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히브리서 강해

[스크랩]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히 13:10~17)|

에반젤(복음) 2019. 12. 27. 11:20



* 오늘의 말씀 :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브리서 13:10~17)

 

* 본문요약

 

  유대교의 장막에서 예배드리는 자들은 우리가 드리는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습니다. 그들이 피를 지성소에 뿌리고 그 몸은 영문 밖에서 불태우는 것처럼 예수께서도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께서 겪으신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갑시다. 우리는 장차 올 영원한 도성을 찾는 자들이므로, 이 세상에는 우리가 찾는 도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찬미의 제사와 함께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눠주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또 여러분의 영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들을 근심하게 하면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찬 양 : 217(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382(347) 허락하신 새 땅에

 

 

* 본문해설

 

1. 항상 찬송의 제사를 드립시다(10~15)

 

10) 우리에게는 한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유대교의 성막에서 예배하는 자

)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습니다.

11) 그 짐승의 피는 죄를 없애기 위한 속죄제물을 드리기 위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고, 그 몸은 영문 밖에서 불태워집니다.

12)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써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3) 그러므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갑시다.

14) 이 땅 위에는 우리가 차지할 영원한 도성이 없으므로,

우리는 장차 올 도성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이것이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 우리에게는 한 제단이 있는데(10) :

우리에게 있는 제단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습니다(10) :

유대교의 성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인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11) :

영문 밖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는 것은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주께서 영문 밖에서 치욕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주를 위해 치욕과 능욕을 받는 곳인 주님을 섬기는 자리,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2. 주께서 받으시는 참된 제사(16~17)

 

16) 그리고 선을 행하는 일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17) 여러분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마치 자기들이 청산할 자인 것처럼(마치 자기들이 하나님께 아뢰어야 하는 것처럼, 혹은 마치 자기들이 여러분의 영혼을 책임진 사람인 것처럼) 항상 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즐거움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괴로움으로) 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16) :

주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찬송의 제사(14)선을 행하는 일과 서로 나눠주는 일입니다.

 

- 마치 자기들이 청산할 자인 것처럼(17) :

교회의 지도자들은 마치 자기들이 성도들의 영혼에 대한 책임을 진 사람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 성도들 중 누군가 시험에 들거나 믿음을 잃어버리는 자가 있다면, 그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그 일을 아뢰어야 할 사람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항상 성도들을 위하여 염려하고 걱정하며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주께 드리는 참 제사(예배와 선한 삶)

 

  우리에게는 한 제단이 있는데, 유대교의 성전에서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제단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그들이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다는 것은,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속죄를 받을 수 있었으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에는 더 이상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다음 세 가지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 찬양의 제사

 

  과거에는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였으나, 우리는 예수께서 이미 완전하신 주님의 피를 바치셨으니 더 이상 짐승의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찬양의 제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 이미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는 개인 기도를 하지 마십시오. 개인 기도는 각자 묵상 시간이나 다른 집회 시간에 하십시오. 주일 예배를 제외한 모든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집회입니다. 주일 오후 집회, 수요 집회, 금요일 밤 집회, 새벽 집회, 구역 집회, 이 모든 것들이 다 예배가 아니고 집회입니다. 집회 때는 신앙의 훈련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가능하고, 개인 기도시간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는 오직 주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2) 착하고 선한 삶으로 드리는 제사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리는 것과 함께 우리가 드려야 할 또 하나의 제사는 착하고 선한 삶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선하고 착한 삶을 살아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주님이 사랑이심을 알게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삶을 살면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주님도 그런 분인 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막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와 더불어 착하고 선한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 해야 합니다. 주께 감사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착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3) 서로 나눠주는 제사

 

  그리고 함께 주님을 믿는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성도들끼리의 사랑과 섬김은 성도가 어렵고 힘들어졌을 때 물질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마지막 때에는 믿음을 갖기가 아주 힘들어지므로 우리는 성도들끼리 이런 사랑과 섬김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묵상 :

 

  이 세 가지 제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세상에서의 삶은 엉망이라든지, 반대로 세상에서는 착하고 선하게 살면서 예배는 무시로 빠진다든지 하면 안 됩니다. 주께 예배드리는 자는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으로 살고, 세상에서 착하게 사는 자들은 주께 예배를 드려 그 모든 일들이 주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2.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영문 밖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을 의미하고, 영문 안은 나의 삶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믿음이 없을 때에는 영문 안에서만 머물렀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채우기 위해 살았습니다. 나를 위해 분주했고, 내 것을 채우기 위해 바빴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을 믿는 백성이 되었으니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영문 밖으로 우리도 나아가자고 히브리서는 호소합니다. 주께서 치욕을 받으셨던 영문 밖으로 가면,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를 위해 우리가 받아야 할 치욕과 능욕, 그리고 수고의 땀과 헌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나아가서 주를 위해 수고의 땀을 흘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묵상 :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사명의 자리인 영문 밖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나를 위한 삶의 자리인 영문 안에서 모든 일을 하려 합니다. 기도의 내용도 주를 위해 헌신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섬기고 봉사하기 보다는 그저 내 마음 편하게 해 달라는 기도뿐입니다.

 

  이렇게 영문 밖으로 나아가지 않고, 계속 영문 안에서만 머무르면서 신앙의 형식만 그럴듯하게 갖추는 것은 결코 믿음도, 신앙도 아닙니다. 주께로부터 은혜를 받았음을 깨달았다면 이제 주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제사, 착하고 선한 삶으로 드리는 제사, 서로 나눠주는 제사를 드릴 장소인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자가 됩시다.

 

 

3. 영적인 지도자에게 순종하라는 것

 

  마틴 루터는 이 구절 때문에 종교개혁을 무척이나 망설였다고 합니다. 혹시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교회의 지도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가끔 교회의 지도자가 나를 인도할 때, 내가 그것을 거부하면 혹시 주께서 진노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도자를 믿고 따르라는 것, 그의 말에 순종하라는 것은 그가 나를 영적으로 인도할 때입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곧 예수님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자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 존중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말씀에 합당하지 않게 때에는 우리는 더 큰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교회 뿐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에서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지시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다면 우리는 더 큰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가 주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나를 인도할 때에는 내가 그 지도자의 말을 주님의 말로 여기고 따릅니다. 이런 경우 그들을 거부하여 슬프게 하거나 외롭다고 느끼게 하면 그들 자신에게 결코 유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당신의 영을 마치 자신이 책임진 사람처럼 그렇게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질서를 통해서 나를 인도하십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말씀에

 

묵상 :

 

  오늘날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교회의 직분자들이나 성도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다. 심한 경우 목사님들이 마치 사회의 고용사장처럼 교회의 평신도 지도집단에 이끌려 말씀 선포조차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목사도 잘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목사의 독주를 막는 이런 저런 장치들을 마련하였습니다만, 합당하게 인도하는 영적인 지도력조차 방해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자칫 영적 지도자들을 배척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기도제목

 

1. 주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2. 착한 일과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일을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중보기도 :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자들을 위해