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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해 설교자가 되려면

에반젤(복음) 2020. 2. 9. 23:30



제 1 장
강해 설교자가 되려면
(Qualifications for an Expository Preacher)

하나님은 항상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그 준비의 정도는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베드로는 베드로만큼 쓰임 받았고, 바울은 바울 만큼 쓰임 받았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신약의 핵심적인 책들을 쓰게 하시고 그를 통해 교회, 특히 이방 교회의 기초를 놓게 하신 것은 결코 우연히 된 일은 아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받기 전에 당시 이스라엘 최고의 학자로 존경받고 있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적으로 탁월하게 준비한 것이 적절하게 쓰임 받은 것이다. 그러면 설교자, 특히 강해 설교자가 되려면 어떤 자격과 준비가 필요할까?
필자는 목사와 의사를 비교해서 말하기를 즐겨한다. 의사가 육체의 병을 치료해주는 전문가라면 목사는 영혼의 병을 치료해 주는 전문가이다. 사람들이 질병 때문에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 빨리 나가서 도와주고 싶은 일념만 가지고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 의사가 되는 데에는 길고도 힘든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과 2년, 본과 4년, 인턴, 레지던트 과정 3년 등 적어도 10년 정도는 훈련받아야 햇병아리 의사가 탄생한다. 이런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의사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한다면 사람들을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돌팔이 의사가 되고 말 것이다.
영적인 의사인 목사는 육적인 의사보다 덜 훈련받고 덜 준비해도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준비가 안된 사람은 아예 목회의 꿈도 꾸어서는 안 된다. 영혼을 치료해주는 목사가 되고 설교자가 되는 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아무런 훈련이나 사전 준비도 없이 소명감 하나만 가지고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런 목사는 돌팔이 의사와 같다. 아니, 돌팔이 의사보다 더 무서운 일을 저지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돌팔이 의사는 육체의 생명만 빼앗아 가는 것으로 끝내겠지만 돌팔이 목사는 한 영혼을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고 말기 때문이다. 적절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가 목사가 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수류탄을 쥐어 주고 불속으로 뛰어들라고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목사, 특히 강해 설교자로서의 목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어떤 것일까? 필자는 강해 설교자가 되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1. 분명한 거듭남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초교파적으로 여러 교단의 목사님들과 접촉을 하고 있고, 여러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고, 또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나 집회 인도를 한 적이 많이 있는데, 교인들 가운데서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교회에서는 한 영혼이 교회에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교회 내에도 알곡이 있고 가라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일대일로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고는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녀도 결코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교회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주신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구원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봉사를 하고 종교 생활을 하지만 오늘 죽는다면 천국에 갈는지 지옥에 갈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오락가락 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율법의 굴레에 매여 힘들게 종교 생활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일반 교인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목사들 가운데서도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채 목회하다가 목회한 지 5년 뒤에, 또는 10년 뒤에 거듭났다고 하는 목사도 많이 만나 보았다.
영혼의 안내자인 설교자가 분명한 거듭남의 체험이 없다면 영적으로 눈먼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를 따르고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문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거듭남의 체험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설교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고, 어쩌다가 거듭나지 못한 채 설교자가 되었다면 그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본인도 살고, 가족도 살고, 교회도 사는 길이다. 2)

2.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거듭났다고 해서 다 복음을 제대로 잘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교자 자신은 분명히 중생의 체험을 했고 따라서 영혼들을 바로 인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중생의 문제에 관한 설교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중생의 문제에 관해서 상담을 해오면 체계적으로 지도할 줄 모르는 설교자가 의외로 많다. 비유컨대, 환자가 찾아 왔을 경우 그 환자에게 어떤 병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의사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설교자가 이러할 경우에 가끔 교인 가운데 거듭남의 체험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다수는 영적인 흑암 가운데서 거듭나지 못하고 헤맬 가능성이 많다.
1998년 6월 9일자 국민일보에 실린 내용을 하나 소개하겠다. 한국 갤럽에서 18세 이상의 성인 남녀 1,613명을 대상으로 가구 방문을 통한 1:1 면접으로 조사한 종교 자료를 발표했다. 그 자료에 의하면 개신교 인구가 20.3%, 불교 인구가 18.3%, 천주교 인구가 7.4%였다. 종교인 중 개종 경험을 가진 사람은 16.2%였는데, 개종 전에 불교를 믿었던 사람은 32.8%, 천주교를 믿었던 사람은 9.8%였으나, 기독교를 믿었던 사람은 무려 58.4%나 되었다. 한 때 기독교를 믿다가 다른 종교로 개종한 사람이 전체 개종자 중 58.4%를 차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일보에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개종하고 있어 교회가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확실한 구원관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 중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교나 천주교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물론 자신의 영혼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자기 자신이 져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그러면 설교자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교인들은 원래 영적인 진리를 모른 채 그것을 알고 싶어서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서 목사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목사가 이 일을 제대로 못해서 한 영혼이 교회를 떠나게 되고 결국 지옥으로 간다면 목사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영적으로 정확하게 인도할 줄 모르는 목사라면 설교든 목회든 아예 해서는 안될 것이 아닌가!

