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예레미야 강해

[스크랩] <예레미야를 소개합니다> 김형익목사

에반젤(복음) 2019. 12. 28. 10:51


             

예레미야

<예레미야를 소개합니다>
거의 모든 선지자들도 그랬지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로 인하여 혹독한 시련을 겪은 선지자다. 그는 유다 말기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유다가 신흥 강대국 바벨론에게 망할 것을 예언했고, 바벨론에게 순순히 항복하고 포로로 끌려가라고 전했다. 당연히 이런 메시지는 왕과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환영을 받을 수 없었고, 그를 핍박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래서 선지자 자신은 심한 갈등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인내하며 그 말씀을 전했고 결국 예루살렘은 그의 예언대로 바벨론에게 함락되고 예루살렘 거민들은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갔으며 예레미아 자신은 그 땅에 남겨진 강퍅한 백성들에 의해 강제로 애굽으로 끌려가 거기서 죽었다.

그의 시대에 유다를 통치한 왕들은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다. 예레미야는 31년을 통치한 경건한 왕 요시야 13년째에 소명을 받았지만, 요시야 때의 예언은 단 하나 밖에 기록되지 않았다(3:6~10). 요시야의 악한 두 아들인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때의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또 다른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애굽에 의해서, 그리고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은 바벨론에 의해 각각 3개월 만에 폐위되고 붙잡혀갔다.

예레미야서를 이해하려면 당시 유다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유다의 정치적 상황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계속 유다에게 위협과 두려움이 되었지만 점차 쇠퇴하는 세력이었고 애굽과 신흥제국 바벨론이 유다를 둘러싸고 패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 때 친바벨론 정책을 폈던 요시야는 애굽과의 전투에 나가 전사하게 되고(주전 609년) 요시야의 네째 아들 여호아하스가(살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2:10~22) 왕위를 물려받지만 세력이 커진 애굽에 의해 3개월 만에 폐위되고 붙잡혀가고 만다. 애굽 왕 바로느고에 의해 왕위에 오른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은 친애굽 정책을 펴던 중, 바벨론이 애굽을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퇴시키자(주전 605년; 왕하 24:1~7)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을 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아마 야호야김은 무리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것이고(대하 36:6), 바벨론의 봉신이 되어 돌아온 여호야김은 몇 년 뒤, 다시 바벨론을 배신하고 결국 최후를 맞게 된다. 그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를 잇지만 바벨론의 예루살렘 포위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느부갓네살에 의해 많은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감으로써 3개월 통치가 막을 내리게 된다(주전 598년). 바벨론은 요시야의 막내 아들 시드기야를 왕위에 올리면서 유다 최후 11년의 통치가 시작된다. 시드기야는 국내의 친 애굽파 정객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짐으로써, 결국 바벨론 느부갓네살 군대에 의한 유다 멸망을 초래하게 된다(주전 586년).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하였다.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그 무서운 앗수르로부터 보호해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바벨론으로부터 보호해 주시지 않겠는가 하며 백성들을 거짓으로 안심시켜주었다. 내내 배척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것은 단순한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도 섬기는 혼합주의의 문제였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그들을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해야 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했어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를 전제하지 않으며 입맛에 맞든 맞지 않든 상관없이 전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예레미야서의 핵심은 돌판이 아니라 마음판에 하나님의 계명을 새겨주시겠다고 중생을 약속하신 새 언약의 예언이다(30~33장).

래리 크랩은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이렇게 의미있게 소개했다: “나는 네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너를 모든 고통에서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 좋은 일이 생길 때에도 나의 선함을 믿을 수 있는 능력과 앞으로 선한 계획이 펼쳐질 거라는 소망을 주겠다고 약속할께.”

1장 소명 (찬 595)

1.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가 멸망하기 전 이십여 년 간, 유다의 마지막 다섯 왕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의 시대에 예언을 했다. 본문 2절에는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이 생략되었는데 두 사람은 석 달 밖에 통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마일 정도 떨어진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1) 아마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것 같다(6).

2. 본문에는 예레미야의 소명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를 부르시기 전, 그가 태어나기도 전, 그가 복중에 생기기도 전에 그를 아셨고(선택하셨고), 구별하셨으며 선지자로 세우셨다(5). 이런 절대적인 하나님의 소명 앞에 인간의 변명이나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소명이 두려워 자신이 어리다고 변명하지만(6),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보내시든(메시지의 대상), 무엇을 명하시든(메시지 자체) 그는 가서 전해야 한다(7). 메시지의 대상과 메시지의 내용은 메신저가 아닌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만국 위에 세워(만국을 향한 예언의 말씀, 46~51장)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건설하고 심게 하시겠다고 하신다(10). 이것은 전적으로 예레미야가 전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예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실현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손을 예레미야의 입에 대심으로써 그 입에 당신의 말씀을 주심을 알게 하신다(9).

3.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두 개의 환상을 보여주신다. 예레미야는 먼저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다(11). 살구나무는 겨울을 지내고 제일 먼저 싹을 내고 꽃을 피우는 나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모든 말씀이 속히 시행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켜보실 것이다. 히브리어로 살구나무가 ‘지켜보다’는 말과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와 모든 상황을 지켜보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도 자신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속히 이루어질 것임을 기대해야 한다. 두번째 환상은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였다(13). 이것은 재앙이 북에서 임하게 될 것, 즉 바벨론이 북에서 치고 내려올 것에 대한 환상이다(14~15). 두 환상은 예레미야에게 예언의 성취를 지켜보아야 하는 메신저의 자세와 메시지의 내용을 암시한다.

4. 비록 예레미야가 전할 하나님의 말씀은 다 속히 성취되겠지만 그는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임을 하나님은 알려주신다(19). 하지만 예레미야는 두려워 말아야 한다(8,17). 누구에게 보내시든 하나님은 그들 앞에서 예레미야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처럼 만들어주실 것이고 누구도 그를 이기지 못하게 하시고(18~19)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실 것이다(8,19).

5.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거센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그 말씀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을 책임지신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순종하며 오늘을 살라. 하나님이 우리를 누구에게 보내시든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하라.

6.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능력을 믿사오니, 저희를 누구에게 보내시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어떤 대가를 지불하든지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시고 이 시대 모든 교회를 축복하사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