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다니엘 강해

다니엘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에반젤(복음) 2019. 12. 27. 17:55


                    

다니엘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박동현




1. 들어가는 말: 다니엘서의 이중성


다니엘서를 바르게 설교하려면, 한편으로는 다니엘의 특성과 짜임새와 중심 주제와 내용과 표현 형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앞의 문제를 주로 다루기로 한다. 다니엘서 본문의 기본 내용을 오늘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설교자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고, 그 답은 결국 설교자 자신이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1) 기독교 성경에서 다니엘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예레미야 애가 다음에, 또 십이 소 예언서 앞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번역 구약 성경인 헬라어 칠십인역 성경의 책 배열 순서를 따른 것으로서, 다니엘서를 예언서의 하나로 읽고, 다니엘을 예언자로 이해하게 한다. 이와는 달리, 히브리 성경에서 다니엘서는 율법서와 예언서에 이어 셋째 부분으로 나오는 성(聖)문서에 속해 있다. 이 경우에 다니엘서는 지혜의 책으로, 다니엘은 기도와 찬송과 지혜의 인물로 이해할 수 있다.


(2) 또한 칠십인역 성경 다니엘서에는 히브리 성경의 다니엘 3장 23절과 24절 사이에 다니엘의 동무 아사랴가 불길 가운데서 부르는 찬송과 또 세 동무가 함께 부르는 찬송이 길게 68절에 걸쳐 나오고, 맨 뒤 12장 다음에는 수산나에 대한 이야기가 64절 분량으로, 또 벨과 뱀(또는 용)에 대한 이야기가 42절 분량으로 덧붙어 있다. 종교 개혁 이후, 이 부분을 기독교에서는 외경에 넣어 다니엘서와는 따로 다루어 왔다. 이 부분을 한글로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읽을 수 있다.


(3) 이리하여 오늘 기독교 설교자들이 읽는 다니엘서는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 곧, 본문의 범위에 있어서는 히브리 성경을 따르지만, 구약을 이루는 여러 책의 배열 순서에 있어서는 번역 성경인 칠십인경을 좇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장절 구분에 있어서 우리가 읽는 한글 번역 성경 다니엘 4장 1-3절, 4장 4-37절, 5장 31절, 6장 1-28절이 히브리 성경으로는 각각 3장 31-33절, 4장 1-34절, 6장 1절, 6장 2-29절로 되어 있다. 이는 우리 성경이 장절 구분에 관한 한, 부분적으로 히브리 성경의 전통과는 다른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 성경의 장절 표기를 따르기로 한다.


(4) 아래에서는 먼저 우리 한글 성경을 중심으로 다니엘서의 짜임새를 알아보고, 다니엘서의 중심 주제를 살펴 본 뒤에, 다니엘서를 본문으로 설교할 때 생각할 점을 몇 가지 다루어보기로 한다.



2. 다니엘서의 짜임새


(1) 표현 형식으로 보면, 다니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에 대한 이야기인 1-6장과 다니엘이 본 이상(異像)이나 다니엘이 한 기도에 대한 내용과 풀이가 담긴 7-12장의 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6장에서는 다니엘이나 그의 세 동무가 삼인칭으로 나오지만, 7-12장에서는 다니엘이 일인칭으로 등장한다. 이 두 부분에서 다니엘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르다. 1-6장에서는  다니엘이 바벨론 임금들이 꾼 꿈이나 벽에 쓰인 글씨의 뜻을 풀이해 주는 인물로 나타나지만, 7-12장에서는 다니엘 자신이 직접 꿈을 꾸거나 이상을 보았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뜻은 천사들이 풀이해 준다.


(2) 중심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니엘서는 1장과 2-7장과 8-12장의 셋으로 대강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다니엘서가 본디 히브리어로 씌어진 1장 2절-2장 4절 전반절 및 8-12장과 아람어로 씌어진 2장 4절 후반절-7장 28절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과 잘 맞아떨어진다.

1장은 다니엘서의 주역들을 소개하면서 다니엘서 전체의 머리말 노릇을 한다.

