 고백한다"고 하였다.

 


(2)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아 회집 된 신실한 자들의 단체이다. 곧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말씀으로 참 되신 하나님을 참으로 알며 올바로 예배하며 바로 섬기는 모든 성도들 또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풍성히 허락하신 모든 선한 축복들을 받아들인 모든 성도들의 교통이다." 하였다.

 


(3)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무형의 보편적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로 모였으며 현재 모이고 있으며 또한 장차 하나로 모이게 될 전 피택자들로 되어 있다. 또한 이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배우자이며 신체이며 충만이다" 라고 하였다.

 


4)하나의 교회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의 교회는 전 피택자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그 실체가 가려져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무형교회란 말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형교회는 사람이 보는 대로의 교회이니 곧 신자로 여겨지는 자들로 구성되는 교회이다. 이 유형의 교회는 중생되지 아니한 자들을 다소 포함 할 수 있으며 불택자 까지도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형교회의 모든 회원들을 성도로 인정하고 상대해야 한다. 

 


5)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영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한 머리, 한 믿음, 한 세례, 한 성령, 한 생명, 한 소망, 한 아버지, 한 왕에 관련된 한 몸이며, 한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이 교회는 구속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증거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존재이다.

 


6)"나는 하나의 보편적 교회를 믿는다" 할 때에 그것은 교회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그 완성을 위한 사역으로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가 소집되며 성화 되고 있음을 믿는 다는 뜻이다.

 


             

       교회의 다면적(多面的) 성격

 


    1, 교회의 정의

 


1)교회가 가진 여러 가지 성격을 인하여 여러 관점에서 교회를 정의한다, 어떤 신학자들은 선택적 관점에서 "교회는 피택자들의 공동체" 라 하였다. 그러나 이같이 정의된 교회는 현재 하나님의 마음속에 전재하며 종말에 완성될 교회이지 역사적 실체로서의 교회는 아니다.

 


2)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는 모든 신자들이 다 피택자이나 전 피택자자들이 현실적으로 모두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신자들이라고 말 할 수 없다.

 


3)선택적 관점에서 내려진 정의를 보완하기 위해 교회에 속한 자들의 주관적이고 영적인 특성, 곧 유효적 특성 곧 유효적 소명 또는 신앙의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1)즉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은 피택자들의 단체 곧 유효적 소명을 받은 자들의 단체이다.

 


(2)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신자의 공동체로 정의되기도 한다.

 


(3)세례와 신앙고백이라는 관점에서 교회는 세례 받고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의 공동체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이것은 교회의 외형적인 면에 치중한 정의이다.

 


이상 세 가지 관점에서 내려진 정의들을 종합할 때 교회의 무형적 면과 유형적 면을 모두 고려한 보다 원만한 정의가 될 것이다.

 


교회란 하나님의 선택과 대속과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된 자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은총을 입어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그 은혜를 세상에 증거 하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2, 성도의 교통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성직자들로 구성된 외부적이고 유형적인 조직에서 찾는다.

 


1)성도의 교통이란

성도들은 한 머리인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유기적 연합을 이룬 것을 의미한다.

개 교회에서 교회의 본질을 성도들과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에서 찾는다고 해서 유형교회의 행정적 조직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2)유형적 교회에 행정조직이 필요하지만 그 조직은 교회의 사명을 위한 중요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그 조직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는

 


(1)포도나무와 가지(요15:1-5, 고전6:15-19)

 


(2)머리와 몸(엡1:22,23, 엡4:15,16, 엡5:29,30)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관계의 비유적 묘사는 그리스도와 성도가 생명적(生命的), 유기적(有機的) 연합을 이루고 있음을 뜻한다.

 


4)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신령한 교제의 생활을 하는 동시에(계3;20,21 참조) 그리스도와 연합된 다른 성도들과도 신령한 교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1)공동적 신앙고백,

(2)동일한 소망,

(3)같은 사명을 가지고

(4)한 몸으로서

(5)한 머리의 지배를 받으면서

(6)상호 협력하게 된다.

 


5)이것이 성도의 교통이며 교회란 바로 이 성도의 교통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생명적이고 유기적인 연합에 기초한 성도의 교통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3, 교회의 구별

 


1)교회란 말은

 


(1)가정교회(롬16:5, 롬5:23, 고전16:19, 골4:15, 빌레몬2)

 


(2)각 지방에 있는 지교회(支敎會) (고전16:1, 갈1:2, 살전2:14)

 


(3)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된 또는 연합될 전 피택자들의 단체(엡1:22, 엡3:10,21, 엡5:23-25,27,28,29,32, 골1:18,24)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지상교회(地上敎會)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전투적(戰鬪的) 교회이다.(엡6:12,13, 벧전5:8, 딤후4:7, 고전9:26, 딤전1:18, 고후10:4, 참조)

 


3)교회가 그 안팎에 있는 그 모든 세력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이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명령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4)지상교회를 전투적 교회라 한다면 천상(天上)의 교회는 승리적 교회이다. 하늘에 있는 교회는 현세적 투쟁을 끝내고 승리의 영광 가운데 있다.(계21:4, 참조) 그러므로 지상교회는 승리가 보장된 교회이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마16:17,18)

 


5)교회는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불가견적교회(또는 무형교회)란 사람은 전 피택자를 볼 수 없으며 교회는 본질상 영적(靈的) 임으로 누가 택함을 받은 자인지 누가 중생한 자인지 육안으로는 정확하게 식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6)반면에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고백과 행위, 말씀과 성례, 외형적 조직과 정치에 있어서 가견적이다. 가견적 유형교회 (可見的 有形敎會)의 회원이라고 해서 모두 불가견적 무형교회의 회원이라는 단정은 내리지 못한다.

 


7)불가견적 교회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서 종말적으로 완성될 교회이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1:22,23)

 


8)중생된 자들은 불가견적 교회의 회원이면서 동시에 땅위에서는 보이는 교회의 회원이 되어야 한다. 이 가견적(또는 유형교회)를 통하여 예배하며 피차 은혜 안에서 자라게 되며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봉사의 일을 해야 한다.(엡4:11,12)

 


9)땅위에 있는 가견적 교회(유형교회)는 완전하지 못하다. 가장 순결한 교회도 시정되고 개선되어야 함으로 교회는 계속적으로 갱신되며 성장해야 한다.

 

 

 

              교회의 기원과 형태

 


    1,교회의 기원

 


1)교회는 이 지상에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안에 이미 존재해 왔다.

 


(1)교회의 뿌리는 영원 자존자이신 하나님의 목적에까지 뻗쳐 있다. (엡1:3-6)

 


(2)교회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택하심을 입었으며(엡1:4)

 


(3)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성령의 부름과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엡1:7,13, 엡4;30, 엡5:25, 계1:5, 행20:28,)

 


(4)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찬송하며 널리 전하게 하시려고 흑암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의 빛 가운데로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셨다.(벧전2:29, 엡3:10, 마28:19, 고후5:19, 엡1:23, 계1:6.)

 

 

 

2)교회의 삼위 일체론적 기원을 인식하지 못하면 교회의 본질, 위치, 사명, 등을 바로 알 수 없다.

 


3)이 지상(地上)에는 언제부터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라는 물음에는 구원의 복음을 믿는 신자가 있었던 그 때부터 교회가 존재하였다고 말 할 수 있다.

 


4)최초의 복음은 창3:15이다. 이 복음을 제일 먼저 믿었던 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사실은 아벨은 신자였던 사실이다.(히11:4)

 


5)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구속적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영계의 모든 천군 천사들에게 알리신다.(엡3:10)

 


6)땅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대속의 기쁜 소식을 증거 하도록 위임받은 것도 교회이다(마28:19 고후5:19)

 


7)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充滿)케 하신다.(엡1:23)

 


8)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한 몸에 속하여 은혜를 입어 성장하게 되며 봉사의 일을 하게 된다.(엡4:11-16 고전12:27-31 롬12:5-8)

 


9)교회의 설립, 보전, 갱신, 성장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10)그러므로 교회를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세계사의 의미,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2, 구약 교회의 형태

 


1)아담 이후 모세 이전까지의 교회는 가정교회의 형태를 취하였다. 족장(族長)을 중심으로 그 가족의 구성원으로 된 교회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정의 족장들이 가정교회의 사제(司祭)로 활동하였다. 셋,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 등이 가정교회를 지켜 왔다. (창4:26, 창5:24, 창6:1,2. 창12참조)

 


2)출애굽 이후 교회는 가정의 형태에서 국가적 교회 형태로 바뀌어 졌다. 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은 한 국가로 조직되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교회로 구성되었다.

 


3)그러나 이 시대에도 교회와 국가가 전적으로 하나였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국가 전체가 교회로 구성되었으며 교회가 국가적 형태로 존재하였으나 이 양자의 구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 안에는 국가적 기관과 동시에 교회적 기관이 별도로 있었던 것이다.

 

 

 

    3, 신약 교회의 특징

 


1)신약 시대의 교회는 구약 시대의 교회와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나 각기 다른 성격과 특징을 가진다.

 


2)구약 시대의 교회는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神政國家) 안에만 존재하였으나 신약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확장된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다.

 


(1)신약시대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에서부터 복음이 각 나라의 방언으로 전해졌다.(행2:41, 참고)

 


(2)예루살렘의 작은 다락방 교회는 유대인의 교회로 확장되고

 


(3)로마제국의 교회가 되고

 


(4)유럽의 교회가 되고, 마침내 전 세계의 교회가 되었다.

 

 

 

3)구약시대의 교회는 의식적 율법(意識的 律法)에 따른 제사적((祭祀的) 예배를 드린 교회였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하는 교회이다.(요4:23, 롬12:1, 참조)

 

 

 

    4,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연속성 및 동질성

 


1)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 구약의 개념은 폐하여지지 아니하고 온전케 되어 졌다.(마5:17)

 


2)그리스도는 옛 계약과 그의 피로 세우신 새 계약을 잇는 줄이 되셨다. (8:10 렘31:31-3)

 


1)신약 교회는 구약 교회의 연속임으로 "새 이스라엘" 또는 "영적 이스라엘" 이라 불리어진다.

 


2)바울은 역사상에 교회를 단 하나의 감람나무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불신앙으로 인해 이 참 감람나무에서 끊어지게 되고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접붙임이 되어 "아브라함의 후손"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었다. (갈3:29, 롬4:11-18, 갈6:16,)

 


3)성경적 교회론의 근본 사상은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사상이다.

 


(1)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이 최초의 계약은 아니지만 신구약에 있어서 기초가 될 만한 것이다.

 


(2)그 계약은 모든 세대를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창17:7)

 


(3)계약 관계의 목적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출29:45, 레6:12, 렘31:33, 고후6:6, 계21:3,)

 


(4)즉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 "앞에서 행하도록" 하려는 것이다.(창17:1) 이 계약은 할례를 징표로 삼아 확증되었다.

 


(5)후에 모세를 통하여 율법(속죄를 위한 피의 제사 및 절기, 등)을 주셨으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메시야가 오셔서 실현할 영광스러운 소망에 대해 거듭 거듭 말씀해 주셨다.

 


4)그리스도께서는 이 계약을 실현하시기 위해 오셨다.(마5:17,)

 


(1)그리스도는 "옛 계약"과 그의 피로 세우신 "새 계약"을 잇는 줄이 되셨다.(히8:10, 렘31:31-34,)

 


(2)신약은 그리스도를 참 이스라엘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묘사하고 있다.(마2:15,갈3:8-29)

 


(3)모형적 제사 제도의 실상인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이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5)신약교회에도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으로 삼으며(롬4:11,16) 구약을 성경으로 가지게 되었다.(롬15:4) 신약에서 교회를 묘사할 때에도 구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벧전2:9., 출9:5-, 호2:23 참조)

 


6)그러나 교회에 대한 신약적 개념은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이라는 사상에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사상을 더 추가하고 있다. 신약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사죄와 칭의와 영생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의 몸으로 묘사되고 있다.