3. 분명한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한다
설교는 목회자에게 끊임없는 스트레스의 원천인 동시에 가장 보람있는 사역이기도 하다. 설교할 준비가 되어 있든 안 되어 있든 설교해야 할 시간은 어김없이-- 어떤 때는 너무 빨리 -- 다가오기 때문에 목회자는 꿈속에서조차도 설교에 대한 부담감에서 완전히 해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명한 소명감이 없이는 지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어떤 사람이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하면, "제발 신학교에 가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사람이다. 소명감이 없이 하나의 직업으로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원래 법관이 되는 것이 오랫동안의 꿈이었다. 그러나 1968년에 거듭남과 동시에 하나님께 부름 받은 후 오랫동안의 꿈을 포기하고 목사가 되기로 헌신했다. 필자는 피조물 된 인간이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보람된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아 그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또 다른 인생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불러만 주신다면 기꺼이 목사가 될 마음이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서 전혀 후회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나 같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할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명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올포드(Stephen Olford) 목사의 다섯 가지 지침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3)
첫째, 나는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설교자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둘째,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성령의 증거를 내 마음에 가지고 있는가?
셋째, 설교자로서의 은사가 나의 삶과 사역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가?
넷째, 내가 섬기는 교회가 나의 설교 은사를 인정하고 있는가?
다섯째,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영혼이 구원받으며 성도들이 세워지고 있는가?

4. 강단과 실제 삶의 거리가 멀지 않아야 한다.
설교자의 큰 고민 중의 하나는 강단과 삶과의 괴리이다.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모든 설교자는 마음에 큰 부담과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필자도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오죽 했으면, "성경대로 설교하면 위선자가 되고, 자신이 행한 것만큼만 설교하면 들을 게 없다"고까지 말하겠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강단과 삶 사이에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어떤 설교자도 자신이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을 완벽하게 행하면서 살 수는 없다. 설교자마다 약한 부분이 있고 비교적 강한 부분이 있다.
그러면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채 설교하면 모두 위선자인가? 필자가 잘 아는 어느 선배 목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자기가 전하는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한 그는 위선자가 아니다." 참으로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설교하는 대로 다 행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는 분명히 가져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그 말씀에 실제적으로 순종함으로써 - 비록 완전하게는 아닐지라도 - 삶이 조금씩 달라져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설교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설교는 멋지게 하고 삶은 전혀 뒷받침이 안 된다면 그 설교자는 실격자이고, 그런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큰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말만 하고 거기에 순종하지 않는 설교자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상처를 받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비인격적이고 상식 이하의 일을 다반사로 저지르는 목사 때문에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강단과 실제 삶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설교자만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설교자가 될 것이다. 4)

5. 성경에 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를 가져야 한다.
설교자는 자기 자신의 견해나 타인의 사상이나 세상적인 학문을 전파하라고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부름 받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증거해야 할 성경을 제대로 몰라서는 알맹이 없는 설교만 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는 성경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또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는 성경 전체에 대한 종합적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중요한 부분에 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른다면 그는 군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성경은 영적 전쟁에 있어서 무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설교자는 성경을 숙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와 연관해서 또 한 가지 언급해야 할 것은 설교자에게는 석의(釋義)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번역판이다. 아무리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해도 번역에는 항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원문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번역은 반역이다"고까지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강해 설교자가 되려는 사람은 원문 연구를 통해서 본문의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좋은 주석을 참고해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전 이해의 능력이 제대로 있어야 그런 자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해 설교를 제대로 하려는 목회자들이 원어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5)

6.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설교자는 주일마다 적어도 세 번 정도는 설교를 해야 한다. 끊임없이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흡수하지 않으면 곧 바닥이 나버리고 만다. 대충 준비해서 대충 먹이자는 식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설교자로서는 실격이다. 한 가정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가 음식을 대충 준비해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먹인다면 그들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한 교회의 영적인 건강을 책임지는 설교자에게는 더 철저한 자세가 요구된다. 교인들의 영적 상태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설교자의 책임이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진지한 학구적 자세가 모든 설교자에게 절대적으로 요망된다.


주(註)

1) 브로더스 (John A. Broadus)는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즉, 소명 의식(A Sense of Divine Call), 분명한 중생의 체험(A Vital Christian Experience),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Continuation of Learning), 재능의 계발(The Development of Natural Gifts), 육체적 건강유지(Maintenance of Physical Health), 성령에 대한 전적 의지(Complete Dependence upon the Holy Spirit)를 들고 있다(On the Preparation and Delivery of Sermons, pp.13-17).
2) 이 문제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면 필자의 졸저, 『구원, 그것이 알고 싶다』를 참고할 것.
3) Stephen F. Olford, Anointed Expository Preaching, pp.13-14.
4) cf. Ibid., pp.38-49; See also John MacArthur, "The Man of God and Expository Preaching," in Rediscovering Expository Preaching, ed. John MacArthur, pp.85-101.
5) cf. Robert L. Thomas, "Exegesis and Expository Preaching," in Rediscovering Expository Preaching, pp.137-53.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