2-7장에서는 네 강대국을 무너뜨리고 들어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본문으로 2장(‘한 큰 신상’, 31절)과 7장(‘큰 짐승 넷’, 3절)이 양쪽 끝에 있고, 그 안쪽으로 무고하게 겪는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용사들의 이야기로서 3장(‘뜨거운 풀무불 가운데서 살아 남은 세 동무’)와 6장(‘사자굴에서 살아 남은 다니엘’), 맨 안쪽에는 교만한 세상 권력자들에 대한 심판을 알려주는 4장(‘느부갓네살’)과 5장(‘벨사살’)이 대칭을 이루면서 자리잡고 있다. 2-7장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이방 권력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는 점이다(2:47; 3:28-29; 4:1-3,34-37; 6:26-27).

8-12장에서는 수양과 수염소의 이상을 다루는 8장이 바사 왕국과 헬라 왕궁에 대한 이상을 다루는 10장과 짝을 이루고, 11장에서는 헬라 왕국의 후예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펼쳐진다. 다른 한편으로, 다니엘이 70년 포로 생활에 대한 예언의 뜻을 알려고 기도하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그에 대한 응답으로 나오는 풀이가 담긴 9장의 끝부분은 11장과 이어진다. 12장은 11장 마지막 부분과 관련하여 ‘마지막 때’에 대해 다룬다.

더 나아가서, 7장의 이상에 대한 풀이의 끝부분도 11장 뒷부분 및 2장과 연결된다. 이리하여 7장은 2-6장과 8-12장을 잇는 다리 구실을 한다.


(3)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표시된 연대 표시에 따르면, 다니엘서는 유다 왕 여호야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성전 기구들과 더불어 다니엘을 비롯하여 유다 왕족들과 귀족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간 때(1:1-4)를 출발점으로 하여, 바벨론 시대를 거쳐 다니엘이 바사(=페르샤) 왕 고레스 삼 년에 다니엘이 바사 시대를 넘어서서 헬라(10:20; 11:2) 시대에 대한 것도 알게 된 내용(10-12장)로 끝난다. 이는 다니엘 개인으로 보면 주전 605-537년에 해당하는 기간이고, 유다 백성의 역사에 맞추어 보면, 주전 605-160년대에 이르는 기간이다. 주전 605년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당시 중동 세계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떠오른 때이고, 537년은 이 바벨론이 망하고 고레스가 중동 세계를 주름잡게 된 때이며, 160년대는 바사를 멸망시킨 헬라 왕국도 분열하여 그 가운데 수리아 지방을 다스리던 셀류시드 왕조가 이스라엘 백성을 크게 괴롭히고 있던 때였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거스른 유다를 벌하도록 하나님이 쓰신 심판의 도구로 특히 예레미야서(21:1-10 등)에 잘 묘사되어 있고, 고레스는 바벨론에 사로잡혀가 살던 유다 백성을 다시 유다 땅으로 돌려보내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하나님이 쓰신 인물로 특히 이사야서(44:24-45:8 등)에서 똑똑히 드러난다. 헬라(히브리말로 <야완>)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에 여러 번(창10:2,4; 사66:19; 겔27:13,19; 슥9:13; 대상1:5,7; 단 8:21; 10:20; 11:2) 나오지만, 헬라 왕국과 그 후예들, 특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주전 175-164년)를 비롯한 셀류시드 왕조의 오만한 통치자들에 대해서는 마카베오상하 곳곳에서 다루고 있다.


(4) 다니엘서에서 유다 왕으로는 여호야김이 유일하게 단 두 번 1장 1,2절에 나오고, 1-4장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때, 5장과 7-8장은 바벨론 왕 벨사살 때, 6장과 9장은 바사 왕 다리오 때, 10-12장은 바사 왕 고레스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 가운데서 고레스가 다리오보다 먼저 살았던 왕이고, 벨사살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5장과 7-8장 사이에 다리오 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6장이 들어 있으므로, 다니엘서의 열 두 장이 실제 왕들의 연대 순서로 배열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런 왕들의 이름이 한편으로 다니엘서를 예언서(삼대 예언서와 몇몇 소 예언서, 또 전기예언서에 속하는 열왕기하)와,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성문서에 속하는 역사서, 곧 에스라 느헤미야와 역대상하와 이어준다.