 


(7)교회의 일군들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자기는 이 몸에 속한 이 몸을 위한 한 지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8)성경은 하나의 보편적 교회나 지방적 교회들이나 어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를 다 하나님의 교회로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속한 하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9)여러 시대, 여러 지역, 여러 교파에 속한 교회들이 한 그리스도, 한 성령, 한 믿음, 한 소망을 가짐으로 보이지 않는 면에 있어서 이미 통일성이 주어져 있다. 4:4)

 


(10)진정한 교회 연합 운동은 교파적인 합동을 하는 것이 교회의 가견적 통일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진리와 성도가 하나된 것이 교회이니 그것을 지역적 및 세계적 수준에서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된 교회, 교회들이 일치하는 이것이 하나님 중심의 참 연합이다.(요17:21)

 


(11)교회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영광스러운 존재요. 세상을 밝힐 빛으로 존재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빛 그 자체는 아니다 빛 되신 그리스도를 신앙하고 증거 하는 유일한 공동체이다.

 


(12)땅 위에서는 교회가 이리 떼 속에 들어 있는 양떼 같은 실정이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계실 것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약속 때문에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마28:18-20. 마16:18)

 

 

 

             교회의 속성 (屬性)

 


    1, 통일성

 


1)교회의 통일성은 기본적으로 내면적(內面的)이며 영적(靈的) 성격을 가지나 외면적(外面的), 유형적(有型的) 통일도 배제(排除)하지 않는다.

 


2)교회의 내면적이며 영적 통일이란 한 성령에 의하여 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관할을 받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통일이다.

 


3)이 몸은 한 머리와 한 생명으로 동일한 신앙과 소망을 가진 모든 지체들이 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를 말한다.(고전12:12-31, 엡4:4-16)

 


4)이 내면적이며 영적인 통일은 모든 신자들의 신앙고백과 행위에서, 예배와 성례 참예에서, 교회의 유형한 조직과 친교에서, 세계에 대한 전도와 봉사를 위한 유형한 활동에서 나타나게 된다.

 


5)무형 교회의 통일성을 유형교회의 통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무형교회의 통일성뿐만 아니라 유형교회의 통일성도 말하고 있다.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교회와의 관계를 끊을 때 그들은 유형 교회의 통일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연합의 유대를 교회의 정치적 조직에서 찾지 않고 말씀의 참된 전파와 성례의 정당한 시행에서 찾았다.

 


6)벨직 신앙고백서는 참된 교회의 표지(標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잇다. "복음의 순수한 교리가 거기서 전파되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가 순수하게 거행되며, 권징이 신실히 시행되면" 이것으로 참된 교회가 무엇임이 확실히 알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7)오늘날 교회 분열이라는 견지에서 유형교회의 통일성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며 통일성을 유형적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지역이나 문화적(특히 언어의) 차이로 생겨 난 분파는 교회의 통일성과 조화될 수 있으나 교리적 왜곡(敎理的 歪曲)이나 성례의 악용에서 온 분열은 교회의 통일성에 배치되는 분파이다.

 


(2)전자(前者)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인도된 것이나 후자는 악령의 미혹과 죄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8)하나의 무형교회가 한 조직체로 나타난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요구도 아니며 역사적 경험도 이것이 실행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치가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전체 교회를 하나의 외형적 조직체로 통합하려고 하였던 로마 교회의 시도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9)유형교회의 통일성은 본래의 불일치를 통일해 보려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 곧 실재하는 내적 통일성의 적절한 외적 표현인 것이다.

 


10)그러므로 내적 통일성이 없는 외적 연합이나, 참된 교회의 표지를 상실한 교회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실재하는 내적이며 영적인 교회의 통일성에 대하여 손상을 끼치는 것이다.

 


11)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그 하나 된 것을 유형적으로 표현 하는 일을 선교적 관심에서 추구해야 한다.

 

 

 

    2, 거룩성

 


거룩은 교회의 중요한 속성들 가운데 하나이다.

 


1)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의 중보적 의(義)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한 교회로 인정된다.

 


2)교회는 죄 많은 교회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의를 입고 있기 때문에 객관의 의미에서 거룩하다.

 


3)교회는 또한 새생명을 받아 중생 되었으며 새생명의 원리에 의하여 실제로 성화를 이루어가고 있으므로 상대적 의미에서 주관적으로 거룩하다고 본다.

 


4)교회는 거룩의 씨를 그 안에 받아 가지고 있으며 거룩을 지향하고 있다. 교회를 거룩한 교회라고 말하는 일차적이며 가장 중요한 근거는 그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5)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봉헌되었다는 의미에서 거룩한 것이다.

 


6)교회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었으며 성령의 중생과 성화의 역사가 그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 성별 되고 봉헌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다.

 

 

 

    3, 보편성(普遍性)

 


1)"보편적"이란 말은 "우주적" "총괄적" "전부" "또는 "전체적"이란 의미를 가진다. 이 말은 신약 성경 어느 곳에서 교회와 관련시켜 사용되고 있지 않다. 성경 이외의 문헌들에서 "특수한" 또는 "지방적"이란 말에 대비하여 "우주적"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2)"보편적"이란 말은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의 모든 족속들을 포괄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3)이 말이 교회를 수식하는 말로 쓰일 때에는 "가서 모든 족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마28:19, 막16:15,)라는 그리스도의 명령과 관련되어 있다.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교회의 임무를 나타내는 말이다.

 


4)그리스도는 만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계5:9) "각 나라의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계7:9)라는 성구는 교회의 보편성과 광대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5)교회의 통일성이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에 근거하듯이 교회의 보편성도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결정된다.

 


6)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교파, 모든 족속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모든 신자들을 다 포함한 하나의 교회는 보편적이다.

이 보편성을 전 세계적 조직체를 가지고 있는 어떤 큰 교파에만 적용시키게 될 때 그것은 보편성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 된다.

 


7)교회의 보편성은 교회의 통일성과 같이 기본적으로 무형교회에 적용된다. 무형교회만이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모든 신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진정한 공교회(公敎會)이기 때문이다.

 


8)그러나 제 2차 적으로 보편성을 유형교회에 돌린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교회가 유일한 보편적 유형교회라고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9)어느 한 교파가 자기들만이 전체 기독교라 할 수 는 없다. 교회의 보편성의 가장 중요하고 적극적인 실현은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여 믿는 자면 어떤 민족과 인종이던지 차별 없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이는 데 있다.(골3:11)

 


10)교회의 보편성은 금생에서는 충분히 실현되지 않고 천국에서 완전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계7:9)

 

 

 

                교회의 특성 (特性)

 

 

 

    1, 보수성(保守性)

 


1)교회의 보수성이란 시대를 따라 변하거나 사상의 조류를 따라 요동하지 아니 하고 신앙과 생활을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인 성경에 기초함을 뜻한다.

 


2)이 말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에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성은 과거의 것을 현재에도 굳게 잡는 것이니 과거와 현재와의 유대 관계를 견고하게 지속하는 것이다.

 


3)교회의 과거와의 관계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이다. (엡2:20) 사도들에 의한 교회의 규범과 사도적 선례가 현재적으로 조명되며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사도적 규범뿐만 아니라 역사적 교회의 신조와 교리들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도 교회는 보수적이다.  보수(保守)라는 말을 쓸 때 교회가 진리를 보수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가 교회를 보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진보성(進步性)

 


1)교회는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계시 진리에 근거하고 있다 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이 보수성은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들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 교회는 보수성을 가져야만 교회의 안팎에서 미혹하는 인본주의와 세상주의와 이단의 들에게 이끌려 패전하지 않게 된다.

 


2)그러나 교회는 계시 진리를 더욱 원만하고 구비하게 깨달아야 하며 복음 증거를 통한 교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함으로 이런 면에서 진보적이어야 한다. 계시 진리에 대한 이해, 교회의 갱신과 성장 면에서 계속 진보해야 한다.

 


3)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보수적이면서 동시에 진보적이어야 한다. 진보가 없는 교회는 성장과 열매가 없는 교회이다.

 

 

 

    3, 초월성(超越性)

 


1)교회는 세계에 있는 무수한 조직체들 가운데 하나의 조직체가 아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지상의 모든 조직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것을 초월한다.

 


(1)교회는 영원에서 선택되었으며

(2)그리스도의 구속함을 입었으며

(3)성령의 새생명 주심을 받은 독특한 단체이다.

 


2)교회의 구성원들은

 


(1)택하신 족속이요.

(2)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3)거룩한 나라요.

(4)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벧전2;9)

 

 

 

3)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부하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찬란한 제국들도 그리스도 교회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세계의 무수한 단체들 중에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 하나 뿐이다.(엡1:23)

 


4)교회의 초월성은 특수한 의미의 신적 기원으로 세상의 법칙이나 지식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계시 진리에 근거한다. 그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 아래 있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와 천국 시민들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4, 불멸성(不滅性)

 


1)지상에는 수많은 단체들과 국가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져 버리지만 교회는 사멸하지 않는다.(사54:10, 마16:18, 마28:20)

 


2)교회의 불멸은 교회 자체의 능력에 의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그의 전능의 인도와 보호에 근거한다. 역사상 많은 이단의 미혹과 타락으로 인한 위험, 그리고 여러 세력에 의한 박해로 교회가 사멸 될 듯한 위기를 수없이 겪었으나 교회는 멸해지지 않았다.

 


3)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순간까지 이 지상에는 무형교회 뿐만 아니라 유형교회도 건재할 것을 능히 믿을 수 있게 하는 불멸에 대한 보증이 있다.(마16:18, 마28:20) 세상의 모든 조직체들은 다 멸해질 것이나 교회는 불멸영존(不滅永存)하게 된다.

 

 

 

    5, 영광성(榮光性)

 


1)오늘날 지상(地上)의 유형교회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보이지 않고 멸시받는 교회로 비쳐지고 있다. 이는 세상이 교회의 영광스러운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이기적인 옛사람의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빛과 소금 노릇을 제대로 못하게 되면 배척과 멸시를 받게 된다고 하셨다.(마5:13)

 


2)그러나 이와 같은 흠 점은 교회의 외면에 묻은 얼룩이지 교회의 내면적 영적(內面的 靈的) 실상까지 허무하고 비참한 것은 아니다.

교회의 영광스러운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성령의 내주(內住) 및 역사(役事) 그리고 각양의 은사들과 지극히 영광스러운 소망, 또한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사명 등을 고려할 때 교회는 땅위에 어떤 것과도 비교 할 수 없이 지극히 영광스러운 존재이다.

 

 

 

             교회의 정치 (政治)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딤전3:1)]

 


    1, 교회의 조직

 


성경에는 교회의 정치에 관한 일반적 원리는 나타나 있지만 세부적 사항까지는 지시되어 있지 않다.

 


1)현존하는 어떤 교파의 정치도 초대 교회의 정치와 동일한 것은 하나도 없다. 교회는 조직이 필요하나 조직에 의해 존재하는 외형적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생명적 단체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2)정치는 교회의 사역을 방해받지 않고 적절하고 질서 있게 유지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어떤 단체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에는 적절한 조직이 필요하듯이 교회의 성장 발전에도 조직과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1)일찍이 예루살렘 교회에도 단순한 조직이 있었으며(행2:41-46, 행6:1-7)

 


(2)다른 지방 개(個)교회도 허술하기는 하나 조직이 있었다.(행14:23, 행20:17, 빌1:1)

 


(3)초대교회에 이미 예배와 친교와 권징과 사업을 위한 규율이 정해져 있음을 성경에서 발견 할 수 있다.(행6:1-6, 고전14:34, 고전5:13, 고전16:1,2, 고후9:7, 고후8:1-9:5, 롬15:25-28, 행15:22-29)

 


3)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의해 세워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단체이다. 구약 교회는 가족, 부족, 국가 교회의 형식을 취해 왔다.

