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시선
물질주의는 영혼을 인정치 않으며, 육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을 때에 쾌락을 만끽하고 모든 방법대로 누리려고 한다. 따라서 극도로 이기적이 되고, 남을 딛고 일어서려는 욕구에 범죄가 끊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영의 활동인 꿈을 꾸는데, 몸은 잠들어 있어도 영혼은 살아있으며, 영혼이 결정만 하면 몸을 깨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비치는 사랑의 힘을 덧입을 때만 가능하다.
1. 사랑의 힘(아5장)
신부는 침상에서 자면서 또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신랑이 밤이슬에 젖은 모습으로 문을 열어 주기를 간청하고 있다. 신랑은 문고리를 따고 무작정 들어올 수도 있으나 안에 있는 신부를 최대한 존중하여 신부 스스로 열어 주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신부는 신랑의 사랑받음을 기회로 교만해질 대로 교만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이미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으며, 따라서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침해받을 수 없다고 냉정히 거절했다. 잠시 후 꿈이 깨면서 신랑을 맞이하려 했으나 사랑은 문고리에 사랑의 증표인 몰약을 남겨 놓고 이미 떠난 뒤였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사랑의 병
우리는 사랑받고 있을 때 더욱 겸손해야 하면, 평화롭고 복될 때 더욱 경성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자만할 때 주님은 우리들 안에 들어오실 수 없다. 술람미 여인은 좀 늦었지만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놀라서 밖으로 사랑하는 님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그녀는 성중에서 행군하는 자들에게 맞아서 상하게 되었고 웃옷(너울)은 벗김을 당했다. 너울은 왕비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서 그녀는 이제 그녀를 보장해 줄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주님을 잠시라도 떠난 심령은 이렇게 벗김을 당하고 상처를 입게 된다.
2)사랑의 재회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한 곳을 알꼬"(욥23:3)라며, 극한 고난에 처한 욥이 탄식하듯 신부는 상처를 끌어안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 사랑하는 자에 대해 묻는다. 예루살렘 여자들이 "너의 사랑하는 자가 다른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녀는 즉시 그를 격찬한다. 그녀는 순간 그분의 말씀과 그 동산이 바로 자신의 심령임을 깨닫고 아6:2,3을 노래한 것이다. 주님은 성도의 영혼에 자신이 가득 채워지는 곳으로 성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
2. 사랑의 지속성(아6,7장)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할 지 모르겠지만 그 질투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이 질투하심은 인간이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라는 질책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느 한 쪽만 받으시기를 거부하시고 전체를 받으시기를 간절하면서도 엄정하게 요구하신다. 따라서 본문의 신부와 신랑도 서로의 전부이기를 원하고 혹이라도 전부가 아닐 때 돌이키기 위한 불꽃을 피우겠다고 한다. 여기서 진정한 사랑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사랑의 지속성
사랑은 보배로운 것이다. 죽음까지라도 감수할 만큼 강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자신이 생명까지도 기꺼이 버리셨다. 우리 믿음의 많은 선조들도 주님의 그 사랑에 응하여 장대한 죽음으로 사랑을 지속시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현재 자기에게 유익하면 좋아하다가 조금이라도 거침이 되면 버리고자 한다. 그러나 주님은 죽도록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도 죽도록 그분께 사랑을 드리기를 원하신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요13:1)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떠한 상황이라도 변함없는 사랑을 주님께 드려야 겠다.
2) 진정한 사랑
일반적인 투기는 상처받은 사랑에서 파생되는 것으로서 증오와 복수심을 동반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20:5)에서 알 수 있듯 하나님은 스스로 질투한다고 말씀하시며, 그분에게는 질투할 권리가 있으시다.
3. 사랑의 찬미(아8장)
아가서 8장은 사랑의 성숙을 의미하는 사랑의 찬미를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들려 주고 있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은 사랑의 가치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1) 사랑의 가치
왕의 도장은 큰 가치가 있어 그 도장이 찍힌 것은 곧 왕의 권한과 법이 된다. 신부는 왕의 오른손에 있는 도장처럼 늘 가까이 그 품안에 있기를 갈망한다. 그녀는 그를 죽도록 사랑하므로 그의 사랑을 쟁취할 것이고, 그의 사랑이 자신의 사랑보다 오히려 넘치는 굉장한 것임을 알았다. 그녀의 영혼은 오직 그분만으로 가득 채워질 것을 그분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2) 사랑의 찬미
여호와의 불같이 거룩한 사랑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사랑의 불은 아무도 꺼뜨릴 자가 없다. 본 서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둘러싼 합창단들이 구절구절에서 사랑의 찬미를 부른다(아8:5-14). 이들의 찬미는 일체감에서 우러러 나오는 것이다. 신랑이 신부의 찬양을 기뻐하며 반겨하듯 우리 주님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고대하시고 계신다.