느부갓네살의 이름은 예레미야서(21:2; 24:1; 25:1; 27:8; 28:3; 29:1 등 모두 29번)와 에스겔서(26:7; 29:18,19)와 열왕기하(24:1,11; 25:1,8,22)와 역대하(36:6,7,10,13)와 에스라서(1:7; 2:1; 5:14; 6:5)와 느헤미야서(7:6)와 에스더서(2:6)에 나오고, 고레스의 이름은 이사야서(44:28; 45:1)와 에스라서(1:1,2,7,8; 4:3 등 모두 11번)와 역대하(36:22-23)에 나오고, 다리오의 이름은 학개서(1:1,15; 2:10)와 스가랴서(1:1,7; 7:1)와 에스라서(5:5,6,7 등 모두 10 번) 느헤미야서(12:22)에 나온다.



3. 다니엘서의 중심 주제와 특별한 내용


(1) 다니엘서를 통틀어 볼 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계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땅의 정치 권력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아래 정해진 기간 안에서만 유효하고(11:27,35,36) 마침내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서리라(2:44; 7:27)는 것이 다니엘서의 기본 입장이다. 이러한 내용은 이방 권력의 다스림을 받으며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위로가 되고, 현실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희망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견뎌낼 힘을 준다.


(2) 하나님을 가리켜 다니엘이나 그의 세 동무는 ‘하늘의 하나님’(2:18,19,44, 개역 18절과 19절에서는 이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번역했음), ‘하늘에 계신 하나님’(2:28), ‘주 하나님’(9:3), ‘주 우리 하나님’(9:9,15), ‘나의 열조의 하나님’(2:23), ‘크신 하나님’(2:45), ‘우리 하나님 여호와’(9:10,13,14), ‘우리 하나님’(3:17; 9:17), ‘나의 하나님’(6:22; 9:19), ‘내 하나님 여호와’(9:4,20), ‘하나님’(9:11 등), ‘주’(9:7 등)라 하는데, 아람어 부분에는 ‘여호와’가 나오지 않는다. 이방 통치자들은 이 하나님을 가리켜 ‘너희 하나님’(2:47), ‘모든 신의 신’(2:47), ‘모든 왕의 주재’(2:47),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3:26; 4:2; 5: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3:28), ‘지극히 높으신 자’(4:24,25,32,34), ‘하늘’(4:26, 개역한글판에서는 ‘하나님’으로 옮겼음), ‘영생하시는 자’(4:34), ‘하늘의 왕’(4:37), ‘하늘의 주재’(5:23), ‘왕(=벨사살)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5:23),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6:16,20), ‘사시는 하나님’(6:20,26), ‘다니엘의 하나님’(6:26),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2:47)라 한다. 한편 7장 이하에서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또는 자)’(7:9,13,22)(아람 표현을 직역하면, ‘날 수 오래되신 이’), ‘지극히 높으신 자’(7:18,27), ‘신들의 신’(11:36)이라 한다.

이리하여 다니엘서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남의 나라에 사로잡혀가 사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이면서도, 이들을 사로잡아가서 부리는 이방 권력자들도 마침내는 인정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온 누리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3) 세상 나라의 대표적인 경우로 2장 7장에서는 인류 역사상 잇달아 일어난 네 나라에 대해 말한다. 그 가운데서 특히 하나님 백성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서기 전에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넷째 나라가 포악하고 잔인하며 하나님 백성을 엄청나게 괴롭힌다는 점을 자세히 밝힌다. 이 나라를 8장 21절과 11장 2절에서는 헬라라고 이름을 들어 밝힌다. 다니엘에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못된 통치자의 나라는 헬라 왕국의 후예 가운데 하나로 수리아 팔레스타인 지방을 다스리던 셀류시드 왕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아울러, 세상 나라를 심판하실 하나님을 가리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또는 자)’(7:9,13,22)라고 하고, 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자 같은 이’가 세상에 대한 영원한 통치권을 받는다(7:13)고 하는데, 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은 또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또는 성민)’(7:18,22,27)이라 불린다.


(4) 이처럼 하나님이 꿈이나 이상을 통해 알려주시는 바를 따라 세계 역사의 흐름, 특히 통치권의 변화를 제대로 ‘깨닫는 것’을 가리켜 다니엘서에서는 ‘지혜’라고 한다(2:21).