 


4)신약 교회는

 


(1)예수께서 제자들을 모아 훈련하시며 전도, 봉사, 권징의 원리들을 말씀하셨고

 


(2)성례전을 제정해 주심에 따라 교회 조직이 싹트게 되었으나 (요13:29, 마26:26-29)

 


(3)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교회가 성장하면서 조직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게 되었다.

 


(4)초기 교회는 조직 보다 교훈에 더욱 주력하였다. 사도 바울도 교회의 조직보다 교훈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만년에 그는 교회의 질서에 대해서도 많은 말씀을 하셨다.(살전5:1213, 고전12:28, 롬12:6-8, 빌1:1, 엡4:11, 딤전3:1,2,)

 


5)초대 교회의 조직에 관한 성경의 증언은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서 발견된다.

 


(1)교회의 회집(행20:7, 히10:25,)

(2)직원들의 선거(행1:26, 행6:5,6,)

(3)직원들의 명칭(빌1:1, 행20:17,28,)

(4)권징(고전5:4,5,13,)

(5)연보(롬15:26, 고전16:1,2,

(6)과부들의 등록(딤전5:9)

(7)공통한 규례(고전11:16)

(8)성례의 법도(행2:41, 고전11:23-26) 등이 있다.

 

 

 

    2, 교회의 정치 체제

 


역사상 교회가 취한 정치체제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나 크게 나누면 세 가지가 있으니 감독정체(監督政體), 장로정체(長老政體), 회중정체(會衆政體)이다.

 


1)감독정체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교회의 정치를 사도들의 계승자인 감독들에게 위임하였다는 "사도적 계승"이, 이 제도의 기초적 원리이다.

 


(1)이 정체에 있어서는 성직자들의 서열이 중시되어 진다.

 


(2)천주교, 성공회, 감리교 등의 제도는 감독정체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2)장로회 정체는

 


(1)대의 정치를 위주로 하는 교회 정체이다. 이 정체에서의 권위는 신도들이 선거한 대표자들 곧 목사와 장로들에게 있다.

 


(2)목사와 평신도 대표인 장로가 평등한 지위에서 협의하여 교회를 다스리는 제도임으로 이 정체에서는 교직자와 평신도의 평등이 중시된다, 장로교가 이 제도를 따르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며 그리스도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20:28 막10:45)하신 말씀처럼 서로 사랑으로 봉사와 희생을 한다)

 

 

 

3)회중 정체

 


독립파의 제도라고 불리어 지기도 한다. 이 제도에 의하면 개 교회는 상호 독립한 충분한 정치권을 가진 완전한 교회이다. 장로회 제도에서처럼 교직자들의 동일 서열을 인정하나 권위는 선택된 대표자들에게 있지 않고 신도들의 직접결의에 있다.

 


(1)교직자들은 교회의 회원으로서의 정치권만 가진 교회 사무의 집행자들이다.

(2)이 제도에서 교회의 정치권은 교회의 회원들에게만 있다.

(3)침례교회와 회중 교회 등이 이 제도를 따르고 있다.

 

 

 

    3, 교회 정치의 권위(權威)의 원천(源泉)

 


1)개혁파(또는 장로회) 교회는 다음과 같은 정치의 근본원리를 가지고 있다.

 


(1)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모든 권위의 원천이시다.

(2)그리스도는 성경 말씀과 그의 영으로 권위를 행사하신다.

(3)왕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에게 권세를 부여하신다.

(4)다스리는 권세는 기본적으로 지(支) 교회에 있다.

 


2)개혁 교회와 장로교회에서만 이와 같은 근본원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1)감독 제도와 회중 제도에서도 이와 같은 근본 원리를 가지고 있다.

 


(2)어느 것 하나라도 교회 정치 제도로서 완전한 것이 없다.

 


(3)오늘날 감독 제도를 따르는 교회의 회의에 평신도 대표들이 참석하고 있으며 회중 제도를 따르는 개 교회 대표자들이 지방 및 전국 협의회를 구성하여 대의 정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4)장로회 제도를 따르는 장로교회도 감독 제도와 회중 제도의 편익들을 취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5)교회의 정치적 성격은 군주주의 성격과 민주주의 성격을 다 가진다. 왕이신 그리스도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뜻에 피차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3)교회 정치는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1)교회 정치의 세부적인 면의 차이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2)다스림의 기술보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그의 몸을 사랑하는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3)자기 교회의 정체가 이상적이며 우수하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공의(公儀)와 자비와 신앙의 문제에 더욱 전념해야만 한다.

 


(4)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령의 지혜와 사랑과 권능으로 충만 되어 있는 한 어떤 정치제도로 좋으나 비 신앙적이 될 때에는 어떤 정체도 미흡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4)너무 많은 정치는 폭군으로 나아가게 되고 반면에 너무 적은 정치는 무정부 상태로 나아가게 한다. 양극단(兩極端)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의 다스림은 사람들의 독립적 권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복종함으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고 하셨다.(엡5:21)

 

 

 

               교회의 교파 (敎派)       

 


    1, 교회의 시작

 


1) 구약의 준비기간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지만 오늘날의 교회의 형태는 없었다.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되시며 주인이신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전의 시대임으로 교회의 모습을 갖춘 모임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사장을 세우고 장로를 세우며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과 여러 곳에서 모임을 가지는 일들은 장차 신약교회를 내다보게 하는 모습이었다.

 


2) 예수님 당시의 준비기간

 


예수님의 하신 일은 많다. 그 하신 일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가르치신 일이며

둘째는 복음을 전파하신 일이며

셋째는 병든 자와 약한 자를 고치신 일이다.

 


제자들은 모여서 구제하는 일을 하기도하며 말씀 배우는 일을 하기도 하며,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였다. 이와 같이 모여서 충성하고 주님의 하신 일을 돕는 일들은 바로 교회를 바라보며 신약시대에 완성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전초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교회를 세우라고 부탁의 말씀을 하시고 승천하셨다.

 

 

 

3)오순절에 시작된 교회

 


처음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사도행전2장)

구약시대의 오순절은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 째가 되는 날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고 기다리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사도행전1장4절)

오순절 날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주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120명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마가의 집에 모여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그 때에 갑자기 바람소리 같은 소리가 나며, 불의 혀 같은 모양이 나타나 모인 사람들 위에 임하게 됨과 동시에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충만하여졌고 배우지 않은 방언으로 말을 하였다. 성령의 힘에 의하여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제자들은 성령에 감동되어 기쁨으로 모이고, 자기의 것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 두려움 없이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증거 했다.

식민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는 안디옥, 마게도냐는 물론 전 로마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세계를 한 손에 쥐고 있던 로마제국은 식민지 유대 땅에서 번져 나오고 있는 기독교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핍박과 함께 옥에 가두고 때리고 죽였다.

노예제도를 철폐하고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를 박해를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죽으면서도 복음을 전하였고 토굴(카타쿰)속에 숨어서 지하교회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핍박 때문에 아시아, 유럽, 에디오피아, 인도 등지로 피난한 신자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파하였다. 복음이 전파됨에 비례하여 로마의 핍박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죽음이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다.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고 십자가에 죽어 갈 때에도 십자가의 광채를 볼 수 있었다. 죽음보다 하늘나라의 소망과 주님의 위로와 기쁨이 컸다.

히11:35-38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다. 음부의 권세가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마태복음16장18) 주후 312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신자의 어머니의 기도와 권유를 받아 들였고 자신도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를 믿고 기독교를 자유 시키고 동시에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언하게 되었다. 로마의 배경을 가진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게 되었다.

 

 

 

    2, 로마카톨릭 교회의 시작

 


1)로마교회의 시작

 


천주교 또는 로마교, 카톨릭교라 부르는 이 교의 본명은 (신성세계 사도적 로마교회)이다.

사도들이 세운 초대교회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초대교회 시대의 이단을 물리치고 굳건한 자리를 잡았다.

 


*1054년에 동방교회(희랍정교회)와 분리됨으로 로마에 있는 정통교회임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카톨릭교회는 속화되고 타락함으로 1517년에 루터가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 등 95개 조항의 종교개혁을 들고 나옴으로서 개신교와 분리되게 되었다.

 


어거스틴의 교리를 토마스 아퀴나스가 발전시켜 로마교의 교리를 만들었고 중세 도덕적 부패와 행위 종교를 강조했던 일, 등의 결과 암흑기를 맞기도 했다.

이 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카톨릭교회라는 말은 세계교회라는 말인데 교회를 다스리는 대권을 교회라는 단체에 주신 것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에게 주셨는데 이 능력이 사도의 후계자인 감독에게 전승되어서 오늘날 교황에게로 내려 왔다는 것이다,

 


2)로마교회의 조직

 


교황은 성경해석과 규례, 조례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과 교회의 집회를 허락해 줄 수 있는 권한, 등 최고 지휘권 자로서 종신직이다. 교황은 추기경회의에서 선출된다. 감독정치로 교황 밑에 추기경, 추기경 밑에 대주교, 대주교 밑에 주교, 주교 밑에 신부로 이어지는 중앙 집권제 조직이다. 개신교가 지교회 주의인데 비하여 카톨릭교는 철저한 명령 집행만을 위한 조직이다.

 


3)카톨릭교의 의식은 미사와 성례가 있다.

 


미사

 


대미사- 주일 정오,

독송미사- 주일 오전5시-10시까지

만도미사- 저녁미사

일상미사- 신부가 밤마다 드림

 

 

 

성례

 


영세- 죄 씻음 받는 표시(세례)로 이것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견신- 영세 받은 아이가 12세가 되면 주를 영접하는 예식(개신교의 입교예식)

 


고해- 영세 후의 지은 죄를 사함 받는 단계로 양심을 살펴서 회개하고 죄를 신부에게 고백하며 신부가 지도하는 대로 속죄한다.

 


종유- 죽기 전의 환자에게 기름을 부어 대죄와 소죄에서 속죄함(이들은 원죄는 말하지 않는다)

 


혼례- 성스럽게 교회법에 의하여 결혼해야만 구원을 받는다. 타 교회 신자는 서약 후에 결혼 할 수 있다.

 


임직- 신품이라고 한다. 임직 때 받는 기름부음이다. 신부는 신품을 받으면 이것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성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상징하는 표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성찬)

 

 

 

4)카톨릭교회의 신조

 


카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조는 사도신경외에 니케아 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 20회의 교리(325-1870회의), 교서(트랜트 신앙 표준과 바티칸 신앙표준)등이 있는데 그 내용 몇 가지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무죄회태설: 유죄되는 인류의 원죄가 있으나 마리아는 특별히 면제되어 예수님을 잉태하는 거룩함을 입었음으로 죄가 없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잉태하셨다. 그러기에 성모 마리아이다.

 


그리스도의 화신(化身):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으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성품을 가지셨다. 즉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신 분이다.

 


교회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같은 신앙을 가진 자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한 교황 밑에 있는 성직자들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이 교회이다.

 


교황무오설: 머리되신 예수님 대신에 하나님은 보이는 머리인 교황을 주셨다, 교황은 오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교황의 선언은 교리와 같다.

 


첫째: 세상에서 인류를 구원 할 수 있는 유일한 교회이다.

둘째: 신성한 교황에게는 최고 최대의 교회 치리권이 있다.

셋째: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데 교황은 또한 베드로의 대리자이다.

