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강/ 서른여덟 번째 구원드라마(스 1-10, 느 1-13)
성전건립과 율법 갱신
I. 배경
고레스 왕에 의해 이스라엘은 해방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귀환 이후 유대 땅에는 수십 년 동안 실망과 좌절이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귀환 당시 정치 지도자 스룹바벨이 이스라엘을 회복할 지도자로 기대가 팽배했었지만 그가 사라지고 난 뒤 이스라엘의 꿈은 무산되고 좌절이 심화되었다.
바로 이 기간에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은 좌절한 이스라엘 민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주전 515년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하는 감격을 맛본다. 그러나 성전 봉헌 후 환희와 기쁨보다 계속되는 정치 부재로 인한 절망은 유대인들을 더욱 괴롭혔다. 더욱 바사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귀환을 지연하거나 포기하고 있었다.
스룹바벨 이후 유다는 정치적 공백기에 놓여있었다. 바사에서 파견한 총독도 없었기에 제사장들이 대역을 맡고 있었다. 군대도 없었기에 주변 여러 나라의 침공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성전 봉헌 이후 종교적인 무관심이 심화되었다. 제사장들이 타락했고, 백성들의 종교적 열심은 식어만 갔다. 금지된 이방인과의 결혼도 늘어만 갔다. 여기에 사회적 강자들은 약자들을 착취하여 사회적인 혼란은 늘어만 갔다.
이런 상황 가운데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예언이 등장한다.
II. 본문과 해석
1. 에스라의 메시지(1-10)
에스라는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바사로부터 귀환한 유다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그 피폐된 유다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 율법 갱신 운동을 전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1) 예루살렘으로의 귀환(1:1-2:70)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 이야기는 에스라가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고 기록을 되풀이 한 것이다. 고레스 왕의 회복 칙령, 성전 재건의 허용과 지원 약속, 세스바살로 하여금 성전 기물 5400점을 돌려보내는 사건, 그리고 귀환한 유대인들의 명단과 목록을 기록으로 남긴다.
제일 먼저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수천 리를 여행하여 약 5만에 다다르는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주전 538) 그러나 예루살렘은 황폐하였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남아있던 사람들과는 상통이 어려웠다. 그리하여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스룹바벨 지도 하에 성전 재건에 힘을 썼고 신앙 회복 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2) 성전 재건(3:1-6:22)
제 일진으로 도착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제단과 종교 절기 축제를 회복시키면서 성전 재건에 초점을 모으고 레바논의 백향목과 두로의 석공들을 불러들였다. 성전 재건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제의를 재건하고 여호와의 신앙을 되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가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성전 재건 중지를 요청했고 바사 왕에게 진정서를 보내서 성전 재건의 중지를 촉구했다. 그들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에 온 유대 사람들이 성읍을 건축하고 성벽을 건축한다면 다시는 조공이나 과세를 내지 않고 왕의 강 서편 영지는 없어지리이다”라고 호소했다. 이런 상소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내려 성전 건축을 중단케 했다.
그러나 학개, 스가랴는 계속하여 성전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고 다리오 2세가 재건 중지 취소 명령을 내려 성전을 다시 재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전 515년 제 2 예루살렘 성전을 완성하고 봉헌하게 되었다.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곳을 찾았다는 말은 곧 성전을 통해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회복하고 성전을 중심한 신앙생활을 체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에스라의 귀환(7:1-10:44)
지금까지 이야기는 80년 전에 일어난 일을 자료를 살펴보면서 기록한 것이다.
이제 율법사겸 제사장인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예루살렘에 귀환케 된다. 여기에는 2차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과 행로가 기록되어있다. 성전에서 봉사할 레위인들을 불러 모으고 성전을 위해 드린 각종 금, 은, 기물을 간수하는 사람들을 임명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잡혼으로 변질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탄식하는 에스라의 눈물어린 회개의 기도가 언급되어있다. 그 책임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에게 있음을 고백한다. 이제 이스라엘이 죄악을 씻고 선민으로 다시 회복되는 과정과 에스라 자신에게 주어진 종교적 정치적 지도력을 통하여 여호와의 전 앞에서 에스라가 엎드려 울며 기도할 때 이스라엘의 큰 무리가 모여 통곡하며 죄를 참회하는 회개가 일어난다.