이런 지혜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2:30). 이 점은 또한 4장 8절, 9절, 18절에서는 이방 왕 느부갓네살이, 5장 11절에서는 벨사살의 태후가 다니엘을 가리켜 “그(또는 너)의 안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고 부른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리하여, 이 지혜는 기도와 깊이 관련된다. 이방 왕이 꾼 꿈과 그 꿈의 뜻을 하나님이 알게 해 주십사고 동무들과 함께 힘을 모아 기도했고(2:18,23), 이방 왕 말고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왕명을 알고도 늘 하던 대로 기도했으며(6:10-11), 예루살렘의 황폐한 상태로 있는 기간이 칠십 년이라 한 예언의 뜻을 깨닫기 위해 기도했고(9:3-4), 자기에게 나타난 이상의 뜻을 알려고 세 이레 동안 금식했다(10:1-3,12).


(5) 다니엘서에는 여러 천사가 등장한다. 천사들이 ‘가브리엘’(8:16; 9:21)과 ‘미가엘’(10:13,21; 12:1)은 이름으로 바로 나오기도 하지만, ‘신들과 아들 같은 이’(3:25), ‘사자’(3:28), ‘한 순찰자’(4:13,23), ‘한 거룩한 자’(4:13,23; 8:13), ‘사람 모양 같은 것’(8:15; 10:18), ‘인자와 같은 이’(10:16), ‘세마포 입은 자’(10:5; 12:6), ‘그 곁에 모신 자’(7:16, 아람 낱말을 직역하면, ‘서 있는 자들’)로 불리기도 한다. 10장에서 천사는 그냥 하나님 뜻을 전해주는 심부름꾼일 분만 아니라, 그 스스로 하나님 백성의 운명에 영향을 주도록 행동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6) 박해 상황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니엘서 1장, 3장, 6장, 11장 각각 특색 있는 해답을 준다.

1장에서는 이방 땅에 사로잡혀와 사는 상황에서도 왕궁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굳게 결심하고(8절) 이를 실행한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는 하나님이 다른 동료들보다 더 나은 자리에 오르게 하셨다.

3장에서는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건져내주시지 않더라도 이방 신상에 절할 수 없다고 한 세 동무(18절)를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지켜 주셨다.

6장에서는 ‘하나님의 율법’(5절)과 ‘메대와 바사의 규례’(8,12,15절)에 따라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이방 ‘왕의 율법’(7절)의 둘이 서로 어긋날 때 - 아람말로는 5절의 ‘율법’과 8,12,15절의 ‘규례’가 같다 - 어느 것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이럴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니엘은 왕의 율법을 따를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왕에게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4절에서 ‘충성되어’로 옮긴 아람 낱말은 23절 끝의 ‘의뢰하다’로 옮긴 아람 낱말과 뿌리가 같다.

11장 30-35절과 12장 1-3절에서는 이방 통치자의 극심한 박해가 있을 때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배신자가 있겠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으리라고 한다. 이들을 가리켜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11:32), ‘백성 중 지혜로운 자’(11:33), ‘지혜 있는 자’(12:3), ‘백성 중 책에 기록된 자’(12:1),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12:3)라 하는데, 이들은 목숨을 잃더라도 깨어 영생을 얻으리라(12:2)고 한다. 이들은 또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한 동안에만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권력이 힘을 떨친다는 것을 안다(11:27,29,35).


(7) 11장 35, 40절과 12장 4절, 9절의 ‘마지막 때’(그 히브리 표현을 직역하면, ‘끝의 때’)는 다니엘서에서 생각하는 세상 역사의 끝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백성을 극도로 박해하는 헬라 왕국의 셀류시드 왕조가 망하는 때요,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했던 사람들이 보상받는 때이다. 이와 관련하여 12장 2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말한다.



4. 다니엘서 본문을 읽을 때 관심을 둘 점


(1) 처음부터 신약 성경 특히 요한계시록과 관련시키기보다는, 일단은 다니엘서 자체의 흐름에서 본문을 이해하도록 한다. 이는 본문에 대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본문이 실제로 말하려는 바를 놓치는 잘못에 빠지지 않게 한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바처럼 기독교 성경에서는 다니엘서가 삼대 예언서 바로 다음에 나오기 때문에, 다니엘서를 예언서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다니엘서가 다니엘의 시대를 넘어서서 세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며 ‘마지막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려주고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인 것을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 전통에서는 요한계시록과 관련하여 다니엘서를 묵시서로 풀이해 오기도 했다. 이런 전통에서는 묵시 문학과 예언 문학의 차이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예언이 극도로 확대된 것이 묵시라는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예언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바를 다루는 알리는 것과는 달리, 묵시는 극도의 박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굳센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이 세상 역사를 넘어서는 저 세상의 일을 다룬다는 점에서 예언과 묵시는 구별하는 것이 좋다.