넷째: 로마교회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세계 인류 전체의 보편적 교회이다. 이 말이 카톨릭교회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로마교회를 통하여 세계의 모든 신령한 단체는 주관되고 교황을 통하여 세계교회는 움직인다. 이것이 로마교회의 주장이다.

 

 

 

    3, 교회개혁과 루터 및 루터교회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많지 않은 교회이나 독일, 프랑스. 특히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에서는 국교로 정할 만큼 세력이 큰 교회이다.

 


1) 마틴 루터(1483-1546)

 


마틴 루터는 독일의 튀렝겐 작숀지방 아이슬레벤 시에서 한스와 마아가렛 루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0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517년에 비덴베르크 정문에 95개 조항을 써 붙였다. 교황은 그를 파문하였다. 1520년 교황의 교서가 전달되었으나 그는 불태워버렸다.

 


2) 루터의 주장

 


루터의 95개조 항의문

 


제1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셨다. 이 뜻은 신자의 생활 전체가 회개적 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제2조

위의 뜻은 신부가 집행하는 죄 자복과 죄 사면에 관한 사죄성에 의한 뜻과는 전연 다른 것이다.

 


제3조

그러나 회개는 다만 심적 참회에 그치는 것만 아니라 모든 육체를 죽이는 외부적 고행도 있어야 한다.

 


제4조

참된 심적 참회는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제5조

법황은 자기와 교회가 만든 법을 범한 죄 외에는 아무런 죄도 사면 해 줄 의지도 권한도 없다.

 


제6조

법황은 죄를 사면할 권한이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사죄하심을 공포하거나 보증할 뿐이다.

 


제7조

하나님께서 누구의 죄던지 사하여 주시면 사면을 받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대표한 신부의 지도를 받을 것이다.

 


제8조

교회의 면죄법은 생존자에게만 적용하고 죽은 자에게는 적용치 말 것이다.

 


제9조

그러므로 법황은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발령하되 죽은 자에게 관한 조항은 제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10조

신부가 죽은 자의 연옥고를 교회의 사죄로 면케 한다는 것은 그릇된 것이요. 교양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제11조

교회벌을 연옥벌로 변경한다는 말은 감독들이 잘 때 가라지를 뿌림과 같은 것이다.

 


제12조

전에는 교회 벌칙 선고를 사죄 후에 하지 않고 전에 해서 참된 통회를 하게 할 것이다.

 


제13조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모든 받을 벌을 세상에서 다 받았으며 교회 벌칙에서 완전히 면죄된다.

 


제14조

죽는 사람이 신앙과 자신에 부족이 있으면 큰 공포를 느끼게 되고 그 부족이 심하면 그 공포도 더욱 심해진다.

 


제15조

다른 것은 말고 이 공포만으로도 연옥의 고통에 해당한 것이다. 이 공포는 절망적이다.

 


제16조

지옥, 연옥, 음부, 천당이 각각 다른 것과 같이 마음의 절망과 평안도 또한 다르다.

 


제17조

연옥에 있는 영들에게 있어서는 자선이 증가되어야 공포가 감소될 것은 물론이다.

 


제18조

 


연옥에 있는 영들이 적선 범위나 자선증가권 외에 있다는 것은 의지나 성서로 증명할 수 없다.

 


제19조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자기네들이 누릴 복락을 확신하는지 증명할 수 없다.

 


제20조

그러므로 법황이 사람이 지은 모든 죄를 사유한다는 것은 자기가 정한 죄에만 국한된 것이다.

 


제21조

그러므로 누구든지 전도하기를 법황의 사죄부가 사람이 받을 모든 형벌에서 석방 구원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제22조

법황이 연옥에 간 영들의 죄를 사면할 수 없다. 이는 그 영들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법대로 속죄행위를 했어야 할 것이다.

 


제23조

만일 어떤 사람의 죄악을 사유할 수 있다면 속죄함을 받을 사람은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야 할 것이요, 또 그런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제24조

그런 관계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확신이 없는 약속으로 기만적 사죄를 받을 것이다.

 


제25조

연옥에 대한 법황의 권세는 저의 교구 내 모든 감독들도 가질 수 있고 자기 직관구 내 모든 목사들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제26조

법황이 모든 영들의 죄를 사유함에 있어서 자기 직권으로 하지 않고 회중의 기도에 의하여 하는 것은 바로 하는 것이다. (연옥에서는 법황 직권도 소용없다)

 


제27조

저희들(사죄부라는 자들)은 전도 방법을 돈이 헌금궤에 쩔렁하고 떨어질 때마다 영혼이 연옥에서 날라서 나온다고 한다.

 


제28조

돈이 그렇게 쩔렁하고 떨어질 때 탐욕과 모리가 늘어만 갈 것이다. 그러나 회중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있다.

 


제29조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구속받기를 원하는지 않는지 누가 알 것이냐, 성 셀비니스와 파셀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럴 것이다.

 


제30조

각자가 자기 자신의 회개에 대한 진실성을 알 수 없거든 어찌 자기가 완전히 사죄함을 받았는지 알 수 있으랴.

 


제31조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드물다. 또 참으로 회개하고 사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제32조

누구든지 면죄장을 받고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하면 저와 저의 스승은 다같이 영원히 멸망될 것이다.

 


제33조

법황의 사죄가 곧 하나님의 지극히 귀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는 삼가 할 것이다.

 


제34조

이러한 사죄의 은사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의한 속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제35조

사람이 만일 사죄부를 사가지고 영을 연옥에서 구출하는지 혹은 면죄장을 사면 저에게는 회개가 필요 없다고 하는 전도는 기독교 교리가 아니다.

 


제36조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참 회개하면 저는 면죄장이 없어도 전체 구원의 특권을 얻어서 고통과 정죄함을 면할 수 있다.

 


제37조

참된 그리스도인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면죄장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사를 다 받을 수 있다.

 


제38조

법황의 사죄도 결코 멸시할 것은 아니다. 이는 내가 이미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죄하심을 공포하심이 되는 까닭이다.

 


제39조

사죄의 효력과 진정한 회개의 필요를 여러 사람들 앞에 강조하는 것은 박학한 신학자라도 하기 어려운 것이다.

 


제40조

진정한 회개는 형벌 받을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사죄를 함부로 하면 형벌감을 원활케 하고 수형법을 폐하게 한다.

 


제41조

사도적 사죄는 이것을 선포하는데 조심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이것을 자선사업보다 더 중요시할까 함이다.

 


제42조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알 것은 사죄부를 사는 것이 자선사업에 비할 수 없다고 법황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제43조

그리스도인들이 또한 알 것은 죄를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이 사죄부를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제44조

자선사업을 하면 할수록 사랑이 넓어지고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 간다. 그러나 사죄부를 사면 저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형벌만 면하게 되는 것이다.

 


제45조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알 것은 누구든지 어려운 사람을 보고 돕지 않고 거저 지나가면서 사죄부를 산다면 저는 법황의 사죄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사는 것이 된다.

 


제46조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누구든지 큰 부자가 아닌 이상 그 있는 돈을 가지고 자기 집 살림에 사용할 것이지 사죄부 사는데 쓸 것이 아니다.

 


제47조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사죄부 사는 것은 자유로 할 것이요. 의무적으로 할 것은 아니다.

 


제48조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법황이 죄를 사유할 때에 기도를 요구하지 않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49조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법황의 사죄는 사람이 그것만을 의지하지 않아야 유익한 것이요. 그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으면 이는 극히 해로운 것이다.

 


제50조

그리스도인들이 알 것은 만일 법황이 목사들이 사죄부에 대한 행동을 안다면 성 베드로 성당을 불에 타버릴지언정 저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서 그 성당을 짓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제51조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만일 법황이 그 목사들이 사죄부를 가지고 모리 하는 줄 알면 성 베드로 성당을 팔든지 혹은 자기의 사재로 사죄부를 산 사람들의 낸 돈을 반환할 것이다.

 


제52조

사죄장에 법황이나 혹은 어떤 감독이 보증을 선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서 구원 얻을 가망은 없다.

 


제53조

사죄부를 선전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면 이는 그리스도께서 법황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제54조

교회 설교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사죄부에 관한 말을 더 많이 하면 이는 잘못하는 것이다.

 


제55조

법황의 생각에 사죄가 그다지 중하지 않으면 사죄 축가에는 종 하나만을 울리고 행렬도 한번만 할 것이다. 그 반면에 복음이 매우 중요하다면 복음은 종 백 개로 울려 전하고 행렬을 백 번하고 성례를 백 번해서 전할 것이다.

 


제56조

법황이 사죄부를 발행하는 교회의 금고는 교인들에게 전혀 알리지 아니했다.

 


제57조

그 금고에 세상 재물이 있을 수 없다. 만일 있다면 언제든지 써 버릴 것이다. 많은 목사들은 보물을 거기에 쌓아 놓기만 하고 있다.

 


제58조

사죄부 금고에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공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법황도 모르게 사죄부가 사람의 마음속에 은혜를 베풀고 십자가의 효력을 나타내고 죽음과 지옥을 면케 한다고 말한다.

 


제59조

성 로렌스는 말하기를 교회의 보배는 빈궁한 교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에 쓰는 말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제60조

그리스도의 공로로 교회가 맡은 직권이 곧 교회의 보화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61조

지금 형편으로는 법황의 권세만이 기결죄와 미결죄를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제62조

교회의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은혜의 복음이다.

 


제63조

그러나 이 보화가 천대를 받게 됨은 첫째로 있을 것이 끝에 가서 있기 때문이다.

 


제64조

사죄부 보화는 맨 끝에 있을 것인데 맨 처음에 있어 환영을 받고 있다.

 


제65조

복음의 보화는 예로부터 사람을 많이 낚는 그물이었다.

 


제66조

사죄부의 보화는 사람의 재산을 따먹는 것이 되었다.

 


제67조

목사들이 사죄부가 가장 큰 은혜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순전한 모리 행위다.

 


제68조

그러나 사죄부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공로에 비할 수 없다.

 


제69조

감독들과 목사들은 사도의 사죄 특사를 경건되게 영접할 것이다.

 


제70조

그러나 저희가 주의 할 것은 이 특사들이 법황의 말을 전하는 대신 자기들의 욕망을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제71조

누구든지 사도의 사죄에 대한 진리를 반대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제72조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죄부를 선전하는 자의 방종을 반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지니라.

 


제73조

사죄부 매매에 기만적 수단으로 그 사죄를 방해하는 것을 법황이 엄금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제74조

누구든지 사죄의 미명하에 거룩한 자선의 진리를 기만적 수단으로 중상하는 일은 법황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제75조

법황이 사죄권으로, 성모에게 범죄하는 일 같은 용납 못할 죄 까지 사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제76조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법황의 사죄는 죄 중에 지극히 적은 죄도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77조

성 베드로 자신도 법황 이상의 은전을 베풀 수 없다는 것은 성 베드로에게 대한 큰 모독이다.

 


제78조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현 법황이나 혹은 어느 다른 법황 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 수 있으니 곧 복음의 능력이요. 병 고치는 은사이다.

 


제79조

법황의 팔에 다른 휘장의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제80조

이러한 언론의 신도들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감독, 목사, 신학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제81조

사죄에 대한 방종적 설교에 평신도로부터 예민한 질문에 아무리 박학자라도 법황의 위신이 꺾이지 않도록 답변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제82조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질문을 말한다면 어떻게 답 할 것인가,

만일 법황이 지극히 거룩한 자선주의를 가지고 영들의 큰 요구를 들어준다면 왜 연옥 전체를 공허케 못하나 또는 성전 건축에 절대로 필요한 돈으로 법황이 무수한 영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하면 위에 말한 대의 명분을 넉넉히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제83조

영들이 연옥에서 구출되어 진다면 그런 영들을 위하여 장례미사, 추도미사를 왜 드릴 것인가.