노래는 부르는 자의 마음과 뜻이 담겨져 있다. 이 아름다운 찬미시는 주님의 마음이 타오르는 불처럼 담겨 있고, 그 사랑받는 신부의 마음이 포도즙과 석류즙의 향기처럼 그윽히 담겨져 있다.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다. 너무 크고 너무 대단해서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영원토록 마음과 정성을 실은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본문 해설
1. 신랑의 말(아5:1)
1) 신부에게
왕은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아5:1) 아주 만족해 한다. 이 혼인 잔치는 마치 어린 양의 혼인 만찬에 대한 표현과 같다. 성도들은 이 기쁨의 잔치로의 초대에 응답하고 여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2) 손님들에게
신랑은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아5:1)고 친구들을 잔치에 초대하여 함께 기쁨을 나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종이 아닌 친구라 불리우며, 신부라 불리운다. 이 잔치에 응하면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온갖 기쁨과 즐거움에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주의 음성에 항상 귀기울이고 있어야 할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부르심과 교회의 무관심
1) 신랑의 부름
신랑은 밖에서 신부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호소한다. 이 음성에 귀기울이고 곧 주를 향해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성도들이 영적으로 나태하고 세상 일에는 관심을 두면서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한 상태로서 영적으로 무력한 상태에 있을 때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우리는 쉽게 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칫 세상적인 일에 몰두할 염려가 많다. 따라서 항상 근신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도 신랑은 우리를 향해 부르고 계신다. 문을 열어달라고.
2) 술람미 여인의 반응
문을 열어 달라는 신랑의 음성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반응은 나태함이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아5:3)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육체의 안락함을 버리고 싶지 않은 데서 나온 대답이었다.
3) 신랑의 반응
술람미 여인의 무정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신랑은 문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문을 열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실랑의 행동은 술람미 여인으로 하여금 마음을 돌이키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고 강권하신다. 이에 술람미 여인의 마음은 다시 사랑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지체함은 신랑의 떠남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녀가 문을 열었으나 신랑은 사라진 뒤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지체하지 말고 응답해야 할 것이다.
4) 주의 떠나심
주께서 떠나신 후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냉담했었던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게 된다. 떠나신 주를 찾아 계속 불러도 깊이 후회하는 성도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항상 응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는 징계를 수반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성도들은 실망해서는 안 된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더라도 인내하면서 늘 기도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5) 새로운 마음가짐
술람미 여인은 신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여자들 앞에서 자신의 신랑에 대해 설명하고 이제 신랑에 대한 그녀의 헌신과 관심을 강조한다.(아6:3). 이 헌신과 사랑의 표현은 행복과 기쁨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즉 성도들에게 믿음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여 주심으로 그 믿음은 다시 굳건하여 진다. 시험과 고난을 이겨낸 성도는 더욱 강한 믿음과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다.
3. 군대 같은 교회(아6:4-10)
주를 애타게 찾던 교회(신부)는 주의 칭찬과 찬미를 다시 받는다. 주께서 성도들의 타락이나 나태함에 대한 책망을 하심으로써 성도들은 더욱 기쁜 마음으로 주를 찾게 된다. 주께서는 교회가 아름답다고 하신다. 또한 교회는 군대같이 엄위한데(아6:4), 이는 교회가 갖는 거룩함 때문이며 주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권능(행1:8)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권세는 성도들이 기도할 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에서 그리고 교회의 복음전파에서, 또 교회가 할 수 있는 징계, 즉 죄를 사죄하는 능력(마16:19; 요20:23)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교회의 엄위함은 사단의 권세를 누르고 이길수 있는 힘이 된다. 교회가 주께서 주신 권세와 능력을 올바로 발휘할 수 없다면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서 사단의 권세와 어두움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