이리하여, 다니엘서 본문에 과연 어떤 예언 문학이나 묵시 문학의 요소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곧, 다니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든가, 그렇게 하여 선포한 말씀이 있는가? 예언자의 소명 보도, 상징 행위 보도, 거짓 예언자들과 부딪친 사건에 대한 보도 같은 것과 견주어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박해를 믿음으로 이겨내는 이야기가 담긴 3장과 6장을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충성스레 일한 예언자(이를테면,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와 견주어볼 만도 하지만, 아무래도 다니엘서의 다니엘에게는 지혜자의 모습의 더 강하게 나타난다.

다른 한편으로 요한계시록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이 세상 역사 저너머로 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내용, 상징적인 숫자나 비유 같은 것이 다니엘서에 나오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다니엘 7-12장에만 주로 나올 따름이다.


(2) 이제 1장부터 차례로 각 장이 어떤 형식의 글이며, 각 장에 예언 문학이나 묵시 문학이나 지혜 문학의 요소가 어느 정도 어떻게 들어있는지를 살펴보자.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가 뛰어난 지혜자로 이방 왕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과정을 알려주는 이야기 형식의 글인 1장에서 예언문학이나 묵시문학의 요소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바벨론의 지혜자들과 경쟁하여 이들을 너끈히 물리친 지혜자 다니엘을 통해 세상 통치권의 변화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방 왕에게 알려주셨다는 이야기가 담긴 2장은 요셉이 애굽 왕의 꿈을 풀어주고 높은 자리에 오른 이야기가 적힌 창세기 41장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도 예언 문학의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믿음의 용사들이 박해를 이김으로써 하나님을 드높이게 되었다는 점을 알려주는 이야기인 3장에는 예언 문학의 요소뿐만 아니라 지혜 문학의 요소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느부갓네살이 겪은 바를 스스로 고백하는 형식으로 된 글인 4장에서는 하늘에서 내려 온 소리가 두 번 나온다(13절, 23절). 그렇지만 이는 예언자로 부름 받은 사람이 전하는 말이 아니고, 한번은 천사가, 한번은 그냥 목소리만 들린다. 전해진 말씀의 내용은 세상 통치자의 운명에 대한 것이다. 예언서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지만, 본문의 경우 예언서의 경우보다 더 자세하다. 또 말씀을 전해 받은 통치자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아니고 이방 나라 임금이며, 그 통치의 문제가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전세계, 온 누리에 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4장도 일반 예언과는 다르다.

5장에 이르러서 지혜문학의 요소가 다시 나타나지만, 이는 주로 세계통치권자가 누구인가를 아는 지혜와 상관된다. 예언 문학의 요소로는 이 땅 통치자의 흥망을 미리 알려주는 것을 들 만하다(왕상 11:29-39; 19:15-17 등 참고). 상징적인 글자와 그 풀이가 묵시문학의 요소를 이룬다.

사자굴에 던져졌으나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난 다니엘의 이야기인 6장에서는 3장과 마찬가지로 지혜나 예언이나 묵시의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23절 마지막 문장에서 이를 똑똑히 밝힌다.

7장은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네 짐승과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와 인자 같은 이를 보고, 그 뜻을 천사가 풀어 다니엘에게 일러주는 점에서 묵시문학의 요소를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보다’라는 동사가 7장에 집중적으로 쓰임으로써 한편으로는 예언자들의 환상 경험과 이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듣는 데서 보는 것으로 그 중심이 옮겨온 듯한 느낌을 준다.

8장은 수양과 수염소에 대한 환상 보도와 그 풀이가 들어 있는 묵시문학적 본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주제가 ‘정한 때 끝’(19절), ‘마지막 때’(23절)에 관한 것이어서 지혜 문학의 요소도 품고 있다. ‘뜻’(15절), ‘깨닫게 하다’(16절), ‘깨달아 알다’(17절)이 히브리어로는 한 뿌리(<빈>)에서 나온 낱말로 이 또한 본문의 지혜문학적인 성격을 알려준다.