그런 미사를 위하여 기부한 돈은 그런 미사가 소용이 없으니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제84조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이라도 돈만 내면 연옥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영을 구원하는 은혜를 베풀진대 왜 돈을 받지 않고 순전한 은혜로 그런 영을 구출하지 않을까, 이것이 하나님과 법황의 무슨 신의 은전일까.

 


제85조

죄과를 회개한 교역자중 이미 별세한지 오래고 또 그들의 죄가 다 사유된 줄 아는데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들을 위하여 사죄부를 돈주고 사서 그들을 구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제86조

오늘의 법황은 부자 중 거부(巨富)인데 왜 자기의 돈을 드려서 성당을 짓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을 거두어서 지으려 하나.

 


제87조

참으로 완전히 회개하고 사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어째 법황이 또 사죄를 한다는가.

 


제88조

만일 법황이 하루에 한번뿐 아니라 몇 백 번씩이라도 진실한 신자들에게 사죄의 은전을 베풀진대 교회에 얼마나 큰 유익이 될까.

 


제89조

법황의 목적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요. 돈을 받는 것이 아닐진대 전일에 내린 사죄장이 왜 무효가 되나. 그것이 사죄부와 같이 동일하게 죄를 사할 수 있을 것인데.

 


제90조

평교인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행한다면 교회는 원수의 비방거리가 되어 그리스도인들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제91조

만일 사죄에 대하여 법황이 본 정신을 가지고 설교한다면 이런 모든 왕제는 자연 해결될 것이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제92조

그리스도인들에게 "평안할지어다" "평안할지어다" 하여도 평안이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들을 다 물리칠 것이다.

 


제93조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라" "십자가라" 하고 십자가가 없는 것을 지적하는 선지자는 복을 받을 지어다.

 


제94조

그리스도인들은 저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만을 고통과 죽음과 지옥을 통과해서라도 따를 것이다.

 


제95조

그러므로 많은 고난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 갈 것이지 안일하게 들어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끝.

 


보통 교역자로서 세상 제왕까지도 복종하는 로마 법황을 상대하여 주후 1517년 10월 31일에 95개조의 항의문을 자기가 시무하는 독일 월템뻬륵 교회 정문 앞에 붙였다.

 

 

 

3) 95개 조항 중에 몇 가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

만민은 누구나 제사장이다.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성찬 떡의 공재설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

성물 숭배 사상배제

수도원의 비행을 시정 할 것

 

 

 

4) 교단 형성과정

1520년에 교황은 칙서를 내려 루터를 이단으로 낙인을 찍고 위협을 하였다.

루터는 교황 칙서를 공개적으로 불에 태워 버렸고 교황은 파문을 선언하였다.

1531년에는 개혁자들은 슈말칸트 동맹을 맺어 황제의 칙령을 군사적으로 방어하였다.

이 운동은 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 전역(1527년스웨덴, 1536년 덴마크와 노르웨이 1539년 아이슬란드, 등)과 프로이센1525년 및 발티의 여러 지방(1523-1539)등으로 번져 나갔다.

1529년 교리문답, 등의 저서를 통하여 신학을 정립하여 나갔다.

1580년-1700년까지는 정통파의 세력이 우수하다가

1670-1760년에는 경건주의 세력이 확장되었다.

1750-1790년에는 계몽주의가 생겨서 주지주의와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여 권위를 배격하는 추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1750-1835년까지는 관념론에 젖어들었다.

1817년에는 프로이센 연맹을 맺어 개혁주의와 통합을 시도하였다.

 


루터교는 독일을 기점으로 시작하여 폴란드, 러시아,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지로 퍼져 나갔고 얼마 후에는 화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필란드, 아이슬란드,의 국교가 되었다.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대부분이 루터교를 믿고 있다.

미국은 30년 전쟁 후인 1623년에 건너갔다.

가장 큰 위기는 1934년 히틀러가 시도한 민족교회와 고백교회의 충돌이었다.

1939년까지 7,000명의 목사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1945년 승리로 끝났다.

1918년 미국에서는 연합 루터가 결성되었고,

1966년에는 미국 루터교 협의회가 결성되었다.

 

 

 

5) 교리

루터교의 신앙고백은 1580년에 나온 협화서 교리인데 이는 지금 까지 내려온 모든 신조의 집결이다.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 아우구스벅 신앙고백, 루터의 슈말칸트 신조, 대, 소요리문답. 멜라톤 신조, 등이다.

 


의인-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무 대가 없이 의롭게 되었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 사상을 강조한다. 구원관은 누구나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교회- 교회는 순수하게 가르치고 성례전이 올바로 집행되어지는 성도들의 회중이라고 정의하였다. 목회자는 성례전 시행을 위한 봉사자라고 하였다.

성경관- 협화신조에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규율이라고 말한 것 외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성경 해석을 위해서 교부들의 문헌이나 전승을 참고할 수 있다고 하였다.

 

 

 

6) 예배와 조직

음악과 설교로 예배는 진행되고 성례(세례와 성찬)를 집행한다.

예배의식에는 견신례, 성직서임식, 혼례식, 장례식, 등이 있다.

스웨덴 교회는 주교 계승제를 존속시켜 왔으며,

회중교회는 자기들의 목사를 임명할 수 있다.

미국교회는 회중교회제이다.

목사는 평의원 회의를 구성하여 교회 일을 살펴 나가며 교회적으로는 대의정치제를 쓰고 있다.

 

 

 

    4, 전통과 체계의 장로교회

 


개혁교회의 모체교회로서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교리를 가지고 있고 조직과 정치에서 민주주주의 원리를 낳게 한 교회, 그러면서도 가장 많은 분열과 진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는 교회, 장로교회의 발생과 조직 및 교리를 살펴본다.

 

 

 

1) 개혁자 칼빈 (1599-1564)

 


칼빈 선생은 1509년에 제랄 칼빈과 잔 누르후랑의 차남으로 프랑스 나욘에서 태어났다.

1533년에 니콜라스 코프가 프랑스 대학의 학장으로 취임 할 때 복음주의 강연을 하였는데 로마교회를 비판하는 내용이라 하여 연설문 초안자인 그는 코프와 함께 피신하게 되었다.

이 때 친구 듀틸레의 집에 있었는데 그의 서재에서 기독교 강요와 영혼의 잠, 원고를 썼다.

1536년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였고 화렐의 설득을 받아 제네바시의 종교개혁에 가담하게 되었다.1564년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갔다.

 

 

 

2) 교단형성과 신조

 


칼빈의 체계있고 조직적인 신학은 전 유럽에 퍼지기 시작하여 프랑스에서는 휴그노파가 생기어 1560년에 약 2,000개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화란에서는 개혁교회가 생기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카톨릭에 반대하는 개혁파 교인을 너무나 많이 죽여서 피의 여왕이라고 하는 별명이 붙여지기도한 메리여왕(1542-1587)과 박해를 당하면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를 기도로 움직였던 존 낙스의 투쟁에 의하여 점차 장로교는 뿌리를 내려갔다.

 


1643년 마침내 엥글리칸 공동 기도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된다는 이론에 대한 찬반 여론 때문에 웨스터민스터 대사원에서 역사적인 큰 회의가 열렸는데 이것이 유명한 웨스터민스터 대회이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신조를 통일하기 위하여 목사121명, 귀족10명, 하원20명, 스코틀랜드 대표6명, 등 총 151명이 모여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2시까지 4년에 걸쳐 총 1,064회의 긴 회의 끝에 1만4천 단어 33장의 문서를 제정하여 1947년 성경의 증거를 첨부하여 국회를 통과 시켰다. 이것은 칼빈 주의자들이 작성한 칼빈주의의 특색을 지닌 것으로 이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이다.

 


대요리문답- 교역자의 신앙지침서로 총196문답

소요리문답- 평신도의 지침서로 총107문답

신앙고백서- 42문으로 신앙생활의 기준

 


웨스터민스터 회의 후에 영국은 개신교 신자들에 의하여 지배되었는데 크롬웰은 군주정치를 몰아내고 공화정치를 하였다. 그러나 얼마 있지 못하여 정세는 다시 바뀌어 군주정치가 복귀되었다. 이때의 핍박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1602년에 영국 장로교 교인 중 청교도들 105명이 메리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 대륙으로 건너가서 신앙을 시작하였다. 미국에 처음에 설립된 교회는 1611년 버지니사주에 알렉산드 휘테이커 목사가 세운 교회이다.

 

 

 

3) 조직과 정치

 


장로교의 조직은 대표에 의하여 조직된 자치 조직이며 의회 민주정치이다. 교회의 기본 직책은 장로와 집사인데 장로는 말씀강도와 치리를 겸하여 하는 목사 장로와 치리만 하는 치리 장로로 구분된다. 집사는 교회의 재정과 사무 및 구제와 전도, 등을 한다. 당회, 노회, 총회의 삼심 제도를 두어 재판이나 제반 결정을 원활하게 한다. 그러나 기본 운영기관은 당회이다.

 

 

 

4) 교리

 


사도신경을 채택하여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기준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의 고난과 영육 간의 부활과 삼위 일체를 믿는다. 성경 66권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지상교회는 주님의 피로 세우신 진리의 기둥과 터로 믿고 받든다.

 


칼빈 교리의 5대 교리를 약술하면 칼빈은 모든 교리를 하나님의 주권사상에 두었다.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과 구속주권아래

 


(1)인간은 죄로 인하여 전적으로 무능하며(전적 부패)

 


(2)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에 의하여 인간을 무조건 선택하였고(무조건적 선택)

 


(3)누구든지 부르신 것이 아니라 예정된 사람을 불러서 죄를 용서해 주셨고(제한 속죄)

 


(4)하나님이 부르신 은혜는 인간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축복된 것이며 (불가항력적 은혜)

 


(5)부름 받은 이후에도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고 낙심하기도 하나 결국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녀답게 구원받게 된다.(궁극적 구원) 

 


칼빈의 사상을 대개는 예정이라고 한마디로 말하나 사실은 예정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을 크게 여긴다. 그리고 인간을 먼저 불러서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시켜 주심에 대한 감사하는 자세의 믿음을 가지고 의롭다는 선언을 감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날마다 거룩하여지는 생활을 하고 참고, 견디며, 지상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이르면 영혼과 육체가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삶이 전개되는 것을 믿는다,

 

 

 

 


    5, 기도운동으로 시작된 감리교회

 

 

 

(1) 요한 웨슬레(1703-1791)

 


1703년 웨슬레는 영국의 에보스에서 영국교회의 목사인 사무엘과 어머니 수산나의 열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735년 부친이 별세한 후 오클레소프 장군의 초대를 받아 식민지 죠오지아주의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어느 날 풍랑을 만나 공포에 사로 잡혀 있을 때에 모리비안파들의 담대한 태도를 보고 모라비안파 목사를 찾아가 배우기를 청했다. 첫 번째 전도는 실패를 했다. 그래서 1737년 귀국하였다. 1738년 런던에 가서 작은 집회에 참석하여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듣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1739년 야외 설교를 하며 메조디스토 집회를 개설하였다. 1742년에 연합회 규정을 발표하고 2년 후 런던 연회를 개최하였다. 1768년 뉴욕에 설교소를 개설하고 다음 연회 때에는 2명의 설교자를 파송하였다. 그는 매 주일 15회 설교를 위해 8,000Km를 여행하여 전세계는 나의 교구다, 라고 외쳤다. 1791년 ‘나는 찬미하렵니다. 나는 찬미하렵니다’하고 88세의 노 순례자는 생애를 마쳤다.

