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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뜻--질서와 권위

에반젤(복음) 2020. 2. 15. 11:58



5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뜻--질서와 권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신5:16)

5계명은 질서와 권위 개념을 가르칩니다. 신명기 5장 16절이나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벧전2:13)라는 말씀 모두 권위개념을 가르치고 있고, 이 권위가 보존되고 지켜질 때 인간은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국가, 교회, 직장, 가정이라는 질서가 있고, 이 질서 속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권위는 복종을 요구합니다.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권위실종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국가 위정자들의 권위도 추락했고, 교회의 목사들 권위도 내던져졌고, 학교와 직장의 권위도, 가정의 부모 권위도 실종상태입니다. 권위를 악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권위 자체를 제거해 버리면 사회는 무질서 속에 빠집니다. 사회의 각 분야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위를 따라서 질서가 세워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 권위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평등과 인권과 정의를 말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차이와 차별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차별은 없어야 하고, 멀리해야 하는 것이지만 차이는 존중되어야 하는 기독교적 가치입니다. 교회와 국가와 가정과 직장의 영역에서 차이와 차별을 구별하지 못하면 엄청난 혼돈에 빠집니다. 사람들은 자칫 ‘평등’, ‘공평’이라는 개념을 흔히 무조적으로 똑같이 대우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각각 다르게 창조 하셨고, 다른 기능을 부여하시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 해 주셨습니다. 차이성은 나쁜 것이나 틀린 것이 아니라 창조의 다양함을 확대하고 조화를 이루어 더 아름답게 하는 다름일 뿐입니다. 차이가 존중될 때 평등과 공평도 존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5계명에는 저항원리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섭리 속에서 필요한 경우 저항이 허용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국가의 법질서 체계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저항해야 합니다. 민심과 여론은 법이 아닙니다. 민심과 법을 혼동하면 법질서 체계가 모두 무너지고 무질서가 찾아오며, 무질서의 최고 피해자는 교회와 시민들입니다. 국가나 교회의 부패에 대한 저항을 여론몰이로 압박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법체계가 다소 미흡하고 부족해도 현재 우리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는 울타리이기도 합니다. 법체계가 붕괴되거나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양심의 자유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저항할 수 있습니다. 국가와 교회는 법질서라는 것이 있기에 이 틀 속에서 저항해야 하고, 저항하되 법질서를 존중하면서 저항해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왜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기독교인들은 법질서를 파괴하거나 위협하면 안 된다고 그토록 강조했는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칼빈은 1536년 기독교강요에서 자신이 직접 ‘저항론’을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론을 잘못 이해하여 무질서로 가면 안 된다고 거듭 경고했습니다. ‘무질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또한 이 무질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여러 번 경고합니다.

고대 사회가 왕권신수설을 강조하여 절대복종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롬13:1)는 말씀을 악용하여 시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사회계약설만 강조하여 지나치게 저항권리만 강조합니다. 이 논리의 위험성은 국가 위정자의 힘은 국민이 준 것이기에 국민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저항하여 제거할 수 있다는 권위무시주의입니다. 이들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는 말씀처럼 국민이 모든 권위의 최종 결정자이고, 판단자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현대 사회는 왕권신수설과 사회계약설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하지만 5계명만이 이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민들과 교인들의 저항과 자유를 존중하되 법질서 안에서, 즉 권위가 무시되지 않는 범위에서 허락하고, 국가와 교회 등 각 영역의 권위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 5계명의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이퍼가 말한 영역주권입니다. 즉, 각 영역은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권위를 부여받았기에 그 권위를 중심으로 질서를 세워서 다스려 갈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5계명은 질서와 권위를 가르치며, 바른 권위는 복종과 저항 개념이 상호조화를 이루를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5계명을 회복합시다!

신원균 교수(한마음개혁교회, 웨스트민스터 신학회 회장,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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