9장은 다니엘이 예루살렘이 겪는 재난의 기간을 알려고 기도한 바와 그 기도에 대해 천사가 말해 준 바를 적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8장 16절에 나타났던 천사 가브리엘이 9장 21절에 다시 등장함으로써, 9장은 8장과 이어진다. 다니엘의 기도(9:4-19)를 참회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일종의 중재자의 기도로 본다면, 이는 아모스(암7:2,5), 예레미야(렘14:7-9. 참고 3:22후-25), 모세(출32:31-32; 민14:10-19)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언적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깨닫다’(2,23절), ‘가르치다’(22절), ‘생각하다’(23절), ‘총명’(22절)도 8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사 <빈>에서 비롯된 낱말들로 지혜문학에 잘 쓰인다. 더 나아가서 24-27절에 나오는 상징적인 표현과 숫자는 묵시문학의 전형적인 요소이다.

10-12장에서는 다니엘이 자기에게 나타난 일(10:1)을 깨달으려고 금식하자 천사가 나타나서 헬라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겪을 일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일어날 일을 자세히 알려주며(11장) 다니엘이 할 일을 또 다른 천사들이 일러준다(12장). 그 가운데 10장에서 다니엘이 천사의 말을 듣고 엎드려져 말문이 막히고 천사가 다니엘의 입술을 만짐으로 다니엘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사야 6장에서 볼 수 있는 이사야의 경험이나 에스겔 3장에 나오는 에스겔의 경험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지만, 천사가 나타나서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하면서 땅의 일을 상징적인 표현과 숫자로 풀이해 주는 것은 묵시문학의 요소를 잘 드러내준다. 그리할 때 ‘깨닫다’(10: 12,14; 12:8), ‘지혜 있는 자’(11:33,35; 12:3,10), ‘작정된 기한’(11:27,29), ‘마지막 때’(11:35,40) 등의 표현은 또한 지혜문학의 요소도 암시한다.


(3) 장마다 위 2(2)에서 말한 내용상의 특징과 아울러 형식적으로도 특징이 있어 서로 구별된다.

1장이 다니엘서 전체의 서문의 역할을 한다면, 2장은 1장과 별개로 전해 내려온 본문으로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1장 마지막에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가 이미 느부갓네살에게 크게 인정을 받아 등용된 것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2장 앞 부분에서는 느부갓네살이 아직 이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3장에서는 다니엘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에서 1-2장과 구별된다.

4장은 느부갓네살이 16-30절을 뺀 나머지 부분에서 일인칭으로 등장하여 지난날 자신이 ‘매우 높으신 분’에 대해 경험한 바를 자기 통치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간증문 비슷한 성격을 띤다. 4장은 여러 가지 점에서 2장과 견주어 볼 만 하지만, 여기서는 바벨론의 지혜자들과는 달리 다니엘이 꿈을 잘 풀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다니엘이 풀어 준 꿈의 내용 무엇이며 그것이 성취되자 느부갓네살이 보이는 반응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려고 힘쓴다. 다니엘은 이 느부갓네살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주는 존재로 나타날 뿐이다.

5장에서는 벨사살이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써 1-4장과 분명히 구별된다. 또한 11-12절에서 태후가 다니엘을 벨사살에게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벨사살은 다니엘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는 점에서도 5장은 1-4장과 구별된다. 다만 태후의 말을 통해서, 또 18-21절에 나오는 다니엘의 말을 통해, 5장은 2장 및 4장과 이어진다. 벨사살은 부왕 느부갓네살이 하나님 앞에 교만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선례를 보고도 배우지 못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성전 그릇으로 술을 마시는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5장에서 왕과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읽어내지 못한 글씨를 다니엘이 읽고 그 뜻을 풀이해 준 것은, 2장에서 왕이 꾼 꿈을 다니엘이 알아내고 그 뜻을 풀이해 준 바와 통한다.