 

 

 

2) 웨슬레의 활동과 교단 창설

 


18 세기 초 영국교회는 자연신론자들과 세속주의 때문에 위기를 넘긴 일이 있다. 이때에 미국에 건너가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던 요한 웨슬레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신성 그룹을 조직하여 기도와 성경공부에 열정을 쏟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본국에 돌아와 전도하려 했지만 힘을 잃은 교회의 분쟁 상태를 보고 다시 건너가 동생 찰스 웨슬레와 함께 다른 동료들과 합하여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는 한편 빈민전도, 병자방문, 교도소전도, 등을 하였다. 1738년 영국으로 돌아온 형제는 런던을 중심한 도시 전도에 주력하여 큰 감화를 주었고 동지도 많이 생겼다. 요한 웨슬레도 다른 지도자와 같이 하나의 교파를 형성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그가 속한 고교회파는 그에게 설교권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집회 장소가 없어 신자들의 가정과 야외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다.

 


감리교 창설일은 그 운동은

1729년 옥스퍼드에서 일어났고

1736년 조지아주 사반나에서 신도회로 형성하였으며

1938년 5월1일이 완전 조직일이라고 볼 수 있다.

1744년 복음전도의 효과적인 계획을 위하여 런던에서 메조디스터 총회가 모이게 되었는데 이것을 감리교 최초의 연회가 된 셈이다. 감리교회가 공식적으로 미국에 전도된 것은 1766년이며 한국에 전도된 것은 1885년이다.

 

 

 

3) 교리와 신조

 


감리교회는 메조디스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말의 뜻은 방법론자라는 말이다. 이 말은 자체에서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자신들의 비하여 정한 시간의 기도와 성경공부와 조직이며 철저한 시간 관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보고 영국교회가 붙여준 이름이다.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며 의지하고 기다리는 비활동적인 교회에 대해서는 확실히 충격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주적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시키지 않고 누구나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누구나 구속하신다- 하나님은 값없이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

 


*믿음은 은혜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누구에나 믿음을 주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안전을 위하여 도덕적인 생활을 하기 원하신다.

 


*원죄는 확실히 있는 것이다.

 


*구원에 대하여 성령의 확증을 요구할 수 있고 또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도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며 이 세상과 저 세상에 까지 거룩하게 된다.

 


(루터교회는 의로움과 거룩함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음, 그러나 의롭다함을 받은 자도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힘써야 한다)

 

 

 

4) 조직과 정치

 


감독을 중심 한 중앙집권적 조직체이다. 감독은 1년에 한번씩 총회를 모여 여기에서 선출하며 감독은 총회와 연회를 사회하고 각종교회의 사업을 관장하며 감리사, 목사, 전도사, 등을 임명, 발령한다. 지방교회는 목사가 있고 의회가 구성되는데 의회에서는 당회, 속회, 지방회가 있고 행정 기본회인 연회가 있다. 교회의 직원은 목사 외에 소장, 유사, 탁사, 등이 있다.

 


속장(구역장)- 속회(구역회) 책임자로 교인의 가정을 살펴 신자를 육성하고 목사에게 보고한다.

 


유사(집사)- 교회의 재정을 맡아 다스린다.

 


탁사- 교회의 건물 부동산을 관리한다.

 


현재에는 체제를 약간 개편하여 장로와 권사를 두고 있어 타 교파와의 이질감을 없애려고 노력하며 목사의 임직(任職)도 중앙 임명에서 점차 교회 청빙으로 바뀌고 있다.

 

 

 

    6, 자연운동으로 시작된 성결교회

 


1) 성결파 운동의 시작

 


성결파 운동은 웨슬레 감리교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843년 목사20명과 6,000여 회원이 감리교 감독교회를 떠나 웨슬레 감리교회를 창설하였다. 1880년에는 수많은 새로운 성결파 단체들이 등장하였다. 1901년에는 미국에 불기둥이라는 성결교회가 탄생하였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운동이 1968년에는 무려 242개의 교회와 7,930명의 회원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교회는 부루스 목사가 애틀란타에서 8명의 회중에게 완전한 성화의 복음을 설교함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교회, 구세군, 나사렛 교회, 등의 교회에서도 성결 운동을 부르짖고 이 운동에 가담하였다. 1907년 브레시 목사는 오순절 연합교회를 흡수하였다. 이렇게 각 교파에서 성결 운동을 부르짖고 나온 교회들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모여서 된 교단이 성결 교단이다.

 

 

 

2) 교리와 생활 신념

 


성결교회는 중생과 회심 후에 일어나는 마음으로부터의 행동을 매우 중요시하며 다른 것은 타 교파와 다를 바 없다. 7대 강령을 소개하면

 


(1) 신, 구약 성경을 믿으며 중생, 성결, 재림, 신유를 성경 해석의 주제로 한다.

(2) 교파에 치중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하는 교회이다.

(3) 사도신경을 채택한다

(4) 교회의 정책은 신자의 양심을 기초로 한 회의 제도를 두어 행한다

(5)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최고의 행위임으로 엄숙 단정하게 시행한다.

(6) 지, 정, 의를 기초로 신앙을 지도 육성한다.

(7) 문서와 설교를 주력하되 생활의 시범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세속 생활, 춤, 극장, 카드놀이, 제비뽑기, 비밀결사. 장식, 등은 엄격히 금하고 있다. 성령의 뜨거운 체험과 생활의 순결을 크게 부르짖는다)

 

 

 

3) 조직과 정치

 


목사, 장로, 전도사. 전도인, 집사, 등의 직원이 있어 직원회를 하며 예산 결산과 직원(목사, 장로) 선출은 사무 총회에서 한다, 이 사무총회는 정회원인 온 교인의 가장 큰 회의이다. 일정한 구역 안에 지방회가 있어 교회들의 문제와 행정을 보살피며 매년 총회를 하여 교단의 방향을 설정하고 타교단과의 유대관계, 헌법 수정, 등을 한다.

 

 

 

 


    7, 침례교회

 


1)발단과 조직

 


침례교회 자신들은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을 때부터 시작되었음으로 창설자는 예수님이며 시작은 신약시대와 같다고 하나 침례교도 다른 교파와 같이 한 개의 교파로 시작되었다. 1608년 요한 스미스 목사는 영국에서 핍박 때문에 암스텔담에 망명해 있는 분립교도(비영국교도) 들을 규합하여 침례교회를 설립하였다. 침례교인 중에 메도나잇파의 합동을 거부한 몇몇 교인들은 웰웨스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영국으로 건너가 1612년에 런던 침례교회를 세웠다. 미국에는 1639년 월리암스와 클라크 목사에 의하여 개척되었고 여러 번의 합동과 분열을 계속하여 성장해 왔다.

 

 

 

2) 조직과 정치

 


다른 교회와 크게 다른 점이 하나있는데 침례교회는 개교회의 독자적인 조직과 체제를 가진다는 점이다. 예배, 의식, 교육, 교역자 청빙, 등 모든 행사를 교회 독자적으로 한다.

 

 

 

3) 교리와 신조

 


침례교는 침례만을 크게 주장 할 뿐 특별한 신조나 서약이 없다.

침례교회의 주장을 몇 가지 요약하면

 


*세례의 정당한 방법은 오직 전신 침례이다.

*유아세례는 실시하지 않는다.

*성경은 신자의 유일한 신앙원리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중생한 신자들로서 구성된다.

*교회는 개교회 별로 독립됨을 원칙으로 한다.

*교회와 국가는 완전히 분리된다.

*성찬은 반드시 실시한다

*교인은 교육을 통하여 보호 육성되어야 하며 사회적인 책임을 다 하여야 한다.

 


침례교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세계적인 교회이며 미국에서는 가장 큰 교파를 형성하고 있다.

 


                              

    8, 선행의 교단 구세군

 


1)월리암 부드와 구세군 창설

 


창설자 월리암 부드는 1829년 노팅검에서 영국교회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5세에 교회를 바꾸어 웨슬레 감리교회 신자가 되었다. 1851년 감리교회 분파인 개혁자 편에 가담하여 목사가 되었다. 1861년 피니 목사와 부인 캐더린의 영향을 받아 개혁 감리교를 떠나 천막교회를 세웠다. 1878년 조직은 완전히 군대 조직화 되었다. 처음에는 그를 총재로 불렀으나 나중에는 대장이라고 했다.

 


2)구조와 편재

 


3)구세군의 사업들

 

 

 

 


               교회의 직분 (職分)

 


    1, 직분의 종류

 


1)교회는 구속 은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敬拜)하며 ,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 사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교회는 조직과 여러 종류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

 


(1)가르치며 다스리는 사역을 위해 목사와 장로가 있다.(딤4:14, 딤5:17, 벧전5:1, 엡4:11,) 디모데전서3:1-7에는 그 자격을 말하고 있다.

 


(2)섬기는 사역을 위해 집사가 있으며(행6:1-4) 디모데전서3:8-13에는 집사의 자격을 말하고 있다.

 


(3)교회의 다양한 사역을 위해 성경에 없는 여러 가지 직분이 있게 되었다.

 


(4)신약 교회는 단순한 직분으로도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다.

 


(5)그 비결은 복잡한 조직이나 각종 직분에 의지하지 않고 믿음과 은혜의 생활에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2, 직분자(者職分)의 바른 자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이나 새로운 직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움을 받은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1)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각자에게 분담된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 헌신 봉사하는 정신과 실천이 요청되고 있다.

 


2)오늘날 세계적으로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공산주의나 자유주의 신학사상이나 여러 가지 이단 사상들의  침투가 아니라 교회 내부의 인본주의와 권위주의이다. 교회 안에서 자기의 공로를 주장하고 자기를 통해서 모든 일을 해야 될 줄 아는 자기 중심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되어 있다.

 


3)자기보다 더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자에게 그 일을 맡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신 그분의 종들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중심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셨다.(빌2:5이하)

 


4)자기 생각과 욕심과 감정대로 날뛰는 자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 모든 움직임을 하셨고 십자가에서 성령을 힘입어 대속의 공로를 완성하셨다.(히9:14) 그러므로 교회의 일꾼들은 성령과 지혜로 충만 되어 있어야 한다.

 


5)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선생"이나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하셨고 (마23:8) 모든 사람의 "종"이 되고 (막10:44)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를 취하라고 하셨다.(눅14:10)

 


6)마치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간에 위치의 구별은 있을지라도 부모가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직분적 구별은 있을지라도 사랑으로 봉사하여 하나님의 뜻만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요13:4-14 벧전5:1-4)

 


7)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 세움을 받은 각종 직분자들은 으뜸이 되려는 세상적 정신을 버리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의 피에 팔린 그의 종으로  그의 뜻을 따라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8)주님 앞에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 하실 그 분의 인정과 칭찬만을 바라고 어떤 희생과 고난이 따를지라도 죽기까지 주님께 복종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3.직분자들의 유의 사항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1)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과 주께서 친히 세우셨고 그가 친히 다스리고 계심을 인식할 것,

 


2)교회 안에서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그리스도와 그의 뜻만 중심하며 그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것,

 


3)성결을 파수할 것.

 


4)화평을 도모할 것.

 


5)성령의 충만과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기다리며 과감히 따를 것

 


6)낮은 자리를 취하여 주와 이웃을 사랑함으로 종노릇할 것.

 


7)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이나 세상적인 이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과 하늘나라의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모든 일을 옳고 바르게 처리해 나갈 것, 등이다.

 

 

 

 


            교회의 사명 (使命)

 


    1, 교회의 세 가지 의무(義務)

 


1)오늘날 교회의 임무 곧 사명에 대해 많이 논의되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온 교회의 맡은 일이 재정의, 재정립되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흔히 듣게 된다.

 


2)종전에 교회가 해 오던 일들이 오늘의 세계에는 전적으로 적응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처한 시대적 상황이 교회의 사명을 결정해야 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3)그러나 교회의 사명을 결정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뿐이다. 성경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위임하신 바가 무엇임을 밝히 증거하고 있다. 십자가의 복음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리석게 보여지는 것은 사도 시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전1:18) 성경은 교회의 삼중 의무를 지시하고 있다.