2. 느헤미야의 메시지(1-13)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바사 궁에서 술 맡은 관원으로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샀던 사람이다. 그가 3차 귀환 때의 책임자로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그의 첫 사업은 파괴된 성전 벽을 보수하는 것인데 내외의 반대와 중상 모략이 많이 있었지만 52일 만에 전격적으로 성벽을 재건하여 적대자들도 성벽 재건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알게 되었다.
1) 느헤미야의 귀환(1:1-2:20)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에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도 파괴되었다는 소식이 느헤미야에게 전해졌다. 그는 유다 땅 성의 재건을 왕에게 건의하고 허락을 받는다. 왕은 강 서편 총독들에게 느헤미야가 무사히 유다까지 갈 수 있도록 조서까지 내린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비밀리에 추진한다.
2) 예루살렘의 성벽 건축(3:1-7:73)
예루살렘 성 건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임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제 성벽 건축을 시작하고 이 소식을 들은 대적자들이 분노하여 일어나 유다 사람들을 비웃고 방해할 음모를 꾸몄다. 이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방해 계획을 와해시키신다. 한편 궁핍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지도자들과 귀족들의 과중한 세금과 고리대금 때문이었다.
느헤미야는 크게 노하고 지도자들과 귀족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촉구했다. 예루살렘 성전의 공사가 마무리 될 무렵 대적들의 위협은 가중되었다. 음모를 꾸며 느헤미야를 중상 모략했고 거짓 선지자들을 매수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하려고 술수를 썼다. 느헤미야는 결국 이 난관을 신앙적으로 극복하고 공사 시작 후 52일 만에 완공하게 된다.
3) 에스라와 종교개혁(8:1-13:31)
성전이 재건된 후에 귀환자들이 한 일은 율법서에 따라 성결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방 포로 생활 속에서 이방 문화에 동화되어 여호와의 신앙이 퇴색되어졌다. 그리고 그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하나님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였다. 이런 점에 감안하여 에스라는 율볍책을 낭독하고 깨닫도록 백성들을 가르쳤다.
또 에스라는 절기를 통한 풍습의 정결화도 시도하였다. 특히 피의 혼합, 정신의 혼합 뿐 아니라 나아가 이방 신을 섬기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이유로 이방 여인과의 동혼을 금지시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이방여인들을 버렸다.
이러한 에스라의 신앙 갱신 운동도 시간이 지나면서 미약해 지므로 느헤미야 8장 이하에서 에스라는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였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금식하고 회개하며 주께 맹세하고 새 언약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귀환한 느헤미야가 정치력을 발휘하여 백성들을 순화하였다. 초막절을 지키면서 율법에 있는 대로 초막을 짓고 율법을 묵상하고 가르칠 것을 백성들에게 요구하였다.
그러므로 에스라 느헤미야에 의해 유다 공동체는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갱신된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런 철저한 부흥 운동은 그리스의 박해와 로마의 탄압에도 그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율법과 회당이라는 유대교의 두 기중은 계속 존속할 수 있었다.
III. 신학적 의미
1. 하나님의 주도하심
에스라/느헤미야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났고 하나님은 이 일의 성취를 위해 지속적으로 간섭하셨음을 역설한다. 포로로 끌려갔던 저들이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께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스 1:1)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귀환한 후 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 재건을 하고, 신앙 부흥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스 7:6, 9, 28; 8:18, 22, 느 1:10, 2:8, 18)
2. 하나님의 지속적 사랑
포로로 끌려와 자신들은 이제 끝이라는 좌절이 팽배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지속되었다. 이 사랑을 구약은 "헤세드"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 말이 에스라, 느헤미야에 8번 나온다.(스 3:11, 7:28, 9:9, 느 1:5, 9:17, 32; 13:14, 22) 이 헤세드는 하나님의 자비와 성실하심을 합쳐놓은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헤세드가 가진 성실하심의 의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약속하신 사람들에게 “충성”스러우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이다.
3. 공동체의 순수성과 신앙 유산의 전수
당시 귀환한 사람들은 이방의 바다에 둘러싸여있었다. 끊임없이 저들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상황이었다. 그래서 저들만의 신앙적 순수성을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두 지도자는 엄격한 분리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바로 그것이 이방여인과 사이에서 낳은 자식까지 축출하는 것이었다.
또한 저들이 중요시했던 것은 신앙을 전수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신앙이 보존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것이 성전 재건과 성전 예배 회복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율법이었다. 말씀 회복운동을 펼친 것이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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