6장에서 다니엘이 억울하게 사자굴에 던져졌다가 살아나게 된 점에서 3장에서 다니엘의 세 동무가 억울하게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살아나게 된 점과 통하지만, 그 사건의 주역과 계기가 다르다. 곧, 3장에서는 느부갓네살 스스로 신상을 세우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면, 6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의 신하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기도의 문제를 두고 왕의 칙령을 얻어내고, 이것을 근거로 다니엘을 고발했다. 다리오 왕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니엘에게 매우 호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굳센 신앙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16절).


(4) 그렇지만, 각 장이 다른 장들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이를테면 1장 가운데서 1장을 넘어서서 다른 장의 내용과 연결될만한 요소들이 있다. 2절의 성전 그릇은 5장과, 17절 하반절의 꿈을 이해하는 다니엘의 능력과 바벨론의 지혜로운 자보다 더 나은 네 소년의 능력은 2장과 이어진다.


(5) 문장의 주어가 하나님인 경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가장 좋은 보기가 1장이다.

1장에서는 한편으로 바벨론 임금의 음식과 포도주 문제를 두고서 다니엘이 자기 뜻을 이루어내는 바를(3-16절), 다른 한편으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다른 포로 소년들보다 더 슬기로운 자들로 바벨론 임금으로부터 인정받게 되는 바를(17-20절) 알려 준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9절(“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과 17절(“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이 분명히 한다. 1장의 시대 배경을 설정해주는 2절에서도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라고 함으로써, 느부갓네살의 행위는 그저 하나님이 먼저 하신 일의 결과로 이해하게 한다.


(6) 본문에 나타나는 대조법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3장 13절에서 다니엘의 세 동무가 느부갓네살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고 그가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고발한다. 이에 14-15절에서 느부갓네살이 이들을 불러 사실 여부를 묻고 금신상에 절할 기회를 다시 한번 주겠다고 하는데, 이 세 사람은 16절-18절에서 임금의 신들을 섬기지 않고 임금이 세운 금 입상에도 절하지 않으리라는 뜻을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 14-15절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의 말과 16-18절에 나오는 세 사람의 대답은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곧, 17절에서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은 한편으로 15절후반절에서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낼 신이 누구냐?”라는 느부갓네살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다음 18절에 나오는 ‘당신의 신들’과 대조가 된다. 이 ‘당신의 신들’이란 표현은 또한 이미 12절에서 고발자들이 한번 쓰기도 하였고, 14절에서는 임금 자신이 ‘내 신들’이라고 한 바와도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여기서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고 불리는 세 유대인이 자기들의 하나님과 느부갓네살의 신들 가운데 누구를 섬길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 바벨론 지혜자들의 무능함(2:10-11; 4:7; 5:8,15)과 다니엘의 유능함(2:27-45; 4:18-19; 5:17-28)도 2장과 4장과 5장에서 크게 대조되어 나타난다.

더 나아가서, 대조법은 이방 왕들의 묘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방 왕의 교만함을 꺾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는 4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이 다시 권좌로 돌아오게 되지만, 5장에서 벨사살은 그러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 이는 5장 18-21절에서 볼 수 있듯이, 벨사살이 선왕 느부갓네살이 겪은 바에서 배우지 못하고 계속 교만했기 때문임을 생각하게 해 준다.


(7) 각 장의 짜임새를 살펴보는 가운데, 각 장의 주 관심사가 어디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이를테면, 2장의 신상 묘사나 그 신상에 대한 풀이에서는 넷째 나라가, 7장의 네 짐승 환상과 그 환상의 뜻풀이에서는 넷째 짐승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다. 이는 두 장의 관심이 바로 이 넷째 나라에 있고, 바로 이 본문의 청중이 이 넷째 나라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8장에 나오는 수양과 수염소의 환상 묘사와 그 뜻풀이에서는 수염소를 헬라 왕이라고 바로 말하고, 거기서 나온 네 나라 마지막 때 일어난 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도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9장 24-27절에서도 마지막 이레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5. 나오는 말 - 설교 현장에 관련된 몇 가지 제안


(1)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다니엘서를 그저 요한계시록 설교의 보조 본문 정도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이 그 내용이나 표현 방식에 있어석 공통된 점이 많지만, 다니엘서는 이미 다니엘서 자체로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 만큼, 우선은 다니엘 자체의 흐름을 따라 다니엘서 본문을 읽고 설교하는 것이 좋다. 특히 2장, 7-12장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표현과 숫자를 바로 오늘의 국제 정세와 연관시켜 풀이하는 것은 다니엘서 본문이 본디 뜻하는 바를 가릴 위험이 있다.

