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다니엘 강해

[스크랩] 다니엘서 (개론)

에반젤(복음) 2019. 12. 27. 18:19


     다니엘서(개론)




1. 이 책의 명칭
다니엘은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 가운데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다. 예수께서는 이 책의 예언들을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마태 24:15; 마가 13:14)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증거는 이 책의 명칭이 단순히 다니엘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예언들이 다니엘에 의해 선포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복음주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책의 저자를 에스겔서에(14:14, 20; 28:3) 노아와 욥과 함께 의인의 표본으로 등장하는 다니엘과 동일한 인물로 본다. 이에 반하여 다니엘의 이러한 역사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다니엘이 "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노아와 같이 고대 세계에 보편적인 전설상의 한 인물이다"(Montgo-mery, Ice, p. 2)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에스겔서에 나오는 노아와 욥은 고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 성서 상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에스겔서에 나오는 다니엘을 다니엘서의 저자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2. 저자와 저자연대
몇몇 학자들이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묵시적 예언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J. E. H. Thomson저, Danie1 in Pulpit Commentary, p.93을 보라).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지만 때때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E. G., Ro-bert H. Pfeiff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IIlent,p.775).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된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1)저자는 역사상의 문제에 있어서 과오를 범하고 있다.

2)다니엘서에 나타난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6세기 훨씬 이후의 형태들이다.

3)여기에 사용된 몇몇 용어들은 6세기의 유대인 저자로서는 알 수 없었던 바사어와 헬라어들이다.

4)이 책은 구약성경의 세번째 부분(성문서, W-ritings or Hagiographa)에 속해 있으므로 예언서가 끝난 후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5)다니엘서가 주후 2세기 이전에 존재했다는 외적 증거는 없다.

6)이 책의 신학사상이 6세기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진보적이다.

7)서술된 내용이 환상적이고 비역사적이며 비현실적이다.

8)다니엘서는 계시문학의 한 실례인데, 계시문학은 헬레니즘 시대가 거의 다 지나서야 나타났다(Montgomery,Icc,p.80).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옹호하는 현대 변증가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다니엘서의 증언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

2)다니엘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기독교시대 이전의 유대인들이 그 역사성을 믿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3)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포함하여 신약성서가 한결같이 증거하고 있다.

4)고대의 직접적인 외적 증거가 있다(에스겔 14:14, 20; 28:3; 마카비일서 2:59,60. 그리고 요세푸스의 몇몇 귀절들).

5) B.C.165년 이전에 다니엘서의 영향력에 대한 증거가 있다.

6)다니엘서의 사상과 역사에 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이러한 근거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는 특히 고고학에서 발견되었다. 이 책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대부분의 반대들은 Charles Boutflower의 In and Around the book of Daniel과 R.H. Dougherty의 Nabonidus and Eel Shaz-zer에 의해 잠잠해졌다. 특히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Montgomery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문제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Ice, p. 72, 2 nd full parsgraph).

3. 역사적 배경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는 포로기에 쓰여졌는데, 이때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대인의 성전과 도성이 파괴되고 재산을 빼앗긴 후 유대인들이 잡혀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파괴는 세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번째 B.C. 605년, 느부갓네살 왕이 여호야김을 굴복시키고 포로로 잡아갔는데, 그들 중에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있었다(다니엘 1:1-6).
두번째 B.C. 597년, 느부갓네살의 팔레스틴 원정 중에 유다왕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이 모종의 반역을 도모하여 처벌을 받게 되고, 느부갓네살이 다시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었다. 느부갓네살은 만명의 포로들을 끌고갔는데, 그들 중에 여호야긴왕과 젊은 예언자 에스겔도 끼여있었다(에스겔 1:1-3: 참조, 역대하 36:10; 열왕기하 24:8-20).
세번째 B.C. 587년, 오랜 포위 공격 후에 느부갓네살은 도성과 성전을 파괴하고 전 유대사회를 파괴하였다(열왕기하 25:1-7; 예레미야 34:1-7; 39:1-7; 52:2-11).
B.C.583년 바벨론의 정복자이며 메대 - 바사제국의 새 왕인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귀환해도 좋다는 포고령을 내렸을 때 유대의 재건은 시작되었다(역대하 36:22, 23; 에스라1:1-4).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포로생활의 기간은 불과 48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B.C. 587년에 파괴된 성전은 70년이 지난 B.C. 51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재건되었다(에스라 6:15). 그러나 "70년"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바벨론 포로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며(예레미야 25:11), 이것은 유다 뿐만 아니라 그 인접 국가도 포함하는 말이다(B.C.605년에서 538년까지의 "70년"은 대략적인 수: 참조: 다니엘 9:1,2절에는 B.C.539/538년으로 되어 있음). 포로생활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일어 난 문화적, 종교적 변화는 다음과 같다. 즉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대신에 회당에서 드리게 되었으며, 제 2의 언어인 아람어(또한 시리아어나 갈대아어라고도 불렸다)를 채택하여 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증거들은 아브라함이 사용한 언어가 원래 아람어였음을 밝혀준다. 성서의 난외주를 읽어 보면(신명기 26:5; 창세기 31:47)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조상들이 아람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적 증거들은(참조, 모암 비석, 라스 샴라 호판) 가나안 사람들이 히브리어와 거의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바벨론에 있을 때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상업어로 사용했으며, 때로는 그것이 외교어가 되기도 했다(참조, 이사야 36:11, 12). 히브리어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와 유사한 아람어를 사용했다(열왕기하 18:26). 그리고 얼마 동안은 두 개의 언어를 병행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다니엘서의 전반에 해당하는 처음 6장이 히브리어로 쓰여졌다는 사실 뒤에는 분명히 이러한 상황이 깔려 있다.

4. 계시의 해석
계시를 해석하는 데에는 해석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시 문학을 다루기 위한 어떤 특별한 성서해석학적 규칙들이 아직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비성서적 계시문학의 해석에 적용되는 규칙들이 성서적 계시문학을 해석하는데 무비판적으로 도입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