 

 

 

    2,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1)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교회의 근본적 의무이다. 교회 예배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있다.

 


2)이종교들 처럼 우상들에게 무엇을 바치는 식의 예배는 기독교의 예배가 아니다

 


3)참된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구속 은총에 대한 사람의 응답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과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보존의 섭리와 구속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것과 하나님만이 나를 살리기도 하시고 복되게도 해 주실 수 있는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그만 소망하고 의지하며 경외함으로 순종하는 것이 예배이다.

 


4)그리스도인의 전 생활이 마땅히 예배적 이어야 하나 모여서 단체로 드리는 예배가 바로 되어야 개인의 생활이 바로 되어 질 수 있다.

 


(1)단체 예배의 요소로는 찬송, 기도, 성경 봉독, 설교, 연보, 등이 있다.

 


(2)개혁 교회의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3)예배의 질서를 위해 의식이 필요하나 의식이 신령과 진정의 대용(代用)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4)중심이 없는 의식, 의식이 없는 무질서는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5)외식에 대한 경고는 옛날 바리새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사1:11 사29:13 마21:31 마23:23 마6:6-8)

 


(6)구속받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단체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단체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새 은혜를 입게 될 때에 자기의 인격과 삶이 성화 되어 질 수 있게 된다. 성도들이 함께 모인 곳에 성령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7)개인 기도와 가정 예배를 계속해야 한다. 가정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며 가족들의 성화와 화평을 도모하게 되고 이웃에게 복음 전하게 된다.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

 


1)그리스도께서 그의 몸 된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셨다.(엡4:11- 13)

 


2)예배와, 성경공부, 기도회 등 교회의 각종 행사는 모든 성도들이 받은 바, 신령한 은사를 서로 나눔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 인격과 행위의 온전을 이루어 가는 일에 서로 협력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3)교회는 성도들을 하나님과 가깝게 하며, 진리를 알게 하고, 깨끗하게 하며, 화평을 도모하는 일을 힘써야 한다.

 


4)무엇보다도 교인들 각자가 신앙의 모범을 보임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5)형제를 실족시킨 자의 받게 될 화가 심히 클 것과(마18:6-10). 형제의 구원을 위한 자의 칭찬과 영광이 심히 클 것을 말씀하셨다.(마25:31-46)

 


6)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덕을 세우는 것이다.(요일5:1-3)

 

 

 

    4,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

 


1)교회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한다(마28:19)

 


(1) 복음 전도는 교회의 본질적 임무이다.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이 이것을 말해 주고 있다.(행1:8)

 


(2) 교회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장 우선해야 할 중대하고 긴급한 의무이다.

 


(3) 국내 전도와 하도 함께 해외 선교(宣敎)도 힘써야 한다.

 


(4) 전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교인들의 개인전도에 의한 개교회의 성장이다.

 


2)교회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성경)에 의해 새롭게 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은 교회의 세상에 대한 맡은 일 중에 중요한 일이다.

 


(1)교회의 제일 중요한 본분은 일반 은총의 영역에 속한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사명 수행에 있지 않고 특수은총(구속은총)의 전달, 곧 전도적 사명에 있다.

 


(2)교회가 일을 하다 보면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봉사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문화주의, 기독교 세상주의로 변질되기 쉽다. 교회는 하나님 중심주의, 천국 중심주의라야 한다. 

 


3)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전도적 사명은 교회에게만 위임된 일이요, 또 사람의 영생과 영멸에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삼중 의무의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

 

 

 

 


            은혜의 방편 (方便) (1) 말씀과 기도

 


                             

    1, 은혜의 방편의 개념

 


은혜의 방편이란, 성령께서 택자들을 중생, 성화 시켜 하나님의 목적하신 뜻을 이루시게 하시는 방편들이다. 동일한 목적을 위해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방편들을 교회와 신자들도 사용한다. 넓은 의미로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모든 역사를 가리켜서 은혜의 방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은혜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 성례, 기도, 등 성령이 통상으로 사용하시는 방편들을 의미한다.

 


1)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자를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거듭나게 하시며 (약1:18) 동일한 말씀으로 자라나게 하신다.(벧전1:23)

 


2)세례와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우리를 연합시켜 날마다 죄를 벗어버리며 하나님을 향해 새 생명으로 살도록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시는 은혜의 방편이다.

 


3)기도는 받은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와 축복에 대해 감사하며 멸망의 원인이 되는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새 은혜를 입음으로 신자의 영적 생활의 평안과 충만을 가져오는 은혜의 방편이다.

 


4)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례(세례와 성찬)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혜의 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 주는 일을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해야하고 (마28:19-20), 성찬의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시는 일을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함으로 주의 죽으심을 전해야 한다.(고전11:26) 육의 생명을 위해 끊임없이 호흡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

 


은혜의 방편들은 성령의 시은역사(施恩役事)에 관련된 방편들이다.

 


1)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다양한 방편들 가운데 가장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1)은혜의 기관 된 사도들도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에 전적으로 힘쓴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첫째가는 은혜의 방편임을 인식하였음 분명하다.(행6:4 딤전4:5)

 


(2)교회의 역사와 우리 자신들의 경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은 은혜가 제일 크고 많았음을 알려준다.

 


(3)성화의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어진다.(요17:17, 딤후3:15-17,)

 


(4)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영육의 축복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임하게 된다.(신28장) 그러므로 성경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연구하며 성경적 설교를 들을 때에 큰 은혜를 받게 된다.

 

 

 

2)은혜와 축복은 다양하다.

 


(1)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있다.

 


(2)여기서 은혜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통해 주어지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곧 특수은총인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가리킨다.

 


(3)일반은혜(또는 자연은총)에 속하는 환경의 변화보다 인격과 행위의 변화에 일차적으로 관련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사람과 행위가 되는 것이 은혜이다. 이것만 되어지면 성경에 계약되어 있는 모든 영육의 축복이 따라오게 된다. (사람이 가면 그림자가 따라 가듯이)

 


(4)교회 역사상 유명한 신앙 위인들의 인격과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거나 들음으로 이루어졌다.(예: 어거스틴:롬13:13-14, 루터: 롬1:16-17, 번연: 고전1:30)

 

3)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중생 시키셨고 동일한 말씀으로 자라나게 하신다.

 


(1)그러므로 우리는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純全)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

 


(2)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해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3, 기도

 


1)사도행전에는 사도(使道)의 가르침을 받은 것과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과 떡을 떼며 기도에 전력함으로 많은 은혜를 받아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행2:42)

 


2)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것과 성례와 기도가 포함되므로 포괄적인 의미에서 예배는 가장 큰 은혜를 받는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성도들이 공중 예배에서 은혜 받아 성화 되는 것 보다 더 큰 은혜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편은 없다.

 


3)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통해서 신앙적인 작품들을 통해서 특수한 사람 관계와 노동과 봉사를 통해서도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공중 예배 때에 받은 은혜가 생활로 연결되어 질 때에 가능한 것이다.

 


4)공중기도와 개인기도는 모두 은혜의 방편이다.

 


(1)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하여 기도해야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2)성경은 기도로 인도하고 기도는 성경으로 나아가게 한다.

 


(3)성경에 기록된 신앙 위인들은 전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이사야, 에레미야, 다니엘, 요나, 에스라, 베드로, 바울, 등)

 


(4)기도는 받은바 은혜에 대한 감사와 죄의 자복(自服)과 하나님과의 의논(도고)와 간구(懇求)를 그 내용으로 가진다. 자기의 뜻(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기도하는 것은 참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아니다.

 


(5)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나를 향하신 그 분의 뜻을  찾아 이루어드리기 위해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한다.

 


(6)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 해야 한다.

 

 

 

 


            은혜의 방편 (方便) (2)

                        

    1, 성례(聖禮)

 


하나님의 말씀은 독립적으로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지만 성례는 말씀 없이는 완성적인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없다. 말씀을 통하여 성례의 진정한 의의를 듣고 깨닫게 될 때에 성례가 주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말씀은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성례는 그렇지 않다. 말씀은 신앙을 일으키고 강화시키나 성례는 신앙의 강화에만 관련된다.

 


1)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교회의 거룩한 의식인데 세례와 성찬 두 가지가 있다. 이 거룩한 의식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나며 날인(捺印)되고 적용되는 것이다.

 


2)세례에는 물을, 성찬에는 떡과 포도즙을 사용한다. 이 외면적 요소는 하나의 예표(豫表)로서 그것이 의미하는 내면적 요소는

 


(1)은혜의 언약(창17:11)

(2)사죄(막1:4 마26:28)

(3)회개와 믿음(막1:4 막16:16)

(4)믿음으로 된 의(義) (롬4:11)

(5)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롬6:3-4, 골2:11,12)

(6)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롬6:4 벧전3:21)등이다.

 


3)성례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나 주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세례와 성찬을 받지 않는 것은 불신앙(不信仰)을 나타내는 것이며 불순종(不順從)의 죄가 된다.

 


(1) 구약 시대의 할례의 명령이 심히 엄격하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성례로는 할례(割禮)와 유월절(踰越節)이 있었다.

 


*할례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죄의 제거(除去)와 하나님께 속하며 그에게 헌신하는 것을 상징하는 성례가 되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구출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고 예표 한 것이었다.

 


(2) 신약시대에도 성례가 두 가지 있으니 세례와 성찬이다.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가 영적으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차이점은

 


가) 구약의 성례는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앞으로 받을 것을 믿음으로 소망하였으나 신약의 성례는 그리스도와 그의 완성된 대속의 은혜를 기념하고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나) 구약의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대속해 주실 것에 대한 예표로서 유혈성례(有血聖禮) 였다. 신약의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대속을 완성하셨음으로 무혈성례(無血聖禮)이다.

 


다) 이 무혈성례를 통하여 받은 은혜가 생활로 연결될 때에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항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을 삼는 것이다.

 

 

 

    2, 세례(洗禮)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마28:19)

 


1) 세례가 상징하는 본질적 의미는

 


(1) 더러운 모든 죄악을 씻음 받는 것.

 


(2)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을 향하여 새 생명으로 사는 것.

 


(3) 선택, 대속, 중생의 은혜를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는 것.

 


(4) 구속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회원으로 입문하는 것.

 


(5)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헌신하며 서원하며 은총을 간구하는 표시이다.

 


2)세례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신다.

 


(1) 내가 너를 구속했다.

(2) 구속받은 너는 내 것이다.

(3) 너는 거룩한 삶의 목적을 가졌다.

 


3)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는 자, 곧 사죄, 칭의, 새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치 아니 하시고 미워하시는 옛 사람과 그 행위(악성, 악습 곧 육신의 소욕)를 벗어버리고 성령을 따라 새 사람으로 행하며 자라가야 한다.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여호수아5:8-9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3, 성찬(聖餐)

 


1)성찬은 유월절의 중심적 요소들과 관계를 가진다.

 


(1) 유월절 양으로 예표 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대속의 은혜를 떡과 포도즙을 가지고 기념하는 것이 성찬이다.

 


(2) 이 성찬도 세례와 마찬가지로 주께서 친히 제정하셨고 지키라고 명령하신 성례이다.(고전11:28)

 


2)성찬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며 (고전11:24 눅22:19) 전하는 것이다.(고전11:26) 기념하여 전하는 것은

 


(1)예수께서 살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나의 영원한 죄 값인 하나님의 정죄와 저주와 진노의 형벌을 대신 받는 것과

 


2)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만족하게 이루어 드리기 위해 죽기까지 대신 순종하여 주신 것과

 


(3) 나와 하나님과의 원수 된 불목을 대신 화목하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하신 것과

 


(3)예수님의 죽음으로 이루신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의 공로를 힘입어 사죄와 칭의를 화친을 받게 된 것과

 


(4)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사망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된 것을 감사하는 것과

 


(2)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은 나는 그의 피에 팔린 그의 것이니 그만 위하여 그의 뜻인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의 전 소유와 몸과 마음과 생명까지 다 투자하는 것이다.