다니엘서뿐만 아니라, 성경 어느 부분을 본문으로 삼고 설교하든지, 설교자가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설교자 자신부터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나는 어떻게 설교하는가?”, 졸저 『예언과 목회 [IV]』(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101-111쪽을 참고하라.

다니엘서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잘 알아듣기 위한 노력 가운데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본문을 글의 흐름에 따라 읽는 것이다. 이를테면, 흔히 10장 2-3절을 근거로 ‘세 이레 금식 기도’에 대해 말하면서도 다니엘이 그렇게 한 목적이 어디 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가 쉽다. 12절에 따르면 다니엘은 ‘깨달으려 하여’, 곧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상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세 이레 동안 금식 기도 한 것이다. 1절에서 한글개역판은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고 옮김으로써, 이미 다니엘이 본 이상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히브리 본문에서 이 부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뒤이어 11-12장 내용에 비추어 보면, 헬라 왕국의 셀류시드 왕조 시대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지며 그 때 참된 하나님 백성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다니엘에게 궁금했던 것으로 보인다.


(2) 다니엘서는 앞으로 닥칠 세상 끝에 대한 예언으로 읽기보다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말로 다할 수 없이 큰 시련 가운데 있는 하나님 백성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읽는 것이 좋다. 복음서에서 다니엘서를 인용하는 것(이를테면 마가복음 13장 14절의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니엘 9장 27절, 11장 31절, 12장 11절에 나온다)도 다니엘서의 표현 방식을 당시 상황에 맞게 사용한 것일 따름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에 사로잡혀가서 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지혜를 인정을 받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다.


(3) 여기서 오늘 우리 시대에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였듯이, 기독교회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 권력이나 문화에 흐름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런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와 같은 상황에 있다고 할 만하다.


(4) 다른 한편으로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스스로를 강하게 여기고 오만하게 처신하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교훈이 다니엘서에 들어 있으므로, 다니엘서는 이 점에서 매우 정치적인 본문으로 읽고 설교할 수 있다. 곧 4장의 느부갓네살이나 5장의 벨사살처럼 하나님 두려워할 줄 모르고 방자하게 처신하는 세상 권력은 반드시 꺾이고 만다는 사실을 오늘 설교자들은 분명히 선포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겉보기로 불의한 세력이 날로 힘을 더 크게 떨치고 참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어려움이 계속 밀어닥치며 때로는 목숨까지 잃게 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제한된 기간 안에서만 그리하므로, 결코 그에 굴복하거나 타협할 수 없다는 점도 똑똑히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활과 영생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것이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할 수 있다.


(5) 다니엘서의 내용 가운데 시대적인 한계가 있는 부분은 오늘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이를테면, 구약의 그 어느 책에서보다 다니엘서에 천사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근거로 해서 오늘 우리에게도 천사가 나타나서 계시를 전해 주고 꿈 풀이를 해 주기를 바라거나 기대할 필요는 없다. 이는 다니엘서가 생겨날 당시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통하던 생각의 틀을 빌었을 따름이다. 다니엘서에 나타나는 천사는 묵시 문학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천사의 존재나 활동 방식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전해 주신 말씀의 내용이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기 때문에 더 이상 천사에 대해 매이거나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다니엘서의 말씀이나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11:40-12:3)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다니엘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런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고, 오늘 우리로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그런 말씀들이 본디 뜻하던 그 이상으로 성취되었다고 본다. 이를테면 12장 2절에서 제한적으로 다루는 죽은 자의 부활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되었다.




(5) 1-6장에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가 이방 통치자들로부터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보다 더 우대받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점을 본문의 흐름과 표현 방식에서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2장에서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는 아주 엄하게 자신이 꾼 꿈과 그 꿈의 뜻을 말하라고 위협적으로 다구치고 지혜자들이 자신의 요구에 응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을 서둘러 죽이려고 했지만(4-12절), 다니엘에게는 꿈의 뜻을 알아볼 기한까지 허락한다(16절).

다니엘의 신분이 사로잡혀 온 자라는 점을 1장 3-4절과 5장 13절, 6장 13절에서 분명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