 


3)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은 하나의 의식이요. 실상은 나의 현실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고 주님의 구속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죽기까지 주님께 충성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참으로 기념하는 것이며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구속의 은총을 마음에 늘 간직하는 것과 이 구속의 은총을 증거 하는 일에 모든 것을 다 기울이고 바치는 생활로 성찬의 은혜가 연결되어져야 한다.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1, 교회 지상주의(至上主義)

 


1)로마 카톨릭 교회(천주교)는 국가를 교회에 종속되어 있는 기관으로 보며 그 모든 권위는 교회를 위하여 행사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공식 행사에 참여하는 교황의 머리 위에는 세 겹으로 된 모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이 삼중관은 교황의 영적 지존성, 세속적 권력(이탈리아 영토(領土)에 대한, 현재는 바티칸 공국(公國)에 대한), 세계의 모든 군주들과 국가 원수들 위에 군림하는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3)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영혼과 육체 사이의 관계로 이해한다. 영혼이 육체에 비해 우월하고 이를 통솔해야 하듯이 로마 카톨릭교회가 국가를 통솔해야 한다는 것이다.

 


4)국가에 대한 교회의 우월권의 주장은 교황이 황제의 위를 박탈하는 칙령을 발한 역사적 사실(그레고리 7세가 헨리 4세에 대해, 인노센트 교황이 죤 영국왕에 대해)에서 잘 나타났다.

 

 

 

    2, 국가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

 


1)로마 교회의 교회 지상주의에 대한 반대하는 주장으로 국가 지상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교회는 국가에 의존해야 하며 국가에 의해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교리는 에라스트 주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2)즈윙글리의 추종자였으며 독일계 스위스 사람 토마스 에라스투스(1524-1583)는 의사로서 교인의 죄는 교회의 치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법으로 처벌 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에라스트 주의자들은 교회를 국가 안에 있는 다른 여러 기관 가운데 하나로 보고 교회는 국가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이들이 주장하기를 국가는 사람의 세상적 요구는 물론 영적인 요구도 충족시키기 위한 신적(神的) 기관임으로 순수한 교리를 전파하며 성례와 권징를 정당하게 집행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국가는 교회를 위하여 그 직원을 임명하며 그 법을 제정하며 그 행정을 감독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3, 국가배타주의(國家排他主義)

 


1)16세기부터 "아나벱티스트"(재침례파)라 불리는 과격파들은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의문들을 제기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신앙과 인격면에 추앙 받을 만한 인물들도 많이 있다.(한스, 탱크, 세바스찬 프랑크, 카스파르 슈펭크펠트, 등)

 


2)이들은 모든 사람의 내면의 빛에 의지한 신비주의적 종교를 추구하였으며 외형적인 교회의 제도나 형식을 떠나 진정한 영적 구현을 추구하였다.

 


3)이들은 또한 국가란 불필요한 권력의 집단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서약, 공직, 서임, 사형, 병역 의무, 등을 거부함으로 평화적인 입장을 고수하였다.

 


4)그러나 얀 마티스, 얀 반 리이든이 폭력적 혁명을 주장한 것은 아나벱티스트파(派)의 극단적인 다른 면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아나벱티스트 들은 국가가 교회를 보호하거나 지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죄악으로 생각하였으며 택자들은 세속 사회가 망하도록 버려두고 그 가운데서 탈출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5)국가란 원래 진정한 교회에 대해서는 적대적일 뿐 아니라 악한 존재라고 생각 하였다. 세속 관리들은 사단의 대리인으로 간주되어 핍박을 견디는 의미에서 가능한 복종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6)그들은 정부를 전혀 무시할 뿐만 아니라 사회 내의 모든 계급 제도를 악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의한 신정정치가 완전히 구현될 때 칼을 쓰는 세속 정부들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7)이들의 극단적 이상주의는 비현실적이나 그들의 세속 권세에 대한 극단적 대항은 교회에 대한 국가 우위론인 에라스트 주의에 대한 정면 대결로서 교회와 국가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8)그들의 극단적 국가부정(國家否定)에 충격을 받은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반작용으로 각각 세속 정부에 보다 접근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9)아나벱티스트들의 평화주의, 무저항주의, 자기들의 신념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여러 모양의 박해를 받는 중에서 보여준 기품과 용기와 순교의 모범 등은 그 후 세계 여러 나라 안에서 종교의 자유를 쟁취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4, 정치와 종교의 분리(分離) 및 상호보완주의(相互補完主義)

 


1)개혁파 교회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이 두 기관이 다 같이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지만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각기 독립되어 있으면서 또한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2)루터는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하나님의 양손에 붙들려 있는 두 가지 다른 왕국으로 설명하였다. 오른편 왕국은 교회를 가르치며 이 왕국에는 복음(은혜)을 주셨고 왼편 왕국은 국가인데 이것에게는 사람의 생존을 위한 질서 유지의 임무를 부여하고 이를 실현 할 수 있도록 칼(법률 제정 및 그 시행의 권세)을 주셨다는 것이다.

 


3)칼빈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두 가지 위험을 경고하였으니 첫째는 이 땅위의 국가와 하나님의 교회를 동일시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 둘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하였다.

 


4)그는 세속 권세(국가 권력)의 책임을 교회를 지원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사회의 일반적 복지를 제공하는 것 등으로 열거하였다.(기독교 강요 제4권 20장 제2항 참조)

 


5)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한 분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두 기관 (더 많은 기관들로 분류할 수도 있음)을 통해 나타난다.

 


6)그러므로 이 두 기관의 바른 관계를 알지 못하고는 현실적 생활에서 혼돈, 충돌, 갈등, 모순을 빚어내게 된다.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정립하는 일은 우리 시대에 다시 한번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어 이에 관한 더욱 깊은 연구가 요청된다.

 

 

 

                 교회와 국가

                                          (성경적 고찰)

 


    1, 복음서에 나타난 교회와 국가의 관계

 


1)로마 제국의 권력에 반역하여 자기 나라를 세워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고소를 심리했던 빌라도에게 예수께서"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18:36)라고 말씀하셨다.

 


2)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와 가이사가 통치하는 나라는 국민, 영토, 주권, 법과 권세의 성격이 판이하다. 빌라도는 일정한 영토와 군대가 없이 진리와 사랑에 의해 통치되는 왕국이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3)그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왕국은 로마 제국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무죄를 선언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요19:12)라고 유대인 지도자들이 강하게 주장하였기 때문에 십자가의 사형을 받게 하였다.

 


4)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셨으므로(막1:15) 이 세상 국가에 대해서는 초연한 태도를 보이셨으며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세금도 내셨다. 국가가 규정한 세금을 내신 것을 보면 국가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다.(마17:27)

 


"5)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마22:21, 막12:17, 눅20:25)은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 관계를 신자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도 전부 하나님의 것이요. 소유도 다 하나님의 것뿐이다.

 


6)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을 이행할 때에도 하나님의 것으로 그를 위하여 그의 뜻을 따라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그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어겨 가이사에게 복종해서는 안 된다. 가이사에 대한 복종과 불복종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

 

 

 

    2, 바울 및 공동서신에 나타난 교회와 국가의 관계

 


1)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유대인의 고소를 받아 유대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앞에서 유대인의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의 심판을 받지 않고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을 것을 호소한 일이 있다.(행25:10-12)

 


2)물론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전도자가 국가의 법에 호소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바울이 로마에서 재판을 받기 이전에도 이미 로마의 권력에 의하여 보호 받은 사실이 있었다.

 


3)고린도에서 갈리오 총독은 로마 관리로서 종교적 문제를 취급하지 않으려하였다.(행18:1-17) 에배소 시(市)의 서기도 종교적 문제에 관여하기를 거부하였다.(행19:1-41)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법을 어기지 않는 한 복음을 전파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4)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의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는 복음 전파를 하지 못 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행5:29)

 


5)바울이 로마 황제의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연금 상태에 있었으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행28:4-31)

 


6)초기 기독교회는 수 십 년간 로마제국으로부터 큰 박해를 받지 않았으며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당시의 교회는 로마 제국의 권력과 직접 마찰하는 일이 없이 복음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바울은 "복음이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1:6)라고 말 할 수 있었다.

 


7)로마서 13장은 기독교는 국가 권력을 부정하거나 사회 질서에 혼란을 일으시키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변증하고 있다. 세상 권세들이 하나님께로 나왔으며 하나님이 정하신 것으로 말씀하셨다. 성도를 핍박하는 자들과 이 세속 통치자들의 권세가 무엇인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며 또한 이 세상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알려 주는 말씀이다. (롬13:1, 딤전2:1,2 딤3:1)

 


8)이 로마서 13장은 독일의 나치 정권과 역시 2차 세계 대전 중 일제 정권이 악용하였던 경우도 있다. 그러나 로마서 13장은 현세적 권세들의 기원, 그 권력의 임무, 그 권력의 제한성, 그리고 기독교의 정치윤리관을 알려주는 말씀이다.

 


9)이 말씀이 강조하는 바는 권세자들은 절대적 권세를 가진 것이 아니고 맡겨진 권세요. 또 위임된 임무를 수행할 때만 정당화 될 수 있는 조건적 권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권세는 자신을 절대화하여 하나님의 권세를 대신하려하면 망한다.

 


10)가이사가 하나님만이 요구하실 수 있는 것을 요구하거나 하나님의 요구와 상반된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1)그러므로 현세적 정권이 교회를 지배하려 한다던가(독일 히틀러 정권, 일본의 군국주의 정권, 공산주의 정권과 같이), 중세 로마 교회처럼 교회가 국가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12)각기 고유한 영역을 잘 지키며 각자의 고유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교회는 사람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복음의 증거자이며, 국가는 사회질서, 정의, 그리고 국민의 자유를 위한 관리자이다.

 


13)서로 지나친 간섭이나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종교와 정치의 분리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국가의 기능은 세상에서 말하는 세상적 죄악의 억제와 선을 증진시키는 것이다.(롬13:2,3)

 


14)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국가의 기능을 인정하며 세속 통치자들를 존경하며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지 않는 명령에는 순종하여야 한다.(벧전2:13,14)

 


15)그러나 세속 권세자들이 비성경적 복종을 강요할 때에는 "세속 권세자 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행4:19, 행5:29)

 


16)박해를 각오하고 정부에 불복종한다는 결론을 내렸거나 처벌을 받는 중에라도 세속 권세자들을 불쌍히 여겨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3, 계시록에 나타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1)계시록 13장에는 로마서 13장과 대조되는 세속 권세관을 보게 된다. 지상의 모든 힘들을 장악한 국가 권력을 짐승으로 묘사하며 사탄적 존재로 단정하고 있다.

 


2)이 말씀은 기독교를 박멸하기 위해 황제 숭배를 강요하며 잔인하고 가혹하게 박해를 가하였던 로마 제국을 위시한 여러 시대, 여러 국가 지상주의 권력들을 생각하면 붉은 용과 짐승으로 상징한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국가 권력은 교회에 대해 호의적(好意的)이 될 수도 있고 절대적(絶對敵)이 될 수도 있으니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가변적(可變的)이다.

 


4)어린양(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교회(그리스도인들)는 박해하는 세력에 대해 폭력적 혁명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죽기까지 신앙을 지키며 복음을 증거 함으로서 승리를 거두었다.(계12:11, 계13:10, 게17:14)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